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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석학 아탈리와 쓸쓸한 만남 | 손석춘의 편지 2006/11/06 07:42
자크 아탈리. 프랑스 지성인을 대표하는 석학으로 꼽힙니다. 1943년 생으로 경제학과 정치학 박사입니다. 서른두 살 때, 당시 프랑스 사회당 총재였던 미테랑의 경제고문으로 발탁됩니다.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 된 뒤에도 ‘핵심참모’로 보좌했습니다. 그의 저서는 전 세계에 27개국 말로 옮겨져 500만권이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앨빈 토플러도 그를 일러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성인”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가 최근 서울에 왔습니다.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아탈리와 한국방송(KBS)를 매개로 만났습니다. 한국방송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그의 유토피아 저서 <인간적인 길>을 두고 대담했습니다. 아탈리는 강조했습니다.
“한 사회의 궁극적 목표는 영리추구가 아닙니다. 사회의 목표는 시민을 위한 복지의 실현입니다. 성장은 하나의 방법이죠. 성장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리면, 시민의 복지는 망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이윤의 성장만이 됩니다. <인간적인 길>이라는 책은 어떻게 유토피아를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책입니다.”
성장과 분배를 언제나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한국의 윤똑똑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아탈리는 <인간적인 길>에서 시장의 힘이 무한으로 확장될 때 인류는 인간 자체가 상품이 되는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대담에서도 아탈리는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시장은 스스로의 승리에 도취해 있습니다. 계속 도취의 양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장은 자연을 파괴합니다. 사람을 로봇으로, 복제인간으로, 물질로, 상품으로 차츰 변화시켜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인간이 이 상황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상품화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위험입니다.”
여기까지 아탈리와 저는 전적으로 생각이 같았습니다. 아탈리에게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을 소개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거기까지였습니다. 아탈리와 저의 생각 차이는 대화할수록 점점 더 벌어졌습니다. 상품사회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가 차이의 핵심이었습니다.
아탈리는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인간적인 길’의 고갱이라고 주장하더군요. 그와의 대담은 이미 방영됐습니다만, 방송시간의 제약으로 편집에서 빠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아탈리의 저서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책이라는 아탈리 자신의 주장과 달리 상품사회를 벗어나는 방법이 지나치게 두루뭉수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길>에서 변화의 주체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어디에 살고 있든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전부를 결집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어 덧붙입니다. “모두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가 미래 사회의 희망을 ‘형제애’에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요. 과연 “모두가 같은 사람들”이기에 모두가 ‘형제애’를 지니면 유토피아가 이뤄질까요? 공자에 대한 모욕일지 모르지만 ‘공자님 말씀만 한다’는 생각이 든 까닭입니다. 아탈리가 <인간적인 길>에서 무능한 좌파를 ‘어설픈 좌파’라고 비판한 사실이 떠올라 되물었습니다.
“이 책에서 프랑스 좌파들을 ‘어설픈 좌파’로 비판한 당신에게 그 말이 혹 부메랑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는가요?”
아탈리는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며 자신의 제언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답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대담의 끝자락에서 결국 아탈리와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그가 <인간적인 길>에서 “핵무기를 통한 (전쟁)억제력”을 강조하고 있기에 북핵문제를 물었습니다.
아탈리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프랑스처럼 핵무기를 정당하게 갖게 되면 문제가 없지만 북핵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통제하면 어렵지 않게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물었습니다.
“아탈리 박사의 저서들을 읽으며 프랑스에서만 살아온 지식인 일반이 지니는 한계를 느꼈는데 오늘 대담을 통해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핵을 가질 정당성이 있는 나라 가 따로 있고 없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나, 북쪽 정권을 붕괴시키는 게 당위라는 생각이 그것인데요. 그런 논리와 제국주의자들의 논리는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유엔 안전보상이사회 국가들이 지닌 핵무기는 정당하다면서 사뭇 결연히 말했습니다.
“한 나라의 정권을 붕괴시킬 권리는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있다는 손 박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어 저에게 반문하더군요.
“히틀러를 보세요. 그렇다면 우리가 히틀러를 패배시키지 말아야 했나요?”
황당했지만 되물었지요.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히틀러는 다른 나라들을 침략한 전범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미국은 침략 당하지 않았지만 참전했습니다.”
방송 녹화 중이었고 사회자의 만류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습니다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아탈리는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국제 문제에 미국과 프랑스는 대체로 견해를 같이 한다”고 말을 흐렸을 뿐입니다.
그랬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지성인 아탈리조차도 북미핵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책임에 전혀 무지했습니다. 그가 ‘형제애’를 강조하며 상품사회를 벗어나자고 제의한 게 단순히 순진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아탈리와의 만남이 쓸쓸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제가 유럽이 아닌 분단조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새삼 빚진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크 아탈리가 차라리 고마운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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