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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4.10월 -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신개발주의에 위협받는 노동자와 도시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0월(124호)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신개발주의에 위협받는 노동자와 도시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요즘처럼 도시가 주목받는 시대가 있었을까?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행정수도 이전 등 생소한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대체 다가올 변화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난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행 속에서 내외 자본은 한국 경제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분업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 자본주의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존의 보호주의에 입각한 공업형 수출주도 산업정책과는 달리, 소위 ‘개방형 (신)통상국가론’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면서 조립․가공뿐만 아니라 광고, 금융, 유통, 판매, 물류, 교통, R&D 등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되었다. 경제, 산업정책과 연관된 도시의 재구조화는 IMF 위기 이후 시작된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으면서 내외 자본의 요구에 종속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지역 간 불평등의 심화, 다른 한편으론 도시 내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내 성장연합은 누가 더 자본에 기생적인 존재인지를 놓고 심각한 경쟁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모두가 성장주의에 긴박당한 채 조급증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고유하게 내재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요소는 한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1990년대는 신고전주의적 시장자유화라는 거의 유토피아적인 조건 속에서 전지구적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역사상 최초의 10년이었다’.1)


얼마 전 부산과 광양의 경제자유구역 사업에 대한 전윤철 감사원장의 비판이 알려지자, 부산과 전라도 지역의 여론이 비등(沸騰)했다. 8월 20일 전윤철 감사원장은 “3개 경제자유구역 추진사업에 대한 감사를 해보니 걱정스럽고, 문제점이 많다”며 “지역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물류, 첨단, 관광산업을 유치함으로써 예산의 중복투자 등이 우려 된다”고 밝혔다.

감사는 감사원 내 국가전략사업평가단(이하 평가단)을 통해 2003년 말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2004년 9월 중 경제특구사업 개선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단은 ‘국가전략사업에 관한 감사’,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사업에 관한 감사사항’, ‘신행정수도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사업에 관한 감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부산일보는 사설에서 ‘중복 투자가 되거나 과당경쟁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제특구로 지정하지 말았어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특구 지정 시 전윤철 감사원장이 경제부총리로 재직 중’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특구 선정이 잘못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항을 사랑하는 모임’과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등도 전 감사원장의 발언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전윤철 감사원장은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집중 지원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신지역주의 단체’들은 ‘감사원장의 중앙집권적 사고방식, 지역균형발전을 위해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부산 지역의 일부 여론이 침소봉대되고 있는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즈의 사설은 다소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신문은 ‘경제특구가 실적없이 표류하고’ 있는데 늦게나마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교통개발연구원이 실시한 부산, 광양항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동북아 물류거점 선호도 조사에서 9개 조사대상 중 8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경제특구의 성공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지원만 주문할 뿐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2)

경제자유구역 주무부처인 재경부 뿐만 아니라, 각 부처와 동북아시대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다른 부처, 기관들도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2004년 6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학생비율을 해당 학교장이 결정할 수 있게 하고, ‘해외송금 금지 장벽’도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교조 등 노동․교육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교육개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2004년 8월, 오갑원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 기획단장은 외국계 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개방공대위의 반대는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국내의료법에서는 금지된 영리(營利)병원 설립도 허용키로 했고, 수익금의 해외송금과 자본 투자 등이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작년 경제특구법이 통과된 이후 노동계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움직임이 둔화된 가운데 현재 제반 사항들이 아무 저항 없이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표1>과 같이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경우 자본 및 대기업의 수도권 개발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거대한 시장과의 인접성(서울 및 경기, 중국)이 높기 때문에 투자유인 효과에 있어서 지방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3)

그러나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과 광양경제자유구역청이 출범했으나 투자 유치 실적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부산-진해경제구역청의 경우에는 3월 개청 이후 양해각서(MOU) 체결 실적마저 전무한 상태이다. 공장용지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고,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재원 역시 부족한 상태이다. 재계가 감세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에 필요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현재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은 한국 산업 성장엔진에 대한 숙고 없이 노동, 환경 등의 희생을 대가로 ‘저진로(low road)’를 지원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구성되었으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 정책추진력의 소진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사실에 있다.

