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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0:12
반기문을 통해서 본 우리의 모습
우석훈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으면 하는 정도이다. 삼족오 인장의 경우는 언제든지 터져나올 수 있는 폭탄같은 경우인데,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당장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는 문제라서, 같은 인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신중했던 처사는 아니다. 뒤집으면 만약 일본의 어느 고위인사가 UN 사무총장이 되었는데, 일황의 상징이나 임나 어쩌구 하면서 급조한 상징을 들고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도 잘 참지 않을 것이다. 이런 건 UN의 정신에 어긋난다.
1. UN의 특수성
UN이라는 조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높은 월급을 받거나 큰 힘을 쓰는 곳은 아니다. WTO가 출범한 이후에 더 영향력이 작아졌고, 예전부터도 IMF나 세계은행 같은 곳들이 실제로 UN보다 더 권한이 많고, 유럽계와 미국계에서는 WTO를 UN의 상위기구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국제 기구들 사이에는 “사전에 결정된 위계(pre-established hierarchy)”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UN 입장으로 보면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현실이고, 그러다보니까 경제기구보다는 UNEP나 UNDP 그리고 UNESCO 같은 문화와 인권 혹은 환경 문제 같은데 더 집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consensus라는 특별한 장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의사결정 장치의 특징상 소수국에 대한 배려가 생각보다 많다.
그러다 보니까 UN 사무국 직원의 정서라는 것이 있고, 또 나름대로 그런 조직 문화가 UN 내에서 생겨났다. 개혁에 대한 열망도 있고, 나이 많은 UN 관료들에 대한 염증같은 것도 젊은 직원들은 종종 느낀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비율 같은 것들도 상당히 신경쓰기 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 일방주의가 잘 움직이지 않는 특수한 곳이다. 미국은 이것을 UN의 비효율성이라고 하고, 시간보다 한 시간씩 늦게 움직이는 회의 때문에 UN time이라는 농담도 있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소수자에 대한 배려같은 것들이 UN에는 존재한다.
2.
반기문 총장이 첫 발언은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해서 지지하는 말이었고, 이 때문에 세계가 잠깐 뒤집어졌다. 반기문 입장으로 보면 미국 언론에서 오히려 더 심각하게 이 문제를 지적해서 억울하기는 할 것 같다.
나는 이 발언 자체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UN은 UN의 입장이 있고, 사무총장도 개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더 들어가보면, 실제로 사형을 금지하고 사형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호주 같은 국가가 전쟁에 대한 범죄 즉 “반인륜적 범죄”라는 이유를 들어서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해서 환영 논평을 내기도 하였다. 단순하게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만 들어서 이 사건을 볼 일은 아니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3.
원래 UN 사무총장이 그렇게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물론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캐스팅 보트와 유사한 막후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하면 또 그렇기는 한데, 그래봐야 사무국일 뿐이다. 사무국은 회의를 보조하는 역할이고, 회의마다 전부 별도로 선출되는 의장이 있고, 또 지역별 회의와 함께 여러 가지 장치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UN이라는 국가가 있고 그 국가의 대통령이 사무총장이다...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기구는 아니다.
지금과 같이 UN 사무총장의 입을 전세계가 주목하게 된 것은 코피아난 때 생긴 일이다. 이 매력적인 사무총장을 아마 전세계인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정말 멋졌었고, 그래서 사실 따져보자면 사무총장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코피아난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좋아하지 않았고, IMF와 WTO 체계가 거의 독재하다시피 만들어내는 세계화 국면에서 그야말로 전세계인들의 마음을 진무해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코피아난을 사랑했다.
반기문의 불행은 그가 코피아난의 후임자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 이전의 평범한 시절이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드골이 미국에 대항하는 제3세계 동맹을 외치던 시절에는 세상이 드골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고, 한동안 교황을 쳐다보는 시기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임기마다 바뀌는 UN 사무총장이 누군지 세계인들은 신경도 안 썼다.
그러나 코피아난이 사무총장이 되면서 그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의 뒷자리에 들어온 반기문과 코피아난은 너무 다른 사람이고, 세계관도 너무 다르다.
지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반기문은 “코피아난과 다르다”이다. 그가 말한 후세인 처형건은 그래서 뉴스가 된 것이다. 다른데 어떻게 달라? 음, 과연 다르군.
워낙 사람들이 코피아난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반기문이 하는 말들은 한동안 뉴스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다른 걸 어떻게 할 것인가?
정상적인 업무를 시작하면 UN의 스탭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반기문이 만들어내게 될 스캔들을 상당히 줄여줄 것이고, 그도 조금씩 UN 내부의 선택과 규칙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는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간간히 터져나오는 불협화음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4.
진짜 문제는 UN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게 된다. UN 사무총장에 대한 탄핵이나 그런 일은 벌어질 일이 없고, 또 언제부터 UN이 그렇게 효율적인 조직이었다고 일사분란한 군대처럼 사무총장에서 P1급 실무자들까지 하나의 생각을 가질 수 있나? UN은 그런 조직 아니다. 좋은 총장이 와도 돌아가고, 그렇지 않은 총장이 와도 조직은 돌아간다. 그런게 UN이다. 설령 미국의 매파가 총장 자리에 와서 전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조직 전환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조직은 원래 그렇다.
