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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개봉하기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더니 아니나다를까 미쿡에서 흥행 돌풍을 몰고 왔는데.
(흥행 수입 역대 2위 - 1위는 <타이타닉>)
한국에선 음습한 분위기 때문인지 배트맨 브랜드가 별로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쿡보다는 그 열기가 좀 덜한 감이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도 "배트맨? 훗-_-" 하는 생각도 있었고
미쿡애들이 좋아하는 영화 스타일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기도 해서
(얘들은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같은 영화도 흥행작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가)
<다크 나이트>를 그다지 기대하고 본 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다크 나이트>는 DC코믹스의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수퍼히어로 영화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다. (기존엔 <스파이더맨 2>)
<괴물>의 경우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일단 단상만 몇 개 적어본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이므로 알아서 봐 주시길)
1. <다크 나이트>를 보기 전에 들은 얘기로는,
수퍼히어로물의 특징인 히어로(선) vs 악당(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요즘엔 선악의 모호한 경계 같은 주제마저도 진부해 진 경향이 있어 이런 내용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근데 실제로 <다크 나이트>를 보면 배트맨이 착한 놈 맞고, 조커가 나쁜 놈 맞다.
특히 (이미 고인이 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단지 "나쁜 놈"이라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혼돈Chaos" 그 자체이며 아무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해 불가능한 악당이다.
여기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히스 레저에 대해 첨언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2. 선 vs 악이라는 구도를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하비 덴트, 즉 투페이스다.
히스 레저에 의해 투페이스라는 캐릭터가 좀 죽는 듯 해서 아쉽지만,
<다크 나이트>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바로 투페이스다.
배트맨-투페이스-조커는 각자 다른 캐릭터에게 영향을 주면서 영향을 받는다.
하비 덴트는 조커의 등장으로 인해 고담 시티를 지키는 백기사로 부상했지만,
조커의 계략과 배트맨이 자신의 정의를 행한 결과로 인해 투페이스라는 악당으로 변모한다.
조커는 "넌 나를 완전케 한다You complete me"라는 자신의 말처럼 배트맨이 존재로 인해 더욱 완전한 악당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배트맨은 이들과의 싸움을 통해 스스로의 사명을 규정하게 되고,
결말부의 자신의 말처럼 영웅으로 죽는 것보다 악당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하게 된다.
투페이스를 만든 것이 조커와 배트맨이고, 조커를 완전체로 만든 것이 배트맨이라면,
이들로 인해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이 아닌 배트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3.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조커가 실험한 "죄수의 딜레마"다.
시민들이 타고 있는 배(A)와 죄수들이 타고 있는 배(B)에 각각 폭탄을 실어놓고 서로 상대방의 폭탄을 터뜨릴 스위치를 준다.
지정된 시간까지 어느쪽에서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면 조커는 두 배 모두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이것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다.
A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가능성이 발생한다.
- B에서 먼저 스위치를 누르고 A에서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다. - A 사망, B 생존
- B에서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A에서 먼저 스위치를 누른다. - A 생존, B 사망
- B에서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A에서도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다. - A, B 모두 사망 (조커에 의해)
A의 입장에선 B가 스위치를 누르건 누르지 않건 관계없이 스위치를 눌러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은 B도 마찬가지여서 A의 선택과 관계없이 먼저 스위치를 눌러야만 생존 가능하다.
결국 둘 다 스위치를 누르게 되면 양 쪽 모두 파멸하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핵무기 폐기 협상이 잘 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동일한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인지, 결과적으로 두 배 모두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고
배트맨이 그 전에 조커를 찾아내 스위치를 무력화시켜 승객들을 구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스위치를 누르지 않게 된 과정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탄 배에서는 투표까지 한 끝에 죄수들의 배를 폭파시키도록 결과가 나왔지만,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면서 결국 스위치를 누르지 못했다.
이는 투표라는 익명성의 행위와 스위치를 누른다는 공개된 행위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인 듯 하다.
하지만 죄수들의 배에서는 간수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죄수의 리더가 나서서
"당신들이 하지 못한 것을 내가 해 주겠다"며 스위치를 뺏아 바다에 던져버린다.
자신이 살기 위해 (범법자들이 탄 배이긴 하지만) 상대를 죽이려고 한 시민들의 투표 결과와 (민주주의적 방식)
리더의 독단적이지만 생명을 건 인간적인 결정이 (권위주의적 방식)
일종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 하다.
