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94, Dec. 1, 2010

 

빈곤을 말한다고?

("Shall We Discuss Poverty?")

 

 

 

‘워싱턴 컨센서스’가 이 근대 세계체계의 담론장을 지배했던 15~20년이란 세월 (얼추 1975~1995년) 동안, 빈곤은 그것이 심지어 비약적으로 늘어날 때조차 일종의 금칙어 취급을 받았다. 우리는, 오로지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이며, 이 경제성장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그 어떤 “국가주의적” 간섭 없이 “시장”이 도처에 퍼지게 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하나 같이 들어야 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성의 간섭은 제외하고서였지만 말이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 여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슬로건 하나를 안겨줬는데, 바로 “대안은  없다”(TINA)였다. 미국과 짐작컨대 영국 말고는, 어느 나라에도 대안 같은 건 없다는 뜻이었다. (이 슬로건대로라면) 미개한 남반구 국가들은 저마다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겠노라는 순진한 겉치레일랑 얼른 걷어내야 했다. 그리 한다면, 그네들은 언젠가 (막상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말 못 하지만) 성장이라는 과실로 응당한 보답을 받게 될 것이었다. 만약 그리 하지 않으면 그네들은, 내가 감히 언급해도 될지 몰라도, 빈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이후 오래도록,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은총 가득한 영광의 나날들이 지속됐다. 남반구 주민들 대부분에게 상황은 나아지긴 커녕 되려 정 반대였고, 반란-불복종의 기운이 감돌았다. 1994년에는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네오-싸빠띠스따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세계 각지의 사회운동들은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무산시켰다(WTO 회의는 이때 이후로 다시는 열리지 못했다). 그리고 2001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세계사회포럼이 생동감 넘치는 첫 발을 내디뎠다.

 

1997년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 큰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러시아와 브라질, 아르헨티나로도 확산됐던 소위 아시아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IMF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관련 국가들을 상대로 자신의 주머니에서 닳아빠진 처방전 꾸러미를 꺼내들었다. 말레이시아는 용감하게도 이같은 처방을 사절했고, 가장 재빨리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르헨티나는 훨씬 더 대담했는데, 갚기로 한 빚을 1달러 당 약 30센트 꼴로 갚(을 수 없다면 아예 갚지 않)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 허리띠를 졸라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양상 매우 안정적이던 수하르토의 장기 독재는 대중 봉기로 종말을 맞았다. 그 당시, IMF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멍청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 IMF한테다 언성을 높인 사람이 헨리 키신저 말고 또 있었던가? 세계 자본주의와 미국으로선, 특정 국가를 상대로 워싱턴 컨센서스의 행동수칙을 따르게 하는 것보다 세계 자본주의와 미국에 우호적인 인도네시아의 독재 권력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기억할 만한 1998년의 외부기고 칼럼에서 키신저는 IMF가 “한 가지 처방으로 모든 병을 치료하려는 홍역전문의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은행이 먼저, 그리고 난 다음에는 IMF가 교훈을 얻었다. 각국 정부들에게 신자유주의 공식을 정책수단으로 (그리고 각국의 재정 상태가 악화됐을 때 이뤄진 금융 지원의 댓가로) 받아들이도록 강제한 결과, 정치적으로 타격이 큰 결과들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대안은 결국 여러 가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다시 말해, 인민대중은 반란-봉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1997년에 이어) 또다시 거품이 터지고 세계가 2007/2008년 금융 위기라고들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IMF는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한 채 언짢아하는 군중들의 비위에 훨씬 더 민감해졌다. 그리고서 IMF가 발견한 건 세상에나, “빈곤”이었다. 실은 발견하고 만 정도가 아니라, 남반구에 양적으로 만연해 있는 빈곤을 “줄일” 프로그램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그들의 논리가 뭔지 이해해 볼 가치가 있다.

 

IMF에서는『금융과 발전』이라는 제하의 번듯한 계간지를 발행한다. 직업적인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정책담당자와 언론인, 기업가들처럼 좀더 광범한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다. 2010년 9월호가 다룬 이슈에서는 로드니 램차란의 기고글을 비중 있게 다뤘는데, 이번 이슈를 압축한 그의 글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불평등을 용납할 수는 없다”.

 

로드니 램차란은 IMF에서 아프리카 분과 소속으로 있는 “선임 경제학자”다. 그는 우리에게 IMF의 새로운 노선을 언급하는데, “단지 평균 성장률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들은 위험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남반구에서, 높은 불평등은 “성장을 제고할 물적이고 인적인 자본 투자를 제약하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재분배 요구를 증대”시킬 수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나쁜 건, 불평등이 “동일성이 떨어지는 대다수 사람들보다 부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발언권을 준다”는 데 있다. 바꿔 말해, 불평등 악화는 “장기적으로 훨씬 더 엄중한 정치적·경제적 결과를 가져오면서, 소득 분배를 한층 더 왜곡하고 정치 체계를 경직시킬 수 있다”.