 


<표1 인천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실적>

(단위: 달러)

시기

투자자

내용

투자규모

02년 1월

게일(미), 포스코

송도 개발, 컨벤션센터 건설

127억

2월

백스젠(미), KT&G

항암제 생산설비 투자

1억5천만

03년 6월

아멕(영)

제2 연륙교 건설

11억

7월

클럽폴라리스

골프장 개발

1억

11월

TNT(네덜란드)

물류센터 건설

8백만

04년 1월

DHL(미)

물류센터 건설

3천4백만

3월

한국중화총상회(화교)

차이나시티 건설

20억

4월

P.H 컨소시엄(미,독)

송도신항 건설

15억

4월

아멕(영)

복합레저타운 조성

20억

5월

보난자(미)

R&D센터, 쇼핑몰, IT 빌딩

3억1천만

6월

보난자(미)

유방암 스크리닝센터

3천만

8월

보난자(미)

외국학교 설립

2천만

8월

MS, HP, 삼성, LG 등

IT 비즈니스 지원설비

10억

(자료: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그렇다면, ‘자본의 천국’처럼 보이는 경제자유구역에(특히 부산-진해, 광양) 왜 외자유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추후 세밀한 비교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IMF 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시스템의 변화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온 해외자본들은 ‘투기자본’들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 수익률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중소기업 및 벤처보다는 우량 대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설정한다. 결국 우량 대기업들이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를 해야 하지만(해외자본 10% 이상이면 투자 조건이 성립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부분의 우량 대기업은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할 자격이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 조건 하에서 (정부의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보다는 내부 유보 내지는 해외투자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근접한 거리에 한국보다 더욱 매력적인 조건을 지닌 경쟁상대(중국 칭다오, 심천 경제특구 등)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보다 더 자본주도적인 기업도시의 추진 속에서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말부터 추진된 한국의 ‘생산의 세계화’ 전략은 ‘금융의 세계화’에 하위 종속된 상태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대등한 노사의 ‘대타협’에 의한 고진로(high road)가 아닌, 노동의 배제 속에서의 고진로(high road)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소위 산업 클러스터라고 일컫는 지역혁신체제를 자본은 기업도시와 등치시키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불황 속에서 각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을 기업주도 개발주의에 의탁하려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세 번째로는 현재 경제자유구역과 관련한 제반 사항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부산과 같은 전통적인 도시에서는 용지 확보가 쉽지 않고,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설사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기업도시처럼 효율적으로 빨리, 이해당사자들의 저항 없이 이루어지는 방식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자본은 망설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추후 전경련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와 경제자유구역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동북아중심국가 구상 하에 기획되었다. 애초 금융 허브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물류/유통 기능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참여의 폭이 넓지 않으며, 설치지역도 인천, 광양, 부산-진해 등으로 제한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섯째, 소위 선별과 집중 전략이라는 국가 경제 발전 방안은 각 지자체간 이해관계의 대립, 정치적 문제로의 비화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부산-진해 및 광양 경제자유구역이 물류 중심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부산신항 명칭을 둘러싼 부산과 경상남도 간 이해대립, 부산/광양을 거점으로 하는 투포트(Two-Port) 정책 포기 또는 재기 논란에서 보듯이 첨예한 지역간 대립은 앞으로 기업도시, 혁신도시4), 과학단지구역 등의 유치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 부산-진해, 광양 경제자유구역 축소조정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의 개발을 둘러싼 각 이해당사자들의 ‘성장연합’이 ‘경제자유구역’의 취지와는 무관한 이권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지역분권’ 또는 ‘국토균형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신지역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양적 성장 지상주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민 전체의 고른 발전이라는 관점보다는 ‘특정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경제자유구역 문제뿐만이 아니라, 부산 영도대교 문제, 지역 산업정책 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전체가 지역개발의 블랙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나, 합리적 룰과 통제 시스템은 전무한 ‘개발 지상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당연하게도 행위주체들은 ‘이해관계’에 따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부산시민’이라는 호명 속에서 시민 일반이 ‘이해당사자’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노동자, 서민, 농민, 중소제조업자, 주부, 학생 등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해는 사라지고, 각 주체들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정책 효과는 논의의 장에서 빠져버리게 된다. 이 틈을 지역 언론사와 개발업자, 이권관련자들이 ‘부산시민 전체를 대리, 대표’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넷째, 최근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매립지 개발을 둘러싼 특혜 의혹에서도 볼 수 있듯이(2004년 10월 7일 지구단위 입안권이 해운대구청에서 부산시로 넘어간 뒤 초고층 아파트 개발 특혜논란이 불거짐), 지자체의 개발주의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경제자유구역이 노동자 서민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한 경제자유구역 설립은 초입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법안 통과가 곧 투쟁의 종결을 의미할 수는 없다. 재계와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중심에 놓는 ‘산업정책’을 만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은 ‘반대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감사원 감사로 불거진 센텀시티 조성사업 문제점

