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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7/27
    무소식희소식통신_6(5)
    비대칭
  2. 2006/07/21
    박래군 아저씨 석방 축하드려요!!!
    비대칭
  3. 2006/07/20
    드디어 비가 그쳤다!!!
    비대칭
  4. 2006/07/19
    무소식희소식통신_5(4)
    비대칭
  5. 2006/07/14
    박래군의 아내 정종숙씨의 탄원서
    비대칭
  6. 2006/07/14
    [성명] 박래군 활동가를 석방하라! 군대와 경찰은 평택을 떠나라! _문화연대(1)
    비대칭
  7. 2006/07/13
    춤추는 윤정
    비대칭
  8. 2006/07/13
    709~710 평택(3)
    비대칭
  9. 2006/07/11
    난생 처음(2)
    비대칭
  10. 2006/07/04
    무소식희소식통신_4(6)
    비대칭

무소식희소식통신_6

어제 드디어 옆집에서의 첫날밤 뚜둥~

주5일제를 철저히 보장해 주는 회사인지라 지난 토요일 종일 일한 것이 안스러우셨는지 실장님께서 수요일에 포상 휴가를 주셨어요~

토요일에 대추리에 못가본게 못내 아쉬웠지만 토요일과 월요일,그리고 화요일을 공기 답답한 셋트장에서 거의 12시간씩 보냈기에 기운이 딸려, 갈까 말까 망설였지요

혼자 사는 주제에 무려 강아지를 3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두달 넘게 제대로 돌보질 못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미용도 맡기고 집도 치우고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근 2달 정도를 평일엔 회사 주말엔 대추리'식의 라이프 스타일(거창하네~)로 지내왔기 때문에 주말 동안에 강아지들 굶어 죽을까봐 물도 마구 사료도 마구(물론 제딴에는 넉넉히라고 생각 했지만 그양이 몹시 많았던 게지요)놓아둔 통에 강아지 한마리가 완전 뚱뚱해진거예요

그것도 요크셔의 특징상 털이 무성할 당시에는 몰랐다가 털을 박박 밀어놓았더니 숫컷임에도 불구하고 임신한 암캐같은 형상이였지요

미안하고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이예요

배려랍시고 오히려 방관만하고 학대아닌 학대를 한게 아닌가 싶어서요

하여간 오전동안 볼일 다보고 거만하게 낮잠까지 한숨 자준 다음 대추리로 갔어요

언제나 그렇듯이 버스를 타면 검문소에서 어찌어찌 대처해야지 하면서 거짓말 시나리오를 그럴싸하게 짰지만 5시 10분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6시까지 기다리기 힘겨워 그냥 택시를 홀랑 잡아 탔습니다

때마침 옆에 계시던 할아버님도 16번을 기다리시는 것 같아 여쭈어보니 동창리에 사신다셔서 같이 택시를 탔습니다(살초대첩 모자가 웬지 정겹더라니~)

버스용 거짓 시나리오를 택시용으로 각색까지 하였으나 너무나 싱겁게 술술 들여보내주는 통에 허무하기 그지 없었어요

지난달 신들린 듯이 꾸몄던 옆집은 그 후로 단 한번 청소하러 들어간 것 외에는 가도 잘 들르질 못했어요

불판 친구들이 없으니 혼자 있기가 좀 그래서요

어제는 먼저 들어간 D***과 매*,비*가 있어서 큰맘 먹고 그집에서 자기로 하였지요

게다가 지난주에 들어왔던 구뿅뿅과 미뿅뿅님께서 D뿅뿅님과 함께 여기저기서 마련한 세간살이는 최고최고!!!없는게 없습니다!포터블 카셋트(전기와 건전지 겸용!!+_+),씨디가 한장도 안 꼽혀있는 40장용 씨디꽂이,책이 별로 없는 책장,거실 테이블과 티테이블!!!전기와 수도가 없는게 흠이지만 지킴네 집에서 전기는 연결이 되어 형광등까지 환히 밝히고 온갖 유치하고 알찬 놀이를 하였어요

기억력테스트,원카드,고스톱(아 이건 놀이가 아니라 노름인가요?그래도 판돈은 오가지 않았다구요!),물론 매*이 염원하던 마피아 게임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어요

