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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5.1월 - 이천년대 제국의 모자이크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지은이: 김동춘
제목: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가격: 13000원
출간일: 2004년 11월
출판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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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5년 1월호 통권 127호
http://www.ynlabor.co.kr

이천년대 제국의 모자이크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최근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미국의 문명과 그에 대한 비판조의 저서들이 봇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번역된 외국 저서들도 많지만 국내의 미국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여럿이 끼어 있을 정도로 미국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하루를 넘기기가 무섭게 증폭되고 있다. 노엄 촘스키의 《불량국가》,《숙명의 트라이앵글》외에도《키신저 재판》,《네오콘 Neo-Con》,《불쌍한 백인들》이 최대의 출판 불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판매부수를 올릴 수 있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좀 더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분석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지난《연대와실천》2004년 7월호에도 소개된 바 있던 이매뉴얼 월러스틴의《미국 패권의 몰락》외에, 전세계 동시출판, 동시대박을 일으킨 네그리․하트의《제국》, 토드의《제국의 몰락》, 찰머스 존슨의《제국의 슬픔》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알다시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되었고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국회의 연장안 처리의 과정이 진행되었으며, 이 속에서 한국의 모든 개인과 세력들은 싫든 좋든 자신의 입장을 어떤 논리 하에서든 정리해야만 했다. 참고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도서들과 학문적인 도서 사이, 압도적 다수인 미국 국적의 저자들과 한국 도서 소비자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소개하려는 김동춘 교수의《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창비, 2004.11)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간취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책이 될 듯싶다.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를 모아 놓은 저널리즘적인 책들은 재미는 있으나 미국과 미국 패권 속에 돌아가는 세계의 핵심 동력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반대로 학문적인 책들은 분과 학문적 그리고 이론적 관점은 물론이거니와 사전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만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관심, 미국과 관련한 서적들의 ‘수요’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 특히 격동의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지나고 있는 이 시점의 미국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운동권의 한 정파로 존재하는 ‘낡은 시각’, 소위 민족해방파 또는 NL의 관점으로는 세계의 중심이자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정치, 군사적 시각으로 한정된, 그것도 좁은 한반도로 한정된 시각, 주의주의적이고 감정적인 시각으로는 미래의 변화 동력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잘 알다시피 김동춘 선생은 노동운동과 분단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진정성 있는 학자이다. 학문적으로 많은 중요한 저서들을 출간한 바 있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학술운동에서 꽤 중요한 발언들을 해 온 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성격은 김동춘 선생이 이전에 출간한 학문적인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김동춘 선생도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선생은 미국 전문가도 아니고, 이론적 해명보다는 시사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그리고 비판적 시각에서 미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집필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2004년의 학문적 성과 10대 도서로 선정을 한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하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이 책은 연구소《연대와실천》에 소개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선생이 연구년을 이용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 책은 전쟁 중인 나라에 대한 참여관찰의 결과로서 나온 책이다. 각주의 대부분은 미국 언론의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소득도 낮을뿐더러 비영어권 국가인 것은 물론, ‘악의축’과 같은 악마의 피가 흐르는 불량국민이기 때문에 미국에 갈 수 있는 비자조차 얻을 수 없는 이 땅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미국 보수언론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고, 세계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알 턱이 없다. 미국 언론들 역시 자국민들에게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만을 공급하는데 수억 만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오죽하랴. 따라서《연대와실천》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라크전쟁으로 시작한다. 냉전이 끝난 곳에서 군수자본, 금융자본, 석유자본, 신보수주의 정치가들의 이해에 따라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가상의 적, 허깨비 적을 만들어 놓았다. 9.11은 사그러들던 군수자본과 전쟁분위기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웠다. 