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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노동자의 새벽을 위해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 안건모 / 보리 / 2006년 / 8500원, 310쪽
내가 버스운전사 안건모씨를 처음 본 것은 김용만, 김국진이 진행하던 MBC 느낌표 ‘칭찬합시다’ 프로에서였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던 ‘기사 아저씨’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 뒤로 언제 다시 안건모씨를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글은 꽤 재미있게 읽었던 거 같다. 불규칙하고 바쁜 생활 때문에 꼼꼼히 챙겨 읽지는 못했지만, 버스운전을 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전달해 준다는 느낌은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는 버스 관련 공부를 하게 되었고 마침 떠오른 것이 안건모씨가 지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였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인 6월 1일, 나는 KTX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향했다. 열차 안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지우기 위해 안건모의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다시 붙잡았다.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자, 열차는 벌써 서울역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개찰구를 나오고 있는데, 내 옆에 ‘안건모’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여행을 다녀오는지 가방은 큼지막하게 부풀어 올라 있고, 특유의 뿔테 안경에, 개량한복 비슷한 윗옷, 튼튼해 보이는 운동화(등산화)를 신었다. 운동권스러운 실용적인 ‘패션’인 것으로 봐서는 맞는 거 같기도 한데. ‘에이, 설마 이런 우연이 있을라구’ 하다가 ‘밑져야 본전인데, 말이나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안건모씨 아니세요?”
“맞는데요. 누구시죠? 어디서 본 듯한”
안건모씨는 부산에서 전날 시청자미디어센터 주최 강연을 마치고 하룻밤 묵고 KTX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마침 나 역시 그 열차를 탄 것이었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제1장에는 시내버스, 알고나 탑시다 라는 주제로, 손님들이 시내버스 운전사나, 시내버스 체계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여러 가지 일화를 섞어서 소개하고 있다.
버스 운전사들이 싫어하는 유형의 손님들, 졸음운전에 얽힌 사연들(교대제), 시간에 쫓겨 안절부절하는 손님들과 기사, 불친절한 기사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내버스의 사정. 돈 내는 여러 가지 유형의 손님들, 잔돈 거슬러가지 않는 손님들과 공돈버는 회사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제2장의 제목은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다. 정말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기사들과 연관되는 우리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버스일터 모임의 고문변호사였던 정연순 변호사, 한화그룹 해고 노동자 명님, 상희, 미정, 할머니와 같이 사는 정희씨 등. 그 중 안건모의 단골손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안건모의 단골들’이 있었기에 그가 MBC 칭찬합시다에 출연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단골은 반가운 단골도 있지만, 보기 싫은 단골도 있단다. 술취한 사람, 돈 안 내는 사람 등. 이런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한마디 외침은 ‘또라이’다. 하지만 달님이나 현지 같은 안건모 팬클럽도 있는 듯 하다. 회사 차 번호 전체를 외우고 안건모의 차 1774호를 3,40분씩 기다리는 팬들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뒷날 후기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건모의 ‘팬관리’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재미있고 더 마음이 따뜻해진다.
3장 삶이란 곧 싸움이다와 4장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는 본격적으로 시내버스의 문제점들에 대해 ‘참여관찰’한 장편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사업주와 어용 노동조합이 매년 차고치는 고스톱 비슷한 임금인상 투쟁과 요금인상, 그리고 파업. 이 신기한 ‘교감’에 대해 안건모와 버스일터는 용감하게 ‘들이’ 댄다. 사고가 나서 ‘자부담’을 요구하는 사측에 맞서, 구상권 청구할 수 없다는 단협 조항을 들이 대거나, 취업규칙을 어겼다는 사측에 맞서 근로기준법을 들이 댄다. 연월차 적치하지 않는 사측에 맞서고, 이렇게 10년의 ‘바위치기’를 통해 버스 현장도 서서히 변화된다. 급기야 버스 현장 최초로(?) 조합장 선거에 ‘민주파’를 출마시켜 선거다운 선거를 해보기도 하고 (물론 낙선했지만) 8억 가까이 되는 상여금을 꿀꺽하려는 사측에 맞서 일인시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측도 만만치 않다. 징계와 해고 위협, 블랙리스트 심지어 테러로 맞선다. 하나씩 떠나가는 동료들(그래봤자 레미콘, 택시, 마을버스, 관광버스 등 ‘발통’ 노동시장이 한정되어 있지만), 힘빠지는 사람들. 익숙한 풍경들이다.
