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3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10
    경주
    름달
  2. 2008/02/05
    공간
    름달
  3. 2008/02/04
    IPleft 엠티
    름달
  4. 2008/01/29
    그의 살아있는 느낌
    름달
  5. 2008/01/09
    결혼생활2006(1)
    름달
  6. 2008/01/03
    2007
    름달
  7. 2008/01/03
    름달
  8. 2007/12/13
    toon.jinbo.net(4)
    름달
  9. 2007/12/10
    보고싶다
    름달
  10. 2007/12/08
    매력남녀
    름달

경주

일정: 2월 6일~7일

찾아간곳: 경주남산, 감은사지 삼층석탑, 문무대왕암/ 불국사

 

1년에 한번, 집에 가야하는 구정.

고등학교때부터 집을 나와 향수병이 좀 심했었는데, 대학을 간 이후로 향수병은 커녕 집에 가기가 싫어졌다.

친지들이 보고싶은 것도 아니고, 만날 친구도 없고, 좋아서 싸돌아다녔던 자연산천도 예전처럼 느껴지지않고, 아빠하고 대화라는 걸 한지도 한참전이라.....보통 2박3일동안 방바닥에 붙어서 텔레비젼보고 먹고 자고 뒹굴뒹굴.....그나마 격식차린다고 설날아침 세배할때는 화장하고 옷도 평소와 달리 입어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귀찮아지고....동생들은 안그런데 나만 그렇다.

 

이번설에는 연휴도 길다.

그래서 짱돌을 굴려서 경주를 들렀다 집에 가기로 일찌감치 계획을 세웠다. 경주는 중학교 2학년때인가 한번 가봤는데, 겨울안개가 바닥까지 자욱한 날의 느낌이 좋아서 겨울이면 가고 싶었던 곳이다. 5일 오후 2시에 버스를 타고 6시 반경에 도착했다. 농협하나로마트가 보이길래 삼겹살+목살 1근, 고추, 쌈장, 새송이, 깻잎, 쥐포를 샀다. 설준비하는 사람들로 빠글빠글.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데 이미 캄캄해서 주변길이 보이지않았지만 기대감은 점점 부풀어올라.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후라이팬에 삼겹이를 올려놓고 익을동안 막걸리를 마셨다. 일동막걸리는 별로였다. 근데 삼겹살이 정말 정말 쫀득거리고 맛있었다. 겨울밤은 깊어가고 나는 놀러왔고 경주는 어떤 곳일까 설레이고 하아하아 술이 술술 넘어가고.....그래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6일 아침

5시에 깼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한달정도는 경주에 머물러야한다고 되어있었지만

나에게는 하루하고 반나절정도의 시간이 있다. 어디를 가야할까 욕심을 부리다가 첫날은 남산, 감은사지, 대왕암/ 다음날은 불국사, 경주박물관로 꼽아봤다. 우동사발면과 빵으로 아침을 먹고 설렁설렁 걸어나왔다. 택시가 옆에 서더니 택시기사아저씨가 우리에게 셈을 해보란다. 버스요금이랑 별로 차이안난다는 말에, 그리고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않다는 생각에 택시를 탔다. 남산쌍탑으로 갈거예요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자기 핸드폰에 찍어놓은 사진이 있다며 보여주었는데 그게 남산쌍탑인지 알 길이 없어 그런가보다고 아저씨에게 모든걸 맡겨야했다. 아저씨는 삼릉으로 가면 된다고 결론을 내리시더니 경주에서 제일 큰산은 '단석산'이라고, 김유신장군이 그 산에서 도를 닦다가 하늘에서 칼을 내려받았는데 그 칼로 바위를 내려쳐서 단방에 잘랐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그 산 정상에 두조각이 난 바위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단석산은 국립공원이었다. 꽤나 큰 산인 모양이다. 경주빵과 황남빵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주었는데, 황남(동네이름)에 살던 분이 만들기시작했는데 돈을 꽤 벌었다고 한다. 그 분이 나이가 들자 황남빵 만드는 기술을 아들에게 전수해주지 않고 함께 빵을 만들었던 이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단다. 그런데 아들이 사업을 했는지 우쨌는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황남빵 사업을 자기가 직접 했단다. 그러면서 '황남빵'에 대한 특허(인지 상표인지...)를 내서 황남빵에 대한 독점을 하게 되면서 다른 이들은 '경주빵'이라는 이름으로 그 빵을 팔게 되었단다. 경주 곳곳에 경주빵, 찰보리빵집이 정말 많았다. 이런 저런 아저씨의 얘기가 재미있어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영화'밀양'에서 전도연이 송강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밀양으로 들어갈때 송강호가 '밀양은 한나라당 도시고예...사람사는데가 똑같지예..' 뭐 이런 대사를 했던거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유쾌했다.

