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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7
    위키피디아의 중립성 신화
    레니

위키피디아의 중립성 신화

얼마전 위키피디아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를 봤는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작성되고 있는 위키피디아조차도 소수 의견이 쉽게 묵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위키라는 툴을 봤을 때에는 든 생각은 참 개발자스러운-_- 도구란 것이었다. 사용자 편의성을 지향하면서 갈수록 복잡해지는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과 비교해 보면, 위키는 단순한 기능이지만 필요에 따라 확장시키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몇몇 룰만 알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에디터, 문서 제목을 기준으로 한 단순하지만 막강한 인덱싱,  필요에 따라 붙여 쓸 수 있는 매크로 등은 위키가 심플하지만 강력한 기능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와 함께 위키를 주목하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공동 편집 시스템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한 물 갔지만 웹2.0이 뜨면서 새삼스레 주목받던 집단지성이란 키워드에 의해 위키 시스템과 위키피디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솔직히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라는 용어는 상당히 아카데믹한 용어라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부분은 "브래태니커(1인 편집) vs 위키피디아(집단 편집)"의 대결 구도였는데, 이 구도는 "지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 있어 어떤 방법이 더 합리적인가"라는 흥미로운 논점을 낳게 되었다.

위키의 편집 시스템은 공동작업을 할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내가 속한 팀에서도 기본적인 프로젝트 문서 작성은 위키로 하고 있고, 지식 공유, 일정 관리 등 다양한 일을 병행하고 있다. 기존 문서의 내용에 이의가 있다면 정중하게-_- 줄을 긋고 편집자의 이름과 함께 새로운 설명을 단다. 문서를 통합하거나 재배치를 할 때면 관련자들에게 노티를 하고 일괄적으로 문서를 정리한다. 기본적인 룰만 지켜주면 위키를 통한 문서 관리와 지식 축적은 다른 어떤 툴보다 쉽고 강력하다.

하지만 이 방식이 유효한 것은 일정한 규모의 공동체 내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팀원들이 서로를 알고 있고 위키를 합리적으로 사용할 책임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위키를 통한 지식 축적과 정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소규모 이상의 공동체에서 과연 이런 방식이 문제없이 통용될 지 의문이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합리적인 문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누구나 할 수 있을 지 의심되는 것이다.

이것은 컨텐츠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중립적 시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며, 토론이 가능한 페이지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순수한 학문적 중립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으로 쟁점화될 여지가 있다. 모든 논쟁 사안에 대해 익명의 다수파가 소수파에 대한 예의를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가장 위험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키피디아는 "키워드=설명"로 지식을 정의한다.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페이지도 존재하지만, 위키피디아의 기본 포맷이 키워드와 1:1로 대응하는 설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시스템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선 앞선 의견을 부정해야 가능하다. 물론 별도의 키워드로 가지를 치는 방식도 가능하겠지만, 위키의 기본 운영 형태인 계층형 구조에서는 상위 키워드의 순서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데 있어 그닥 효율적이지 않다. 물론 위키피디아는 기본적으로 "사전"이기 때문에 이견들을 통합해 하나의 페이지로 만들고, 비주류 의견들은 링크 등으로 참조하도록 되어 있지만, 사전에 최우선으로 등재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분명 위키가 가지는 도구적인 합리성과 별개의 것이다. 분명 위키는 다른 어떤 툴보다 빠르고 쉽게 지식을 찾을 수 있는 툴이다. 하지만 현재 일반적인 위키의 구조는 (특히 대규모의) 논쟁을 벌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어떤 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게시판의 무한 리플 논쟁은 체계적으로 따라가기 힘들고, 블로그의 트랙백은 논쟁이 산만해지기 쉽다. 그나마 체계적인 지식 축적이 가능한 위키가 논쟁에 그나마 적합한 툴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논쟁형 위키"를 한 번 고안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ps. 포스팅을 하려고 봤더니 이미 다섯병님이 포스트를 써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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