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92, Nov. 1, 2010
통화 전쟁의 이면
("Currency War? Of Course")
통화(제도)는 경제적 문제들 중에서도 아주 유별난 구석이 있다. 제도 자체가 승자와 패자를 정말이지 뚜렷이 가르는 관계로 이뤄져 있어서다. 어떤 통화의 가치를 재평가하거나 평가절하해서 보는 재미가 뭐든, 그 재미는 나머지 통화들이 피를 봐야만 생긴다. 모든 통화의 가치절하가 한꺼번에 일어날 수는 없는 셈. 그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무의미하다.
세계가 지금 처한 상황에 관해선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로 통하던 시절을 살아왔다. 물론 그 덕에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도 가지지 못했던 특권을 누렸다. 미국 정부는 내키는 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데, 발등의 불인 상당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판단할 때마다 그렇게 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달러가 공인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한, 그 어떤 다른 정부도 치러야 마땅한 불이익 없이 저렇게 돈을 찍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달러가 상당한 시기에 걸쳐 여타 통화에 견줘 상대적으로 가치절하돼왔다는 점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지속적으로 등락을 보이긴 했지만, 달러 가치는 적어도 한 30년 동안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동북아시아권역 국가들ㅡ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는 여타 국가들이 비판해온 통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매체에서 늘상 주목받는 주제다. 그러나 공정하게 말하자면, 각국에 저마다 유리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 시점에서(=동북아 3국과 같은 조건에 처하게 됐을 때) 가장 현명한 정책을 마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대다수 정책 분석가들의 배배꼬인 설명들보다는 그 저변에 흐르는 좀더 담박한 쟁점에 주목하려 한다. 몇 가지 가정에서 시작해 보자. 달러가 세계체제의 기축통화로서 누리는 지위는 미국이 오늘날 세계체제에서 마지막으로 누리는 주요 잇점이다. 이 잇점을 지속하고자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리라는 건 따라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자면, (눈여겨 봐야 할 동북아시아권역 국가들을 포함해)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환거래의 척도로서뿐만이 아니라 (특히 미합중국 재무성 채권처럼) 자국의 잉여를 투자할 대상으로도 기꺼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달러의 환율은 꾸준히 미끄럼질쳐왔다. 이 말인즉슨, 미국 재무성 채권에 투자한 잉여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치절하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같은 투자의 잇점들(중 으뜸으로, 수입품에 대한 미국산 기업들과 개별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지탱해주는 잇점)이 재무성 채권 투자가 가져다주는 실질 가치의 손실보다 마침내 더 줄어드는 순간이 온다. (채권 투자로 발생하는 이익 증가분과 실질 가치 감소분을 각각 표시하는) 두 곡선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문제는 어떤 시장 상황에서든 생기는 곤경과도 같은 것이다. 어느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주주들은 그 가치가 너무 낮아지기 전에 판돈을 거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덩치 큰 주주 하나가 신속하게 투자를 철회할 경우, 이는 다른 투자자들한테 앞다툰 투자철회를 부추겨 훨씬 더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 게임의 관건은 언제나, 투자철회에 들어갈 시점을 너무 늦지도, 그렇다고 너무 이르지도 않게, 혹은 너무 굼뜨지도 않지만 너무 재빠르지도 않게 어렵사리 찾아내는 데 있다. 이렇게 하려면 완벽하게 시점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런 시점을 찾아내는 건 아주 곧잘 낭패를 보는 그런 판단으로 치닫곤 한다.
내가 알기로, 이는 미국 달러와 관련해 지금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벌어지게 될 기본 구도다. 달러가 한때 세계적으로 누렸던 신뢰를 계속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조만간, 경제적 현실은 이런 달러의 신세를 따라잡게 될 게다. 이같은 상황은 촌각을 다투며 충격적으로 벌어질 수도, 아니면 그보다는 훨씬 더 천천히 이뤄지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그같은 상황이 일어난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는 것이다.
오늘날 달러를 대신해 기축통화가 될 만한 통화는 없다. 이런 경우, 달러가 몰락할 때면, 기축 통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통화상 중심이 다극화된 세계를 살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다극화된 세계란 굉장히 혼돈스런 세계로, 이런 세계에선 어느 누구도 안정감을 누릴 수가 없다. 끊임없이 이뤄지는 급속한 환율 변동 탓에 합리적인 단기 예측들이 매우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은 현 세계가 “부정적이며 장기적으로 매우 해로운 파장을 부를” 통화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며 공개적인 경고에 나설 판이다. 실제로 가능한 경우의 수 하나는 이 세계가 사실상 물물교환 무역이 이뤄지는 쪽으로 재편성될지도(귀환할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엔 이미 그리 돼 가는 중인 듯싶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것과는 정말이지 양립하지 않을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건 사들이는 쪽에서 정신을 차리기에 달렸다(caveat emptor, 상업 원칙상 구매에 따르는 위험을 구매하는 이가 감수해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
이매뉴얼 월러스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