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에버울산 투쟁 1년
비정규직 미래 걸린 힘겨운 싸움…“울산지역 노동자들의 연대와 지원이 절실합니다”
“힘들어도 여기까지 왔잖아요? 끝까지 가볼 참입니다”
울산 북구 상안동에 있는 홈에버 울삼점. 이랜드일반노조울산분회 노동자들은 지난해 6월10일 외주용역화․부당전보 반대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경고파업을 시작으로 1년 넘게 투쟁하고 있다.
쟁의복 착용투쟁, 게릴라 시한부 파업, 상경투쟁, 시민선전전, 매장순회투쟁… 처음 해보는 투쟁은 7월8일 전면파업과 매장점거 연좌농성으로 이어졌다. 7월20일 뉴코아 강남점과 홈에버 상암점에 경찰병력이 투입된 뒤 투쟁은 더 확산됐다. 울산지역 23개 단체가 모여 만든 ‘이랜드일반노동조합과 뉴코아노동조합을 지지하는 울산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는 정부의 경찰병력 투입을 규탄하고 이랜드에 대한 ‘매출제로운동’을 벌였다. 투쟁은 매장봉쇄, 매출제로투쟁, 반품투쟁으로 이어지며 입점 업주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여름휴가에도 휴가를 반납한 연대 투쟁문화제가 매일 열렸고, 북구 아파트자치회들은 이랜드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홈에버 사측은 법원에 ‘영업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내고 조합원 47명에게 모두 2억110만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청구했다. 노조는 이에 맞서 법원에 ‘체불임금지급명령신청’을 내고, 홈에버 울산점장과 입점 업체 대표 등을 노동조합 업무방해로 검찰에 고소했다. 또 까르푸 시절부터 일해온 비정규직 노동자 32명이 한달 평균 10여만원의 보전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며 울산노동지청에 홈에버 사측을 고발했다.
8월7일 홈에버 울산점 매장 안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 발견돼 다음날 노조가 담당 관청인 울산 북구청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홈에버 사측은 노조의 자작극이라며 언론에 퍼뜨렸고, 노조는 13일 회사측을 식품위생법 위반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8월9일 노조는 매장 앞 천막농성에 들어갔고 18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홈에버 사측은 9월 들어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노동자 11명에 대한 계약해지와 징계, 대체인력 투입으로 맞섰다. 9월18일 민주노총울산본부 하부영 본부장, 이채위 조직국장, 이랜드노조울산분회 김학근 분회장이 농성천막에서 경찰에 강제로 연행돼 이채위 조직국장과 김학근 분회장이 구속됐다. 홈에버 노동자들과 민주노총울산본부는 중부서로 몰려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지도부의 구속에도 투쟁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추석을 지나 더욱 확산됐다. 11월 노조는 홈에버 포항점 신규 오픈 반대투쟁도 함께 벌였다. 12월6일, 지난 9월의 중부서 항의방문을 이유로 민주노총울산본부 배문석 문화미디어국장이 구속됐다.
홈에버 노동자들의 투쟁은 해를 넘겨 계속됐다. 3월11일 김학근 분회장, 서경만, 이해욱, 전향숙 대의원, 최설경 조합원이 해고됐다.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체불임금 압류 신청을 냈다. 울산지방법원은 3월25일 홈에버 울산점에 대한 강제집행을 실시했다.
재정압박에 시달리던 이랜드그룹은 노조에 알리지도 않고 5월14일 홈에버를 삼성 홈플러스에 전격 매각했다. 노조는 홈플러스에 고용승계와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1년을 넘긴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젠 더 이상 끊길 것도 없습니다”
지난해 6월 홈에버 울산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170여명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홈에버 울산점에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120여명이 일하고 있다. 인원은 50명 이상 줄었지만 일은 170명이 하던 때와 달라진 게 없어 노동강도가 훨씬 세졌다. 정규직은 80여명에서 60여명으로 줄었다. 비정규직의 비율은 50%를 넘나들고 있다. 복잡하고 불규칙한 근무시간에 따라 주35시간을 일하고 최저임금인 월 75만원 가량을 받는다. 그마저도 각종 보험을 빼면 손에 쥐는 건 70만원 남짓이다.
작년 파업을 시작했을 때 68명이던 조합원은 89명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35명으로 줄어들었다. 장기파업으로 생계가 힘들어지자 많은 조합원들이 회사를 떠나거나 노조를 탈퇴했다. 남아 있는 조합원 35명 가운데 24명은 천막농성과 파업을 계속하고 있고, 현장에 복귀한 11명은 투쟁복을 입은 채 일을 하면서 조합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파업중인 조합원 24명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그대로 남아 있다. 홈에버 사측은 현장에 복귀하고 노조를 탈퇴한 사람들만 손배가압류를 풀었다.
파업 조합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생계 문제다. 맞벌이가 아니라 혼자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 생계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적금을 깨고 줄줄이 보험을 해약했다. 주택부금도 끊었다. 카드빚을 못 갚아 신용불량이 된지도 오래다. 마이너스 통장은 갚을 길이 없다. 민주노총이 조합원 1인당 3000원씩 걷어 이랜드노조에 지원하기로 한 생계지원비도 지난해 1인당 50만원씩 두달 지급되고 그만이었다. 한달 2~300만원이 들어가는 천막농성 유지비와 파업 비용은 지난해 하루주점으로 번 돈으로 버텨왔다. 그마저도 바닥이다. 김학근 분회장은 “이젠 더 이상 끊길 것도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연대와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랜드노조울산분회의 요구는 처음부터 비정규직의 온전한 정규직화였다. 노조는 단기 시즌 아르바이트는 인정하더라도 3개월 계약, 6개월 계약 뒤에 세 번째부터는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2년 이상된 비정규직은 분리직군이 아니라 온전하게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홈플러스에 대해서도 고용승계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포함한 고용안정을 약속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이랜드그룹과 마찬가지로 노조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랜드노조는 “투쟁으로 정면돌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홈에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분리직군의 한계는 있지만 이마트와 홈플러스에서 정규직화와 무기계약직화가 이뤄졌다. 열악한 유통업체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함께 싸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도 성과로 꼽힌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와 지원이 줄어들면서 파업 동력이 점점 떨어져갔다. 김학근 분회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를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고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학근 분회장은 “정규직 노조들이 단위사업장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문제를 지역에서 내 일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연대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1년, 비정규직법 전면 재개정 목소리 높아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지 1년이 지났다. 정부는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2.3%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36시간 미만 단기계약 노동자와 파견용역 노동자 등 ‘악성’ 비정규직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려고 계약해지하거나 외주용역화하는 일이 숱하게 일어났다. 분리직군을 둬 무늬만 정규직화한 ‘중규직’도 생겨났다. 파견대상 업무도 26개에서 32개로 늘었다. 지난 1일부터 이 법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됐다. 노동단체들은 비정규직보호법이 2년 주기로 고용불안을 일으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직차별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보신당울산추진위원회는 1일 논평을 내고 기간제 사유제한제도 도입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을 주장했다. 민주노총울산본부도 성명을 내 비정규직법의 전면 재개정과 파견법 폐지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