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월간 일터] 2006년 5월호 원고

 

M/H 투쟁 - 1년 내내 벌어지는 자본과 노동의 줄다리기

 

자동차 생산공장에서는 자본과 노동조합 사이에 벌어지는 임금과 단체협상 말고도 자본과 노동조합 사업부(공장) 대의원회가 진행하는 UPH와 맨아워(M/H) 협상이 수시로 이뤄진다.


UPH(units per hour)는 단위시간당 생산량, 즉 1시간에 만들어내는 자동차 대수로 작업속도를 나타낸다. 어떤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 철야, 특근으로도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할 때 자본은 노동조합 대의원회에 UPH를 올리자고 요구한다. 반대로 생산 물량이 줄어 잔업은 커녕 기본 주야 8-8시간도 돌아가기 어렵게 되면 UPH를 낮추는 협상이 벌어진다.


M/H(man hour)는 차 한 대 또는 엔진 하나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작업자수와 작업시간이다. M/H 협상은 보통 신차가 개발돼 양산에 들어가기 전인 M2단계(mass production(대량생산) 준비단계)에서 본격 진행되고, 연식이 바뀌거나 페이스리프트(face lift : 부분변경) 모델이 투입될 때, 또는 수출차종의 경우 각국의 법규가 바뀌면서 작업이 변경될 때 M/H에 대한 부분 협의나 추가 협의가 이뤄진다. 완성차 조립부서인 의장부 대의원들은 부서별로 또는 선거구별로 1년에 절반 이상 M/H 협상을 벌이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만큼 M/H 협상은 노동조합 대의원들의 현장 일상활동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답스(MODular Applications of Predetermined Time Standards)

 

현대자동차 자본은 M/H를 결정하는 근거로 모답스라는 표준시간 설정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모답스는 25개 기본 코드(code)로 이뤄진 이동동작과 작업동작의 조합을 통해 작업자의 동작을 분석하는 기법이다. 현대자동차 자본은 모답스를 도입하면서 작업 여유율을 일방으로 줄이고 전환배치와 정리해고의 근거로 삼았다. 또 노동자의 작업을 획일화시켜 노동과정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모답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모답스는 △서로 다른 근육의 사용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없고 △잡은 물건을 유지하는 자세를 평가할 수 없으며 △동작의 방향과 반복빈도, 휴식시간에 대한 평가가 없고 △근골격계 환자와 업무 복귀자 등 통증이나 동작제한의 문제를 가진 노동자들의 작업능력에 맞는 ‘완화된 표준시간’에 대한 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시간동작 분석에 기초한 평가와 에너지 소비에 기초한 평가 결과가 서로 달라 휴식시간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찾기가 힘들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 2005.10).


모답스는 표준시간 산출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노동강도와 현장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자본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M/H 협상은 바로 이 모답스를 이용한 자본의 표준시간과 표준공수 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M/H 협상의 시작

 

현대자동차 자본은 최소 22개월 이전에 신차 개발에 들어간다. 모델고정 단계에서 신차의 외주화, 모듈화율 등 기본방향이 결정된다. 설계가 완료되는 시작차 단계에서는 몇차례 설명회가 진행되고 차체, 프레스, 도장 등의 설비방향이 설정된다. 파일롯(Pilot) 단계에 들어오면 남양연구소 파일롯 공장에서 P1, P2 차량을 생산하고 시험 및 설계에서 테스트와 문제 보완과정을 거친다. 생산공장에서는 생기와 현장 조반장, 기사, 주임 등 숙련 작업자들이 파일롯 차량 생산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1차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성 점검과 공수 취합 등이 이뤄진다. 신차가 현장의 생산라인에 직접 투입되는 M1 단계에서는 대의원들이 작업조건, 장비, 공정 등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자본에 수정을 요구한다. M2 단계에 들어오면 자본이 편성효율과 M/H 구성을 제시하고 M/H 협상이 본격 시작된다.


M/H는 1시간 동안 보통의 작업자가 수행한 일의 양으로 정의되며 인시(人時) 또는 공수(工數)로도 사용된다. 자본은 정미공수(normal M/H : 작업수행에 직접 필요한 순수작업시간), 조립공수(working M/H=정미공수+보조공수), 표준공수(standard M/H=조립공수+조장,수정공수), 계획공수(designed M/H=표준공수+비가동손실공수), 총투입공수(cost M/H=계획공수+간접공수)를 산정해 대의원회에 제시한다. 이를테면 사업부 설명회를 하면서 승용3공장 HD 투입으로 의장부 31라인과 복합라인에서 413명, 차체68명, 도장 18명을 빼겠다고 통보하는 식이다.