자기가 참여한 방에서 자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규칙 때문에 비대칭 통신원은 모두가 두려워 마지 않는,급기야 미친방이라 불리우는 싯퍼런 방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방에서 자다간 10분도 안되어 뛰쳐 나오게 된다,필경 귀신이 나오고 말것이다,자려면 그 귀신같은 인형은 치우고 자라'(주로D***이 한말들임)면서 은근히 겁을 주었습니다

뭐면 어때'식으로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를 풀어헤지고 D***이 오더니 매*과 비*가 줄이어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출사대회 모드로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서로 괴기스러운 사진찍기에 몰입했습니다

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너무나 망가진 무소식 희소식 통신원은 행여나 그 사진들이 엽기 사이트에 유포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수천만!!(내 카메라에는 별로 없지만 나머지 3인의 카메라에 무수히 찍혔으니 입수되는대로 마져 올릴게요)

그나저나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모기라는 새로운 사실!!!

어찌나 모기가 많은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밤이었어요

그리고 새벽엔 살짝 귀신 비슷한 것도 보았답니다!!오예~

하여간 그 으시시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버스로 나와 기차를 타고 출근했어요

오랫만에 부지런한 하루입니다~

그렇지만 졸리고 배고파요!!!

아참! 그리고 마뿅뿅이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하니 뚱땡 강아지도 이제 대추리에 데리고 갈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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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아저씨 석방 축하드려요!!!

몽상님의 [박래군 구속과 석방에 관한 새로운 진실. ^^] 에 관련된 글.

 

또 웃고 계시내요.

내공이 장난이 아니세요.

유치장 만 이틀 있는 것만으로 곤욕이였는데

거의 2주를 갇혀 지내시고도 저런 해맑은 웃음이 나올 수 있다니 놀라워요.

 

언제 어디서나 웃을 수 있는 용기.

언제 어디서나 화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텐데도  너무 자연스러우셔서 새삼 더 놀랍니다.

 

석방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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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비가 그쳤다!!!

아싸~나는 부시의 몸종이 되지 않아도 되겠구나!!

비도 그치고 오랫만에 머리도 개운하고 지각도 겨우 10분!

아름다운 하늘!
오늘은 행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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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식희소식통신_5

오 맙소사~

해마다 겪는 장마지만 어찌나 비가 내리쳐 주시던지 황금같던 연휴를 집밖으로 단 한발자국도 내딛지 않고 근 이틀을 버텼습니다.

금요일 퇴근후 바로 대추리에 갔다가 토요일 밤에 나왔습니다.

다행히 대추리에 있는 동안은 큰비는 없었어요.

당시 서울쪽은 비가 억수로 내렸다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밤기차로 용산에 내려 덕소까지 오는 중에 비는 초지일관 내렸고 심지어 덕소역에서는 밤 12시 넘은 시각이라 버스도 깜깜무소식 택시도 무소식이었습니다.

희소식일리가 절대 없는 무소식 와중에 게으른 주제에 성질은 급해서 무작정 걸었습니다.

걷다가 택시라도 잡아 볼까 가던 걸음 고이고이 멈추기를 거듭하던 끝에 걸어서도 20분이면 오는 거리를 40분여에 걸쳐 당도했습니다.말그대로 오마이갓!

비가오면 남들은 허리가 아프다지만 비만 올라치면 하루전부터 기상청 레이다보다 더 확실하게 머리가 아파오는 비대칭 통신원이기에 삼가 아로옵기 황송하오나!!

이 비를 멈춰만 준다면 대 미합중국의 부시 대통령(바보바보!!!)의 몸종이라도 되겠다고 힘껏 외치는 바입니다. -_-

다시 태어나 나무가 되려는 이유도 비가오면 좋아라 할 것이 또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왜 집에는 당췌 오지를 않냐며 성토하시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무기력을 거듭하다 보면 오히려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끼는지라 나름 잘 지낸 연휴였습니다.

문제는 연휴를 보낸후의 출근길!!!

아 괴롭습니다.

산업 역군이 되어 열심히 일해보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역시 이틀째 되는 오늘도 힙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장마는 다음주에도 계속 된다고 합니다.

