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여직원과 시민단체 여성 활동가에 대한 잇단 성추행으로 이형모 씨가 지난 9월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직을 자진사퇴한 뒤, 3개월 여 동안 경영공백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의 신문>이 더 깊은 파행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시민의신문 분회(분회장 이준희)가 이 전 대표의 사퇴 뒤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사회를 독려해 겨우 언론계와 시민사회 인사를 중심으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고, 사추위가 지난 11월 23일 남영진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사장 내정자로 확정했지만, 12월 14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40%의 지분을 확보한 이 전 대표가 나타나 “남영진 대표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이 전 대표는 자신을 포함해 11명의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은 지분 40%를 내세워 “본인이 데려 온 대리인을 통해 임시 운영한 뒤 3월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새 대표이사를 선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법테두리 내에서는 사실상 손써 볼 도리가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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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시민의 신문> 주주총회에서 이형모 전 사장이 이준희 노조위원장의 옷깃을 움켜잡고 있다. (사진제공=시민의신문) |
따라서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표방하고 있는 <시민의 신문> 정상화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중재와 정체성 확립 등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겉으로는 '시민단체 공동신문', 실상은 '이형모 1인지배 신문' <시민의 신문>은 그 동안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자임하며 지면을 통해 시민사회의 다양한 활동과 주장이 소통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해왔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형모 1인 지배 신문’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시민의 신문>의 현 주소가 극명히 드러난 것이 바로 주총장에서의 파행. 파렴치한 행위로 도덕적 지탄을 받으며 물러났던 이 전 대표가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해 낯 뜨거울 정도의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구조가 바로 <시민의 신문>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외형적으로 ‘시민단체 공동’의 성격이 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형모 전 대표가 전권을 휘둘러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식회사로서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고 각 시민단체의 이름 있는 대표자들이 이사로 참가하고 있지만 성추행 파문 이전에 이사회는 사실상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희 시민의신문 노조위원장은 “1년에 한, 두 번 예결산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역할 정도를 했다”고 밝혔다. 성추행 파문 이후에도 이사회가 이 전 대표를 감싸는 등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시민의신문 노조는 주장한다.
아울러 <시민의 신문>에는 고문이나 편집위원 등으로 상당수 명망있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 또한 <시민의 신문>이 ‘시민단체 공동신문’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형식적인 요소가 강할 뿐 <시민의 신문>의 실질적인 운영에 별다른 영향을 주거나 간여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체불임금, 각종 체불공과금, 직원 차입금, 미지급금 등 최대 6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시민의 신문>은, ‘시민의 신문 비상경영위원회’가 의뢰한 경영 컨설턴트의 설명에 따르면 ‘거의 부도 상황’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고 외에는 별다른 수입구조가 없는 <시민의 신문>은 심각한 경영난 속에서 그나마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인맥 등을 동원해 광고를 수주해오면서 외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고 오히려 ‘시민의 신문이 저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건 이형모 사장의 경영능력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 전 대표 또한 주총장에서 자산이 부채보다 많음을 칠판에 적어가면서까지 설명하고 ‘내 재임 동안 1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고 주장할 정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시민의 신문> 직원들은 ‘사실왜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시민의 신문>의 주거래통장은 주총 파행 직후 압류되었고 임금 또한 석 달째 체불된 상태다. 그 정도로 경영이 심각한 위기 상태에 봉착해 있지만, 이 전 대표는 <시민의 신문> 사장을 역임하는 동안 ‘시민단체 공동신문 발행인’으로서 각종 명예는 물론 엄청난 금전적 혜택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은 임금체불, "사장은 사회적 명예와 금전적 혜택 누려" 현재 이형모 씨는 (사)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회장, (재)한국녹색문화재단 이사장, SBS문화재단 이사, (재)포스코청암재단 감사 등을 포함해 스무 곳 이상의 단체나 재단의 주요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를 하면서 얻은 직책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단체나 재단의 주요직책을 맡는 동안 상당한 금액의 연봉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2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형모 씨가 “지난 해 2억 1천여 만 원의 근로소득을 신고했다”며 “시민의신문으로부터 1억 1천 5백여 만 원,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에서 6천여 만 원, 녹색문화재단으로부터 3천 6백만 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민의 신문> 직원들이 임금체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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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시민의 신문> 주총장. 미소를 띤 이형모 전 사장과 사추위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된 남영진 사장 내정자의 괴로운 모습이 대비된다 (사진제공=시민의신문) |
언론노조는 “결과적으로 시민운동과 시민의신문은 이형모 전 사장의 명예와 금전적 이득에 막대한 기여를 한 셈”이라며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십 만 원의 활동비로 헌신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은 뭐란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문제는 40%의 지분으로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형모 전 대표가 버티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방안을 찾느냐는 것.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상황을 더 큰 파국으로 몰고 가는 <시민의 신문> 이사회 12월 20일 오전 열린 <시민의 신문> 이사회는 주총이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남영진 대표이사 승인이 무산된 것을 ‘대표이사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고,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새로운 임시 대표이사를 선임하여 내년 3월 주주총회 때까지 운영한 뒤, 3월 주총에서 정식 대표이사를 선임한다는 계획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이사회의 결정은 사실상 이형모 전 대표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
이와 관련해 <시민의 신문> 이준희 노조위원장은 “이형모와 시민사회단체 명망가들이 시민의신문 언론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쫓으려 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사태 해결 전망을 찾을 수 없다고 절망을 토로했다. 사실상 ‘<시민의 신문>이 망했다’고 보는 것.
<시민의 신문> 사장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던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처장 또한 “도덕성을 강조해왔던 시민단체 명망가들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 충격적이다”며 “<시민의 신문>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민사회의 정론지’를 자임했던 <시민의 신문>의 역할을 수용하고 인정해왔던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시민의 신문> 노조는 시민사회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형모 전 대표에 대한 공분을 모아주길 바라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나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을 여기자 성추행으로 검찰에 고발했듯,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 이형모 전 사장을 사법처리시킬 수 있도록 의지와 힘을 모아달라는 것이다.
언론노조 또한 “그동안 조용한 해결을 바라며 지켜만 봐왔던 (시민사회단체의)소극적 자세가 사태를 키웠다”며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이라도 시민사회 진영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사태 해결은 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유진 사무처장은 “<시민의 신문>이 ‘시민단체 공동신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에 걸맞는 조직 운영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의 근본적인 논의와 해법모색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파행으로 치닫는 <시민의 신문> 사태. 이 상태로 간다면 결국 <시민의 신문>은 문 닫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이제 <시민의 신문>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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