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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왜 친일 했는지 생각해 보자” 묻는 논란의 새 역사 교과서

‘위안부’ 피해는 본문에 단 한 줄, 그마저도 “끔찍한 삶” 두루뭉술한 표현만

이번에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역사 교과서.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실
내년 새 학기부터 학교에서 사용하게 될 새 역사 교과서들 중, 이번에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한 출판사 ‘한국학력평가원’의 역사 교과서를 두고 ‘뉴라이트’ 논란이 일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지식인의 친일 활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활동 과제를 제시하고,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내용을 대폭 축소한 사실 등이 대표적이다.

31일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해당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 운동’ 단원에서 “일제에 협력한 친일 지식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구체적으로 배운성, 김용제, 김동인, 서정주 등 당시 지식인들이 식민 정책을 찬양하고, 일본군 입대를 독려하는 작품을 제시한 뒤, “이 인물들이 왜 친일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자”고 토론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이들에 대한 가상의 공소장을 작성해 보자며, “해당 인물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토론해 보자”고 한다. 친일 행위에 대한 부적절성보다, 그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이어지는 인물 탐구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일제에 저항한 지식인인 윤동주와 일제에 협력한 서정주를 대비하면서도, 서정주 시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토론해보자는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참고로 실은 글에는 “어떤 사람들은 그를 ‘권력에 영합하는 친일파 시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의 친일 행위를 덮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쓴 아름다운 작품들은 우리 문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인정해야’라고 주장한다”며 이를 논쟁적인 사안으로 설명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역사 교과서.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실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고통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축소됐다.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강제동원 등의 방법으로 많은 한국인을 공장과 탄광, 건설현장 등으로 끌고 가 강제노동을 시켰다”고 설명하며, 이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가혹한 노동”, “부당한 대우”라고만 표현했다.

‘위안부’ 문제는 본문에서 단 한 줄의 설명이 전부였다. “일제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젊은 여성들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끌고 가 끔찍한 삶을 살게 했다”는 것인데, 다른 교과서에서 “성 노예”라는 분명한 피해 사실을 표기한 것과 대조적이다.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내용을 참고 자료로 싣긴 했지만, ‘강제로 끌려왔다’는 내용 외에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대목만 발취해 첨부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역사 교과서.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

광복 후 역사를 다룬 대목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시선에서 다룬 것이 눈에 띈다.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을 보면 이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이 전 대통령이 통일 정부가 아닌 남한 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정읍 발언’에 대해서는 역사적 배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한 쪽짜리 탐구 과제를 별도로 제시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해서는 다른 교과서와 달리 “장기 집권”이라며 에둘러 표현했다.

한편,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논란의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외에 ▲동아출판 ▲ 비상교육 ▲ 지학사 ▲ 주식회사리베르스쿨 ▲ 해냄에듀 ▲ 천재교과서 ▲ 주식회사씨마스 ▲ 미래엔 등 총 9곳이다.

이들 교과서는 내달 2일부터 일선 학교에 배포된다. 각 학교는 이들 교과서를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 뒤, 실제 사용하게 될 출판사의 교과서를 고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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