범국민 대회가 있을 이번 주말 내내 아마도 초초초초과 근무에까지 돌입할 듯 싶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마음이 안잡힐 듯한 주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에잇!목요일인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수요일이쟎아!!!!!!

참고사진:2006년 7월 17일 당시 초무기력 사진 -_-

여기서 잠깐!!!

또 한가지! 죽어라 비를 싫어라 하는 비대칭 통신원으로써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미스테리!!

비가 온다고 온다고 온갖 매체에서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3일 이상의 연휴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여행 가셨다가 구조당하신 분들 참 대단하십니다!!!짝짝짝!!!기립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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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아내 정종숙씨의 탄원서

탄원서

판사님. 이 사건의 판결을 맡으신 용 판사 님께서는 판사 님의 가치관이나 삶과 퍽 다르게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일지라도 가슴에 담아 읽으실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길 바라면서 탄원서를 씁니다.

저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된 인권활동가

박래군의 아내입니다.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5학년인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지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과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고 한마음으로 더불어 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저희 남편은 평생을 낮은 곳에서 인권을 일궈내고 정의와 진실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 왔습니다. 독재 시절에는 민주화를 외치다

억울한 옥살이를 1년이나 했고, 부모님도 모르는 사이에 군대에 강제 징집을 당했고,

자기 몸에 불을 붙여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 항거했던 동생의 시커멓게 탄

몸뚱이를, 꺼져가는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숱한 슬픔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그 고난의 길을 피해 따뜻한 안식처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살아온 것은 내가 편안하고 배부르게 살 때, 내 곁에서 힘들게 고통받고 억압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착하고 올곧은 심성의 소유자로 자랐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어릴 적 아주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머슴살이
로 시작해 농토를 일구어 삼형제를 가르쳐야 했던 집안이었으니까요.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집까지 뛰어와 끼니를 때우고, 등잔불도 아끼시는 할머니 때문에 밤에는 그토록 읽고 싶었던 책도 읽을 수 없었답니다.

악착같이 농사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과일이며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그것도 모자라 살을 에는 추운 겨울에는 뻥튀기 구르마를 끌고 다니며 장 바닥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삼형제는 너무도 착해 학교에서 돌아와 밤늦도록 농사일을 돕고 그 추운 겨울에도 뻥튀기 구르마를 따라나서 하루 종일 시커먼 연기를 뒤집어쓰고 부모님을 도왔답니다.

가슴 절절한 시를 많이 썼던 동생이 남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자갈논 한 자리나마 가지고 싶다
밤낮없이 새경을 모으고
살 에이는 겨울길
뻥튀기 구르마를 끌던 아버지
국민학교 6학년 어린 나이로
구르마 쫓아다니던
큰 형님이 가여워
밤마다 베갯잎을 적시던 엄니
양회포 한 포대 얻자고
이장한테 삿대질하다가
퍼렇게 멍든 아버지 얼굴 보고
여보
우리도 한 번 보란듯이 삽시다
울며울며
자식새끼들 끌어안으시던
엄니

시에 나오는, 등골이 휘도록 힘들게 살아온 부모님을, 부모님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
들을 남편은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잊지 않았습니다. 연세대 국문과를 나온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귀를 막고 쳐다보지 않고 살았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처럼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남편은 인권의 불모지인 이 땅에 인권의 싹을 심고 키웠습니다.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적
소수자, 노숙자, 양심수, 구속 수감자, 복지 시설 수용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당하고, 멸시받고, 차별받는 곳으로 달려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찾고 고민하고, 그들이 일어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갔습니다.