 


2004년 7월부터 8월 사이, 감사원은 부산시 감사결과를 공개했다. 그 중 센텀시티 조성사업과 관련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보자.

 


센텀시티 마스터플랜과 실시계획에서 지원시설용지를 전시, 문화관광, 상업업무, 유통시설 용지 등 4개 구역으로 구획하였으나, 각 구역별로 건축물의 제한 등 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하지 아니한 채 분양하였기 때문에 유통시설 용지와 상업업무시설 용지 등에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이 건축되거나 건축예정으로 있어 당초의 도시개발 구상과 다르게 주거단지화 우려.

센텀시티 조성에 소요되는 자체재원이 부족하여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계 4,900억 원을 차입함에 따라 2003년 말까지 1,729억 원의 이자를 부담하였고, 앞으로도 연간 167억원의 이자를 부담하여야 하는 등 재정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조성된 부지를 조속히 매각하여야 하나……도심위락지역을 최고가에 의한 경쟁입찰이 아닌 부지 전체를 동일인에게 일괄 매각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어 매각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매각성사 여부 불투명

감사원,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부산광역시 일반감사, 2004년 3월

 


문제는 마스터플랜 단계에서부터 졸속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획 조차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국민들의 세금은 개발업자와 금융업계에 넘어가게 되고, 다른 노동자, 서민들에게 쓰여야 할 돈은 바닥나고 정부 재정은 압박받게 된다.

부산시는 센텀시티 개발과 관련해 특히 제2 BEXCO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BEXCO는 작년부터 흑자(당기순이익 3억 6000여 만원)로 돌아섰고 가동률은 해마다 증가해 2001년: 26%, 2002년: 40%, 2003년: 46%, 2004년: 51%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외 컨벤션 산업의 과잉투자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어 제2 BEXCO는 위험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90년대 이후 매년 컨벤션 산업이 20%씩 급성장해왔으나, 공급 과잉 폐해가 심각하다. 일본 역시 과잉성장한 컨벤션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컨벤션센터를 추진하고 건립하면서 2007년-2009년에는 과잉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COEX), 부산(BEXCO), 대구(EXCO), 제주(ICC)가 운영중이고, 경기 고양, 광주, 경남 창원, 3곳이 2005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울산과 대전, 인천도 대규모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중이며, 경북도 정부에 예산 지원을 건의한 상태이다. 현재의 가동률을 기준으로 제2 BEXCO를 건립하겠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창원의 컨벤션센터와 부산 BEXCO는 인접거리에 있어 중복투자가 될 것이 뻔하고 서로가 제살 깎아먹기를 할 것이다. 이미 건립중인 창원 컨벤션센터 운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제2 벡스코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 부산시당과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이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APEC 회의가 부산-제주에서 개최됨에 따라 지역에서는 컨벤션산업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고, 이를 빌미로 외국인대상 대형 카지노장 건설 논의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중으로 BEXCO 타당성 용역 조사가 끝나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울산의 경우에는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에도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신개발주의 욕망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업도시 건설 경과

 


