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세상에 새로 온 꽃, 윤재철, 창비시선 233] 그리고 숨쉬기

다양한 종류의 시가 있을테고, 시인의 독특한 시쓰기 방법도 있을거다. 윤재철의 '세상에 새로 온 꽃'에 묶인 시들은 외형적으로는 산문시의 형식을 빌고 있지만, 전개 방식은 고전적인 시조의 구조를 그대로 띠고 있다. 물론 기승전결의 구조와 딱 들어 맞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의 시는 시인의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에 대한 기술로 시작해, 울컥할 정도의 감정을 실어 - 물론 아래 '사막'에서는 애틋함일테고 '세상에 새로 온 꽃'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겠다 -  마무리하곤 한다.

 

이런 구성이라는 것이 아주 편하게 읽히는 건 아마도 중고등학교때 정신없이 외며 시험준비를 했던 몇편의 시조에 대한 기억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계적으로 외며 중요한 부분에 대한 해석에 목매달아 한몸의 시가 내게는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확인할 겨를은 추호도 없었지만 적어도 아주 익숙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나름의 교육의 효과는 있는 셈이다 :)

 

산문시는 아주 자유롭게 씌여지는 것 같지만, 시인의 요구에 맞춰 한편으론 운율을 고집하기도 하고, 시조 및 자유시의 형식도 파괴하여 독특한 '행(行)과 연(聯)'을 적절히 배치해 시 전체가 하나의 물체형상처럼 보이도록 하기도 하며(황지우),  글자를 뒤틀어 그림과 뒤섞여 그림과 문자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들기(William Blake)도 한다. 

 

시는 1. 줄과 줄을 나누고 2. 또 한줄을 띄워 3.숨쉬는 법을 잘 모르는 내게 잠깐 쉬어 가라고 한다. 너무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로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詩처럼 잠시 멈추는 현명함을 찾아보시라.

 

 

사막

 

옛날에는 초원이었겠지

조상 대대로 양 치며 노래하며 살았겠지

그러나 지금은 모래바람 불어가는 사하라

사막의 변두리

사막은 자꾸 넓어지고

갈 곳이 없다

 

아낙들과 아이들은 메마른 풀을 찾아

며칠씩이고 양을 몰고 다니고

땔감을 줍고

사내들은 한달씩 걸려

천여 킬로미터 사막을 가로질러

좁쌀을 사러 간다

낙타를 팔아 일년치 좁쌀을 사서

다시 한달을 걸어 돌아오는

긴 낙타의 행렬

 

그 사막에 용서라는 것이 있던가

그 사막에 헛된 바람이라는 것이 있던가

더이상 갈 곳이 없어서

집은 거기에 있다

늙어 지친 낙타와

다시 태어나 젖을 빠는 어린 낙타와 함께

 

 

 

 

세상에 새로 온 꽃

 

한식 며칠 지나 가본

아버지 산소

제절(除節) 바로 앞에

어린 산수유나무

지난번에는 못 보았는데

일 미터가 조금 넘을까

가늘고 여린 가지 위에

대여섯 송이 노란 산수유꽃

 

꽃을 두고

죽은 사람 그리는 심사도

예전 같지는 않아

태연한데

엊그제인 듯 갓 피어

봄 햇살과 입맞춤하는

꽃만 눈부시다

꽃이 더

눈부시다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 제목
    그리운 지난 것 혹은 두려운 올 것로의 떠나기
  • 이미지
    블로그 이미지
  • 설명
    아무 얘기나 써볼까라고 생각한 2004년 7월 27일이 처음이었다.
  • 소유자
    REDONE

찾아보기

Support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