반인권과 부패로 얼룩진 사회복지설이었던 에바다 농아원을 정상화하기 위한 싸움에선
비리재단 측에서 퍼부은 똥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말 못하는 이들의 귀와 입이 되어 주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문후유증을 앓던 선배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했고, 폭력적인 수용 시설에 억울하게 끌려가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았던 수용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수용 시설에서 나왔던 한 사람은 10년이나 인연을 맺고 있었는데 그는 고아여서 가족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그의 형제나 되는 듯 그 사람이 이사를 하면 이삿짐을 손수 날라 주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교도소에 있는데 얼마 전 석방 날짜가 연기된 줄도 모르고 사무실 총회를 밤 새워 하고 새벽에 춘천까지 차를 몰아 그를 맞이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가는 길엔 왜 이렇게 슬픔과 어려움과 시련이 많을까요.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
습니다. 자신과의 싸움, 가진 자들과의 싸움, 폭력과의 싸움, 권력과의 싸움, 불의와의 싸, 편견과의 싸움... 끝도 없는 싸움이 계속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늘 씩씩하게 웃고 다닙니다. 우울하거나 비관하는 법이 없고, 좌절하지도 않고, 고난 앞에 무릎을 꿇지도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갑니다.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자기 말을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들어 주었던 그의 곁엔 언제나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남편은 바깥 일로 늘 바쁘게 살지만 가정에도 충실한 책임감 있는 가장입니다. 아내를 존
중하고 아낄 줄 아는 남편이고, 아이들로부터는 정신적 지주란 믿음을 얻고 있는 아빠입니다.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원고를 쓰거나 이런저런 일을 하여 가정의 경제도 책임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을 무책임하게 돌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가족들을 보살핍니다.

넓적하고 그을린 투박한 얼굴과는 달리 집에서는 아주 섬세하게 가족을 챙깁니다. 아이들
이 엄마인 저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이해해 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빠는 좋은 분이라는 믿음을 주었기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 옆집 아주머니는 저희 집 아이들은 엄마가 오면 엄마하고 큰소리로 나와 부르지 않는데 아빠가 오면 맨발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며 아빠를 반기며안긴다고 애들이 아빠를 참 좋아한다고, 무슨 아빠가 애들을 그렇게 이뻐하냐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저희 남편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경기도 화성
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늙으신 부모님에겐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여느 농민처럼 당신의 목숨처럼 땅을 아끼시며 한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분이십니다. 제가 결혼하던 해 고관절을 앓으시고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셔서 목발을 짚고 다니시지만 농사일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 서 있을 수도 쪼그려 앉을 수도 없으셔서 땅바닥을 기어다니시고 스티로폼으로 만든 방석을 끌고 다니면서도 밭일을 하십니다.

다들 왜 그렇게 사시냐면서 농사일을 그만두시라고 만류하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농사를 지으시겠답니다. 만류하는 가족도 있지만 저희 남편은 아버님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존중해 드리고, 아버님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습니다. 토요일도 나가 일하고 돌아와 일요일엔 쉬어야 하는데 달려갑니다. 땅을 갈아 곡식과 채소를 심을 수 있게 해 드리고, 두둑을 만들고, 고추 말뚝을박고, 거름을 져 나르고, 농약을 주고, 포도를 따고, 포도를 갖다 팔고, 고추를 따고 고구마를 캐고, 깨를 털고, 농기계를 수리하고... 쓰려면 다 쓸 수도 없는 고된 농사일을 불평없이 하고 돌아옵니다. 막내아들을 그렇게 먼저 보낸 부모님이 찢긴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롭게 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한평생 좋은 일도 없이 자식을 다 떠나보내고 병든 몸으로 외롭게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께 차마 남편이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자식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실까, 참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아빠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은 몹시 슬퍼하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아빠 같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왜 구속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엄마와 아빠 모두 힘내시라고 오히려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판사 님께 비굴하게 빌지 말고 당당하게 부모님의 뜻을 말씀 드리라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그와 수많은 인권활동가들의 행동은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의 인간다운 삶, 자유롭
고 평등하고 인간의 권리가 존중되는, 존엄한 삶을 위한 고귀한 실천이었다고 생각됩니다.수많은 인권활동가의 노력으로 국가인권위원회도 만들어진 것이고 국민들도 인권에 대한이해를 넓히고 인권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경찰 대학에 가서 인권 교육을 하고 법조인이 인권 교육을 받기도 하는 세상이니 인권의 싹이 크긴 큰 모양입니다. 그러나 인권은 아직 커다란 나무로 자라지 못했고 숲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권활동가가 구속되고, 평생 살아온 땅에서 옷이 벗겨진 채 처참하게 끌려가는 농민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는 진실의 편에 서 있었고 그의 외침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가 지금 구속되어 철창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또한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었기에 나선 것입니다. 이 땅을 미군에게 내어 주어 전쟁터로 만들고 싶지 않으며 평생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음은 당연한 마음이고 지키려는 싸움은 정당한 싸움입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 추진 중 일어난 충돌은 주민과 국민의 충분한 협의와 동의 과정
없이 일부는 돈으로 회유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땅은 강제로 빼앗으려 는 일련의 과정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공무집행방해라는 실정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땅의 평화이고 농민들의 생존권입니다.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땅을 강제로 파헤치는 일을 공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일을 했다면 그렇게 반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공무를 방해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악이 그것에 저항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몸부림 끝에 뒤바뀌었는지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전쟁기지로 내어 주고 농민을 내쫓은 일도 부끄러운 역사가 되리라는 것을, 실정법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용기 있게 지켜내려 했던 실천이 옳았음을 재판 과정에서 밝힐 것입니다.

