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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근무제 개악안과 노동운동의 미래
양솔규 / 연구소 사무국장
우리도 이제 노동 일은 않을 테야 일해 봐야 보람도 없는 그런 일은 않을 테야
겨우 연명할 만큼 주면서, 생각할 틈조차 안 주다니, 진절머리가 난다네.
우리도 햇볕을 보고 싶다네. 꽃 냄새도 맡아 보고 싶네.
하느님이 내려 주신 축복인데 우린들 아니 볼 수 없다네.
우리는 여덟 시간만 일하려네. 조선소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점포에서
우리는 힘을 길러 왔다네. 이제 우리 여덟 시간만 일하세. 여덟 시간은 휴식하고, 남은 여덟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세.
- 188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노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노동운동이야기>(책갈피/1996)
“노동청장님. 우리는 잔업수당을 받지 않고 좀더 가난하게 살지언정 12시간 철야노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좀더 일해서 좀더 벌어야 한다고 걱정하실 지 모르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몸이 너무 지쳐서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잊지 않을 것이다. 해태제과에서 있었던 8시간 노동제의 투쟁과정을. 그리고 후세에게 전할 것이다. 미국의 8시간 노동제운동보다는 100년이나 뒤지기는 했지만. 노동운동만세!
- 70~80년대 해태제과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투쟁기록
<8시간 노동을 위하여>(풀빛/1984)
자본은 오늘도, 어제도 기업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조건에 대해서 한탄을 내뱉는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거듭된 공언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끊임없이 불만을 생산하고 있다. 자본의 나팔수 조중동과 경제신문들은 선동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본과 조중동 찌라시의 정치적 전위인 한나라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마련한 주5일제 근무 관련 근로기준법안에 찬성표를 던진단다. 노사정위 협상이 결렬되자 자본은 정부안을 받아들인다고 발표했고, 한나라당 역시 그동안의 태도를 바꿨다. 노무현 정부가 ‘친노동 성향’이기 때문에 근기법에는 노동계의 입장이 배려되어 있다면서도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친노동적인 근기법을 제정하려는 노무현 정부는 노동당 정권인가? 한나라당은 노동당인가? 근기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총파업도 불사하겠단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양대 노총은 그렇다면 반노동적인 세력들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늘(21일)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근기법 개악안은 26일 법사위 심의를 거쳐, 28일 본회의에 상정, 처리될 예정이다.
자본의 엄살은 그렇다 치자. 마음놓고 노동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조건은 어떤가? 산재를 당하고도 고용불안 때문에 입도 벙긋 못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 장시간 노동에 부서질 대로 부서진 몸뚱아리 팔아 임금 좀 챙겼다고 여론린치를 당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최저임금제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후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아니라 임금하락의 지렛대로 사용하는 놀라운 창조력, 배달호 열사 이후에도 계속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와 조합비 가압류......
누가 이러한 상황에서 이 나라에서 노동하고 싶어하겠는가?
해외로 떠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어느 기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20, 30세대들의 50%, 51%가 이러한 질문에, 주저 없이 “떠나겠다”고 답했고, 실제 많은 젊은이들이 감행하고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노동의 탈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되묻지 마시라. ‘세상을 바꿀 생각은 안하고 혼자 떠나면 되나?’, ‘모두가 떠날 수는 없다’ 등등. 어쩌겠는가? 지옥 같은 ‘절간’을 중이 떠나겠다는데 말이다. 떠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절간’이 어떻게 변할지를 살펴보는 게 순서에 맞겠다.
국민을 떠나게 하는 국회
8월 21일 국회 환노위에서 통과된 노동법 개악안과 노동계 단일 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① <연월차 휴가수당 폐지>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그 취지가 있는 만큼 이러한 정부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중소영세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전체 임금총액 중 연월차 휴가수당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들에게 더 큰 불이익을 줄 것이다.