4. 여하튼 <다크 나이트>는 수퍼히어로 영화지만 묘하게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스파이더맨> 같이 수퍼히어로의 고뇌가 아니라,
수퍼히어로와 악당들의 싸움에 말려드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뇌라는 점에 있어서 더욱 특이하다.
당분간은 <다크 나이트>가 최고의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데 있어 이견이 없을 듯 하다.
PS 1. 크리스토퍼 놀란은 <메멘토> 이후 지지부진하다가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데 성공한 듯 하다.
그렇다면 나이트샤말란에게도 희망이 있단 말인가? ㅎㅎ
PS 2. 신혼여행으로 홍콩에 갔을 때, 길거리에 웬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있고 교통 통제하는 장면을 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있다.
다음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크리스찬 베일과 모건 프리만이 <배트맨> 시리즈 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 1면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젠장-_-
지하철을 타고 가려는데 마침 갖고 있던 책을 다 읽어버린 경우는 MP3 플레이어의 배터리가 나간 경우보다 난감하다. 이런 경우 가장 만만한 해결책은 영화 잡지를 사는 것이다-물론 운 좋게도 눈길을 끄는 기사가 타이틀로 나왔을 때의 얘기지만. 결국 <원스>를 보게 된 것은 이렇게 산 <씨네21>에서 강렬한 낚시 기사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스>는 뮤지컬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악과 음악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노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군무가 시작되며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뮤지컬 영화들과는 달리 <원스>는 매우 사실적인 뮤지컬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은 단 1곡을 제외하고 현장에서 녹음된 버전이며, 주인공 남녀인 글렌 한사드Glen Hansard와 마르게타 이글로바Markéta Irglová는 실제 뮤지션들이다. 글렌 한사드는 "더 프레임스The Frames"라는 밴드의 리더이며 마르게타 이글로바는 한사드와 같이 앨범을 냈었다. 또한 <원스>의 감독인 존 카니John Carney 역시 "더 프레임스"의 베이시스트였던 경력이 있다.
<원스>에서 대단한 드라마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한사드와 이글로바, 그리고 데모 앨범 작업을 같이 하는 밴드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환상적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로 활기넘치지만 뭔가 우충충해 보이는 더블린의 거리와 대대로 내려온 듯한 오래된 가게들, 다들 한 음악하는 파티 참가자들, 가난한 이민자들, 그리고 마치 한국의 동해안 같은 바다는, 음악으로 교감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질 듯 전해지지 않는 주인공 남녀와 매우 잘 어울린다.
사실 <원스>는 글로 설명하려면 그닥 할 말이 많지 않은 영화다. 어쨌든 한 번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한 번 "들어야"인가? ㅋ
얼마 전 포스트에서 지브리의 완성도 지지리도-_- 낮은 <게드전기>에 대해 혹평을 했었는데, 원작도 안 읽어보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게 좀 민망스러워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기 시작했더랬다. <빼앗긴 자들>과 <바람의 열두 방향>에서 르 귄이라는 작가의 책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엔 마음 단단히 먹고 스타트를 끊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생각보다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4권인 <테하누> 전까지의 얘기였지만-_-
(네오스크럼님이 알려주신대로)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는 5권의 장편과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내에는 <테하누Tehanu: The Last Book of Earthsea>까지 장편 4권만 번역되어 들어와 있다. 단편 중 두 편은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려있는데, 나머지 단편들은 아직 번역 안된 듯하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성입니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새매"라 불리우는 "게드"다. <게드전기>를 보면서 상당히 궁금했던 점 중 하나가 주인공은 아렌인데 왜 작품 이름은 "게드전기"인가...하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게드의 활약상은 3권인 <머나먼 바닷가The Farthest Shore>까지가 마지막이다. 4권인 <테하누>에서 게드는 마법사로의 힘을 잃고 자신감까지 잃어버려 존재감이 매우 희박해진다. 대신 2권인 <아투안의 무덤The Tombs of Atuan>에서의 "아르하"가 성장한 "테나"와 화상입은 꼬마아이 "테루"가 <테하누>의 스토리를 끌어가게 된다.