 

M/H 투쟁의 원칙

 

대의원들, 특히 초선이거나 M/H 협상 경험이 없는 대의원들은 자본이 제시하는 복잡한 M/H 개념을 이해하기도 벅차고 협상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막막해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무조건 “인원을 더 내라”는 식으로 대응하기 십상이다. 또 자기 선거구의 인원이 직접 걸린 문제라 그 부담 때문에 선거구별로 진행되는 협상들이 부서 차원에서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대의원 역량에 따라 어떤 선거구는 인원을 더 받고 어떤 선거구는 인원을 덜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자본은 사업부 전체 M/H만 맞춰지면 선거구별로 인원 편재가 어찌 되든 크게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부서 대의원들 사이에 갈등만 깊어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부서별로, 선거구별로 이뤄지는 협상들이 노동조합에 제대로 보고조차 되지 않는 경우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업부 대의원회에서는 M/H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몇가지 원칙을 정해놓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승용1공장 대의원회는 2005년 신차(MC)와 개조차량(TB F/L) 투입에 따른 M/H 협상을 하면서 △노동강도 강화 반대 △1공장 원·하청(조합원) 총고용 보장 △M/H 협의 종료와 투입시점 대의원회 집단결정 △노동조합 임단협 일정이 있을 경우 M/H 협의를 중단하는 등의 내용을 협상의 기본원칙으로 확정했다.


승용3공장 대의원회는 2006년 M/H 협의를 진행하면서 승용1공장보다 좀더 구체화된 7가지 원칙을 결정했다. △총고용 보장을 위해 총력투쟁한다. △노동강도강화 저지를 위해 총력투쟁한다. △부서별로 협상을 진행하고 시작과 끝은 사업부 대의원회에서 한다. △신차투입에 따른 일체의 자료와 협상 내용은 조합원에게 보고대회를 통해 공개한다. △HD 신차 투입에 따른 일체의 합의서는 조합원에게 보고하고 노동조합에서 인증번호를 얻은 후 체결한다. △모든 협상은 노동조합 일정이 있을 때는 중단한다. △점검 회의를 통해 부서별 진행 상황을 공유한다. 이밖에 승용3공장 대의원회는 선거구별 실무협상을 인정하되 반드시 그 결과를 부서에서 공개하도록 했다.

 

2005년 승용1공장 대의원회의 M/H 투쟁

 

승용1공장 노사는 2005년 1월부터 6월까지 신차종(MC)과 개조차량(TB F/L) 투입에 따른 제반 공사와 설비·장비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6월9일부터 M/H 협상에 들어갔다. 자본은 6월 9일 1차 설명회에서 의장 11라인 222명과 12라인 120명, 복합라인 56명 등 총398명의 인원 축소안을 제시했다.


승용1공장 대의원회는 6월 14일 노동강도 강화 반대와 총고용 보장 등의 M/H 투쟁 기본원칙을 세우고 노조 임단협 일정에 따라 협의를 중단했다. 자본은 6월 23일 2차 협상에서 302명, 27일 3차 협상에서 256명 축소안으로 최종안을 던졌다. 의장1부 대의원회는 27일 중·야식 홍보, 28일 '사측 개악안 철폐 및 총고용 보장을 위한 의장부 전조합원 보고 및 규탄대회'를 통해 자본의 인원축소안 철회를 촉구했다.


29일 오전 9시 의장1부 대의원 회의실에 전천수 현대자동차 사장이 방문해 신속히 개조차 생산에 협조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M/H 4차 협상에서 대의원회는 자체 안을 정리, 자본에 제시했다. 그러나 30일 5차 협상에서 자본은 3차 제시안이 최종안임을 재차 밝혔고 7월 1일 협상에서도 사측안에 변함이 없어 협상은 결렬됐다.


의장1부 대의원회는 7월 1일 자체 회의를 통해 양보안을 확정하고 자본측에 안을 제시했으나 자본측이 "본관에 보고할 필요조차 없다"며 이를 거절해 주말 특근거부와 다음주 주야 잔업거부, 밤샘농성 돌입 등을 결의했다. 의장1부 대의원회는 7월 2일부터 2주일동안 잔업거부와 특근거부로 자본에 맞섰다.


승용1공장 의장1부 노사는 여름휴가 이후 협상을 재개, 8월 12일 "단 한명의 인원 축소 없이 11라인과 복합라인의 총원을 유지하고 12라인은 19명의 인원을 추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의장부를 비롯해 도장, 차체, 프레스, 생관, 보전, 품관, 지원 등을 포함한 승용1공장 전체 노사 또한 16일 최종합의를 통해 △8월 22일부로 양산 투입 △주야간조 잔업 1시간씩 조합원 설명회 △8월 17~20일 시험양산(의장부 기준 시간당 2대 투입) △MC 협의과정에 발생한 단체행동 관련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M/H 투쟁 - 고용보장과 노동강도 강화 저지에서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공세로

 

지금까지 M/H 투쟁은 모답스에 근거해 자본이 일방으로 결정한 공수 삭감에 맞서 총고용을 보장하고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투쟁이었다. 앞으로 M/H 투쟁은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을 잣대로 삼아, 회사 생산 계획이 아니라 노동자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괜찮은 대리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주체 행동에 따라 노동강도를 낮추고 진짜 살맛나는 일터를 만드는”(현대자동차노동조합/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강도 저하로 살맛나는 일터를> 2005.12) 공세투쟁으로 발전돼야 한다.


연 2,500시간에 육박하는 노동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줄이고 심야노동을 철폐하는 투쟁, 임금 삭감을 막아내고 임금체계를 바꿔내는 투쟁, 노동자의 기준으로 여유율을 확대해 노동강도를 낮추는 투쟁이 M/H 투쟁을 통해 시작돼야 한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의 원리로 현장을 바꾸는 투쟁”. M/H 투쟁은 이제 그렇게 자리매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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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21:48 2006/04/2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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