② <연장근로시간 확대(현행 12시간→3년간 16시간)>는 과연 정부안이 노동시간단축안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3년간 최초 4시간 할증율 25%로 삭감되는 안은 더욱더 노동자들이 총액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연장근로에 의존하는 경향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실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을 것이다. 또한, 주당 연장근로시간은 확대되고, 총근로시간은 56시간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③ <생리휴가 폐지로 인해 여성노동자들>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연월차 휴가 10일, 법정공휴일 4일에 이어 생리휴가 12일이 줄어들 경우, 여성노동자의 휴일 수는 늘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깎이는 임금총액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무급생리휴가를 청구하지 않고 일하게 될 것이다.
④ 정부안의 <주5일근무제 시행시기>를 보면, 총 6단계로 2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2011년 내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 정부안에서는 도입 최초 시기가 2003년 7월 1일이었던 반면, 국회환노위를 통과하면서 1년이 추가로 유예(2004. 7)되었다.
이렇게 될 경우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분할선을 더욱 굳히는 효과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특히 영세중소 사업장들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일주일 중 몇 일을 일하느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표식이 될 것이다. 이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대(對)사회적 발언권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노-노간 분할을 뚜렷하게 해 계급단결을 가로막을 것이다.
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서비스, 유통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영세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주당 노동시간한도가 평균 48시간 정도이다.
⑥ <선택적 보상휴가제>는 노사 서면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편화 되어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강제사항이나 다름없다.
⑦ <기존단협 갱신 의무 조항>은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금속노조나, 현대자동차, 금융노조 등에도 불리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차원에서 세심한 전술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표1> 국회환노위 통과 정부 개악안(2003.8.21)
내 용 |
현 행 |
정부 안 |
노동계 단일 안 |
법정 근로시간(제49조 제1항) |
1주 44시간 |
1주 40시간 |
1주 40시간 |
내용 |
현 행 |
정부 안 |
노동계 단일 안 |
연월차휴가수당 폐지(제59조의2 신설) |
신설 |
사용자의 휴가사용촉구에도 불구하고 휴가미사용시 사용자의 보상의무면제, 귀책사유해제 |
도입 반대 |
연장근로확대 및 할증율 인하(부칙) |
신설 |
3년간 한시적으로 주12시간에서 16시간으로 한도 상향조정 최초 4시간 할증율 25% |
도입 반대 |
생리휴가 무급화(제71조) |
월1일의 유급생리휴가 |
청구할 경우 무급휴가 |
현행유지 |
시행시기(부칙) |
없음 |
① 공공부문, 금융․보험, 1000인 이상 사업장(2004.7) ② 300인 이상 (2005.7.1.) ③ 100인 이상 (2006.7.1.) ④ 50인 이상 (2007.7.1) ⑤ 20인 이상 (2008.7.1.) ⑥ 20인 미만 (2011년내, 대통령령) |
① 공공부문, 금융․보험, 1,000인 이상 사업장 (공포 후 3월 경과하는 날) ② 300인 이상 (2004. 7. 1) ③ 300인 미만 (2005. 7. 1) |
연월차유급휴가 (57조, 59조 제1,2항) |
월 1일의 유급월차휴가 1년 개근자 10일, 9할 이상 출근자 8일 유급연차휴가 매1년당 1일 가산 총연월차휴가일수 32일을 초과할 경우 초과일수에 대해 통상임금 지급 대체 가능 |
연월차휴가 통합 1년간 8할이상 출근자 15일 유급휴가 매2년당 1일 추가(최초1년은 제외) 총휴가일수 25일 한도 1년 미만자 1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이때의 월 1일 유급휴가는 1년이상 2년미만자의 연차휴가에 포함) |
연월차휴가 통합 1년간 8할 이상 출근자 18일 유급휴가 매1년당 1일 가산 총휴가일수 27일 한도 1년 미만자 1월당 1.5일 유급휴가 |
탄력적(변형) 근로시간제 (제50조 제2항) |
1개월 단위 1주 56시간 한도 1일 12시간 한도 |
3개월 단위 1주 52시간 한도 1일 12시간 한도 |
3개월 단위 1주 48시간 한도 1일 10시간 한도 |
선택적 보상휴가제(제55조의 2 신설) |
신설 |
연장․야간․휴일근로시 임금대신 휴가부여 |
반대 |
내용 |
현 행 |
정부 안 |
노동계 단일 안 |
임금보전 (부칙) |
신설 |
법 시행으로 인하여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당 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함 |
