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문규현 신부, "갈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여기가 천국"
[인터뷰-문규현 신부]
삶에 감사할 뿐.. 병실에서 화상당한 하느님 묵상
 
2009년 11월 09일 (월) 10:30:05 한상봉 isihan@nahnews.net
 

   
▲문규현 신부 얼굴표정은 언제나처럼 밝았다. 고난을 생애처럼 지고 가던 이의 노익장이라 해야 할까?(사진/고동주 기자)

문규현 신부가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의료진에 따르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문 신부는 사고 당일 넘어질 때 요추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치료중에 있으며, 뇌손상은 없는 것으로 진단받았다. 

지난 11월 6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기자와 김정식 편집위원이 문 신부를 방문했을 때, 문 신부는 병간호를 맡고 있는 큰 누이 문현옥 수녀의 도움으로 걷기 운동을 하러 막 병실을 나서던 참이었다. 

의사는 현재 문 신부의 부정맥이 걱정 된다고 하며, 열흘쯤 체중을 보완한 뒤에 부정맥을 다시 진단할 예정이다. 문 신부는 "너희들 못 보는 줄 알았다"며 일행을 반겨주면서, 식사도 잘하고 있다고 했다. 문 신부의 손목을 잡아보니, 힘이 느껴져 안도감을 자아냈다. 

수술 뒤에 통증이 있어서 하루에 두어 번 씩 통증치료를 받고 있다며 문 신부는 "힘들어도 견뎌야지. 좋은 날이 올 때까지"라고 말했다.

   
▲김정식 로제리오 씨가 함께 병실을 방문해 새만금, 부안 시절 문 신부와 함께 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 신부는 병실에서 김흥겸이 지은 '민중의 하느님'이란 노래와 아르헨티나의 반독재 투쟁 속에서 저항의 노래로 민중의 사랑을 받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를 내내 듣고 있었다. 그 노래가 묵상이 된다는 거였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느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민중의 하느님 -가사 전문
)

문 신부는 "우리는 그동안 오직 하느님을 생각하며 살았다. 혀 짤리고 귀먹은 하느님, 화상당한 하느님을 위해 살았다. 그분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용산에서 들리는 민중의 소리이고, 진짜 불에 타죽은 하느님 소리를 듣고 있다. 그들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고, 그래서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다."라고 말했다.

문규현 신부는  쓰러지기 전 지난 10월 12일에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정말 처절했다"고 심경을 표현했다. 이날 미사 중에 문 신부는 강론을 하면서 “우리는 용산참사 열사들이 참극으로 이승을 떠난 그 시간에 멈춰있다”고 말하고, "용산참사가 일어난 그날은 '초죽음이 된 하느님을 보여준 날'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마음과 손길이 철저히 배신당한 날, 하느님의 외침과 통곡을 외면하고 피해간 날”이라고 참담한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다. 

명동미사 때나 지난 11월 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 때에도 많은 사람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문 신부는 말했다. 중요한 것은 "용산에 계신 유족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며,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우리에게 억만금 보다 더 큰 보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 시청 앞 미사 때에도 병실에 있으면서, 시청에 가고 싶었다는 문 신부는 "거기 가서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힘이 될 테니.."했다. 

문규현 신부는 인터뷰 중에 김정식 씨의 담쟁이 노래를 새삼스럽게 새기며 듣고 있다고 했다.

   
▲문 신부는 척추 수술을 받아 허리에 복대를 하고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모두가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김정식 곡, '담쟁이' 전문)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문 신부는 새만금 개발, 부안 핵폐기장 문제, 대추리 미군기지 문제를 떠올리며, 우리가 원하던 바가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게 없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 신부가 의식이 깨어난 뒤에 사람들이 "천국 봤냐?"고 자꾸 묻더란다. 그때 문 신부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여기가 천국"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울고 소리치고 이야기 나누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 세상을 만들자고 나는 네가 필요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곧 천국 시민이라는 말이다.

   
▲문 신부는 폐운동을 위한 장치로 숨을 힘껏 마시는 연습을 줄곧 하고 있다.

문규현 신부는 쓰러지기 전에 오체투지며 여행으로 많은 사람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주변에선 삶을 정리하느라 그랬구나, 하지만, 이제 눈을 떴으니 "그게 아니었구나, 우리 생각을 확신하고 다지는 자리였구나"하고 생각한다.  

그저 이번 일을 통해 문규현 신부는 메르세데스 소사처럼 삶에 감사할뿐이라고 말한다. "삶을 하느님을 위해 바칠뿐, 그렇게 자신을 바칠 수 있으면 감사할 뿐"이라며 "난 능력도 없고 누구를 설득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 감흥을 줄수 도 없다. 그저 삶을 그분께 바칠 뿐이다. 그동안 34년 동안 사제생활을 했는데, 다 그분의 은혜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문 신부는 "만일 내가 사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었겠느냐?"고 스스로 묻는다. 이제 사제생활을 정리할 때가 곧 오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금처럼 사제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 신부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에 감사해'란 노래를 당신의 소리로 알아듣는 것이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내 지친 발을 이끌어주어
도시와 시골길, 해변과 사막, 산맥과 평원,
그대 집과 거리와 정원을 순례하였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인류의 지성이 낳은 창조물을 볼 때,
악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선인을 볼 때,
그대 맑은 눈을 깊숙이 들여다볼 때마다
요동치는 심장을 주었네.
(메르세데스 소사, '삶에 감사해' 부분)

   
▲간간이 병실에서 일어나 앉고, 걷기 운동도 하고 있다.

한편 문 신부는 자신이 그동안 "너무 까불었다. 내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그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 같지만, 거기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하느님이 계시고, 그 삶이 희망이 된다고 말한다. 

용산 문제마저도 눈에 보이게 해결되는 것은 없지만,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용산참사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모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게 은총이라는 것이다.

"용산을 계기로 사제들도 새로워지고 있다. 우리는 뭐든 고통을 안고 대안의 세계로 건너갈 수밖에 없다. 오체투지를 할 때도 결국 돌아올 곳은 용산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용산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용산을 사는 것이다. 무력한 이들 속에서 용산이 우리를 구원하는 거다. 정의구현사제단도 그 작은 몸부림으로 보잘 것 없지만 용산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용산에서 죽은 이들이 희생자라기보다 우리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문규현 신부는 현실이 어려워도 희망을 갖자고 말한다. 그 희망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다 걷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규현 신부 병실방문 음성기록(일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1/09 19:51 2009/11/09 19:51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plus/trackback/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