위의 설명만 봐도 <어스시> 시리즈가 상당히 방대한 스토리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미덕은 스토리의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스시>라는 또 하나의 세계는 "칼과 마법과 용"으로 대표되는 판타지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진부한 전형성을 탈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스시>의 이름의 법칙을 들 수 있겠다. <게드전기>에도 이 내용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그닥 중요하단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게드가 로크에서 거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들콩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 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행위인지 느낌이 팍 온다. 또한 용의 존재 역시 여타 판타지 소설들과 다르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용은 인간의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아예 다른 존재다. 하지만 <테하누>에서 용과 인간이 사실은 한 종족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노래가 나오는데, 이러한 발상들 자체가 <어스시> 시리즈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인이 아닌가 한다.
<어스시> 시리즈의 평을 검색해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3권인 <머나먼 바닷가>를 최고의 작품으로 친다. <머나먼 바닷가>는 악의 화신인 거미과 맞선 게드의 이야기이도 하고,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소년 아렌의 성장기이도 하다. 어떻게 보면 <머나먼 바닷가>는 판타지 소설의 공식에 상당히 충실한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보면 르 귄의 작품치고는 상당히 의아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중에서 <테하누>를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고 싶다. <테하누>에서 르 귄은 마법사 세계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가치관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의 위치를 게드가 아닌 테나와 테루가 담당하고 있는데, <테하누>는 이들이 마초스런 남성들-마법사, 불량배, 심지어는 테나의 아들까지-에게 당하는 고난이 스토리의 대부분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테나는 가부장적인 부조리한 세상을 인식하게 되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1~3편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었던 게드마저도 자신이 지닌 가부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재미있다.
<테하누>에서는 분명 전편이 지닌 경쾌함-주인공이 악의 무리를 해치우는-은 발견할 수 없다. 대신 테나와 테루가 여성-장애인으로 겪게되는 갖은 고난을 따라가며 분노와 함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답답함의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마지막에 칼레신이 등장하여 악당들을 쓸어버렸을 때의 통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_-ㅋ
스포일러 끝
이건 달군의 이야기였지만, <게드전기>의 개봉을 계기로 <어스시> 시리즈의 나머지 번역판이 나와주길 바랬는데, 흥행 실패 때문인지-_- 영 소식이 없는 듯 하다. <테하누> 이후의 이야기인
* 번역안된 단편들과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드물다. 제작 전부터 전작의 경계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제한을 안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전작의 아우라가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오히려 그 아우라에 짓눌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아온 숱한 후속작들이 그렇게 제작되었고, <에일리언>, <매트릭스>, <스크림>, 그리고 갖가지 "맨" 시리즈들이 그랬듯이 참신했던 전작의 설정과 캐릭터를 다른 스토리로 한 번 더 반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공각기동대 S.A.C GIG>(이하 우익 성향의 오시이 마모루 군국주의 성향의 시로 마사무네가 참여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이해가 갈 만한 설정이기도 하다.
여튼, 난민 문제를 둘러싼 스토리는 매우 복잡하다. 크게는 "난민을 배척하려는 일본 정부 + 개별 11인을 위시한 우익적인 일본 국민" vs "한 때는 개별 11인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난민의 지도자가 된 쿠제 히데오 + 아시아 난민"의 대립구도이면서, 쿠제, 그를 추적하는 공안 9과,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프로듀스하려는 고다 카즌도와의 쫒기고 쫒는 관계가 핵심이다. 만약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더라도 큰 정치적/사회적 이슈인 난민 문제를 다루다 보니까 얘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중에는 미국과 중국의 개입이 나오고 핵을 쏘네마네하는 민감한 주제까지 등장하는 등,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이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가을엔 왠지 Kent를 들어줘야 할 것 같은;;;
얼마 전에 지브리의 새 애니메이션 <게드전기>가 스크린에 걸렸다. 미야자키 할배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상상 너머의 세계를 그려내는 그림과 신비로운 음악, 탁월한 연출로 인해 하야오 옹과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이름에 나름의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게드전기>를 개봉 전부터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지브리"라는 이름보다는 "어슐러 르 귄"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아직 르 귄의 작품으로는 <빼앗긴 자들>과 <바람의 열두방향>밖에 읽지 못했지만, SF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탄탄한 세계관과 고유한 사회구성, 그리고 그러한 사회 구조에서 도출되는 캐릭터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미 개봉 전부터 <게드전기>를 기대한 사람들은 매우 많았으리라.
