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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세상은 믿을 만하다
[작은책2005.7]아직 이 세상은 믿을 만하다
우리들 한마당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1989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절이었다. 초·중학교 때부터 나는 사회 민주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알게 모르게 주섬주섬 보고 듣게 되었고, 《창비》니 《실천문학》이니 하는 문학 잡지들을 보면서 자랐다.
고등학교에서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나는 우리 학교가 있던 서울 관악 지역 내의 전교협(전국교사협의회) 관악·동작지회에 고등학교 입학식을 하기 전 무작정 전화를 걸고 찾아갔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전교협 소속 선생님들이 내가 입학할 고등학교에 계신지, 그리고 학교 동아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이었다. 그때는 전국교직원노조가 없었다. 전교조는 1989년 5월에 창립하였고, 전국교사협의회가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입학식 다음날 교무실 한 편에서 전교협 선생님 두 분을 뵙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첫인상이 참 인자하셨고 수업도 무척 재미있게 하셨다. 학생들에게 격의 없이, 권위 없이 대하셨고 되도록 학생들과 친근하게 어울리는 전형적인 ‘전교협’ 선생님이었다. 자유로웠던 중학교에서 빡빡해진 고등학교 생활로 넘어가면서 약간 기가 죽을 무렵, 그 선생님은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것 같다. 사정상 선생님의 성함을 ‘김진표’라고 해두자.
봄이 지나면서 전교조가 창립되었고 문교부와 사법 당국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기 때문에 대책을 논의하는 우리 학교 모임에서 선배들의 발언을 듣고 실행에 옮기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우리 학교 선배들은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쓴 리본 달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선생님들이 끌려가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집회 도중 옥상에서 투신도 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그야말로 학교 분위기는 아슬아슬한 형편이 되어 가던 때에 우리 학교만 너무 얌전(?)한 것 아닌가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전교조는 조합원 명단을 《한겨레신문》에 발표했다. 우리는 신문을 들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런데 김진표 선생님 이름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우리 학교 대표를 맡으셨던 분…….
그리고 그 밖에 전교조 탈퇴를 거부하던 선생님들은 해직이 되었고 교문 앞에서 ‘출근 투쟁’을 감행하였다. 학교에서 쫓겨난 선생님들은 한여름 명동성당 뙤약볕 아래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명동성당 담 옆 계성여고 누나들은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대표해서 전교조 선생님들의 단식 농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광주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권한대행, 부산고협 권한대행, 마산창원고협 권한대행과 서울에는 고협이 없었기 때문에 대표로 남서울상고 학생회장이 평민당사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진표 선생님은 집안에, 경제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분회 안에서 선생님들끼리 할 일을 나누었다고 한다. 현장에 남는 사람과 밖으로 나갈 사람, 전교조 후원회와 분회를 챙기는 일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논의들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단순한 생각으로 선생님을 불신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 고등학교 3년을 김진표 선생님은 옆에서 지켜봐 주었다. 대자보와 유인물, 학생회 직선제 쟁취와 축제 시간 보장, 두발 규제 철폐, 이성 교제와 음주, 흡연 따위 거의 내 모든 것을 지켜봐 주신 선생님은 김진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묵묵히 행동으로 깨달음을 주었다.
여전히 사람을 믿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기대치를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게다. 어쩌면 세상이 사람을 믿지 않게 만드는 것보다는 내 스스로 불신과 마음의 벽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믿을 놈이 있다는 것, 믿음이라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 아니 널려 있다는 것을 ‘작은책’은 일깨워 준다. 작은책 6월호에 실린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그렇고 박훈 변호사가 그렇다. ‘작은책’ 독자 여러분이 그렇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의 불신의 벽을 허물어 주는 ‘작은책’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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