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대세계의 역사1. 인류의 탄생, 고대오리엔트] 삼성출판사, 1982에서

 

사상 최초의 스트라이크

 

BC12세기가 되자 이집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스트라이크가 있었다. 제20왕조 라메세스3세(재위 BC1195~64년경)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이집트는 인플레에 휩쓸렸는데 특히 수도 테베 근처에서 격심했다. 곡식 값이 쑥쑥 올라가는데도 불구하고 관리는 사복을 채우고, 근로자의 생활은 날로 고달플 뿐이었다. 그러한 때, 직접 식량생산에 관계하는 농민은 그래도 괜찮았다. 비참한 것은 묘지 노동과 같은 비생산사업에 관계하는 저급 노동자들이었다.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것은 테베 서쪽에서 일하던 인부들의 집단이었다. 그들의 급료는 두 달이나 걸르게 되고, 곤궁과 분노는 이윽고 조직적인 저항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작업을 그만두고, 대지 골짜기에 있는 파라오를 위한 신전 경내로 몰려들어가 앉았다. 쟁의는 이틀째도 사흘째도 되풀이되었다.

 

이미 저지할 수 없다고 본 관리들은 그들의 항의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들은 의복도 기름도 고기도 야채도 없이 굶주리고 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위대한 파라오와 대신에게 이 일을 전하고 싶다. 우리들이 살 수 있게끔 선처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드디어 국고가 열리고 한달 몫의 식량이 나누어졌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얼마쯤 누그러졌으나 그들은 이 괴로운 체험을 통해서 적당한 데에서 타협해서는 안된다고 깨달았다. 그들은 남은 한달 몫의 지불을 요구하며 또다시 8일간의 스트라이크를 감행하여 드디어 그 목적을 달성했다.

 

달이 바뀌어 다시 또 급료가 끊어졌다. 그들은 이번에도 작업장을 버리고 집단 데모를 했다. 이리하여 쟁의는 오래도록 끌어 두 달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수도의 대신들은 그들의 동정을 시찰하려고는 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소리를 듣지도 않았다. 대신은 그대신 부하를 파견해서 다음과 같은 통첩을 보냈다.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나는 반드시 그것을 주겠다. 식량을 뺏지 말라고 그대들은 부르짖는다. 그러나 나는 대신이다. 뺏는 것보다도 오히려 주는 편이다. 곡식창고가 비어 있으면 나는 어디서든 구해 와서 그대들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특별한 해결책이 취해진 기색은 없다. 테베 시장도 급할 때는 임기응변으로만 대했다. 쟁의는 그 뒤에도 줄곧 계속되었지만, 그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기록에 의하면 노동자의 스트라이크는 그 후에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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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6 12:30 2005/12/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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