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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와 스쿨폴리스와 밀양사건에 대해.

* 이 글은 [[펌]가난과 교육 - 이계삼] 에 관련된 글입니다.

한 일주일간 정신적 공황을 핑계로 컴퓨터게임에 빠져 살았다. 이번에 한참 빠진 게임은 디아블로2라는 이 블로그의 주제인 완전회복물약이 나오는 게임이다. 최근에 나온 게임이나 일인칭 액션 게임 보다는 폭력성이 덜할지는 몰라도 잔뜩 무장하고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들을 깡그리 해치우는 요즘 일진회다 뭐다할때 티비에 배경이라도 깔만한 게임 되겠다.

이번에 키운 캐릭터는 네크로맨서(시체를 이용하는 소환술사), 아마존(활과 창을 이용하는 여전사), 어쎄신(무술과 함정을 이용하는 암살자) 인데 이런 게임 하는 친구들은 은어와 같은 줄임말을 잘 만들어낸다. 그에 따르면 조폭넥, 활아마(활을 주로 사용하는 아마존), 킥씬(발차기를 주로 하는 어쌔신)이라 불리우는 타입의 캐릭터를 키울려고 몇날며칠을 해뜰때까지 눈 벌게 가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위의 조폭넥이라는 것은 시체나 여러가지 것들을 이용해서 자기 부하(똘마니)들을 소환하여 -마치 조폭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땡깡 부리는 것처럼- 우루루 다니면서 적을 해치우는 타입의 캐릭터이다. 자기 손 안쓰고 편하고 안전하고 다 좋은데 적의 거대 보스에게는 약하다.(!!)

 

이렇게 보면 일진회다 뭐다 하는 것이 게임이나 폭력적 영화와 관련이 있는 것도 같으니 앞으로 며칠간 본인과 만나는 사람들은 우발적 폭력이 발생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

 

하옇든 그동안 나를 정신적 공황으로 만들었던 일이 어제 일단락되면서 '이렇게 살면 안돼!!' 하면서 게임을 컴에서 지우고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막걸리를 먹어 해치우려고 안주 만들고 자리에 앉아 우연히 티비를 보는데 손석희의 100분 토론에서 '스쿨폴리스'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제목만 보고 '스쿨폴리스? 말도 안되지. 저게 설득력이 있나.'하고 술한잔씩 훌쩍거리며 티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야기가 참 묘하게 진행되는 거였다.

어.. 어.. 이러고 있는데 결정타는 스쿨폴리스 도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재학생의 70여 퍼센트와 학부모의 80여 퍼센트가 찬성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의 설문항이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 압도적 찬성이라는 정서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제 토론회에서 나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정서의 기반에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교사에 대한 전적인 불신이 바탕에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커다란 상처를 주고 받은 상흔이 남아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계삼 선생이 느낀 절망적인 감정들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경찰이 우리사회에서 신망받거나 신뢰가 가는 조직도 딱히 아닌데 그런 조직을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동원하는데 찬성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  경찰도 스쿨폴리스 시범시행에서 마치 삐에로처럼 분장하고 학생들을 만나는 등 민망할 정도의 쇼를 다하고 있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도중에 나는 그 대답이 될만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학생이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다시 그 가해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라는 애기에서 그 대답을 들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이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기반한 교화가 아닐까 한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방법에 따른 절차를 도입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각에서 군입소를 통한 교화교육(삼청교육대?)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할말을 잃었다. )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격리공간인 교도소(소년원?)와 공식적인 처벌권을 가지고 있는 경찰이다라고 보는 것 같다. 정책입안자나 경찰쪽에서는 지금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분노에 대해 가시적인 대책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있는 거 같다.

 

결국 시스템으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그 문제에 토론하다 보면 뭐가 문제고 뭐가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고 뭐가 해결되고 있는지 뭐가 문제를 만드는 지도 모르는 뒤죽박죽 사태가 보다 심화될 뿐이라는 뻔히 보이는 결말은 예상이 안되나 보다.

 

나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미래의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아직까지는 맞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을 제대로 봐주지 않는거,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게 아닐까?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록커 마릴린 맨슨의 한마디 였다. '저는 그 아이들의 얘기를 그냥 들어줄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 아이들의 얘기도 들어줘야죠.'

 

내가 그런 것을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아직 자신도 없고 교육 문제는 지금의 나랑 사실 크게 관련도 없지만 오늘 그냥 그렇게 덮거나 증상에 대해서만 대처하고 넘어가는 문제들이 나중에 더욱 크게 되돌아오는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사태가 두렵다.