기준근로시간 단축분은 기본급으로 보전 개정법 시행시 연월차휴가일수 축소에 따라 단축되는 연월차휴가일수에 대한 수당을 퇴직 시까지 매년 총액임금 기준으로 보전 |
기존 단협변경 (부칙) |
신설 |
기존 단협 및 취업규칙 갱신노력의무 명시 |
반대 |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제58조) |
운수업, 물품판매 및 보관업 등 특수업종에 대해 연장근로, 휴게시간 한도 초과 허용 |
|
폐지 * 판매서비스업, 운수업의 장시간노동해소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
연소자, 유해위험사업장 근로시간 (제67, 46조) |
- 연소자 근로시간 1일 7시간, 1주 42시간 한도 - 유해위험사업장 연장근로한도 1일 6시간 1주 34시간 |
- 연소자 근로시간 1주 7시간, 1주 40시간 한도 - 현행 |
- 연소자 근로시간 1일 7시간, 1주 35시간 한도 - 유해위험사업장 연장근로한도 1일 6시간 1주 30시간 |
법정공휴일 축소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 |
현행 17일(노동절 포함) |
* 4일 축소(토요일과 겹치도록 일자 변경조정) |
반대 |
현재로서는 근기법 개악안을 둘러싼 투쟁의 결말을 쉽사리 예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간에 ‘주5일제 투쟁’은 당분간 노동운동의 중요한 이슈로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운동이 껴안고 가야 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서술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첫째, 조합원들의 실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노동조합의 통제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임금보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임금보전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끊임없이 물질적 이익 추구를 한다면 이를 노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 노동시간, 각종 수당과 복지의 차별을 철폐하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고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 철저하게 평등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하더라도, 노사정의 각축 속에서는 일정한 후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처음부터 확고한 전선을 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셋째, 근기법 개악안이 통과되든, 재협상을 통해 다소 나은 안이 통과되든, 근기법의 노동시간 단축 효과와 일자리 나누기 효과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거시적 노동공급정책에 대해 정교한 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주5일제를 레저산업 및 서비스업 확대, 일상생활 세계의 상품화의 진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자본측의 의도와는 반대로, 노동의 ‘삶의 질’ 향상 방안을 마련해 실천해 나가고, 이를 통해 사회를 정상화(正常化)시키는 데 노동운동이 선도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주5일제 투쟁을 통해 노동의 조직력을 확대하고, 미조직 대중들에 대한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최근의 자본과 언론이 쏟아 붓고 있는 여론 조작 선동을 돌파해 나가는 주요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노동시간 단축 및 개정 투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악안이 시행된다면, 첫째로, 주5일근무제의 도입 의미인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이는 논란의 와중에 드러난 주5일근무제를 바라보는 자본과 정부의 편향된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부정 등).
둘째로, 임금보전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안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삭감은 물론 전반적인 근로조건이 후퇴하였다. 사실상 임금보전 문구는 도입과 더불어 사문화될 것이다.
셋째로, 근기법 개악안을 통해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와 더불어 노동 내부의 분할선이 더욱 심화되면서 ‘개악의 효과’가 차별적으로 적용될 것이 분명하다. 여성/남성, 중소/대기업, 비정규/정규직 분할이 진행되면서 조직 노동의 약화와 미조직 노동의 파편화를 동시에 꾀하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쟁점을 제기하던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 시절, 또는 초기의 발언들은 한낱 립서비스였던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외국으로 노동력 탈출을 감행하던가, 귀농을 택하던가, 둘 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결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싸우던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200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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