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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5.7월《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Hyundaism의 가능성 모색

리뷰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5년 7월호 133호


http://www.ynlabor.net

《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Hyundaism의 가능성 모색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개인적으로 나는 ‘한울 출판사’를 아주 싫어한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잘 팔리지 않는 도서들을 발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지타산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지만 풍족한 재력을 지니지 못한 나로서는 기분이 나쁘다. 게다가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에 비해 품도 별로 팔지 않는 것 같아 비싼 가격에 비해 디자인도 단순하기 그지 없다. 인문사회과학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이 출판사에 고운 시선이 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한울 도서들을 정기적으로 체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은 사회과학 도서들이 어쩔 수 없이(?) 이 출판사에서 발간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을 발견했다. 조형제 교수는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인데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자동차산업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동차산업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거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순간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한국 최대의 수출품인 자동차, 한국 최대 단위노조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인정을 하든 안 하든, 하고 싶든, 안 하고 싶든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단위인 현대자동차에 올인하기로 했다.


낭패다.
되도록 쉬운 책, 되도록 읽기 편한 책을 고르려고 했으나 운명은 그렇게 정해졌나보다. 책을 받아 드니 재생지를 써서 그런지 부피에 비해 아주 가볍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조형제 교수가 《경제와사회》, 《산업노동연구》, 《한국사회학》 등에 실었던 본인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논문 모음집이라니!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생소한 용어들 하며 논문 특유의 딱딱한 틀거리를 따라가려니 안 그래도 일상에 머리가 아픈데 고문이 따로 없다. 그래도 여러 사람이 쓴 글을 엮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조형제 교수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새롭게 성공의 신화를 쓰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포드나 도요타와 구분되는 의미에서 자동차산업의 또 다른 최고의 관행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생산방식과 작업조직

조형제 교수에 의하면 현대자동차는 생산기술의 유연성은 높아지고 있으나 이에 상응하는 작업조직의 유연성이 높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편으론 현대자동차 회사측이 유연자동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의 역할이 낮아진다고 보는 시스템합리화론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립적 노사관계로 인해 노동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높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동화에 기반한 생산기술의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도요타 미야타 공장과의 비교를 해보면 현대 아산 공장은 미야타 공장을 벤치마킹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체계와 임금체계의 한계로 인해 작업자들의 창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현대 에쿠스 공장은 자기완결형 직렬 라인을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볼보의 우데발라 공장과 같은 셀 생산방식은 도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에쿠스 모델이 주력 모델도 아니었고, 고급 노동력 확보가 어렵지도 않았으며(노동시장적 요소)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압력도 없었다. 또한 투자부담 및 생산관리 기술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었다.

인적자원관리와 노사관계

현대자동차는 보다 유연한 생산방식을 추구하지만 그에 걸맞는 인적자원관리 방식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립적 노사관계 때문이다. 노사간 불신은 회사 측의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만든다. 직능자격제도의 도입을 노동자 단결 와해의 우려 때문에 노동조합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98년 정리해고 투쟁 이후 최고경영진의 교체와 연이은 99년의 호황으로 인해 필요성 역시 감소하면서 숙련형성을 위한 제도 개편보다는 의식교육에 치중하게 된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업지배구조가 변화하게 되고 주식시장의 단기적 평가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경제시스템 속에서 숙련형성을 위한 교육훈련의 가능성은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조형제 교수의 예측이다.


80-9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중요한 축이었던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비교해 보자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생산합리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현장 통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반면, 현대중공업의 경우 그렇지 못함으로써 현장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의 기술적 특성 등의 구조적 요인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보다는 당사자의 행위 양식의 차이로 인한 귀결이라는게 조형제 교수의 판단이다. 하지만 자동차 노동운동이 작업장 참여를 외면하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고 있다.


부품산업과 산업구조조정

모듈화가 진전되면서 대규모 모듈 부품업체들을 중심으로 부품공급시스템이 변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업체들의 적기조달 시스템에(JIT)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비용절감 압력은 부품업체들의 기술개발 및 임금지불 능력을 고갈시킨다. 결국은 수평적 협력은 약화되고 수직적 위계가 급속하게 강화되고 있다.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분리된 현대자동차는 시장 독점자로서 부품업체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과제

조형제 교수가 제시하는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숙련의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동과정에 참여하는 작업조직을 실현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들의 숙련을 향상시키고 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훈련 제도를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립적 노사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쉬운 사안, 예컨대 교육훈련 투자와 같은 부분부터 협력해 나가야 한다.
넷째, 부품업체와의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다섯째, 현대자동차의 경영능력 혁신이 요구된다.

조형제 교수는 현대자동차와 관련하여 세 가지 비교 연구(미야타 공장, 우데발라 공장, 현대중공업), 그리고 숙련형성과 교육훈련제도, 노사관계, 생산합리화에 대한 노조의 대응, 부품공급시스템, 산업구조조정 등 산업연구 측면에서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다.


사실 조형제 교수는 자동차 분야 뿐만 아니라 관련지어 산업도시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산업도시의 재구조화와 거버넌스 :피츠버그와 디트로이트의 비교>(국토연구 2004 제43권), <울산 지역 노사관계의 현황과 과제 :지역노사정협의회의 가능성 탐색>(울산발전 통권 제6호 2004. 여름), <울산의 지역경제와 노사관계>(울산발전 통권 제2호 2003.4), <지역경제의 혁신 모델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관계를 중심으로>(경제와사회 통권57호 2003), <울산 지역의 산업구조조정과 테크노파크 건설>(울산대 사회과학논집 10,1. 2000년8월) 등이 그것이다.

사실 운동권의 ‘한 이론 하는’ 교수들은 너무(?) 많지만 지역에 천착하면서 지역 노동운동(혹은 자동차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연구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울산의 활동가들은 관점의 차이를 떠나 조형제 교수의 글을 무리를 해서라도 읽어볼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능하다면 많은 동지들과 함께 형식을 갖춰 읽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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