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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 2004.1월 - 소금 : 그대는 철도 여성노동자/붐 : 몰락, 그리고 공동체의 재구성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월(115호) 

소금 : 그대는 철도 여성노동자/붐(Boom): 몰락, 그리고 공동체의 재구성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1. 노동자 영상사업단 희망,『소금-철도 여성노동자 이야기』, (2003)

 

노동자 영상사업단 희망에서 제작한 영화『소금』은 철도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공교롭게도『연대와실천』이번 호에는 철도노동자의 2004년 투쟁 전망에 대한 현장통신 글이 실려있다. 과연, “관계자외 출입금지” 지역, 철도 노동자들의 일터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속에 소수자로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수색역 수송일을 맡고 있는 김○○는 4개월 전 4년만에 임신한 애를 잃었다. 수송일 중 열차를 떼어 다른 열차에 붙이는 일을 ‘입환’이라고 하는데, 달리는 기차에서 매달렸다 뛰어내렸다 하다 보면 임산부들에게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김▽▽는 민주노동당 유인물을 뿌린 것과 역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임산부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여성부 site에 올린 것 때문이었고, 조합원들과 함께 항의를 했지만, 결국 그녀는 2년 동안 정들었던 수색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역 수송일을 하는 강▲▲은 임신 7개월이다. 그녀는 현재 서무보조로 일하고 있다. 임신 후 그녀는 보건휴가를 썼다. 그녀의 상관 과장은 “병원 갈 거 아니면 근무”를 하라고 종용하고, 임신 증빙 서류와 보건휴가시 의료 진료서를 떼올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임신한 것이 죄도 아닌데, 모성을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이 외에도 모성보호를 받지 못하는 철도 여성노동자들은 수 없이 많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노동자들이 담당하던 업무에 여성노동자들이 진입했지만, 모든 업무와 작업환경, 관례는 아직 남성노동자들에게 맞춰져 있다. 열차 승무원 중 7명 중 4명이 유산을 경험했으며 1명은 하혈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철도 노동자들의 근무는 24시간 맞교대로 이루어진다(한 여성노동자는 “다른거 필요없이 3조 2교대만 하면 살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인원충원이 안되면서 자신이 쉬면 업무가 다른 동료들에게 과중되기 때문에 쉴 수도 없다. 따라서 출산을 앞두고서도 열이면 열, 일하는 도중에 병원에 실려가 출산을 한다. 노동조합과 철도청은 인원충원에 합의했지만, 4․20 합의 파기 이후 인원충원의 구체적 일정은 아직 나와 있지 않은 상태이다.

매표업무를 보고 있는 김●●은 철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매표원들이 왜 저렇게 불친절할까?”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들)는 현재 ‘불친절’을 강요당하는 작업환경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놓고 싸우고 있다. “그만둘까? 참아볼까?”

80년대 후반까지도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을 가정 내 존재나 모성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복합적 정체성(어머니이자 노동자)을 부정하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오장미경, 『여성노동운동과 시민권의 정치』).” 하지만 철도에서는, 아니 이 사회에서는 이러한 복합적 정체성은 매일매일의 갈등과 투쟁 없이는 유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을 3년이나 지나온 작년 영화제에서 한 남성 관객이 박정숙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아이를 죽여가면서까지 일을 해야하느냐”. 감독은 “남성에게 왜 일을 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여성에게도 일은 중요한 가치이자 자아 실현의 도구”라고 답변을 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하는 현실! 모성과 노동자 정체성이 충돌되지 않는 조건은 아직도 요원한 것이다. 과연 철도 여성노동자가 어머니임을 포기하고 뱃속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엄마가 아이를 죽였다”고 말하는 자가 아이를 죽인 것은 아닐까?


감독은 철도 내 모성보호가 안 되는 현실, 철도 노조의 협상 의제설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가 배제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4․20 합의 때 기뻐하는 조합원들의 모습과 교차시킨다. 그러나, 그조차도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참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는 특정 노동조합의 문제라기보다, 노동조합운동 전체의 현 실태이며 이는 노동조합 대표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기는 부모 모두의 책임’, 이를 넘어 ‘육아는 사회의 책임’이 되어야 할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아니 도래했다. 단지 육아의 문제뿐 아니라, 교육과 주거, 문화와 노후, 정보의 자기결정권 문제 등등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괴리의 극심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주요한 행위자로 나설 수밖에 없으며 점점 더 그러해질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제목이 달콤한 “설탕”이 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면 왜 “소금”이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감독은 “이 땅의 여성 노동자들이 꼭 필요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금’ 같다는 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꼭 슬픈 것만은 아니다. 엄마들은 철도노동자로서 일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비록 아가에게 죄인이지만, 그녀들은 ‘더 많이 아프더라도 그들에겐 눈물이고 아픔인 기차에서 희망의 기적 소리를 들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스산한 눈물만이 아니라, 언 손을 호호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 같은 화면이 영화 속에 있다. 그녀들의 삶이 그러하기에 화면 역시 그러한 것은 당연하다.


