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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당쟁의 시원을 찾는 공부를 할때 읽었던 글 중에서
조선시대의 士林들은 성리학의 우주론과 인성론에 근거하여 현실인식과 대응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는 리(理)와 기(氣)에 있으며, 인성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일반적으로 理는 순수한 선(善)을 말하고, 氣는 선악(善惡)을 겸하고 있지만 악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극단적으로 보면 理와 氣는 군자(君子)․소인(小人), 정(正)․사(邪), 시(是)․비(非)로 대비될 수 있다. 그러한 논리를 사단과 칠정에 접목하면서 비로소 리기심성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주희는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四端 理之發 七情 氣之發)”고 말한바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사단은 선이 되고 칠정은 악이 되는 셈이다. 고로 칠정이 배격되어야 선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이는 결국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는 군거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서경덕은 이 세상이 기로만 충만하여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선과 악을 겸하지만 악으로 편향된다. 그러면 이 세상은 악으로 규정된다, 이 곧 세상을 고해(苦海)로 보는 불교의 논리에 근접한다. 승려들은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가한다. 출가하는 것은 자신의 수행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학은 불교와는 달리 현실문제에 민감하다. 유학자들은 불교를 기철학내지 염세철학으로 규정해 배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식은 리와 기는 운명적 대립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주희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가 “정자(程子)․주자(朱子) 이후로 저술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선언한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기는 당연히 소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식은 일생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산림처사로 남았고, 모순된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비판적 자세로 일관 했다. 특히 이러한 조식의 관점은 윤원형은 타도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악 분별의 이분적 자세로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남명학(南明學)의 강직한 인상은 이를 토대로 형성된 것이다.
이이는 理와 氣는 그릇에 담긴 물의 관계로 보았다.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의 형태도 달라지듯이 理와 氣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릇과 물이 합해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유기적 관계에 잇는 한 합해지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理와 氣의 가치분별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군자와 소인의 분별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화합하는 길 밖에 없게 된다. 선․악의 가치분별을 대신 상호 보합의 방향을 지향하는 율곡학파의 포용적 색채가 여기서 마련된다.
이황은 모순된 현실을 도외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현실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개혁의 방형을 모색했다. 그렇지만 그는 모순된 현실을 유발하는 소인들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대립은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하여 나라를 파탄지경으로 몰아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악에 대한 분별도 없이 무조건적인 표용도 그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거치판단을 전제로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덮어두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을 유발하는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理와 氣가 분별되기는 하지만 상호 따르고 올라탄 관계에 있다는 점을 전제로 탄력적이고 합리적 현실대응 자세를 확립한 배경이 여기에 있었다.
문정대비 사망 이후 윤원형의 전횡과 비리를 폭로하고 훈구파와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율곡의 제자들은 서인으로 조식과 이황의 제자들은 동인으로 한편이 되게 만들었다. 이후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대립 점을 만들하고, 저 유명한 기대승과 7년 동안 리기심성 논변에 대한 편지글을 만든 계기는 이황이 정지운이 만든 「천명도설」의 문장 중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 發於理 七情 發於氣)”라고 한 것을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그러나 조식도 독서를 하면서 정리한 「학기」에서 “리가 발한 것은 사단이 되고, 기가 발한 것은 칠정이 된다.(理之發爲四端 氣之發爲七情)”고 하였다.
이황과 조식은 표현만 다를 뿐 의미는 또 같은 것이다. 기대승과 이황의 리기심성 논변과 같은 단순한 학술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숨어있는 것 중에 하나는 조정에서 부르면 관직에 나아갈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하는 출처(出處)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내포되어 있었다. 사실 기대승과 이황은 출처를 두고 달리 논쟁한 일이 없다고 한다. 단지 두 사람의 논쟁이 관념적이고 사변적이 철학이 아니라 성리학의 세계관에서 출처(出處)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실천적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조식과의 물의가 빚어지게 된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이황의 이론이 출처와 괴리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리는 순수한 선(善)이다. 기(氣)는 선과 악을 겸한다. 그런데 악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이 순수해지고 세상이 깨끗해지려면 理(사단)는 장려되어야 하고 氣(칠정)는 없애야 한다. 이는 악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잇는 칠정과 기가 없어져야 사단의 순수한 마음과 리의 이상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理를 군자로 간주하고 기를 소인으로 보아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세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소인들은 철저하게 제거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군자라면 소인들과 일체의 타협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당시 사림들은 윤원형을 비롯한 훈구세력들을 소인배라 낙인찍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림들은 훈구파의 정권과 상종을 말아야 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조식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진주 산천제의 초야에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이황은 소극적이긴 했지만 관직에 나아간 것은 사실이다. 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생겨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술렁인 배경이 여기에 있었고 기대승이 이황으로 하여금 논리적 정당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 논변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는 이황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는데 즉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지만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지만 리가 타고 있다. (四端 理發而氣隨之 七情 氣發而理乘之)”이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시 理를 군자로, 氣를 소인으로 대비시켜보자. 이상세계는 군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소인이 그 뒤를 따르게 되면 자연 교화가 이루어져 깨끗한 세상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또한 모순된 세계는 소인에 의해 초래되기는 하지만 군자가 그 위에 올라타 소인들을 제어하고 통제하면 세상의 순화가 가능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황은 군자와 소인의 극단적인 대립구도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이상세계가 건설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치보복의 악순환만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군자․소인의 가치분별은 분명하게 하되 소인을 제거대상이 아니라 교화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야 대립을 완화한 가운데 공존의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갈등과 대립보다는 조화를 추구하는 그의 세계관과 합리적 처신을 지향하는 출처관(出處觀)은 여기서 정립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황이 理와 氣의 상호작용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의 가치분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점에 쉽게 승복하지 않았다. (당시 기대승은 급제로 관직에 있었다.) 기대승은 윤형원을 대놓고 비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던 그로서는 어떻게든 타협의 방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이황에게 포용적인 철학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기대승과 이황의 논변 과정을 예의주시하던 조식이 기대승의 의도를 파악하고서는 발끈했던 것이다. 조식은 이황에게 별로 쓸모없는 논쟁을 끝내라고 주문했다. 제자들에게 빗자루로 마당을 제대로 쓰는 법만 가르쳐 주면 될 일이지 거기에 원리적인 설명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조식은 젊은 기대승의 발상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식은 기대승이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며 개혁할 의지보다는 거기에 순응하려는 기회주의적 자세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결국 조식은 이황에게서 선․악의 확고한 분별을 요구하고 있었고, 기대승은 오히려 악의 포용을 이황에게 주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사림들이 소인배로 낙인한 훈구파가 조광조와 사림을 축출한 기묘사화 및 김효원의 이조정랑의 후임 문제 및 정철이 조종하고 있다고 본 기축옥사-이때 조식의 제자 최영경 등 남명학파의 핵심들이 죽음을 당함-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사림들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차별적 양상은 윤원형 정권이 무너지고 사림정권이 들어선 것을 계기로 동인과 서인, 그리고 동인은 남인과 북인, 그 뒤로 서인은 크게 노론과 소론, 남인은 탁남, 청남,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나뉜다. 물론 시기별로는 서인은 공서․청서․노서․소서․한당․산당․준소․완소․시파․벽파 등등으로 갈라진다. 이들은 강경파와 온건파냐 또는 남인을 보는 시각과 서인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정파와 연합하느냐에 따라 파당을 달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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