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의도 ‘스쾃(Squat)’이라는 말은 1835년 오스트리아의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먹이던 관습에서 유래되었는데, 산업혁명이후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잘 곳을 구하다 귀족 소유의 빈집에 사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유럽에선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하며, 도시의 공공 영역을 확대해 나가려는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심각한 공간의 소유 편중 상황을 맞은 우리나라에서 스퀏 운동이 공공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으로, 주거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행자부 발표에 따르면 인구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사유지의 51.5%를, 상위 5%가 82.7%를 소유하고 있는 가운데, 연소득대비 주택가격은 서울이 7.2배로 동경(5.6), 런던(4.7)보다도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가운데 노숙인, 노점상, 철거민 등 도시 빈민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여 ‘집’이 주거 목적이 아닌 재산증식 수단으로 왜곡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스쾃 운동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돈이 없으면 결코 한 뼘의 땅도 소유할 수 없는 2006년 대한민국에서 ‘스쾃’을 통해 도시의 ‘공간’과 ‘집’의 의미를 고민해본다.
1. 스쾃, 도시에 질문을 던지다 서울 목동 예술인 회관 등을 점거하면서 공공건물을 놀리지 말고 예술가와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외치는 김윤환 화가. 그가 벌이고 있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스쾃(Squat)' 운동의 일환이다. 남의 땅 또는 공유지에 무단으로 정착하거나, 불법으로 점유한다는 뜻을 지닌 스쾃. 한국의 또다른 스쾃은 ‘더불어 사는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 ’노숙인 빈집점거는 정당하다,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생존의 권리이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보장하라‘ 외치는 ’더불어 사는 집‘. '더불어 사는 집'은 철거가 예정되어있던 삼일아파트를 지난해 2004년 7월부터 점거해서 만들어진 노숙인들의 생산 공동체다. 아파트의 빈 공간을 점유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구청과의 마찰을 겪다가 결국 2005년 9월 삼일아파트 철거가 시작되자 새로운 보금자리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서울도시개발(SH)공사 소유의 다가구 주택의 빈집을 찾아 점유하게 되었다. 방치되고 버려진 공간을 보다 절실한 필요를 가진 사람이,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오히려 가치로운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 스쾃으로 부활하는 도시의 공공 공간 19세기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먹이던 관습에서 유래해, 산업혁명이후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잘 곳을 구하다 귀족 소유의 빈집에 사는 일을 가리키는 스쾃. 1980년대 초반이 되면서 예술적 색채를 띠더니, 1990년대엔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작업실로 쓰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점거 아틀리에>란 말로도 통하고 있다. 현재 파리 근교에만 서른 여 군데의 점거 아틀리에가 자리해 있는 가운데, <로베르의 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지면서, 점거 아틀리에의 모든 것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인근 주민들의 문화적 숨통을 틔워주고 삶의 여유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스쾃은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그곳이 버려지고 방치된 곳이든, 더 가치로운 곳으로 운용되든 상관없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유지의 공공화라는 접근 자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비어 있거나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살아 있는 공공 공간으로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예술가들은 우리 도시에 질문을 던진다. 건물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는 경제적인 가치를 창조하며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아닌가 하고.
3. 한 평 땅을 허락하지 않는 도시, 서울 계속되는 도시의 재개발 속에서 우리나라 대도시 땅값은 40여 년 만에 7백80배, 서울은 9백54배 올랐고, 대한민국 전체 땅값은 2300조에 이르러 한국을 팔면 캐나다 6번, 프랑스 7번 사고, 미국 절반을 산다는 계산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평에 수 천 만 원에 이르는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개발업자에게 살 던 집을 내주고 밀려난 철거민들은 더 이상 밀려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어 서울역과 영등포역을 떠돌다 추위 속에서 죽어가는 노숙인과 생계 유지를 위한 한 평의 땅도 허락 받지 못해 쫓겨가는 노점상이 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어느 작은 한 공간도 공공의 영역으로 내주지 못하는 우리 도시의 닫힌 포용력을 짚어본다.
4. 스쾃, 주거권을 외치다 스쾃은 문화 운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주거권 운동, 공공성 확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에 이어 포이동 골목을 ‘주거 공간’으로 점거하고 있는 넝마공동체.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함께 하는 주거 공간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며, 자립해 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스쾃이라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촌 사람들 역시 이제 단순한 점거가 아니라, 주택 협동조합을 법인화 하려 하는 등 공공 영역을 확장시키는 주거공동체를 꾸려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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