이 영화는 2003년 7회 국제노동영화제, 2003년 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2003년 3회 인디다큐 페스티벌 국내신작전 등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노동자영상사업단 <희망>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참조: (02) 2272-8934, e-mail: tshope@jinbo.net


2. 위스퍼드 미디어,『붐(Boom, The Sound of Eviction』, (2001)

 

영화 붐(Boom)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와 이에 맞선 주민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이다.

미국 서부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는 무한한 흡입력을 지닌 자석과 같은 도시였다. 라틴 사람들과 유색인종들, 극빈층 예술가들과 노동자계급이 모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둥지를 틀고, 저마다 나름대로의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의 활력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구성과 교우 속에서 생성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닷컴(dot com) 기업의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구역(The Mission District)에는 외지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이 도시에 몰려드는 것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그들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주민들의 ‘주거권’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1년 새에 40% 이상 집세가 오르자, 라틴 및 유색 인종, 노동계급과 그 가족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건물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고급주택화(gentrification)를 서둔다. 어쩔 것인가? 정들었던 이웃들과 헤어져 생활기반과 친인척이 전혀 없는 낯선 곳으로 이주해 갈 것인가? 아니면 ‘주거권’을 위협받는 사람들과 단결해 맞서 싸울 것인가? 그들 중 일부는 떠나갔지만, 많은 미션 구역 주민들은 끝없는 싸움에 돌입했다. 거주민들의 퇴거와 이주를 부동산업자들은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주거권’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면서 주민들이 목격한 바는, 원래 이 사회의 주인은 자신들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이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러한 상황을 다시 바꾸는 과정에서, 다시 말해 스스로 일구워왔던 공동체를 원상복구시키기 위한 투쟁의 흐름 속에서 축소되어 있던 ‘나’를 확대된 ‘우리’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이들은 반(反)강제퇴거연합(Anti-Displacement Coalition)을 조직하고, 미션 거주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 위원회’를 장악하기 위한 위원 선출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나간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대표를 위원회 선거에서 대거 선출시킨다.

부동산업자와 미국 지배층이 공유하고 있던 시각 중 하나는, (미국판 ‘산업 성장이데올로기’인) 미국 신경제(New Economy)는 하나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성장을 멈추자는 것, 즉 몰락을 자초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션 구역 주민들의 ‘주거권’을 위협했던 닷컴 열풍(인터넷 기업 호황)은 꺼지고, 닷컴 기업의 80%는 파산했다. 미국 신경제를 상징하는 닷컴 붐이 꺼지면서, 미션 구역에 들어와 있던 기업들도 파산과 철수를 완료한 상태이다. 그러나, 집세는 원상회복되지 않았고, 그들은 지금도 싸워 나가고 있다.

 

미국 좌파 역사학자 로버트 브레너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봄에, 닷컴 기업들이 하나 둘씩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무너지자 주가가 하락했다. 대다수 닷컴 기업들은 단돈 1센트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뒤어어 가을과 겨울에도, 호황기에 선두를 달리던 거의 모든 유명 정보기술 기업-실패한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이 연이어 이윤이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발표함에 따라, 특히 투자자가 이윤율이 여전히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차로 상기하게 됨에 따라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이 글을 쓰던 때, 즉 2001년 중반에도 주식시장이 아직 바닥을 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로버트 브레너,『붐 앤 버블Boom & Bubble』, 아침이슬, 2002)


이 영화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역동적인 모습들이 잘 드러나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민중들의 자율적 생활 영역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인 이 도시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부문 아카데미상을 받은 바 있는 영화『하비 밀크의 시대』를 보면, 샌프란시스코라는 이 도시에서 동성애자 시의원 하비 밀크(뉴욕에는 동성애자 고등학교인 하비 밀크 고등학교가 있다)와 지역주민 운동이 어떻게 샌프란시스코를 변화시켜 나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샌프란시스코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거리 곳곳에 휘날리고 있고, 96년부터 동성애 부부 및 동거인 권리 인정을 명문화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 하비 밀크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뒤, 모두가 낙선될거라 예상했던 시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되었다. 그는 당선 후, 동성애자와 노약자, 여성, 빈민의 정책을 입안하고 ‘부자도시’를 바꾸어 나갔지만, 결국 동성애 혐오주의자인 공화당 시의원에 의해 살해당한다.

 

작년 말,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36)과 미국의 진보정당인 녹색당 후보 매트 곤잘레즈(38)가 경합을 벌였으며, 결국 뉴섬이 당선되었지만, 곤잘레즈도 47%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붐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운동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출퇴근을 하고, 물건을 사고, 여가를 즐기는 지역에서 노동자계급과 사회적 약자들의 연합과 힘은 곧 지역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 나가고, 이 과정에서 단결력을 키우고 연대의 폭을 넓혀 나가는 과정이 샌프란시스코를 진보적 도시로 형성시킨 중추적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마크 리브, 제프리 테일러, 아담스 우드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 집단 위스퍼드 미디어를 96년에 창립했다. 멕시코, 우크라이나, 우르과이, 네덜란드, 미국 전역에서 상영된 『붐 Boom』은 2002년에 서울 국제노동영화제 상영되었으며, 현재 노동자뉴스제작단이 배급을 하고 있다. 연락처: (02) 888-5123,    http://www.lnp89.org 

                                                                                                                         <200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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