...그러나-_-
<게드전기>의 평을 검색해보면 대충 분위기가 짐작되겠지만, <게드전기>는 (웬만해서는 이런 평을 하지는 않는데) 엄청난 졸작이다. 일단 연출 자체가 너무나 어설퍼서 긴장감있게 스토리를 끌고나가기는커녕 개연성을 맞추기에도 급급해 보인다. 캐릭터들은 역시 지나치게 평면적인데다가, 그들의 히스토리를 설명해 주는 것이 거의 없어서, 작품과 캐릭터가 따로 노는 느낌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아렌이 그의 아버지를 칼로 살해하고 도망쳐나오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난 영화가 끝날때까지 아렌의 이 행동이 설명되기를 기대했으나 결국 끝까지 납득하지 못했다. 다만 전형적인 지브리 풍의 아름다운 미술과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3D만큼은 인정받을만 하지만, 예쁜 그림을 보고 싶으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한숨)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원작은 4편으로 이루어진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다. 같은 배경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인 이 시리즈는, 르 귄이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읽을 만한 작품으로 썼다는 말처럼, 그녀의 작품 중 그나마 어렵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_- <어스시의 마법사>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하이타카, 즉 게드로서, 원작에서는 <게드전기>에 등장하는 나머지 인물들인 아렌, 테루, 거미 등이 같이 나오지 않는다 한다. 또한 자신의 그림자에 쫒기는 아렌은 원작에서 하이타카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하니, 독자적인 세계관을 지닌 4편이나 되는 판타지 소설을 한 편의 애니로 압축하는 것이 분명 쉽지는 않았을 것이고, 너무나 성급한 일이었음이 분명한다. (또 한숨)
그래서 하야오 할아버지가 아들은 미야자키 고로에게 감독을 맡긴 것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 속설에는 하야오 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로가 감독을 맡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잘 봐 줘도 지브리 식의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에 짜맞춘 듯한 <게드전기>를 보면, 하야오 옹도 자신의 실수를 통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르 귄은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믿고 <어스시의 마법사>를 영화화하기로 했다 한다. 그러다 낮은 완성도의 <게드전기>를 보고 이에 대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답변을 실었다는 뒷 얘기가 있다. 잉글리시의 압박이 느껴지신다면 번역글(#1, #2)을 보시라.
결국 지브리는 강력한 이 한 방으로 <센과 치히로의 모험>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쌓았던 신뢰를 다시금 무너뜨리고 새로운 우려를 낳게 하고 말았다. 이와 더불어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은 90% 확률로 실패한다는 나의 징크스도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_-; 애니의 세계는 핏줄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보네;;;
댓글 목록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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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에 딜레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죠...하지만, 제가 이상한건지 몰라도...사람들이 그렇게 착할리가;;;;;;;;부가 정보
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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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를 좀 잘 봐주셨군요. 저렇게 돈 쳐들인 영화가 이정도라니, 역시 양이 질로 전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지 라고 생각했죠. 의협심으로 가득한 검사가 여자가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돌변하는 설정도 야리꾸리하고... 그냥 딱, 돈많은 인간들이 경찰들이랑 뒤골목 깡페들을 악의 축이니 뭐니 하며 떼려잡는 얘기 아닌가 생각했어요. '아나키'니 '혼란'이니 아주 참 지랄맞게 미국스럽더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솔직히 볼만한 헐리우드 영화 없겠지만...부가 정보
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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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저도 그렇게 생각했더랩니다. 아마 현실이었으면 둘 다 눌렀을꺼야...하고 말이죠.무나//음 말씀하신대로 좀 후하게 봐 준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 수퍼히어로물이라는 장르가 후지다보니 말이죠. 이 영화를 마스터피스라고까지는 생각 안하지만,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
부가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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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놀란이 스스로 밝혔듯이 배트맨이 부시를 염두에 두고 설정한거라면 조커 즉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이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는 광기의 세력으로 나온다는게 머랄까요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부가 정보
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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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이 그런 말을 했었나요. 음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를 관철시키는데 수단을 안가린다는 점에 있어서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부시라니...좀 어울리지 않는군요. 정말 그것이 놀란의 의도였다면, 매우 실패한 설정이란 생각이 듭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