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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5호]빈곤과의 투쟁은 민주노동당식 민주주의 투쟁이다.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소식지 <진보부산> 5호(2005년 1월). 글을 다시 보니, 현재 민주노동당 내에서 '빈곤과의 투쟁'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빈곤과의 투쟁은 민주노동당식 민주주의 투쟁이다.

 

양솔규(중동서지구당 당원,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2005년이 밝았다. 작년 한 해는 2003년 노동열사들의 잇다른 죽음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한 해였던 것은 아니다. 높아지는 정치개혁의 열기 속에서 치뤄진 4.15 총선에서 노동자 민중들은 숙원이었던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이루었지만, 파탄 난 민생, 불평등의 심화는 우리가 샴페인을 터트리는 순간에도, 우리가 잠든 순간에도 꾸준히 멈추지 않고 진행되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당의 정책이론지 <이론과실천> 2004년 9월호에는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자는 다소 무시무시한 내용의 글이 실렸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동지가 쓴 글인데, 그는 이 글에서 신자유주의의 약한 고리인 분배의 문제에 당이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물론, 우리 당은 작년에도 여전히 꾸준하게 분배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한편으론 성장우선주의자들에게 대항해 성장을 위해서라도 내수를 확대해야 하고, 내수확대는 분배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어쩐지 수세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었다. 그것은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과 패러다임, 노사관계와 비정규직 확산과 관련된 노동시장정책, 산업정책 등 거시적 계획 속에 위치 지어진 주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허점도 많고, 믿음이 가지 않는 주장이었다. 또한 노동자 민중의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이 가져야 하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틀어쥐기에는 뭔가 부족한 주장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최소한의 무기도 주어졌고, 군사와 장수들도 준비되었다. 이제 지형지물을 이용한 총체적 진군 경로와 작전이 구축되어야 한다.

  

2004년 마지막 날, 당의 진보정치연구소는 2004년 10대 뉴스의 첫 번째로 ‘빈곤 문제’를 거론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인구의 5.8%(경상북도 주민 수 270만 명)가 절대빈곤층이고,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인구는 부산시 인구보다 40만 명이 더 많은 410만 명이라고 한다. 이 광활한 빈곤인구 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부자는 더 급속하게 빨리 부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 즉 빈곤층과 부유층이 동시에 증가하는 ‘양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통계상의 숫자의 문제가 아닌 것이, 계급이동의 주요한 기제였던 교육, 문화, 경제적 기회 모든 측면에서 봉쇄되고 거세당한 현실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IMF 전부터 우리 피부로 느껴온 지 오래 되었다.

  

사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세계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빈곤의 세계화’ 속에서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선두에 있던 한국이 ‘남아메리카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극단화, 종속의 심화와 정치적 후원주의 등 헤어 나올 수 없는 고난이도 미로를 최근 남미의 진보세력들은 좌파바람을 일으키며 헤쳐 나오려 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은 이러한 특징들을 하나씩 안으면서 실질적인 퇴보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광활한 빈곤의 바다’는 극단적인 우익(더 나아가 파시즘)의 배후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빈곤에서의 해방은 민주주의적 과제, 계급정치의 발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중첩된 연관성을 갖는다. 브라질 룰라 정부가 출범 당시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가장 중요하게 주장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비정규직의 확산, 절대빈곤층의 급증, 극단적 양극화, 폐쇄적 계급구조 속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민주노동당과 사회적 연대가 설 자리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현실을 담론화시키는 것, 그 속에서 압도적 다수의 곤궁한 자들의 거대한 연대를 구축하는 것, 그것은 한 순간의 지지율 획득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 축적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감히 정의한다면 '빈곤과의 전쟁'은 계급형성 과정임과 동시에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초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2006년 선거 득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서 ‘빈곤과의 전쟁’을 민주노동당은 선두에서 지휘해 나가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등산로 입구까지 끌고 온 노동자계급이 바라는 것은 등산로 입구에서 피켓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다. 계급의 손을 잡고 희망찬 산행을 하라는 것이다. ‘오늘의 절망을 넘어’ 가는 것은 시대가 당에 짊어 준 역사적 과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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