중동전체에 대한 독점적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 직접 이라크로 건너가 막대한 이윤의 유전에 빨대를 꽂으려는 충동, 한 놈만 열나게 패서 세계를 줄 세우려는 조폭적 의지가 합쳐진 전쟁이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은 20세기 미국 역사에서는 거의 항구적인 상태에 있었다. 전쟁은 평화상태의 짧은 예외가 아니라 반대로 평화는 전쟁상태의 짧은 예외 기간일 뿐이었다. 미국은 냉전 체제하에서도 끊임없이 저강도 전쟁, 작은 전쟁을 벌여 왔다. 작은 나라들은 미국의 밥이었다. 사실은 세계의 많은 국가에 미군이 주둔해 있고, 따라서 미국민들의 안전은 당연히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다. 착한 흥부 미국은 놀부한테 뺨을 내밀고 제발 주걱으로 때려달라고 한다. 마지못해 놀부가 뺨을 살짝 건들면 선한 흥부 미국은 순간 람보가 되고, 코만도가 되고, 터미네이터가 된다. 폭탄을 퍼붓고 총질을 가하는 동안 금고엔 자본이 쌓여 가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을 조폭으로 이끄는 충동은 바로 군-산-정 복합체에서 시작된다. 냉전 이후 수요가 떨어져야 마땅한 미국 군수자본들은 전쟁을 의도적으로 부추긴다. 덩달아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적 가치, (가짜) 자유, 기독교적 가치를 수출한다는 명목으로, 야만적인 세계를 문명화한다는 명목으로 침략을 합리화한다. 세계 군비지출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에 36%로 5년 전보다 5%나 증가했다.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것이었지만 세계 무기시장에서 판매되는 거의 대부분의 무기들은 미국 군수산업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란과 이라크 전쟁 당시 둘은 서로 미국제 무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기도 했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국 내 공공성은 실종되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자국의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침략전쟁을 일삼는 전쟁광, 자본가 대통령 부시를 왜 미국의 국민들은 재선시켜 주는가? 미국민들은 무엇보다도 정치선전을 일삼는 상업미디어에 포위되어 있다. 90년대 들어 대규모 기업간 M&A는 미디어, 문화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 미디어자본들은 광고주들인 거대 산업자본,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시작되면 진실은 죽어버린다. 그리곤 거짓말들이 세상을 채운다. 그리고는 세계의 중심엔 미국이 있다고 믿는다. 중심부 밖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이스라엘 국민이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 숨지면 90%가 방송되지만, 팔레스타인 국민이 숨지면 겨우 5%만 방송될까 말까 한다. 미국민 중 20%만이 외국 여행을 했다. 미국민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선택된 백성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일까?

더욱 심각한 것은 평온해 보이는 미국 내에서도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서 노동자에 대한 계급전쟁이다. 당연히 승리자는 자본이고, 패배자는 노동자, 특히 비백인인 흑인과 히스패닉계 노동자들, 빈곤 여성들, 동성연애자 등 소수자들이다. 시장은 패배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지도 않는다. 전태일의 청계천 공장이 뉴욕의 스카이라인과 공존하는 나라,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굶어죽는 국민들이 즐비하고 이를 방치하는 정부가 호령하는 나라 그곳이 바로 미국이다. 정부를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던 매카시즘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부시의 친자본정책과 전쟁에 비판적이면 ‘반역자’로 몬다. 미국은 절대로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사상의 자유는 억압되고, 계급적, 인종적, 성적 차별, 아니 차별보다 심한 분리와 폭압이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포로들을 국제법이든 국내법이든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 안에 기약 없이 가둬두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법치국가는 사전에만 존재한다. 로렌스 브릿에 의하면 히틀러, 무쏠리니, 프랑코 체제 등을 종합하면 14가지의 파시즘의 특징들을 조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미국 사회는 현재 11가지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꿈은 헐리우드에만 존재한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 분석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미국의 패권, 헤게모니는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 경제적 위기, 지도력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은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유일한 라이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의 많은 세계시민들은 미국을 우려하며 심지어 미국을 증오한다. 지배의 핵심은 힘과 동의라고 했던가?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제국에 걸맞지 않은 미국의 오만한 지도력은 점점 더 많은 적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땅에서 미국의 표준이 아니라 우리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을 아는 것은 세계자본주의를 아는 것이며, 바꿔 말하면 한국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거울을 통해서 우리의 등을 들여다보는 것,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냉전과 미국의 패권 속에 놓여 있던 한국 땅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는 것, 이것이 김동춘 선생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조각조각 흩어진 미국의 단면들을 모아 하나의 모자이크로 만들었다. 비록 추한 모자이크 작품이긴 하지만 한번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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