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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을 보며
김 정 호 / 사) 미래를 준비하는 노동사회교육원 소장
어수선한 세밑이다. 비정규악법과 로드맵 국회 통과의 쓰라린 기억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민주노총은 나름대로 총파업으로 저항했지만, 그 힘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더구나 지난 12월22일 로드맵이 국회를 통과할 때는 이렇다 할 투쟁도 조직하지 못하고 울분만 삭이면서 지켜보아야 했다. 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하중근 열사 투쟁’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 노동운동의 기억 중 가장 가슴 뿌듯한 것으로는 금속산별노조의 출범을 중심축으로 공공, 운수 부문 등에서 산별노조 시대가 활짝 열린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금속산별노조의 출범으로 금속연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금속연맹의 해산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발전적 해산이라는 점에서 ‘아픈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알려진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1994년에 문을 연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이하 연구소)는 그동안 기업별노조 체제의 극복과 산별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다.
연구소가 발간한 산별노조와 관련된 각종 자료와 책자는 산별노조운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 노동운동의 척박한 토양 속에서 금속산별노조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연구소가 발간한 『산별노조 100문 100답』은 많은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이 산별노조의 교과서로 활용했다. 내 경우에도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에서 교육 선전 일을 하면서 연구소의 연구 성과물들을 엄청나게 ‘도용’해서 써먹었다. 외국의 산별노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요즘 고려대 이필상 교수의 논문 표절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내가 연구소의 자료들을 우려먹은 것과 견주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나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도둑질’을 하면서도 “배워서 남 주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당당’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 도둑질해 가라”는 것이 연구소가 바람이었으니까. 김석준 이사장이 말했듯이 영남노동운동연구소는 하도 ‘산별노조’를 부르짖는 바람에 ‘산별 만능주의자’로 딱지가 붙여지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딱지가 아닌 듯하다. 되레 연구소의 활동에 대한 ‘찬사’로 후대에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소는 해산의 주요 배경으로 현장활동가들의 참여가 갈수록 떨어지고 연구 역량을 재생산하는 것이 어렵게 된 점을 들고 있다. 두 가지 중에서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장활동가들의 결합력 저하와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연구소의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노동조합운동의 풍토에서 비롯된 탓이 크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조운동이 90년대 후반 제도권으로 들어간 이후 상당한 수준으로 ‘권력화’되면서 제도권 밖의 각종 연구소나 단체를 대상화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결합력이 더 떨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자신부터 그랬던 것 같다. 앞서 밝혔듯이 아무 거리낌 없이 연구소의 연구 성과물들을 도둑질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연구소의 본연의 기능이라고 생각했기에, 연구자들의 노력과 헌신에 대해서 별로 고마워할 줄 몰랐고, 그들의 남모르는 고충에 대해서도 헤아릴 줄 몰랐던 것이다. 과연 나만 그랬을까. 내가 보기엔 예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군’에 대해 ‘이용’만 할 줄 알고 있지, 함께 고민을 나누고 공동의 발전을 꾀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은 예전과 달리 그 덩치나 재정 규모에서 상당한 힘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 해 11월23일 역사적인 금속산별 완성대의원대회가 열리던 날, 대회장의 참관석 한켠에 앉아 있는 임영일 소장을 보았다. 단병호, 문성현, 이승필, 김창근, 심상정 …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의 전직 임원들이 사회자의 화려한 수사와 박수 속에서 인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남노동운동연구소에도 한 자리 쯤 마련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기분이 씁쓸했다.
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우리 노동운동에 ‘아래로부터의 연대, 내용 있는 연대’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각종 집회의 연대사로 대표되는 판에 박힌 공식적 연대, 폼 잡고 보여주기 위한 연대가 아니라 제도권 밖을 향해서도 활짝 열려 있는 활발하고 생동력 있는 의사소통과 연대가 복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소의 해산은 앞서 말한 두가지 상황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산별전환’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 속에서 본격적인 산별시대의 산적한 과제들에 답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모색하려는 몸짓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임영일 소장은『연대와 실천』종간호(2006년 12월호)에서 “노동문제 전문가들과 현장의 활동가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작업하고 활동하였던 역동적인 운동성을 지금의 조건에 맞게 다시 일구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민을 깊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고민을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현장에서도 나와야 할 것이다.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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