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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1호]감사원 감사로 불거진 경제자유구역 현황과 의미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진보부산> 제1호 (2004.10월)              

         

 감사원 감사로 불거진 경제자유구역 현황과 의미

        

양솔규 중동서지구당당원,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최근 부산과 광양의 경제자유구역 사업에 대한 전윤철 감사원장의 비판이 알려지자, 부산과 전라도 지역의 여론이 비등(沸騰)하고 있다.

8월 20일 전윤철 감사원장은 “3개 경제자유구역 추진사업에 대한 감사를 해보니 걱정스럽고, 문제점이 많다”며 “지역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물류, 첨단, 관광산업을 유치함으로써 예산의 중복투자 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감사는 감사원 내 국가전략사업평가단(이하 평가단)을 통해 2003년 말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9월 중 경제특구사업 개선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단은 ‘국가전략사업에 관한 감사’,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사업에 관한 감사사항’, ‘신행정수도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사업에 관한 감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부산일보는 사설에서 ‘중복 투자가 되거나 과당경쟁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제특구로 지정하지 말았어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특구 지정시 전윤철 감사원장이 경제부총리로 재직 중’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특구 선정이 잘못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항을 사랑하는 모임’과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도 전 감사원장의 발언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전윤철 감사원장은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집중 지원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신지역주의 단체(?)’들은 ‘감사원장의 중앙집권적 사고방식, 지역균형발전을 위해하는 발언’ 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부산 지역의 ‘일부’ 여론이 침소봉대되고 있는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즈의 사설은 다소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신문은 ‘경제특구가 실적없이 표류하고’ 있는데 늦게나마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교통개발연구원이 실시한 부산, 광양항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동북아 물류거점 선호도 조사에서 9개 조사대상 중 8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경제특구의 성공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지원은 언급하지만,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주무부처인 재경부뿐만 아니라, 각 부처와 동북아시대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다른 부처, 기관들도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2004년 6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학생비율을 해당 학교장이 결정할 수 있게 하고, ‘해외송금 금지 장벽’도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교육개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2004년 8월, 오갑원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 기획단장은 외국계 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개방공대위의 반대는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국내의료법에서는 금지된 영리(營利)병원 설립도 허용키로 했고, 그에 따라 수익금의 해외 송금과 자본투자 등이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작년 경제특구법이 통과된 이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움직임이 둔화된 가운데 현재 제반 사항들이 아무 저항 없이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구역지정과 구역청이 출범했으나 투자유치 실적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부산-진해경제구역청의 경우에는 3월 개청 이후 양해각서 체결 실적마저 전무한 상태이다. 공장용지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고,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재원 역시 부족한 상태이다. 지원에 필요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며, 게다가 재계는 감세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은 한국 산업 성장엔진에 대한 숙고 없이 노동, 환경 등의 희생을 대가로 ‘저진로(low road)'를 지원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구성되었으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 정책추진력의 소진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렇다면, ‘자본의 천국’처럼 보이는 경제자유구역에 왜 외자유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추후 세밀한 비교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IMF 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시스템의 변화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온 해외자본들은 ‘투기자본’들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 수익률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중소기업 및 벤처보다는 우량 대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설정한다. 결국 우량 대기업들이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를 해야하지만(해외자본 10% 이상이면 투자 조건이 성립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부분의 우량 대기업은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할 자격이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 조건 하에서 (정부의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보다는 내부 유보 내지는 해외투자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로는 경제자유구역보다는 기업도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말부터 추진된 한국의 ‘생산의 세계화’ 전략은 ‘금융의 세계화’에 하위 종속된 상태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대등한 노사의 ‘대타협’에 의한 고진로(high road)가 아닌, 노동의 배제 속에서의 고진로(high road)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소위 산업 클러스터라고 일컫는 지역혁신체제를 자본은 기업도시와 등치시키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현재 경제자유구역과 관련한 제반 사항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부산, 인천 등은 전통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용지확보가 쉽지 않고, 인프라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설사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기업도시처럼 효율적으로, 빨리, 이해당사자들의 저항 없이 이루어지는 길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자본은 망설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추후 전경련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와 경제자유구역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의 최근 불거진 부산, 광양 경제자유구역 축소조정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의 개발을 둘러싼 각 이해당사자들의 ‘성장연합’이 ‘경제자유구역’의 취지와는 무관한 이권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지역분권’ 또는 ‘국토균형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신지역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양적 성장 지상주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민 전체의 고른 발전이라는 관점보다는 ‘특정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경제자유구역 문제뿐만이 아니라, 영도대교 문제, 지역 산업정책 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전체가 지역개발의 블랙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나, 합리적 룰과 통제 시스템은  전무한 ‘개발 지상 무정부’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는 당연하게도 행위주체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부산시민’이라는 호명 속에서 시민 일반이 ‘이해당사자’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노동자, 서민, 농민, 중소제조업자, 주부, 학생 등 다양한 계급계층들의 이해는 사라지고, 각 주체들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정책 효과는 논의의 장에서 빠져버리게 된다. 이 틈을 지역 언론사와 개발업자, 이권관련자들이 ‘부산시민 전체를 대리, 대표’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경제자유구역이 노동자 서민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한 경제자유구역 설립은 초입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법안 통과가 곧 투쟁의 종결을 의미할 수는 없다. 재계와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자, 서민의 삶을 중심에 놓는 ‘산업정책’을 만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은 ‘반대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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