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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4.11월 - 민주노동당의 선택과 집중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1월 (125호)

민주노동당의 선택과 집중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 redstar@jinbo.net

노무현 정부 들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용어가 부쩍 많아졌다. 최근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가 그러하다. 산업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경쟁력 모델을 제시한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무엇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바꾸어 말하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클러스터, 허브 등의 용어에 이어 이제 경영학 서적 속에 등장하던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가 한국의 모든 분야, 모든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LG 경제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등등의 재벌 및 자본 연구소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업종과 산업, 체육계, 학원계, 심지어 정치권까지 ‘선택과 집중’을 언급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까지도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의제가 겹치면서 당의 독자적 이슈 제기가 부족했다고 평가하며,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열린우리당 2중대’ 문건 유출 논란 과정에서도 김창현 사무총장은 당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당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들이야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영학 용어가 익숙하겠지만, 우리에게 낯선 ‘선택과 집중’을 저들의 논리와 동일하게 사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가용 가능한 자원과 선택지가 한정된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말 것인가는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우선인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우선인가 하는 점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 두 투쟁이 대립될 수가 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쟁점으로 불거진 데에는 민주노동당 내적으로는 열린우리당과의 ‘개혁공조’와 곧 이어진 파기, 민주노동당 내 당면전략을 둘러싸고 회람된 소위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 문건 파동’ 등이, 당 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의제 선점(소위 4대 개혁입법)과 보수수구세력들의 집결과 준동,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양산법)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민주노동당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대중투쟁의 기운을 높일 수 있는 기획이 전혀 없는 상태 속에 열린우리당이 선점한 의제에 한나라당이 적극 반발하면서 생긴 정치적 냉각상태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존재는 사라져 버렸다.


사학법과 관련, 전교조는 10월 말일 한 차례의 집회 이후로는 그다지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위원장 선거 국면으로 넘어갔다. 언론관계법과 관련, 언론개혁 국민행동이 국회 앞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언론관계법과 관련한 주요 타격 대상은 안타깝게도 한나라당에 쏠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내놓고 있는 4대 개혁입법은 사실 개혁입법이라 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대신 형법개정안을 채택했고, 이적단체죄는 계속 지속되며, 간첩죄 처벌이 보강되기까지 했다. 언론관계법 역시 신문사의 특정인 소유지분 제한 제도가 제외되면서 그 개혁적 의미는 사라졌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에는 학교장의 교직원 임면권 부여, 재단의 공금횡령 관련 규정에 대해서는 현행 사립학교법에서 재단의 공금횡령 사실이 알려져도 15일 이내에 변제만 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 이른바 계고기간 삭제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누더기 개혁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보수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면으로 돌파할 의지가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산이 높으면 돌아간다’는 이른바 개혁우회론을 제기했고, 열린우리당 내 한나라당과의 타협파가 상당수 존재한다. 한나라당 역시 보수파의 거센 압력 속에서 박근혜 대표가 당의 명운을 걸고 ‘4대 악법’을 막겠다고 했지만, 내부 의견통일이 완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 입법의 연내 일괄처리는 아직 그 추이가 명확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당의 타협의 가능성도 매우 높다. 4대 입법의 결정물은 열린우리당의 안보다 더욱 후퇴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국가보안법 역시 상정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안에 대해 ‘견인’을 이야기하면서 민주당-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의 개혁공조를 단행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열린우리당보다 훨씬 보수적인 당론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대한나라당 투쟁의 엑스트라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했다. 견인은커녕 개혁공조가 지속되는 동안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시야에 들지도 않았다는 것이 좀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김창현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에게는 각을 세우고 열린우리당의 기회주의에는 가차 없이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개혁입법을 주도한 열린우리당의 행보가 부유하는 자유주의세력의 기회주의인지, 정국을 주도하면서 지배세력의 점유권을 휩쓸기 위한 치밀한 전략인지, 아니면 협상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주고받을 공수표의 목록 만들기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형법 대체를 연내 통과까지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지, 아니면 재보선 전까지 미룰지도 미지수이다.


민주노동당이 4대 개혁입법과 관련해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린우리당과의 공조이고 선택해야 할 것은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싼 대중투쟁의 조직화였다. 단지 국회 앞 농성으로 거대여당을 견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각론적인 차원에서 공조 또는 견인하는 것과 당대당 공조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잃을 것과 얻을 것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공조를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었다. 만일 지금 이 시점이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대중투쟁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 당력이 할애되어야 한다. 4대 개혁입법 투쟁을 대중투쟁 속에 녹아 내면서 시너지효과를 높이지 않는 이상, 개혁성도 실종되고 민주노동당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당장 직면한 문제는 4대입법을 둘러싼 문제보다는 현재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정부의 강력한 탄압과 자체 동력의 소진 속에서 탄압받고 있는 공무원노조 문제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엄호하는 역할을 자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와 정치적 적대선을 그어야 할 것인가? 실체도 없고, 깡다구만 있는 ‘반핵반김 국권수호 국민협의회’와 선을 그을 것인가? 한나라당 김용갑과 선을 그을 것인가? 공무원노동조합을 유명무실화하려 하고, 비정규양산법을 상정하려는, 기만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을 일으킨 정부여당과 선을 긋지 않고서는 대중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이라는 구호는 한가한 장식에 불과하게 된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판을 마련하고 직접 등장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이지 한나라당이 아니다. 또한, 기업도시법, 한국형 뉴딜 정책 등 경제파탄과 재벌특혜 정책들 역시 열린우리당의 주도 속에서 국회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과 싸우는 야당은 야당인가? 여당인가? 국회공전 속에서 보수준동에 대한 과다한 의미부여는 열린우리당의 주도성을 가리는 착시현상을 가져왔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가 보지 못한(또는 않은) 것은 이해찬의 막말과 한나라당의 막무가내가 실은 칼로 물 베기로 끝날 싸움이었다는 점이며,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싸움에 견인이니 양비론이니 읊어대며 누구 편을 들 것인가 따지는 동안 이해찬은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한나라당은 용서 같지 않은 용서를 하고 말았다.


비정규직 양산법에 대한 총력투쟁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강요된 ‘선택과 집중’점이다.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이 연내 통과되지 못한다면, 또는 노무현 집권 시기 동안 계속해서 민주노동당의 줄서기를 강요하면서 등장할 ‘개혁공조’ 논란 때마다 다시 되짚어 보고 떠올려야 하는 것은 이번 민주노동당 내 문건파동과 관련한 논의 과정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 속에서 그나마 10석의 의원을 만들어낸 것이 의미를 발하려면 되풀이되는 논란과 실수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 낸 ‘선택과 집중’이어야 한다. 참으로 등장인물들이 많은 현재의 정치세력 속에서 역동적인 주동성마저 없다면 거대한 소수는 ‘거세당한 소수’ 또는 ‘거대함 속의 소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과거 보수야당 신민당의 개헌 현판식과 같은 주도력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자 정당임을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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