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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부위원장의 배임수재 혐의 구속 이후 민주노총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각종 보수언론의 공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조금은 양심적인 언론과 진보언론들에는 현 사태에 대한 수많은 대책과 대안, 논평이 줄을 잇고 있다.
미디어 참세상에 김승호 지도위원의 글이 실렸다. 오랜만에 보는 김승호 위원의 글이다. 그의 현재 직함은 사이버노동대학 이사장이지만, 오래전 그의 직함은 지도위원이었다. 그 잊혀진 직함만큼이나 김 지도의 글은 오래된 과거를 들추고 있다.
바로 현재 한국사회에 유령으로만 존재하는 그 작지만 거대한 존재. 전노협이 그것이다.
요지는 이렇다. 전노협을 죽이고 만든 민주노총은 애초 변혁성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현 집행부를 공격하는 사람들 역시 전노협 죽이는 것에 동참해 왔기에 믿을 바 못된다, 내지는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표시.
많은 사람들은 '민주노조의 전통'을 이야기한다. 그 전통은 한편으로는 전노협정신이라는 두리뭉실한 개념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전태일 정신이라는 말로 나타나기도 하고, 노동해방이라는 구호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흔히 전통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낡은 것'이다. 그러나, 계급적대 속에서 그 낡은 것은 '힘'이기도 하다. 바로 동원의 힘, 동원 자원인 것이다. 누구도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기억은 아픔이기도 하지만 어떤 기억은 환희(오르가즘)이기도 하다. 아픈 기억이기에 피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극복할 수 있는 면역력을 길러주기도 한다. 패배에서 배우고, 패배에서 성장하는 노동운동의 그 기억 말이다.
김승호 지도위원의 글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다.
'그래서 우짜자고?', 또는 '양비론에 기대어 변혁성을 말하나 변혁성을 거세하고 있다' 는 등의 댓글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승호 지도위원의 글을 보고는 너무 허망했다. 맨날 하던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김승호 지도위원에게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한마디로 썰렁했다. 내 머리를 지우는 지우개같은 썰렁한 바람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데, 나는 똑같이 댓글들에 풍기는 지긋지긋한 엘리트주의를 맡는다.
소부르주아 지식인이니 뭐니 하면서 낙인 찍는 그 옛날의 버릇을 더 강화해 쏟아내는 댓글들에는 진정성도 없고, 광기만 있을 뿐이다.
민주노총의 전통은 더큰 단결과 체제내화 또는 이념적 하락을 맞바꾸는 것이었다.
전노협의 전통은 전통형성 즉 계급형성과 변혁성, 전투성 견지였다. 그렇다고 전노협이 이념적 수준이 높았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한국 노동운동의 이념적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상관없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낮은 이념적 수준을 상쇄했던 것은 바로 수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목숨처럼 지키던 '도덕성'이라는 것이었다.
댓글들이 현장 노동자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진짜 '댓글 쁘띠, 골방 지식인 파'들의 광기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어쩌면 이수호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전통에 충실한 사람일 지 모른다. 강승규는 민주노총의 전통이라는 기준에 맞춰 볼 때도 하한선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노동해방이라는 가치를 내걸었던, 평등세상을 지향했던 전노협 정신의 회복이라도 하면 다행일지 모르나, 그것 역시 오로지 목소리 크기나 선언만으로, 의지만으로 된다고 믿는다면 오산일 것이다.
보이스의 평균치 말고, 조합원들의 이념적 평균치를 높이는 것은 이수호 집행부를 설득하고, 압력 넣고 사퇴시키는 것, 전통을 그나마 유지하는 것 이상의, 어쩌면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 말고 다른 출구는 없다. 그 댓글들에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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