 

이제야 IMF가 키신저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게 된 모양이다. 그네들은 특히나 불평등이 심한 국가군에 속해 있는 지저분한 군중들(주변부의 하층계급들)과, 그곳의 엘리트들, 즉 비숙련 노동(력)에 대한 지배력을 지속하고 싶다는 이유로 “진보”를 지연시키고도 있는 세력에 대해 공히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IMF가 갑자기 세계 좌파의 소리통이 되기라도 한 걸까? 바보 같은 소리다. IMF가 원하는 건, 이 세계에서 좀더 세련된 면모를 갖춘 자본주의자들이 그렇듯이, 자신들이 시장에서 누려온 이해관계를 널리 퍼뜨릴 좀더 안정된 체계다. 이러자면, 끊임없이 팽창중인 빈곤층을 구슬려 그들의 반란 구상을 누그러뜨릴 “빈곤” 프로그램들 속에서, 남반구(와 북반구까지도 아우르는) 엘리트들이 그간 부당하게 누려온 것 중 약간을 포기하게끔 이들의 팔모가지를 꺽어야 한다.

 

이런 전략이 먹히기엔 때가 너무 늦은 걸지도 모르겠다. 체계를 혼돈으로 이끄는 요동들은 아주 엄청난 상태다. 그리고 “용납할 수 없는 불평등”은 나날이 커지는 중이다. 그러나 IMF와 이 기구가 대변하는 이해의 당사자들은 (구슬리기 전략을 관철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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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6:41 2010/12/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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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애편지 2010/12/14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무상급식과 관련해서 효율성을 따지며 저소득층을 지원해주되 나머지는 교육예산으로 돌리자는 논지의 교육계분의 의견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디자인 사업은 중요하고 무상급식은 시혜적으로 접근하시는 듯 해서 어쩐지 IMF의 빈곤걱정이 생각나네요.

    의외로 그런 견해를 가진 분이 많아서 서글퍼지는 요즘입니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정치적인 이슈로 묶어지고 정작 혜택을 받는 아이들의 심정을 고려했을까 묻고 싶었지만, 워낙 확고해보여서 그냥 다물고 왔는데... 그렇게 적자생존의 다단계 사회에서 살아 남을 자신이 있나보구나라고 쓴 생각만 드는군요.

    뭐 그렇게 구슬리기 전략을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에만 열심히 신경쓰겠지요. 그나저나 마지막 월옹의 마지막 말이 어쩐지 맴도네요. 들사람님 번역 잘 보고 갑니다. 감기 조심하고 잘 지내세요^^

  2. 들사람 2011/01/09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애편지/ 허헉, 벌써 해를 넘긴 댓글에 이제야 반응을 하네요. 죄송ㅠㅠ 연애편지님도 쉼표 따윈 아예 없는 양 몰아치는 추위 잘 나시고, 토끼처럼 오르막에 강한 한 해 되시길 바라마지않슴다. 올해, 여러 가지로 산 넘어 산이라고, 참 만만찮은 해가 될 거라고들 하니까요.

    서울시장 오세훈씨는 만에 하나 만나면 그 반반하단 쌍판이 후끈 달아오르도록 강도 높은 싸대기를 줄창 날려주고 싶던데요. 날도 춥다는데 그 후끈함마저 행여 보탬이 될나 싶어 기분 참 더러워질라구 합니다만,, 여하튼 저 모냥으로까지 정서와 감각의 도착이 좀비처럼 버젓해져야 대권 라이센스 획득은 물론이고 "합리적 보수"이고파 하는 적잖은 대한민국 시민들의 지지까지 보장받을 수 있나 싶어 참담해지더군요. 물론, 오씨 같은 부류들과 대화와 소통 따위가 부족해 이런 사단이 나는 게 아닌 줄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화와 소통이 무슨 카드 마일리지서비스 같은 건 줄 알고 있다는 데 뜨악해하기도 했고요.

    그래선지 오세훈이 열변을 토할수록, 이런 오세훈들이 망할까 혹은 무너질까 걱정하는 나라나 국가의 기틀 따위 지켜서 대체 뭐하나 싶대요. 정말 그래서 망국적인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면, 걔네가 겁을 내는 포퓰리즘적인 의제화는 되려 더 많이, 세게 이뤄져야겠다 싶기도 하고.. 실은 진작에 망했어야 한다는 생각만 더 들더라고 할까.. 무상급식에 담긴 여러 실천적 함의들은 그래서라도 더더욱 확대, 강화해야 될 것 같네요. 정치적으로 개입하기에 따라선, 앞으로 펼쳐지게 될 "계급투쟁"의 급소들이 뭔지 이 참에 본격적이고 효과적으로 (오세훈들 입장에서 보자면 물론 본의 아니게) 드러날 듯해서요. 여하간, 지대추구자나 다름 없이 사는 덕에 "지금 이대로"가 뭐 어때서 따위 반문밖엔 할 줄 모르는 감각도착자들을 들볶아도 션찮을 판에, 그런 부류의 상식과 원칙, 사정을 존중해 가며 소통, 대화하려 들다간 오세훈 식의 "궤변적 합리성"은 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잖으까 합니다. 확실히 그렇겠죠..

    에효,, 뭐 연애편지님이나 저나 어여 이런 꼴 좀 앞으론 안 봐야 될 텐데요.. 당장은 힘들어도 그런 시기가 조금이라도 더 앞당겨질 수 있는 때가 조성되길, 그런 때가 조성되는 데 님과 제가 뭐라도 함께 할 수 있게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