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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다크 나이트>...
개봉하기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더니 아니나다를까 미쿡에서 흥행 돌풍을 몰고 왔는데.
(흥행 수입 역대 2위 - 1위는 <타이타닉>)
한국에선 음습한 분위기 때문인지 배트맨 브랜드가 별로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쿡보다는 그 열기가 좀 덜한 감이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도 "배트맨? 훗-_-" 하는 생각도 있었고
미쿡애들이 좋아하는 영화 스타일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기도 해서
(얘들은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같은 영화도 흥행작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가)
<다크 나이트>를 그다지 기대하고 본 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다크 나이트>는 DC코믹스의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수퍼히어로 영화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다. (기존엔 <스파이더맨 2>)

<괴물>의 경우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일단 단상만 몇 개 적어본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이므로 알아서 봐 주시길)

1. <다크 나이트>를 보기 전에 들은 얘기로는,
수퍼히어로물의 특징인 히어로(선) vs 악당(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요즘엔 선악의 모호한 경계 같은 주제마저도 진부해 진 경향이 있어 이런 내용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근데 실제로 <다크 나이트>를 보면 배트맨이 착한 놈 맞고, 조커가 나쁜 놈 맞다.
특히 (이미 고인이 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단지 "나쁜 놈"이라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혼돈Chaos" 그 자체이며 아무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해 불가능한 악당이다.
여기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히스 레저에 대해 첨언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2. 선 vs 악이라는 구도를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하비 덴트, 즉 투페이스다.
히스 레저에 의해 투페이스라는 캐릭터가 좀 죽는 듯 해서 아쉽지만,
<다크 나이트>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바로 투페이스다.
배트맨-투페이스-조커는 각자 다른 캐릭터에게 영향을 주면서 영향을 받는다.
하비 덴트는 조커의 등장으로 인해 고담 시티를 지키는 백기사로 부상했지만,
조커의 계략과 배트맨이 자신의 정의를 행한 결과로 인해 투페이스라는 악당으로 변모한다.
조커는 "넌 나를 완전케 한다You complete me"라는 자신의 말처럼 배트맨이 존재로 인해 더욱 완전한 악당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배트맨은 이들과의 싸움을 통해 스스로의 사명을 규정하게 되고,
결말부의 자신의 말처럼 영웅으로 죽는 것보다 악당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하게 된다.
투페이스를 만든 것이 조커와 배트맨이고, 조커를 완전체로 만든 것이 배트맨이라면,
이들로 인해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이 아닌 배트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3.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조커가 실험한 "죄수의 딜레마"다.
시민들이 타고 있는 배(A)와 죄수들이 타고 있는 배(B)에 각각 폭탄을 실어놓고 서로 상대방의 폭탄을 터뜨릴 스위치를 준다.
지정된 시간까지 어느쪽에서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면 조커는 두 배 모두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이것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다.

A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가능성이 발생한다.
 - B에서 먼저 스위치를 누르고 A에서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다. - A 사망, B 생존
 - B에서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A에서 먼저 스위치를 누른다. - A 생존, B 사망
 - B에서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A에서도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다. - A, B 모두 사망 (조커에 의해)

A의 입장에선 B가 스위치를 누르건 누르지 않건 관계없이 스위치를 눌러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은 B도 마찬가지여서 A의 선택과 관계없이 먼저 스위치를 눌러야만 생존 가능하다.
결국 둘 다 스위치를 누르게 되면 양 쪽 모두 파멸하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핵무기 폐기 협상이 잘 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동일한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인지, 결과적으로 두 배 모두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고
배트맨이 그 전에 조커를 찾아내 스위치를 무력화시켜 승객들을 구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스위치를 누르지 않게 된 과정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탄 배에서는 투표까지 한 끝에 죄수들의 배를 폭파시키도록 결과가 나왔지만,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면서 결국 스위치를 누르지 못했다.
이는 투표라는 익명성의 행위와 스위치를 누른다는 공개된 행위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인 듯 하다.
하지만 죄수들의 배에서는 간수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죄수의 리더가 나서서
"당신들이 하지 못한 것을 내가 해 주겠다"며 스위치를 뺏아 바다에 던져버린다.
자신이 살기 위해 (범법자들이 탄 배이긴 하지만) 상대를 죽이려고 한 시민들의 투표 결과와 (민주주의적 방식)
리더의 독단적이지만 생명을 건 인간적인 결정이 (권위주의적 방식)
일종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 하다.

4. 여하튼 <다크 나이트>는 수퍼히어로 영화지만 묘하게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스파이더맨> 같이 수퍼히어로의 고뇌가 아니라,
수퍼히어로와 악당들의 싸움에 말려드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뇌라는 점에 있어서 더욱 특이하다.
당분간은 <다크 나이트>가 최고의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데 있어 이견이 없을 듯 하다.

PS 1. 크리스토퍼 놀란은 <메멘토> 이후 지지부진하다가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데 성공한 듯 하다.
그렇다면 나이트샤말란에게도 희망이 있단 말인가? ㅎㅎ

PS 2. 신혼여행으로 홍콩에 갔을 때, 길거리에 웬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있고 교통 통제하는 장면을 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있다.
다음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크리스찬 베일과 모건 프리만이 <배트맨> 시리즈 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 1면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젠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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