 

여기까지도 길었지만 끝으로 정말 긴 이계삼 선생이 쓴 글을 하나더 붙이려 한다.

[죄인의 슬픔, 시대의 악령] 이라는 글인데 밀양사건을 직접 겪으면서 느낀 것을 써내려 간 것이다. 어제 그 토론회를 보고 이글이 생각나서 다시 읽었다.



'당대비평'의 부탁으로 쓴 글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이 글은 '당대비평' 신년특별호인가에 실릴 것 같습니다.

죄인의 슬픔, 시대의 악령
- ‘밀양 사건’으로 구속된 한 학생에게 보내는 편지


1.
B야, 깊은 밤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 낮에는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서 몇몇 아이들과 졸업문집 편집 일을 했더랬어. 너도 기억할 거야. 우리가 한해동안 ‘독서’ 시간에 쓴 글들과 모둠일기를 모아서 졸업 기념으로 묶어서 나누어 갖기로 한 거. 방학 시작한 지가 꽤 지났는데 그 일을 이제야 시작했어. 여섯 개 반의 문집을 따로 만들어야 하니, 수고롭기가 보통이 아닌데, 같이 일손을 거드는 아이들은 끝없이 재잘대면서 한껏 즐겁게 오리고 붙이고, 워드치는 일들을 하더라. 그 녀석들은 요사이 대학 합격이 결정나서 많이들 편안해하는 분위기야. 시골 고등학교 출신으로 그 험한 경쟁을 뚫고 다들 원하던 자리에 착착 꽂혀 들어가니 많이들 뿌듯했겠지.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표정과 손놀림은 몹시 경쾌했었어. 그때 문득 네 얼굴이 아프게 박혀오는 것이었어. 넌 이 문집에 들어갈 네 몫의 글을 거의 내질 않았지. 그래도 3주만 있으면 깨끗이 제본된 문집을 받아들고 들춰보며 낄낄대며 즐거워할 그 순간만큼은 같이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네가 있는 곳은 소년원, 나로서도 채 상상이 되지 않는 곳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니……. 지금 밀양 시내에서 밥 먹기 위해 어디를 가도 주문받고 바삐 뛰어다니는 건 온통 ‘알바’하는 네 동기 녀석들뿐인데, 왜 넌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느냐 싶어서, 잠시 마음이 아려오는 것이었다. 그 무렵이었어. 이 사건으로 불구속 처분을 받은 두 녀석이 교무실로 들어오는 것이었어. 문집 만드는 아이들과 반만 다르고 중학교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을 그 녀석들은 내내 고개도 들지 못하고 학생부 선생님 앞에서 도교육청에 보낼 사건 경위서를 쓰는 것이었어. 녀석들이 경위서를 쓰는 동안 교무실은 내내 침묵. 원하는 대학에 붙고 나서 문집을 만드는 모범생 아이들과, 고개 숙이고 경위서를 쓰는 아이들, 그리고 지금 소년원에 있는 너.

