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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수없는그리움으로 살아온 동지.. 노찾사

 

늦은 저녁을 먹고 돌아와 켜놓은 TV에서는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래요, 그 사망신고 제가 냈어요. 할머니가 죽는 것보단 아버지가 죽는 편이 나으니까.

방구석은 온통 곰팡이 슬었고 전기도 물도 끊겼는데 집주인은 월세를 올리겠다고 하고.

동사무소에서는 노름빚진 아버지땜에 할머니 버리고 도망간 삼촌땜에 생활보호대상자가 안돼 그깟 20만원 못주겠다고 하고.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할머니 약값을 못대니까 그래서 아버지 사망신고 제가 냈어요."

드라마 속 구색맞춰 끼워넣은 저 통속적인 대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엘 다녀온 터였습니다.

그들이 마이크를 잡은지 20여년 가량 흘렀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그동안 제가 마악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것으로부터 시작해

사춘기 시절을 겪고 첫사랑에 아파하다

온갖 수식어를 섞어 세상 모든 진보와 혁명을 밤새워 술잔에 털어넣던 그 모든 시간들이 흐른거지요.

그동안 아빠 허리만큼 오던 제 키는 훌쩍 커 어느덧 아빠의 자전거만해졌고,

아빠도 그때의 할머니 나이만큼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시간은 흘러 나의 키와 아빠의 나이는 확실히 변해있지만

우리가 사는 곳이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갸우뚱입니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기 위해 아버지의 사망신고서를 냈던 여고생의 울먹임,

그녀와 병든 할머니가 기거하던 월셋방은 20년전 모습 그대로인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노래하겠다고 했는지 모릅니다.

좋아진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한 이 아슬아슬한 변화의 경계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겠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공연장 입구에서 잠깐 걱정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를 놓고 내려오기만 하면 바로 관객 속에 묻혀버릴듯한 그들의 수수한 외모 의상에 한번 안도했고

힘은 빠졌을지언정 느끼한 노련미가 첨가되지 않은 그들의 담백한 목소리에 또 한번 안도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퇴짜맞은 소녀를 위해서

키만 훌쩍 커버린 나의 되먹지 않은 이십대를 위해

다만 향수였을지언정 공연 내내 감격겨워하던 옆자리 아줌마부대의 반나절 추억을 위해서라도

그들이라면 노래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끝으로 안도하려고 합니다.

 

노래가 변했다, 시대가 변했다, 목소리가 변했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겠지요

이미 그들도 각오하고 있을

피할 수 없는 얘기라면

저는 조용히 이 자리에 서서 거기에 박수만 더하기로 했습니다.

 

각기 다른 여럿이 모여 새로운 하나가 완성되듯

그들은 여기에 있으며 노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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