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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같은 공기 속이어도

나는 여기에 당신은 거기에 앉았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나

내가 여기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물며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 동안

당신과 또 다른 당신에게는,

사랑하고. 헤어지고. 울고. 웃고. 화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아주 잘 알고

너는 우리를 아주 잘 알고 있겠지만

그건 단지 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뿐

또 우리가 그렇게 보이는 것일뿐.

실제의 나는 그렇지도 않으며

보름달 뜨면 헐크로 변신하는 늑대인간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돌변하는게 우리의 진짜 모습일수 있겠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너는 우리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나 너 우리가 모이면 토요일 저녁 버라이어티쇼보다도 더 재미나고 다이나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터.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노인은 눈을 감고 무엇을 회상하는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는 타인의 친절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건 그만이 알고 있다.

그건 그녀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

우리는 다양한 군상으로 앉아 제가 내릴 곳을 기다린다.

어떤이는 우아한 일등석 식당칸에 여유롭게 두자리를 잡고 앉아 방금 헤어진 낯선 여인과의 로맨스를 분절적으로 상상하며,

또 어떤이는 자기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미쳐 알지 못했던 과거의 사실들에 새로운 심정이 되고,

또 어떤이는 처음으로 맞부닥친 텍스트 속 난민을 이웃하며 자신의 소소한 행복과 그네들의 생사의 답안지를 놓고 왁자한 고민에 빠진다.

 

1등석과 3등석 마냥 전혀 비슷할 것 없는 이들의 존재는 희한하게도 언뜻언뜻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조심스레 서로의 경계를 뛰어넘기도 한다.

 

물론 서로는 서로를 여전히 잘 알지 못하고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일단 지우개를 들고 1-2-3등석의 선을 조금씩 지워나가기 시작한다면,

그 노인은 난민 꼬맹이에게 따끈한 우유를 건넬수도

고집불통 그 노파가 실은 여리고 상처많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새로이 알게 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너무 호들갑떨지는 말자.

그네들은 본래부터 그런 사람들이었으나 눈치 없는 우리가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 뿐.

 

게다가

여전히 열차는 로마를 향히 달리고 있고

수많은 우리는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티켓 tickets, 2005>

이탈리아, 영국,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에르마노 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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