우리나라의 외교관을 포함해서 공무원 엘리트들은 국제 기준을 적용하면 상당한 극우파들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을 기준으로 좌우가 나뉘고 박정희를 기준으로 또 다른 입장이 나뉘는 경향이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소수자, 환경, 인권 혹은 문화 다양성과 같은 조금 더 세밀한 기준으로 정치적 입장이 나뉘어지고, 이런 기준들에 의하면 우리나라 엘리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건전한 보수”가 아니라 “극우파”에 가깝다.
10년 전부터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politically correct”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의 사회적 특징이 있겠지만 낙태와 줄기세포 같은 얘기들이 복잡하게 얽힌다. 공지영이 며칠 전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잠깐 밝혔듯이 미국에서의 기준을 들이대면 공지영도 상당한 보수주의자이다. 본인도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했다고 밝혔던 걸 보면서 나도 상당히 긴 시간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politically correct하면 좌파이냐? 그런 건 아니다. 네오콘의 극우파들도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 같은 것인데, 대체적으로 우파에서 중도좌파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 기준으로 하면 반기문만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많은 엘리트 장관들도 복합적인 정치적 기준으로는 극우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5.
원래도 극우파인 반기문이 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것은 그가 했던 ‘작은 국내 정치’는 더 극우파 코드, 그리고 더 민족주의 코드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그거야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판단이지만, 국제기준보다 더 신중한 UN의 기준을 들이대면 좀 상식 밖의 일이다. 인종주의, 민족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보편주의의 가치 위에서 움직이는 곳이 UN인데, 여기에 지역 패권주의와 미국 중심사고를 가지고 들어갔으니 앞으로 문제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한국의 위신과 관련되어 있다거나 혹은 국가를 대표한다고 과장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반기문은 반기문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어느 나라에나 극우파 인사는 있고, 또 보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공무원은 존재한다. 그걸 국가와 직접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UN 상식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걸 더 극우파 분위기로 몰아갈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기문에 대한 음모? 혹은 한국에 대한 음해? 그런 건 없다. 다만 국제적인 정치적 기준에서 극우파 인사가 UN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국제사회가 조금 더 익숙해지고, 이 변화를 이해하게 될 뿐이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평균적 한국”이 얼마나 극우파적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사건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이 아니었다면 홍석현이 갈 자리였다. 물론 100% 한국 사람이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별 순환과 아시아의 몇 가지 상황을 놓고 보면 한국이 사무총장을 하게 될 개연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래서 홍석현이 그 자리를 탐냈던 것이고, 노무현 정부 초기에 삼성과 중앙일보 그리고 정부 사이에 약간의 밀월 관계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정부가 지지하지 않으면 정부 대표로 UN 사무총장 자리에 출사표를 던질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석현이 총장이 되었다면 반기문 보다는 훨씬 조용하게 일처리를 했을 것이다. 정몽준과 비교하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현재 반기문이 보여주는 행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홍석현이 삼성이 UN을 끼고 돌면서 생난리치는 것보다는 사태가 훨씬 조용하게 전개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6. 다시 삼족오 질문
반기문 사무총장이 자신의 인장으로 삼족오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러나 상당히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릴 일이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
문제는 이 삼족오 인장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그런 일도 있군” 혹은 “삼족오가 뭐야?”라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 것 같은데, 마치 10년 전부터 삼족오가 복권되거나 휘장으로 날리는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던 것처럼 기쁘다면 뭔가 자신이 스스로 한 번 돌이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뒤돌아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이 삼족오라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자신에게는 무슨 의미일까? 중국도 역사 왜곡인데, 우리가 긍지를 좀 가지면 안 되나?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데, 국제 기준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한다.
일제 때 좌파가 있었고, 민족주의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서로 힘을 합치자는 것을 ‘좌우 합작’이라고 불렀다. 우파에도 극우와 보통 우파가 있는데, 요즘은 시장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우파라고 부르고, 여기에 민족주의가 결합된 것을 극우파라고 부른다. 클린턴주의가 끼면 조금 더 어려워진다. 클린턴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대신에 국제적인 패권주의를 반대했다. 그게 민주당식 우파 혹은 경우에 따라서 민주당식 중도좌파라고 부른다.
반기문이 사용한 삼족오 인장은 사실은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물론 그는 당연히 많은 한국인들이 그 사실에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줄 알았고, 그래서 그 인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를 극우파라고 부르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부르는 것이다.
프랑스가 사용하는 인장과 상징들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자유, 평등, 박애... 그렇다면 삼족오의 가치는 무엇인가? 홍익인간? 지금 삼족오가 의미하는 바는 순수하게 패권주의 아닌가?
만약 다른 가치가 있다면 삼족오와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으로서 삼족오 인장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다르게 평가하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삼족오는 ‘고구려’라는 것 외에 무엇을 상징할까? 게다가 삼족오가 정말로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상징이었을까?
UN 사무국의 직원들과 국제 사회는 조금씩 반기문의 정치적 identity에 대해서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해갈 것이다. 정작 남은 것은 한국인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극우파이면 안돼? 물론 안 될 것 없다. 그것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고, 정체성이고, 그건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국의 강철대오”가 위험한 것처럼 “극우의 강철대오”도 전횡하게 되면 위험해진다.
삼족오를 미학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가? 물론 순수하게 아름다움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삼족오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정치적 성향과 내 안의 것들에 대한 질문과 같은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우석훈 / 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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