2.
B야, ‘밀양 사건’은 오늘 낮 교무실에서 내가 보았던 이 쓸쓸한 몇 개의 풍경들만 남긴 채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이렇게 빨리 잊혀지는 법이다. 그 사건의 당사자였던 너에게 이것은 좋은 일이냐? 너는 그동안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네 마음을 가시처럼 후벼팠을 원망은 지금 네 자신에게 향해 있느냐, 아니면 이토록 큰 일로 치달아가게 한 그 모든 주변 정황들을 향해 있느냐?
B야, 죄인된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쓴다. 사건이 터진 즈음부터 지금까지 나는 너와 지난 해 일주일 두 시간 수업으로 만났던 그 인연의 크기만큼만 반응하려 애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시간이었고, 그 이상을 감당할 능력도 내겐 없었다. 나로선 이 사건을 두고 벌어진 모든 일들이 이해할 수 없었고, 가해 학생의 선생으로 죄인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니. 그래서 나는 무기력해졌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무신경해지려 애썼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고,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너는 아직도 소년원에 있지만.
B야, 네가 잡혀가던 날 월요일, 그때 너는 학교에 와 있었다. 1교시 2교시 연강이었던 나의 독서 수업. 이상스레 너는 자리에 내내 엎드려 있었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너도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있었겠지. 언제나처럼 산만스럽게 떠들지도 않고, 마치 반 친구들에게 네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듯 큰 소리로 분위기를 제압하지도 않았고 그저 침울했던 네 얼굴. 물론 그때 난 네가 처한 상황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고, 그 시간에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송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을 거야. 처음에는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점점 지루해하며 하나 둘 책상에 엎드리는 아이들을 두고, 나는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에 대해, 그들이 온몸으로 버팅겨온 야만과 광기의 나날들에 대해 열변을 토했었지.
네가 잡혀가고, 그때를 떠올리면서 내가 괴로웠던 건, 몇 시간뒤면 형사들에게 수갑이 채워지고 어디론가 끌려갈 너를 앞에 두고 비전향 장기수의 삶과 투쟁을 가르쳤다는, 이 기묘한 대칭이 주는 당혹감 때문만은 아니었어. ‘자괴감’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니?
『송환』같은 자료를 통해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을 소개하고, 그들을 통해 인간의 위엄을 가르치는 것이 이 시대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임을 굳게 믿고 있던, 그것으로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위하던 내가 실은 무지무지한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는 자괴감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었어. 이제 난 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지는 막막함. 며칠간 마음이 황망하여 내가 마음으로 의지하는 어느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더니 그 분은 그러시더군. “그래도, 『송환』을 가르치는 선생은 있어야 한다.”고.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요즘 같은 때에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별로 없지만, 그래도 한두가지라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가르쳐야 한다는 뜻. 그래. B야. 나도 어느 순간부터 ‘불가능’을 느끼기 시작했던 거야. 너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들에 대해, 세상의 어두움을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래서 인간의 선함을 믿지 않는 아이들의 이 뚜렷한 흐름을 ‘교육적’으로 되돌리는 일에 대해서 말야.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은 이 즈음에 좀더 솔직해져야 할 것이야. 차라리 백기 투항하는 것이 훨씬 정직한 태도라고 나는 믿어. 네가 관련된 이 사건을 통해서도, 그리고 연말 내내 시끄러웠던 사상 최대의 수능 부정 사건을 봐도 그렇고, 학교 교육의 파탄이나 진배없는 일들인데도, 우리 교육은 아무런 비전도, 계획도, 의욕도 없이 그냥 끌려만 다니고 있지 않니.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아. 왜냐고? 이건 ‘교육적으로 풀어가기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거든.
그래서, 나같은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들과 『송환』같은 영화를 보면서 주류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이 세상의 어떤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없어보였던 거야.
그동안 난 너희들같은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을 좀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자위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래, 난 너희들의 세계를 조금은 알지. 너희들의 그 폭력에 대한 동경과 공포의 엇갈림을, 즐기고 저지르는 그 모든 행태에 서린 자신에 대한 좌절을, 그리하여 서서히 발딛고 선 땅에서 떠올라 쾌락과 폭력의 판타지 속에 빠져들어가는 너희들의 내면 세계를 말야. 그러나, 알고 있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 지금껏 너희들이 놀고 저질렀던 그곳, 책임감, 죄의식 따위의 귀찮은 것들로부터 해방된, 모든 것이 긍정되는 너희들만의 낙원은 한 미력한 교사인 내 손길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세상은 그런 너희들에게 조금도 관심 두지 않았고, 오히려 너희들을 무서워만 했었지.