제가 길게 저희 남편의 어린시절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한 것은 저희 남편은 비겁하게 도
주하지 않을 것이며, 재판을 성실하게 받고 진실을 밝히려 애쓸 사람이라는 것을 판사님께서 알아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구속이 필요하다고 상당히 의심된다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검사 님의 소견일 뿐입니다. 이렇게 충돌되는 사안은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양쪽의 주장을 듣고 재판을 통해 진실을 가리면 됩니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불구속 수사와 재판으로도 얼마든지 죄를 물을 수 있습니다. 죄가 있다고 상당히 의심되지도 않거니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인권활동가를 구속하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합니다.

현 정부는 형사소송절차에서 피의자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집행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개적으로 활동해 온 저희 남편은 왜 구속되어야 하나요? 아빠의 구속을 아이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판사 님, 부디 불구속수사 원칙이라도 지켜진 속에서 남편이 진실의 법정에 설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판사 님, 아이들 아빠를 풀어 주십시오. 남편이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게, 그가 이 세상 그늘진 곳에서 햇볕을 드리우는 소중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길간곡히 청합니다.

박래군 아내 정종숙

출처 : rainmaker10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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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래군 활동가를 석방하라! 군대와 경찰은 평택을 떠나라! _문화연대

[성명] 박래군 활동가를 석방하라! 군대와 경찰은 평택을 떠나라!
평택평화행진을 평택평화/한미FTA저지 민중항쟁으로!
문화개혁센터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와 한미FTA 협상저지를 위한’ 285리의 평택평화행진이 상인회의 각목테러와 경찰의 수수방관으로 얼룩졌다. 8일(토) 저녁, 각목과 돌 등으로 무장한 상인회 회원 150여명은 대추리로 들어가려는 행진단에 무차별 폭력을 가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과정에서의 경찰의 역할이다. 경찰은 상인회의 폭력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이를 수수방관하였으며, 주민과 농활대의 대추리 출입마저 봉쇄하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평화행진단의 도보행렬을 막은 것에 항의하는 행진단 40여 명을 연행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이 날 연행된 사람들 중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가 구속되었다. 하지만 과연 평화롭게 행진하던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한 자가 누구인가? 대추리, 도두리의 주민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미군기지를 짓기 위해 폭력을 행사는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항의방문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경찰의 폭력과 강제연행, 수사과정에서의 강제적 지문날인, 박래군 활동가의 구속 등 평화행진단에 대한 공권력의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폭력을 규탄한다. 그리고 박래군 활동가를 즉각 석방하고 연행 및 수사과정에서의 경찰폭력행위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평화의 땅에 철조망을 치고 주민들을 내쫓는 정부를 신뢰하는 사람은 없다!

폭력은 결코 평화에 앞설 수 없다. 어떠한 폭력도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의지를 짓밟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떠한 폭력으로도 우리의 평화행진을 가로막을 수 없다. 이는 서울에서 평택까지, 285리를 걷는 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평화행진단이 마주친 수많은 시민들은 대추리와 도두리를 무단점거하고 있는 군대와 경찰은 즉각 철수해야 한다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 땅의 평화가 미군기지가 아니라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노무현 정부를 신뢰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농사를 짓고 평화와 곡식을 만들어내야 할 땅에 철조망을 치고, 이제는 주민들의 집마저도 철거하겠다는 정부. 대화하자면서 김지태 위원장을 구속시킨 정부. 적반하장 격으로 평화행진단을 연행하고 박래군 활동가를 구속시킨 정부. 이제는 더 이상 ‘백만장자’, ‘빨갱이’ 운운하는 정부의 거짓선전을 믿는 사람은 없다. 평택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군대와 경찰일 뿐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알고 있음을, 우리는 이번 평택평화행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박래군 활동가를 석방하라! 경찰과 군대는 평택을 떠나라!

