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자연과 타협하기” 위한 길...(1)
- 양다슬
- 2008
-
- ‘막’ 형성된 계급에게 놓인 ...
- 양다슬
- 2008
-
- 연대적 경제와 재생에너지 ...
- 양다슬
- 2007
-
- 연대감은 굶주림의 숙명을 ...
- 양다슬
- 2007
-
- 경남 고성 동해면 동진대교 ...
- 양다슬
- 2007
리뷰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진보부산 9호>
부산을 바꾸려면 이 책을 보라!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도시는 미디어다
/ 김찬호 지음 / 책세상 / 2002 / 4,900원 /178쪽
가뜩이나 통풍이 안 되는 방에서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다보면 답답하기만 한데, 집에 있는 모든 창을 열어두면 시끄러운 차소리 때문에 예민한 나로서는 여간 잠을 청하기가 힘들다. 이 도시를 두고 누구는 잿빛이다, 무겁다 하는 표현을 붙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낭만적 표현보다는 차라리 ‘재수없어!’, ‘짜증나’라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깔끔하게 조성된 고층 아파트를 가게 되면 괜히 주눅들고, 돈 없는 것에 대해 후회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왜 이렇게 잘 사는 놈들은 편안하게 살고, 못 사는 놈들은 짜증내면서 살게 되는 것일까?
물론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활동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올 때까지’ 모든 행복과 가치는 유보해야만 하는 것인가? 소위 근본모순이 해결되는 그 순간에 와서야(그러니까 그 전에는 결코!) 비로소 행복의 활시위는 서서히 떠나게 되는 것인가? 그럼 이 도시의 팍팍한, 짜증나는 경관과 소음, 부딪힘과 낯설음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도시란 무엇인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시공간적 구획이 시작되었고 이 속에는 인간, 노동자가 있었다. 있으나 없는 ‘빈 공간’은 무엇으로 꽉꽉 채워야만 했다. 도시는 자본주의가 만든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다. 소위 근대 이전의 도시와 근대 이후의 도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정치적, 경제적 의미에서 다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전제로 한 산업적 공간구획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노동력과 상품이 거래되고, 그 속에서 물질적 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는 도시는 한편으론 빈곤을 생산하고 다른 한편으론 화려함을 생산한다. 근대 이전의 정적인 인간관계는 상품과 가치 중심으로 탈바꿈한다. 이른바 맑스식으로 말하자면 모든 굳어진 것은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 Into Air).
예전부터 도시의 문제는 곧 계급적인 투쟁의 형태와 함께 전개되어 왔다. 직접적 공격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적 공격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그 모든 투쟁의 결과물이 각인된 거대한 화석이기도 하다. 승리자는 거대한 구조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며 패배자는 기억과 술자리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응축된 투쟁의 결과물이 도시인 것이다. 서울 올림픽 공원은 승리자에겐 기념물일 수 있지만 패배자에겐 무덤일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 역시 초국가적인 도시 문제를 만들어 왔다. 이는 자연스럽게 어쩌다가 생긴 문제가 아니다. 종속적이고 유혈적인 산업화(소위 유혈적 테일러리즘에 기초한)는 서울을 정점으로 한 전 지역의 복속을 낳았고 이는 사회 곳곳에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사진. 생태도시로부각되고있는고베.
도시는 자본주의 이후에도 수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체계적인 도시정비의 필요성이 생겨났고 이 과정에서 도시빈민과의 거대한 전투가 벌어졌다. 71년 경기도 광주대단지 투쟁, 80년대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상계동 철거투쟁 등이 대표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환경문제를 둘러싼 투쟁은 지역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송전탑 반대 투쟁, 댐 건설 반대 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구획을 둘러싼 운동의 특징은 한 마디로 ‘반대운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영속성은 보장되었고 도시의 재구획은 90년대 초중반에는 거의 완료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도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시민운동의 때늦은 (혹은 때이른) 붐과 함께 지역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도시를 살리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 역시 단지 도시의 구획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인간들의 세대 역시 바뀌게 되면서 도시 출생 인구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산업 역시 주도산업이 이미 성숙산업화 되면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인구구조, 성별 시스템, 도시, 산업구조, 산업의 성숙도, 교육수준 등에서 서구의 모습과 많이 닮게 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반대’와 더불어 ‘반대’를 넘어선 참여, 목표에 있어서의 생태, 생활적 요구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마을 공동체) 형성이 도시 재생, 주민운동의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버마스가 구분한 바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한 ‘체계’와 구분되는 ‘생활세계’가 점차 주요한 전장이 되는 것이다. 개인 삶의 세계를 침범하는 ‘체계’에 맞선 투쟁, 그것을 신사회운동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주민들과 접촉하고 노력하는 것은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 즉 생활세계를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는 새로운 생활세계의 상, 즉 개인적 생활태도(가치관)와 사회적 교류 방식의 변화를 전제로 해야 하고 이는 선험적으로 규정할 만큼 쉽고 단순하지가 않다. ‘체계 내’ 투쟁과 ‘생활세계 내’ 투쟁이 씨줄과 날줄처럼 동시에 필요하다. 이러한 투쟁에 민주노동당이 끼어들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아니 90년대 초중반에 개입의 주도권을 놓친 것이 중요한 우리의 실책일 수 있다.
지금도 도시를 둘러싼 담론은 우리를 무수히 들었다 놨다 한다. 한전 이전이 실패하자 부산은 노무현의 균형정책이 실패했다고 떠들고 있고, 주공이 들어서는 경남에서는 기초단체들끼리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내년이면 지방자치체 선거이다. 선거에 목숨 거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도시 하드웨어의 전반적인 문제, 도시 삶의 양식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좁은 운동의 토양을 넓히는 현대적 운동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원동지들에게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이 책에는 선거 공약과 관련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도시와 사람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함께 담고 있다. 도시도 숨을 쉴 수 있다. 도시도 숨을 쉴 권리가 있다. 도시 속 시민의 주인됨은 도시 디자인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탈출구는 없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