2003년 10월 전경련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름하여 ‘주택가격 안정과 지방균형 발전을 위한 기업도시 건설방안’이 그것이다. 올해 2월에는 심각해지는 일자리문제와 연결하여 기업도시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후 전경련이 제안한 기업도시 개발에 대해 6월 10일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기업도시 건설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전경련의 제안을 참고해 건설교통부는 ‘민간복합도시개발특별법(안)(일명 기업도시 특별법)’을 마련했고, 9월 21일 법안을 공개했다. 전경련도 기업도시와 관련 대 정부, 대 언론 로비를 강화하면서 정부를 압박해 나가고 있다. 9월 22일 건설교통부는 공청회를 개최했고, 10월 8일 당정 협의를 거쳐 11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기업도시 특별법에 우호적인 상황에서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연내 1-2곳의 기업도시를 발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가 기업도시 특별법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위기 논란의 와중에서 현 정부는 내수경기의 심각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이해찬 총리는 경제회생을 위해, 특히 건설경기의 연착륙에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자본 투자 확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경부 역시 ‘뉴딜 정책’을 본받는다며 사회기반시설 중심의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했다. 전경련 역시 내수 진작과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복합서비스 클러스터 단지(대체에너지+관광레저+유통)’의 조성을 제안했다.

두 번째로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불황 속에서는 열린우리당이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 전국적인 압승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방선거를 겨냥한 내수경기 진작을 염두하고 있는 방책으로 보인다. 2006년 6-7월경에는 기업도시 개발 실시계획 승인과 기업도시 건설 착공이 예정되어 있다.

세 번째, 재벌기업들에 포위당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기업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특혜를 제공해주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의제를 둘러싼 개혁-보수 논쟁과는 별개로 경제분야에서의 재벌기업 의존성은 여야구별없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재벌에게 상대적으로 강하게 저항하던 정권 초기의 모습은 이제 대등한 파트너쉽을 지나 알아서 기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기업도시 내용 및 쟁점

 


전경련이 내세우는 기업도시 모델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파크이다. 전경련은 이러한 모델을 원용해 한국적 기업도시를 건설해 주택가격 안정, 지역균형발전, 일자리창출과 고부가가치 산업혁신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경련은 건교부가 제시하는 수도권과 충청권 이외 지역 기업도시 추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산업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주거, 문화, 레저 등 도시기능의 일부가 아닌 자족형 모델을 기업도시의 중요한 요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전경련과 자본이 동원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자본의 투기를 위한 토지수용권과 개발이익 환수가 핵심이다. 카지노와 놀이동산, 대규모 호텔이 자족형 모델인가? 전경련의 주장에 따르면 카지노 옆에 자립형 고등학교, 학교 옆에 놀이동산과 고급호텔, 대형병원이 이어지는 희안한 조감도가 그려질 수밖에 없다.

전경련은 기업도시를 내세우면서 산학연(産學聯) 지역혁신체계구축(RIS)을 매우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유치 희망지역 내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포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경련은 노동권의 유연한 적용 하에 노동할 수 있는 권리(대체근로 인정, 무노조 가능 등)까지도 요구하고 있다.5)

 


<표2 기업도시에게 주어질 혜택>

토지

기업이 주도적으로 토지 수용, 개발 처분

학교

외국인 대학 및 기업의 대학설립 허용

병원 및 레저

기업이 종합병원 설립, 체육시설에 기업 이름 사용

인프라

기업이 개발이익으로 건설, 도시 밖은 정부가 부담

규제

출자총액제한 적용 제외, 부채비율 규제 예외

노동시장

해고제한 조건과 근로자 파견제 규제완화

조명래: ‘외국사례에 비추어 본 기업도시와 경제정의’에서 재인용

 


기업도시의 네 가지 유형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유형은 관광레저형이다. 정부도 올해 안에 결정될 기업도시 예정지 2곳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상정하고 있다. 또는 산업형이나 관광레저형, 물류형과 관광레저형이 혼합된 형태의 기업도시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개발초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부동산 투기를 통해 쉽게 보전할 수 있다는 계산을 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6)

 


<표3 예상되는 기업도시>

기업

유형

예상도시

비고

금호

물류 및 관광레저형

광양항 배후, 새만금

 

동부

 

 

 

롯데

복합물류, 관광레저

김해

 

벽산

 

 

 

삼성

 

 

(충남탕정 좌절)

에버랜드

 

 

 

포스코

산업교역 및 지식기반형

포항

 

한진

물류 및 관광레저형

서귀포 또는 김해

 

한화

복합관광레저

여수 방산공장 부지

 

현대자동차

자동차 R&D 및 지식기반형

 

