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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도전, 연대의 제안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출판사: 아이필드



         아래의 도전, 연대의 제안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리뷰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6월호
http://www.ynlabor.net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지난달에 소개한《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를 본 몇몇 사람들은 절망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막막함을 느꼈다고 필자에게 말씀을 해주셨다. "너의 운명은 결정되었고, 너의 영혼은 판매되었으며, 곧 너라는 존재는 사라졌다"고 한다면 세상 살 맛이 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실 바쁘게 살아가는 동지들에게 세상의 '총체적 변화'를 느낄만한 시간이 없는 게 사실이고, 따라서 초국적 자본의 물질적 힘을 압축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여건상 쉬운 일이 아니다. 장시복 선생이 쓴《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를 소개한 이유는 '시간 없는 운동가들을 위한 핵심 간추리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소개를 드렸다.

그런데, 적에 대해서는 잘 알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동맹군이 어디까지 진격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섬멸되기 딱 좋은 꼴이다.
살아가는 데에는 한 개인의 경험이 물론 중요하지만, 적과의 전투에 있어서는 (개인이 아닌) '우리와 우리 동맹군의 집단적 경험'을 상기하고, 지도상의 현재 좌표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지도가 '바둑판'이나, PC 게임 스타크래프트상의 '맵'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눈에 확 들어오면 좋으련만, 현실의 지도는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와 우리 동맹군'이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갑갑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리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또는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맞서 나아가기 위한 '동맹의 지도'를 제고해 주는 책이다. 지난달에 소개한《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에는 '일관된 세계 생산체계 속에 묶여 있는,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전세계에 흩어진 노동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행동의 조건은 만들어진다. 아직도 세계는 종교와 언어, 인종과 성, 계급 등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또한 지금과 같이 전세계적인 동질적인 조건으로의 변화를 맞이한 적도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관철하는 '빈곤의 동질화'는 '아래로 떨어지는, 떨어진, 떨어질 사람들'을 빠르게 하나로 묶어 세우고 있다.

현재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새로운 변화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을 선두에서 추동하고 있는 주체가 '초국적 기업'이라면, 우리는 이들의 '음모'에 의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들에 불과한 것인가?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초국적 기구들, 초국적 자본들의 새로운 경제 기회의 추구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어떤 '음모'나 '계획'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이기도 한 것으로 저자들은 파악한다.

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의도와는 다르게) 창조한 최고의 작품은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일 것이다. 저자들 역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한 주체들이며, 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창조한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노동조합운동, 개발, 환경 정책, 입법 캠페인, 국제사회운동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세 명의 저자 중, 한 명은 저술활동가, 한 명은 트럭 운전사로서 팀스터 노조 활동가이고, 마지막 한 명은 국제 사회운동을 지원한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에 참여하는 수많은 인종, 국가, 성 주체 범주의 다양성만큼, 또 환경, 노동, 개발, 인권, 평화 등의 주제의 다양성만큼 이 책의 내용이 써지기까지는 수많은 고려들을 해야 했고, 알아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3명의 저자의 공동집필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종성(多種性)이 결합하는 방식은 '연대'이다. 연대는 모든 생각의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사실 운동은 어디로부터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명확해진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위로부터의 세계화'와 마찬가지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는 '국가나 이익 집단의 경계를 초월하는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형성되고 있으며, 또한 내부의 분열과 차이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지금껏 진행되어 온 무수히 많은 논쟁 속에서 '아래'가 최소한으로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을 '강령'의 형태로 제시한다. 물론, 저자들은 자신들이 제안한 강령이 완전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분열과 차이를 뛰어넘되, 연대를 강화하는 세계 행동 강령을 한번 음미해 보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경주해야 하는 것, 우리의 투쟁이 방어해야 하는 것을 상기시켜 줌과 동시에 취약성 역시 드러내 줄 수 있다.

1. 노동, 환경, 사회, 인권 상황의 수준을 높인다.
(바닥을 향한 경주를 멈추려면 바닥에 있는 노동, 환경 및 인권 상황을 끌어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 지역에서 세계까지 모든 단계의 기구들을 민주화한다.
3. 결정은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내린다.
4. 국제적 부와 권력을 균등하게 한다.
5. 국제 경제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개조한다.
6. 인간과 환경에 필요한 것을 충족시낔으로써 번영을 창조한다.
7. 갑작스런 국제 경기의 변동을 막는다.


위의 사항들을 통합적으로 연결시키는 행동들 속에서 '세계화'를 근원적으로 재성찰하는 '아래의 대안'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안은 결코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니다. '위로부터의 세계화'가 불러오는 '파국'과 '위기의 삶'을 구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치와 경제, 제도와 운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 속에서 새로운 사회관계가 생산된다. 이는 민주적 재구조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고, 다시 그 행동은 관계형성에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주의를 부르짖는 것만으로는 국제주의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는 자신이 현재 위치한 곳에서의 투쟁이 전세계적 지배구조에 어떤 식으로 반격을 주는지 수많은 예시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무수히 많은 활동가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현재의, 이곳의 투쟁을 세계와 연결시키는 것은 자동적이지 않다.

이 책 역시, 세계화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바쁜 활동가들에게 적절한 해답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다나 프랭크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장밋빛 전망을 보여주긴 하지만,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제안들을 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전망을 만들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아래'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그려준다. 이미 '위로부터의 세계화'는 위기에 처했다. 왜냐하면 '지배'가 '동의'를 전제하고 있다면 전세계 민중들은 '동의'를 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간단한 사실에서부터 출발하자면, 혼자 나지막이 되뇌건, 함께 큰소리로 외치건 '아니다'라는 단순한 외침은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자적 반세계화에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등으로 나아가는 과정들은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대한 범세계적 반작용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려준다. 그 여정에 우리 역시 합류되어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게 될 것이다. 열쇠는 누가 쥐고 있는가? 초국적 기업과 기구들인가? '무수히 많은 아래의 소인'들인가?


<200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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