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4.19

 

4.19 다.

이 날의 역사적 의미야 대체로 나만큼들은 아실 것이니

오늘은 특별히 나의

4.19에 얽힌 '경건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당시,

고대를 제외한 북부총련은 전부 모여

수유리 4.19 기념탑까지 뛰어가며 이 날을 기념하곤 했다.

성대가 와서 성신과 합류하고

또 차례로 덕성 서경 국민대 등과 합류해 4.19 기념탑까지 뛰어가서는 4.19를 기념하는 행사.

 

대여섯 학교들이 모이니 그 규모가 엄청나기도 하거니와

길놀이에 구호에 노래까지 부르며 움직이니 그 시끌벅적 소란과

날 좋은 봄날 차없는 도로를 마구 누비고픈 학생도 다수 섞여있던 탓에

4.19의 무거운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뜀박질 행사는 거의 축제분위기에 가까운 터.

 

전날 학생회 무슨무슨 행사에서의 과음 덕에

겨우겨우 눈을 뜬 나는

행사 시간이 다 되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스타트 장소인 태극당 앞에 도착했다.

 

여튼

사전행사는 진행되고

학생들은 야호- 하며 달리기 시작.

 

수습안되는 숙취에도

무난한 스타트에 안도하며

방송 차량 쪽으로 가는데.



이상하다, 행사준비용 차량만 행렬 맨 앞에 가고 있는거다.

방송차량을 찾기 위해 나는 더 앞으로 가보았으나 거기에는 길놀이 행렬 뿐.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

집행부가 오더니, 빨리 차에 타 방송을 시작하란다.

그리고서는..

1단 아시바가 서있는 차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달리는 트럭에 설치한 아시바 위로 올라가 방송을 하라는

저 맨뒤 뜀박질 행렬의 볼 권리를 사수하려는 주최측의 엽기적인 배려덕분에

 

나는

머리 위로 온몸의 술기운이 폴폴 증발하기 시작했고

양 손끝에서는 맥이 스멀스멀 풀려나가고 있었으며

발 밑엔 아무것도 없는듯 허공에 떠있는 착각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뜀박질 행렬의 속도에 맞춰

아무리 천천히 움직인다 하여도

또 아무리 살살 달린다 하여도..

달리는 차 아시바 위에서?!

 

가뜩이나 술이 덜 깬 내가

흔들흔들 아시바 위에서

한 손엔 마이크 또 한 손으론 팔뚝질을 하라시니;; OTL

 

아아- 나는,

혼미한 정신을 담보로 이 축제분위기에 편승해 줄 것인가!

생명에 대한 고귀한 자존을 이유로 이 분위기를 박차고 분연히 일어설 것인가! 

 

허나..

고민도 잠깐..

오로지 '각'을 위해

한여름에도 검은 정장을

세끼를 굶어도 배고프단 소리를 못하게 하던 집행부에 의해

내 몸은 이미 아시바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머리속이 흰 도화지가 되었고

중간쯤엔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오게 무서워졌으며

마지막엔 내 명을 운에 맡기는 경건한 마음가짐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4.19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경건하게 보낼수있었던 것.

=ㅅ=

 

.

.

4.19 다.

나의 후배들은 이 날을 기념해 달릴 것이며

나의 후배들의 또 후배들도 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오늘의 의미를 다르게 또 같게 기억할터.

 

누가 어떻게 기억하든

4.19는 돌아오고

 

후배들의 또 후배들은 계속 달리며 그들의 갈증을 해소할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

나의 선배들이 그러하셨듯.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