(경기화성 희망)

LG필립스

복합레저단지

새만금

(경기파주 희망)

SK

 

 

 

현대

골프장 등 레저단지

현대소유 서산 간척지

 

 


<표3 기업도시 유치 희망지역>

 

(전경련에 유치신청을 낸 지자체는 당초 9곳에서 23곳으로 확대)

지역

특징 및 인센티브

도시형태

인천

경제자유구역

경제자유구역, 영어인프라 확충

수도권 규제 완화, 원스톱 서비스

R&D형

충주

충주 첨단산업단지 부근

산업형

진천

신행정수도와 인접

편리한 교통, 풍부한 용수, 토지확보 제공

산업형, 문화-레저형

음성

음성 유통단지(2007년 완공예정)

물류형, R&D형

서산

20만t급 선박 입항가능

산업형(화학)

원주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와 연계

진입도로 등 기반시설 지원

R&D형(의료산업)

군산

최적의 항만조건, 풍부한 용수

추가적 부담없이 부지 확보 가능

산업형, 물류형

익산

투자재원 확보(총1,000억원)

입주업체에 싼 가격에 토지 제공

산업형

전주

기계, 자동차 부품산업 클러스터 조성

장기토지 이용권 부여, 세금 감면

산업형

목포

 

산업형

광양

경제자유구역

신덕: 주거단지, 외국인 학교, 병원건립

화양: 관광, 레저 휴양단지 조성

산업물류형, 문화-레저형

무안

 

산업형

포항

신항만 배후단지 기본계획 수립 완료

지방세 감면, 고용이전보조금 지원

산업형

대구

달성군 구지면 용지 대구시 소유

국가예산 확보, 현재 진행중인 사업

R&D형, 산업형

영천

대구의 배후주거단지 조성계획

도시기본계획 반영, 기반시설 전액부담

산업형

김해

부산, 창원, 마산 등 인접 대도시 중심

산업형

진주

필요부지 확보 및 입지기반 시설 지원

산업형

사천

첨단항공 및 부품소재산업 클러스터 추진

산업형

밀양

토지매입에 따른 행정지원

R&D형, 산업형

창원

산학연 네트워크로 경쟁력 우위

산업시설과 연계한 R&D 시설 집적화

R&D형, 산업형

마산

마산-시모노세키 직항로 운항

수출자유구역, 창원등과 인접

산업형

통영

부지확보 및 도시기본계획 변경

상하수도시설 제공

문화-레저형

서귀포

국공유지로 싼값에 매입 용이

제주국제자유도시

문화-레저형

(출처: 한국경제신문 2004.10.7 A37면)

 


이러한 전경련의 주장과 건교부의 특별법안이 발표되자 노동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 법안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도시 토지수용권 문제이다. 건설교통부의 특별법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대상 토지의 50%를 협의매수할 시 나머지 50%의 토지에 대한 강제수용권한을 기업에게 준다. 전경련은 아전인수격으로 100% 토지수용권을 기업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평소 시장자유주의를 내세워 온 전경련이 엄연히 사유재산인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기업에게 부과하는 것은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등이 토지를 수용할 때도 공공적 목적에만 국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토지수용권의 기업 이전은 명백하게 헌법에 위반된다. 이에 손호철 교수는 ‘재벌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면서 냉소에 찬 비판을 가하고 있다.

둘째, 개발이익 환수 문제이다. 정부의 안에는 기업도시 조성과정에서 70%의 개발이익을 환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개발이익을 따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정부의 안대로 하자면 개발이익은 전체 개발이익의 70%가 아니라 15% 정도에 불과하다. 건교부는 준공과 완공 두차례에 걸쳐 개발이익을 산정하고 환수할 방침이고, 기업의 직접사용 토지분에 대해서는 예외로 했다.

전경련은 이를 개발이익 환수율을 명문화하지 말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간 협의를 통해서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황과 지역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자체와 기업간 관계는 대등한 협의가 불가능하다. 지자체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 경쟁에 돌입한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전경련은 꿰뚫고 있다.

