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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S.A.C 2nd GIG (Ghost In The Shell S.A.C 2nd GIG, 2004)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드물다. 제작 전부터 전작의 경계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제한을 안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전작의 아우라가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오히려 그 아우라에 짓눌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아온 숱한 후속작들이 그렇게 제작되었고, <에일리언>, <매트릭스>, <스크림>, 그리고 갖가지 "맨" 시리즈들이 그랬듯이 참신했던 전작의 설정과 캐릭터를 다른 스토리로 한 번 더 반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의미에서 <공각기동대> 시리즈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듯이 원작 만화와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그리고 TV판 <공각기동대 S.A.C>(이하 ) 사이의 복잡한 원작 관계도 그렇지만, <공각기동대>와 는 일반적인 전작-후속작 관계라고 하기엔 애매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둘은 분명 원작 만화의 설정과 캐릭터를 안고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전뇌화된 사회에 대한 해석과 철학에는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조작된 기억을 사실로 믿고 있던 남자의 에피소드와 고스트에 대한 쿠사나기의 집착 등은 모두 전뇌화 시대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이 사회 전체에서 고유한 개체임을 증명해 주는 것은 오로지 고스트 뿐인데, 이 고스트라는 것이 미시세계의 쿼크 입자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 실체를 증명할 방법조차 모호하기 때문이다. <공각기동대>에서 일련의 사건들은 쿠사나기 개인의 고민으로 수렴해 가고, 쿠사나기는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자아를 탄생시키면서 결말지어진다. 결국 <공각기동대>는 쿠사나기라는 한 개인에 대한 스토리이다.


반면 의 경우에는 쿠사나기 개인보다는 "공안 9과"라는 팀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쿠사나기의 비중은 매우 높지만, 개별 에피소드에는 공안 9과의 멤버들이 그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는 전뇌화 사회에서 충분히 발생 가능한 테러 사건인 "웃는 남자笑い男" 사건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웃는 남자"를 사이에 두고 공안 9과와 "세라노 게노믹스"라는 거대 마이크로 머신 회사, 그리고 여기에 이해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는 정치권이 벌이는 싸움이 주요 스토리 라인이지만, 제목인 Stand Alone Complex의 의미대로 "웃는 남자"라는 오리지널의 부재, 카피들의 등장, 그리고 이 카피들의 영향력 등 사회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이슈를 같이 다루고 있다. <공각기동대>와 비교하면 는 매우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며, 동시에 철학적이다. 결국 세라노 사장의 죽음-스캔들의 발각으로 인한 정권 교체-공안 9과의 해체로 가  결말 지어지는 것은 보통 사회적인 문제가 봉합되는 방식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으며, 결말부에 나오는 도서관에서의 "웃는 남자"와 쿠사나기+아라마키의 대담(및 스카웃제의-_-)은 가 지닌 철학적 문제제기를 총정리하는 마당이라 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 S.A.C GIG>(이하 )는 이보다 스케일이 크다. 대신 전작에 비해 사회적인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정치적인 비중을 크게 키운 모습이다. 은 복잡한 아시아 난민 문제가 주요 스토리 라인이다. 여기서 아시아 난민이란 비핵대전(헉 <애플시드>?)으로 인해 한반도가 황폐화되었고 이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주변국으로 몰려가 생긴 것인데...뭐 한국인이라고 보셔도 무관하겠다-_- 의 제작에 우익 성향의 오시이 마모루 군국주의 성향의 시로 마사무네가 참여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이해가 갈 만한 설정이기도 하다.

여튼, 난민 문제를 둘러싼 스토리는 매우 복잡하다. 크게는 "난민을 배척하려는 일본 정부 + 개별 11인을 위시한 우익적인 일본 국민" vs "한 때는 개별 11인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난민의 지도자가 된 쿠제 히데오 + 아시아 난민"의 대립구도이면서, 쿠제, 그를 추적하는 공안 9과,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프로듀스하려는 고다 카즌도와의 쫒기고 쫒는 관계가 핵심이다. 만약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더라도 큰 정치적/사회적 이슈인 난민 문제를 다루다 보니까 얘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중에는 미국과 중국의 개입이 나오고 핵을 쏘네마네하는 민감한 주제까지 등장하는 등, 은 웬만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만 에서의 철학적인, 또는 사회적인 문제의식은 에 다소 못미치는 듯 하다. 에서는 사이버 토론방에서의 네티즌 찌질이-_-들의 토론과 앞에서 설명한 도서관에서의 대담 등에서 Stand Alone Complex라는 주제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뇌화 사회의 Stand Alone Complex를 과연 있을 법한 현상이고 현재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었다.

에서도 쿠제의 난민과의 소통 방식이나 그의 혁명론을 통해 다소 철학적인 내용들을 끌어낼 수는 있긴 하다. 하지만 전공투 세대에서 더 이상 진보한 것이 없는 것 같은 오시이 마모루의 혁명론 탓인지 의 철학은 그다지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명제를 쿠제가 긍정하는 대목에서 드러나는데, 그는 이 말을 함으로써 "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원하는 계몽적인 혁명 지도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네트워크에 난민들의 고스트를 업로드-_-한다면서 이것을 (맑스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상부구조로의 상승이라는 이상야릇한 말로 포장한다. 개인적으로는 고다보다 비중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 쿠제라는 캐릭터는, 좋게 말하면 다면적인 캐릭터이고 나쁘게 말하면 모순적인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것은 큰 스케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철학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것처럼, 화려한 액션과 숨막히는 긴장감, 물 흐르는 듯한 사건 전개, 그리고 다치코마의 자기 희생에서 나오는 감동의 물결까지, 무척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대사가 너무 많아서 뒤로 돌려가며 봐야 했던 에 비해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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