재미있는 내용으로는 버스 기사들의 “삥땅”이 있다. 워낙에 저임금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버스 사측과 개별 노동자들은 ‘삥땅’이라는 관행을 유지해 왔단다. 임금은 박하게 줄테니 알아서 ‘돈통’에서 빼가라는 것이다. 버스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건모에 따르면 이것은 하나의 덫이기도 했단다. 항상 삥땅은 해고, 징계의 위협이 되어 돌아왔고, 노동자들은 순종했다. 몇 백원 커피값 벌려는 노동자에게 상여금, 밀린 임금, 퇴직금을 모두 포기하게 만드는 ‘건수’이기도 했다. 포기할래? 경찰서갈래?
교통카드 등이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삥땅’의 문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전에 CCTV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졌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흩어져 홀로 노동하는 노동과정의 특성상 이러한 감시시스템은 정말 사측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CCTV는 결국 노동자에게는 배차간격 무시와 난폭운전을 유도한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의 글들은 한겨레신문과 작은책에 실린 글, 전태일문학상에 출품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무엇보다 쉬운 글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모두가 한 번씩 경험해 봤고, 모두가 한 번씩은 생각해봤음직한 얘기들을 조리있게 설명한다. 알라딘에 가면 이 책에 대한 서평도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부분적으로는 ‘시내버스’가 그처럼 우리 삶과 밀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에는 지하철이 있어 버스의 수송분담률이 낮기는 하지만 여전히 버스는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운송수단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과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밀접하기도 하다. 하지만 여태껏 나는 버스 노동자들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은 하지만, 그저 그런 미조직 노동자로 무의식 속에 방치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너도나도 하나씩 자가용을 끌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버스 노동자의 새로운 출발에 금속이나 여타 노동자들이 도와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버스 기사의 얼굴을 유심하게 보게 되었다. 내가 운행지를 물을 때도, 거스름돈을 받을 때도, 앞차가 꾸물거릴 때도, 그의 표정을 살피며 책 속의 한구절 한구절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6월 초, 마창에서는 버스 파업이 있었나보다. 또 7월부터는 마산창원도 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또한 변형근로제의 일종인 Shift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되풀이되는 파업-요금인상과 버스 준공영제, 그리고 일련의 제도변화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단다. 전면 공영제와 공공성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사관계의 무법천지를 바꾸는 길만이 요금과 임금의 인상 경로를 차단시킬 수 있고,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안건모의 책을 보다 보면, 누가 버스를 거꾸로 가게 하는지, 그렇다면 누가 버스를 제대로 가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과연 그날이 올까? 13만이나 되는 버스 노동자들이 7만의 어용 노조를 뒤엎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인지, 흥분되는 순간이 기대된다. 한국노총이 복수노조 유예를 노사정 합의한 순간, 한국노총에 항의 농성하러 간 버스 노동자 3인은 아직도 실형을 살고 있다. 집행유예로 나올 것으로 예상한 버스 노동자 동료들은 과연 마련했던 고기와 술을 그날 밤 어떤 기분으로 먹고 마셨을까? 하지만 닭 모가지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했던가? 이런 고전적인 글귀가 아직도 어울리는 까닭은 버스 현장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호철이 그린 표지그림을 보며, 그림 속의 조는 소님과 손을 흔드는 기사, 장을 보는 차창 밖의 사람들을 보며, 이러한 아름다운 일상이 꿈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버스 노동자는 프로다. 프로 기사(노동자)에게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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