셋째, 출자총액제도 예외 인정 문제이다. 정부의 안에는 사회간접자본 투자 금액에 대한 출자총액 제한 제외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출자총액제한제를 풀지 않으면 기업의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벌을 그나마 최소한으로 규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를 기업도시법안에서 예외로 규정할 경우 앞으로 재벌의 각종 규제 폐지요구를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넷째, 기업의 학교와 병원 설립 허용 문제이다. 경제자유구역에서의 허용 문제와 마찬가지로 병원 및 학교를 영리법인화할 경우 보건과 교육체계는 심각한 혼란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비의 대폭 인상과 불평등한 교육, 공교육의 사유화로 인한 공공성 훼손이 우려된다.

다섯째, 건교부안에는 각종 세제혜택이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수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위의 사항과 마찬가지로 재벌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기업도시 특별법은 재벌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여섯째, 환경 파괴의 문제이다. 애초 전경련은 주택가격 안정을 내세우면서 기업도시를 제의했지만, 이는 고양이가 생선의 안위를 걱정하는 꼴이다. 기업 도시 유형 중 관광레저 도시개발에 기업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상황에서 전국토의 위락시설화, 카지노화가 우려된다. 이게 과연 산업의 혁신과 성장동력 창출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일곱째, 건교부는 노동권 규제완화는 빠져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비정규직 법안을 통해 파견제 확대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어불성설이다.

조명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전경련의 기업도시법안을 비판한다. 첫째, 기업의 독점적 지배가 관철되는 도시란 새로운 산업패러다임과도 맞지 않고 지방민주주의 정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해외 기업도시 사례에 대한 전경련의 벤치마킹은 잘못되었거나 기만적으로 제시되었다. 조명래 교수에 따르면 신산업공간의 성공요인은 지자체-주민-기업간 협력 네트웍을 구축하는 데 있지, 법적용의 예외를 통한 개발이익에 있지 않다. 이는 정경유착을 통한 자본의 치외법권적 공간에 불과하다. 셋째, 전경련이 내세우는 기업도시의 공익성은 허구다. 사익의 합이 전체의 공익과 같지 않다. 넷째, 법규의 예외적용은 공동체성을 훼손한다. 다섯째 토지수용의 문제의 경우 자본주의의 근본원리인 사적소유제를 자본 스스로 부정한다. 여섯째,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고권(計劃固權)의 포기이다.

가장 우려되는 바는 전국에 걸쳐 부동산 투기가 과열되고, 전국토가 개발의 열기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기업도시법은 사실상 재벌기업이 관철한 부동산투기법과도 같다. 또한,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특별법 등 재계의 요구가 점차 관철되면서 예외법규로 인해 노동법, 교육법, 제반 관련 법규들을 통한 재벌 기업들의 규제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상황이다. 예외법규의 탈예외화는 정상법규의 예외화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전면적 친자본법의 완성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동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은 너무나도 친재벌적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부가 정부이기를 포기하고 투기장을 전면화시키는 경제 망치는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비생산적 투기와 투자를 생산적 투자로 이끌어야 할 노무현 정부의 경제팀은 전경련의 ‘심부름센터’가 되고 있고, 지자체들은 머슴이 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회수하자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법, FTA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공간재구조화와 신제도 등은 계급간, 계급내부 격차와 더불어(연결하여) 지역간 불균형의 심화와 자본 힘 관철의 심화를 낳고 있다. 앞으로도 문화관광부의 관광레저복합단지법(골프장, 카지노, 기업도시법과 연동)도 예정되어 있고 혁신도시 건설도 닥칠 것이다.

노동자, 민중 진영은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법에 대해서 적극적인 무력화 투쟁에 나서야 하고, 기업도시법의 국회 처리를 저지해야 할 임무가 놓여져 있다. 또한, 기꺼이 자본의 머슴으로 굴종하려는 지자체에 대해 지역 내 노동자, 민중의 적극적인 참여와 견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공간 재구조화로 인해 피해보는 광범위한 부문, 계급, 계층과 연대하여 저지투쟁에 나서고, 민중적, 진보적 지역 재구조화에 대한 대안을 시급히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협소한 지역차원의 대응이 아니라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벨트 전체에 대한 비판적, 총체적 시각을 가지고 지역 노동, 민중 간 상호 협조와 소통 속에서 마련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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