3.
사건이 나고 며칠이 흘렀나, 학교에서 퇴근하는 길이었을 거야. 저녁 급식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 전에 농구 코트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들을 보았어. 늘 너와 함께 농구하던 6반, 7반 아이들. 꼭 너하나만 빠진 채 아이들은 여느날처럼 농구를 하고 있는 거야. 문득, 굳게 얼어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이었어. 그동안 내가 널 얼마나 많이 원망했던가. 맹렬하게 미워했고, 내 의식의 망막 속에 너와 부대꼈던 몇 번의 기억이 완전한 잿빛으로 맺혔었어.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그래. 교실에서 넌 수업하는 선생님들을 참으로 힘들게 하는 아이였지. 그런데 넌 운동장에선 물을 만난 고기와도 같았지. 교내 길거리 농구대회, 멋진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면 코트를 에워싼 후배 여학생들의 괴성과 환호가 진동했고, 그때만큼은 너도 어찌할 수 없는 ‘소년’이었지. 도민체전 정구 종목에서 네가 2위에 입상했다는 걸 듣고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 일을 칭찬해주었더니, 넌 칭찬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쑥스러워했었지. 네 얼굴에선 나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순진한 미소가 피어 올랐고.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쉬는 시간 네가 있는 7반 교실에서 너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네가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했지. 너는 여름방학 때마다 네가 사는 마을 앞을 흐르는 그 맑은 강에서 살다시피했고, 그래서 강고동이 많이 있는 곳을 귀신처럼 아는 놈으로 호가 나 있었지. 나는 네가 고향 마을에 터잡고 살면서 마을의 지킴이가 되어주길 부탁했었다. 네가 살고 있는 그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니 거기에서도 충분히 부족하지 않게 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인간이 태어난 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장황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너도 진지한 표정으로 골똘히 듣고 있었고…. 그날 나의 이야기는 너에 대한 나의 최대한의 선의를 담은 것이었어. 그때 너는 그랬었지. “아직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다.”고. “형편이 안 돼서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공수하사관으로 입대해서 직업군인으로 살고 싶다.”고, “그래도 선생님 이야기 들으니 마음이 좋다”고 이야기했었지.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둔 저녁날 농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날 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순간, 난 너를 조금은 용서했던 것 같다. 결국 B 너도 의심할 수 없는 악한은 못된다는 것, 결국 너도 쾌락에의 무모한 집착과 우직한 순정이 안타깝게 길항했던 열아홉 소년에 불과했다는 것, 결국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 세태의 격랑을 올라타고 치달아 흐르다가 네가 제일 먼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는 것, 그래서 네가 저지른 행위의 몫을 뺀 나머지를 나는 용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
그래, B야. 너도 불쌍한 놈이다. 네가 딛고 있었던 땅과 네가 저지른 모든 행동이 ‘슬프다’. 너는 나의 이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너에 대한 연민과 슬픔은 결국 ‘어찌할 수 없음’에서 오는 것이다. 너도 기억하겠지. 지난 12월 초 어느날, 네가 울산 남부경찰서로 연행된 그 다음날 인터넷 언론에 한 기사가 뜨면서부터 폭발했던 그 일련의 일들을. 어느 과학책에서 보았는데,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즉 ‘카오스’적인 현상들은 그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더군. 그건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거야. 만약 경찰이 ‘터뜨린’ 보도자료가 사실관계에 좀더 충실했다면, 최초로 기사를 작성한 모 언론사의 그 기자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받아적는’ 이상의 기자적 성실성을 발휘했더라면, 아니 그 언론사의 기사를 퍼나른 다른 언론사들이 몇 가지의 의문에 대해 확인이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이 사건은 아주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렇게 알고 있어. “‘밀양연합’이라는 고교생 폭력집단의 조직원 41명이 두 여학생을 1년동안 윤간하고, 학대하고, 금품을 갈취하고 협박하였다. 이들은 성인 폭력조직과 연계되어 체계적인 조직으로 움직이며, 몸에는 흉측한 문신도 새기고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최초 세 명에게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을 때 엄청나게 분개했었지. 그런데 말야, 자신들이 들어 아는 사실로만 본다면 ‘범죄단체 구성 및 활동’에다가 ‘집단 윤간’, ‘금품 갈취’같은 죄목으로 치자면 41명 모두 구속하고 더 잡아들여도 시원찮은데 왜 3명만이 구속되었을까, 미심쩍어야 하질 않니. 그래서 정확한 사실을 밝히라고 요구해야 하질 않니.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어.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정확한 ‘사실’ 관계에는 깊은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 다만, 하루가 다르게 터져나오는 이 절망적인 사건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 집단적 히스테리를 풀어낼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라. 이 사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일이 되고 말았어. 그리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 질문이 던져졌을 때에는 모두 꿀먹은 벙어리들이 되고만 거야.
학교로 하루에 수십통씩 걸려오는 욕설섞인 전화, 인터넷을 떠도는 온갖 가지 근거없는 루머들, 아무 관련없는 아이들의 사생활까지 낱낱이 까발려 ‘죽일 놈’으로 매도하는 잔인한 난도질들 속에서 나는 참 황망했었어. 우리 사회에 이렇게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다만 내가 매를 맞더라도 그 사실에 위안을 찾으려 했었어. 그러나 수치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냈다. 보강 조사 끝에 네가 구속되었고, 너를 내가 가르쳤으니, 내가 받을 몫의 수치를 나도 받아야 한다. 다만, 우리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이 무서운 세태에 대해,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이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 보자. 이런 일이 우리가 모르는 어느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면 이건 더 큰 문제가 아니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상처가 있다면 치유는 우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에서 출발할 것이다. 우선 우리는 아파해야 한다. 거기서 상처의 독을 제거해야 치유의 길이 열린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의 책임있는 지식인들과 관료들, 양심적인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 치유를 위한 토론의 의제를 하나씩 둘씩 생각해보았다.
우선 나는 너희들의 그 폭력에 대한 선망과 무감각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꼭, 컴퓨터 게임이나 대중 매체의 영향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이건 정확하게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큰 흐름의 반영이라고 나는 생각해. 겉으로는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로부터 점점 파시즘에 대한 선망을 키워가는 중이고, 앞으로 경제 사정이 더 나빠지면서 이 세태는 더욱 급류를 탈 것 같다고. 거기에는 구질구질하고 복잡한, ‘돈도 안 되는’ 민주주의보다는 ‘쿨’하고 ‘깔끔하게’ 얽힌 문제를 매듭짓는 파시즘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고. 그리고 결국 이것은 어느 일본인 사상가의 표현처럼 ‘안락을 위한 전체주의’의 한 징후라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밀양이라는 이 지역사회의 보수성, 속물성,가부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도 알다시피, 밀양 지역의 국회의원은 우리 사회의 극우적 성향을 대표하는 사람이야. 그가 이곳 밀양에서 내리 세 번을 당선된 것은, 그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밀양 출신의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야. 분명 이 지역사회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지.
비평준화 지역인 이곳에는,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교복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곳이야.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술 취해 비틀거리는 고교생을 보고 어른들이 불러 훈계를 하는 일이 흔했어. 그땐, 교복이 없을 때니 이야기끝에 어른들은 “어느 학교 다니냐”고 물었고, 비교적 명문으로 꼽히는 “M고 다닌다” 그러면 한결 목소리가 누그러지면서 “공부하느라 고생 많다”는 격려가 덧붙었지만, 그외 다른 학교 이름을 대면 “부모 일도 안 돕고 술이나 마시고 다닌다”면서 잔소리를 했지. 사춘기 시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을 나는 자주 접하고 살았다. 지금도 이런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 그래서 고등학교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나면 시내에 곳곳에 내거는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릴 아이들을 위해서는 사활을 건 노력을 들이지만, 정작 그 외 대다수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별로 변하지 않았어. 밀양은 전형적인 ‘남성’의 도시인 거야. 힘없는 사람, 여성, 공부 못하는 학생, 가난한 사람, 장애인, 이런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거의 없는 전형적인 남성 가부장의 도시야. 이 작은 도시에 다방과 단란주점과 룸싸롱은 넘쳐나는데 여성이나 장애인을 위한 공간은 하나도 없는, 이런 도시에서 네가 나고 자란 거야.
그리고, 나는 또 이런 것도 이야기 하고 싶었어. 온 세상에 지금 미친 듯 창궐하는 섹스의 유혹에 대해서 말야. 결국 너도 이 세태의 뚜렷한 희생자인 셈이지. 이 시대의 ‘섹스’란 무엇일까. 섹스란, 이 권태로운 고도 소비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느낄 최대의 기쁨일지도 몰라.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인공’의 섬으로 점점 깊이 유폐되어가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야생’을 가진 존재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된 것 같아. 고독감이 극에 달하니, 그것이 결국 ‘죽음에 대한 사랑’-타나토노스-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더욱 깊이 탐닉해 들어가는. 인간다움에 대한 완전한 균형 상실이지. 그리고 이제 인터넷은 점점 ‘악마의 도구’가 되어가고…. 결국 가장 되돌리기 어려운 세태가 바로 이 ‘섹스’에 대한 탐닉이 아닐까.