평택을 무단점거하고 있는 경찰과 군대에게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 평화행진단을 강제연행하고 박래군 활동가를 구속시킬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 스스로 가장 극악한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경찰과 공권력에는 평화행진단과 주민의 권리를 제한할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 박래군 활동가를 즉각 석방하라! 경찰과 군대는 평택을 떠나라! 이것만이 경찰과 군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할 일이다.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 평택평화행진을 평택평화․한미FTA저지 민중항쟁으로!

그렇다. 행진은 끝났으되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스스로 가꾼 목숨과도 같은 땅에서 주민들을 쫓아내고 민중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될 한미FTA의 협상내용마저도 공개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285리의 행진은 전민중의 항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평화롭게 살 권리를 빼앗는 정권, 민중의 생존권을 판돈으로 놓고 도박하려는 정권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10만, 100만, 1000만의 저항으로, 평택의 군대와 경찰을 몰아내고 한미FTA를 저지시킬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박래군 활동가를 즉각 석방하라!
군대와 경찰은 대추리와 도두리를 떠나라!
전략적 유연성 운운하며 한반도를 전쟁기지화하려는 미군기지 확장을 중단하라!
죽음의 거래 한미FTA 협상을 즉각 중단하라!
민중 생존 위협하는 한미FTA 협상을 즉각 중단하라!
평택평화행진을 평택평화․한미FTA저지 민중항쟁으로!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

2006년 7월 11일(화)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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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윤정

금문교 건너 주유소 앞에서 망연자실 해 있을때 춤으로 우리의 시름을 달래준 윤정!!!

사진에 우연히 찍힌 자현씨 모습도 보이고 그옆에 앉아 카메라를 의식하시는 준석씨도 보입니다.자현씨는 한달여 정도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요.

 






죄송합니다.안티는 아니오만 어쩌다 보니 이런 사진이.......



멋져요 윤정!!!오예~

빨리 나아요 자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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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710 평택

7월 9일 토요일 평택역 앞입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이지만 해가 길어졌는지 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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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유치장에를 갔다

난생처음 유치장에 가기 위해서 난생처음 안성 경찰서에를 갔다

난생처음 안성 경찰서에 가기 위해서 난생처음 억울한 구타를 당했다

난생처음 억울한 구타를 당하기 위해서 난생처음 연행을 당행다

난생처음 연행 당하기 위해서 언제나처럼 자진 해산을 했다

 

우리가 그들의 새벽잠을 깨웠던게 화근이었을까?

각 방송사 취재 차량을 먼저 돌려보낸게 화근이었을까?

왜 자진 해산하던 멀쩡한 여성의 배를 발로 걷어차고 도망가는 전경을 눈앞에서 보고도 가만히 두느냐고 항의한 게 화근이었을까?

 

하여간 유치장은 밥이 맛이 없어서 싫다.

심지어 사식도 맛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일요일 새벽에 얻어맞은 오른쪽 머리가 아프다.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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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식희소식통신_4

신나는 빈집 고치기 현장!!

이번에도 어김없이 별다른 계획 없이 하나 둘 모여 신나게 일을 벌였습니다.

어쩌다 이름 지어진 불판팀'으로 일축하여 소개를 하겠습니다.

소개는 가나다 순입니다.


구** 입니다.

미친꽃이 없는 구**는 고삐풀린 망아지와 같을 것이라는 모든 사람들의 기우를 확 갈아 엎고 그야말로 성실 그자체 였습니다.

그를 알고 지낸지 거의 3년이지만 처음보는 모습이었습니다.

미친꽃이 없어도 고등어는 말썽을 부리지 않아요!

구* 입니다.

막판까지 전기를 연결하기 위해 애쓰셨으며 초반에 사*와 함께 문짝을 떼우심에 있어 절절한 장인 정신까지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작업 중간중간 뒷짐을 지고 이방 저방 돌아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첫날 도착하자마자 굶주렸던 3명의 어린 양(매화백,나**,비대칭)들에게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나** 입니다.

