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어느 후배에게 보낸 메일 한토막.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나는대로 몇 자 적어보짐.

 

97년 겨울(그해가 IMF 터지던 때지)에 울교협 하면서 양정동 세들어 살던 후배 넘 집에 빌붙어설랑은(정말 땡전 한푼 없었고, 집도 절도 없었어. 왜 그리 혹사했나 몰러) 기름값이 없어서 그 냉골에 한겨울 걍 뭉쓰고 보냈더랬지.

 

근데 이상시레 기침도 잦아지고 울교협 식구들 말로는 내가 짜증 짜증 왕짜증을 시도 때도 없이 부렸다고 하더라고. 98년 초봄일 거얌. 하루는 기침이 그치질 않는 거야. 그래 중구에 있는 보건소 찾아가서 엑스레이 찍었드만 의사 선생 왈, 폐결핵이래. 것도 아주 중증.

 

덜컥 겁이 났지. 병부터 고쳐야 운동이고 뭐고 계속할 거 아니냐고. 그래 운동 시작하고 처음 휴가를 냈지. 사실 10여년만에 첫 휴가인 셈이었지. 그동안은 그냥 외통수, 앞만 보고 달려온 거야. 내가 20대 때 서른 고민은 일찌감치 끝냈고 오히려 40대 고민을 했었거덩. 그때 30대는 한 길로 걍 달려야 하는 나이다, 그랬지. 40대야 30대 때 해놨던 거 우려먹으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했고.

 

암튼 그때 휴갈 내고, 친구 넘들(이 넘들이 나는 운동판에서 죽든 말든 지들은 다들 돈 버니라 정신없었거든) 십시일반 마련해준 50만원으로 남목에 볕 잘 드는 단칸방 얻어서 '요양'에 들어갔어. 몸도 허 하고 마음도 허 하고... 마침 양정동 사무실 근처에 오치골 민물장어 집이 있었는데, 거기 혼자 가서 민물장어 시켜 먹었지. 얼마나 잘 먹었는지, 정말 '약'이더라고.

 

요양 첫날, 남목 뒷산에 운동 삼아 처음 올라갔는데 낭중에는 10분만에 올라가는 동축사를 걷다 쉬다 걷다 쉬다 1시간도 넘게 걸려 올라갔지. 기가 막히더만. 암튼 그때부터 보건소에서 지어준 약 열심히 먹고, 자동차 소조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개를 잡아줘서 한 다섯마리 부지런히 먹었어. 술도 끊고 하루 두갑씩 피워대던 담배도 끊고. 그때 6개월 동안 TV도 끊고 라디오도 끊고 책도 끊고 사람들도 끊었지. 매일 뒷산에 올라가서 이런저런 운동들 하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혼자 챙겨먹으면서 몸이 조금씩 회복되더라고.

 

그렇게 여름이 왔는데 마침 98년 현대차 정리해고 반대파업이 터졌지. 36일 파업 막바지 쯤엔 나도 몸이 웬간히 나아서 현장에서 같이 살았어. 그렇게 조금씩 활동을 재개해설라므네 가을, 겨울 다시 복귀했지.

 

물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고 도움을 주고 그랬지. 근데 결국 병을 치러내고 이겨내야 하는 건 '혼자' 몫이었지. 전부터 내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는데 "돌파한 만큼 자유롭다" 이 말인데 그때도 그래, 몸도 마음도 바닥을 쳤는데 우쨌든 '돌파'했고, 또 그만큼 자유로워진 느낌이었지.

 

외로움이 뼛속까지 시릴테지만서도 자기가 선택한 삶이고, 거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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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9 05:38 2008/02/19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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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008/02/20 00:37 URL EDIT REPLY
이곳은 제가 필요해.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