5.
그러나, B야. 이 사건을 두고 내가 혼자 생각해 본 내용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더라.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어. 이 정도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면, 이 심각한 상황을 두고 입있는 자라면 한마디씩은 할 거고, 이제 왁자한 토론이 벌어질 거다, 기대를 했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과문한지는 몰라도, 정말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던 거야. 왜 그랬을까?
B야, 나는 점점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안고 있는 상처에 대해 합리적으로 제기하고 풀어갈 역량을 점점 더 잃어가는 것 아니냐고.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그래서 제법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분들은 나와는 반대로 전망하시던데, 나는 별로 그런 기대가 들지 않아. 그 분들은 늘 ‘민주주의’와 ‘시스템’을 말씀하시지. 우리 사회는 더디지만 민주주의가 진척돼 가고 있고, 사회를 지탱할 합리적 ‘시스템’도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가 될 것이라고 말야. B야, 그러나 난 이런 세태에 더한 두려움을 느낀다. 합리적 민주주의가 시스템으로 완전히 정착된 사회는 과연 살만한, 좋은 사회일까, 라고 나는 묻고 싶다. 이건 더 깊은 문제야. 합리적인 민주주의, 합리적인 시스템을 향한 진군은―물론 그 바탕에는 ‘경제 성장’이 유지돼야 하겠지만― 결국 사람들이 작은 노력과 책임감으로도 큰 만족을 나누어주는 사회를 바라보고 있겠지. 그러나 나는 결국 이런 흐름이 인간을 돌이킬 수 없이 타락시키는 틀이라고 보는 것이야.
사람들은 왜 이 ‘밀양 사건’에서도 본질적인 성찰을 할 수가 없었을까. 그건, 우리 모두가 이 병든 사회의 구성원이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네가 저질렀던 그 범죄의 형상들을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야. 우리 모두는 이 ‘어쩔 수 없는 공모’에 슬픔을 느껴야 해. 그런데 나는 네티즌들의 들끓는 여론이 뭉치고 뭉쳐 결국 ‘가해 학생 처벌 강화’를 위한 촛불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히 절망하고 말았어. 물론 그 집회가 내건 슬로건은 그것 말고 더 있고, 공권력이 이 사건을 풀어가는 믿을 수 없도록 저열한 방식에 대한 좌절감도 깔려 있었겠지. 그러나, 나는 결국 ‘처벌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그들의 주장에 담긴 기계성에 대해, 그리고 그 주장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촛불’을 사용한 것에 대해 절망을 느낀 것이야. 아아, 왜 사람들은 사태의 진상에 대해 더 깊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우리 자신이 나누어 가진 범죄의 형상에 대해 먼저 참회하지 않고, 너희들을 점점 더 끔찍한 범죄로 내모는 이 병든 사회를 치유할 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다만 사납게 “처벌해야 한다”고만 말할까. 내가 지금 너희들을 옹호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잖니. 문제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그리고 가해자인 너희들이 참회해서 다시는 이런 길에 서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왜 생각지 않을까. 네가 어른인 나보다는 회개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열아홉 소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야. 다만 너희들을 흉악한 범죄자로 두려워만 하고 있을까. 그들 자신이 떳떳한 ‘어른’이 못돼서일까.
우리 사회는 슬픔에 대한 감각이 점점 더 마비되어가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한 연민보다는 공포가, 성찰적인 토론보다는 원시적인 분노만이 맹위를 떨치는 거야. 목적도 방향도 없는 공포와 분노만이.