나모씨는 첫날부터 일찍 와서 많은 일을 같이 했습니다.

빈방들 먼지 제거와 거실 흙더미 정리,위험한 유리 청소까지!!

둘째 날에는 캠코더로 직접 기록까지 해주었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차근차근 많이 도와주고 힘이 되어준 나모씨!다음에도 함께해요!!

오맙소사!D***(일명 조**) 맞습니다!

그날 그의 다양한 표정과 다양한 포즈 더불어 다양한 작업 스타일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온 마을을 다 돌며 필요한 물품들은 구해다 주었고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며 전날 사*가 똥을 치우던 변기솔을 휘두르며 창문 물청소도 하였습니다.

막판에 모기장을 치다가 창을 다 막아  못들어올 뻔!하기도~

매*!

매화백님!그녀는 신기하게도 필요한 물건들을 곳곳에서 쪽집게 도사님처럼 척척 잘 주워왔습니다.줄자면 줄자 호스면 호스!!어디서 그런 신통력이 나오는 것일까요?

심지어 모던방에서 단지 예행연습 삼아 붓질 몇번 하신 후 아나키 방의 한쪽 벽을 자메이카 스타일로 현란하게 꾸며주었습니다!매화백 탄생의 순간!우리 모두 감격 대 감격!

사*입니다.

한때 21세기 소년이 되어 수많은 전경들을 기타 하나로 호령했던 그가!첫날 화장실 변기에어 꿈틀대고 있던 몇백마리의 구더기를 퇴치하고 깨끗이 치워준 것을 시작으로 빈집 꾸미기 팀의 숙원 사업이 대대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만약 사*가 치우지 않았다면 그 한달 묵은 것을 서로 치우지 않겠다며 빈집은 아수라장이 되었을겁니다.신중하고 결연하게 문짝들을 고치고 세웠던 사*에게도 왕땡큐!


부상투혼 알**!!

빈집 액션 불과 며칠전 만취한 채 거대한 버스와 맞닥뜨린 후 팔과 다리,머리에 정도를 모를 부상을 당했던 그녀는 공포의 파란방의 컨셉을 순식간에 잡아 후루룩 뚝딱 방을 제일 먼저 완성하였습니다.완성도 뿐 아니라 미적 기준에서도 거의 경지에 이르른 그방은 모두들 무섭다,그방에 있으면 다들 너처럼 미치지 않겠냐 하며 모두의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다들 내심 너무 그방에 머무르고 싶어했습니다,그 증거가 바로 그녀가 떠난후 찍어댄 포트레이트 식의 사진들에 있습니다.

윤*입니다.

불판팀의 평균 연령을 한단계 낮춰 주시고 우리에게 항상 깜찍함과 신선함을 안겨주십니다!

그에 하늘에서는 복을 내리시어 윤*의 눈을 한동안 멀게한 미남자를 마을에 출현시켜 주셨습니다.(사진확보되었으니 메일주소를 알려주오!)


J***!

불판팀의 유일한 프로페셔날 아티스트였던 그녀는 얼굴 반만한 썬그라스를 끼고 유유히 나타나셨습니다.

쓱쓱 페인트 몇번 섞었을 뿐인데 정말로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이 나타난 것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빈집 안내문도 그녀의 작품이여요!

 


비대칭입니다.

페인트 칠하다가 눈가에 떨어져서 구조를 요청했으나 파란색 눈화장을 해준다면 아예 그냥 쓱 문질러버린 너희들 너무해~

 

그리고!!!

종일 마당 정리하시느라 밖에서 고생하시 민음쪽에서 오신 분이랑 빈 가구들 차로 옮겨주시고 페인트도 빌려주신 들소리분들도 고마워요!!!

 

아 그리고 다음은 마**의 메세지 입니다.

 

'불판' 일당이 고친 집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

좋은 일해줘서 고맙다고 사람들에게 전해줘

메일 확인 하려고 도서관에 들렀는데,

이제 집에 돌아가면은 물김치에 넣을 사탕무를 손질할거야

대추리에 오면 아주 맛있는 물김치를 맛보여 줄게

그날은 가는 거 배웅을 못해서 좀 미안했어

건강한 모습으로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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