6.
그래서 B, 너는 불쌍한 놈이다. 너는 주체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이 세태의 폭력과 야만을 운반한 불쌍한 놈이다. 옥방에서 너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때 너에게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올 것이다. 인간의 법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것의 심판이 느껴질 것이다. 그때 너는 참회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죄의식이 다가오던 순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지금 네게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세상에 대한 두려움, 자기 혐오, 너를 이런 상황으로 끌고 온 온갖 정황들에 대한 증오, 이것만이 지금 네게 남아 있다면 나는 두렵다.
이 사회는 너를 참회시킬 능력도 자격도 없다. 다만 너는 스스로 참회해야 한다.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B야,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네가 나에게 보여 준 그 ‘순진한 미소’에 기대어, 부디 네가 참회의 길에 설 수 있기를. 할 수만 있다면 네가 고향 마을을 지키며 네 마을 앞을 흘러가는 그 아름다운 강의 지킴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나는 비록 이 글에서 장황하게 너를 둘러싼 ‘사회’를 이야기했지만 너는 다만 ‘네 죄’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자학은 부질없고, 세상에 대한 원망도 네 몫일 수 없다.
B야, 불탄 자리에는 무엇이 돋아날까―.
B야, 약속하마. 봄방학 때, 네 친구들의 글이 담긴 문집을 들고 네가 있는 곳으로 면회를 가마. 네가 좋아하던 신선생님, 이선생님과 함께. 그때 네 얼굴을 바라보고 네 손목이라도 쥐어주고 싶다. 부디, 내가 믿는 하느님의 령(靈)이 네 주위를 휘감은 이 시대의 ‘악령’을 물리치고 네게 다가가기를, 그래서 네가 저지른 모든 행동을 참회할 수 있기를….

2005년 1월 어느날, 이계삼 선생님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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