 

9시 45분경에 삼릉에 도착해서 삼릉계곡마애불, 선각육존불-상선암-금오산-용장사지석탑과 석불-임도를 따라 통일전에 이르니 오후 2시경. 금오산은 높거나 험한 산이 아니어서 등산을 하려했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않을 것이다. 남산은 걷고 보고 느끼는 산이다. 그리고 나이가 든 산이다. 느낌이 그렇다. 인왕산도 나이가 든 느낌인데 남산은 좀 귀여운 느낌이 같이 있다. 남산은 빨리 오르면 곳곳의 불상들과 문화재들을 놓치기 싶상이다. 상선암위에 부조로 새겨진 불상도 멀찍이서 봤다. 불상이나 절터나 요란하게 나 여기 있다라고 표시를 내지 않는다. 경주자체가 그런 것 같다. 첨성대와 분황사탑도 버스안에서 우연히 봤다. 경주는 느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따박따박 걸어야 할 것 같다. 통일전으로 내려오니 옆에 화랑교육원이 있고, 남산과는 정말 안어울리게 각을 맞춰서 널찍하게 지어놓고는 무슨무슨 왕의 업적이 어쩌고...안내판을 죽 읽다보니 박정희가 어쩌고 해서 통일전을 만들었다나...딱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걸 떠나 경주와 어울리지않는 저런거를 만들어서 뭘 과시하여 뭘 했나 싶었다. 짐작컨대 경주관광오는 사람들에게 통일전과 화랑교육원이 많이 알려져있는 모양인 듯. 택시기사아저씨도 남산에 데려달라고 했을때 통일전과 화랑교육원으로 갈까를 먼저 물었었다. 여하튼 남산쌍탑은 못보고 돌아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공간

일요일에 아침9시부터 저녁9시까지 약국에서 알바를 한다.

근처병원 3곳이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서 오전에는 엄청 바쁘고, 오후에는 조금 한산하다가 저녁에는 다시 바빠진다. 대체로.

 

지난주에 있었던 일인데

오후에 할머니가 무좀약을 사러왔다. 연고를 드렸다. 할머니가 누구를 좀 기다렸다 가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서비스로 드리는(약국에서 손님끌려고 공짜로 매실, 비타민, 쌍화탕 같은 음료를 준다) 쌍화탕을 하나 드렸다. 곧 다른 할머니 한분이 오셨다. 두분은 약간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곧 대화를 시작했다.

할머니가 무좀연고 샀다고 하니 친구할머니가 식초에 정로환을 녹여서 발을 담가보라고 권한다. 그러자 할머니가 해봤는데 소용없다고, 각질이 벗겨지고 깨끗해져서 좋아지는 듯 하더니 나중에는 더 안좋아지더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얘기는 이런 저런 주제로 퍼져갔다. 그러기를 1시간 30분 정도 하셨다.

 

대학병원앞이나 중소병원이상의 규모가 있는 병원앞에 있는 약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초단위로 약을 받아서 가기가 바쁘고 때로는 완전 아수라장 마냥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다보면 복약지도나 환자가 궁금해하는 것을 묻고 답할 시간도 없다. 지금 다니는 곳은 동네약국이다. 시간적 여유가 좀 있고, 오는 환자들이 자기들끼리 아는 경우도 많다.

 

할머니들끼리 나누는 정보공유는 약국에서 혹은 병원에서 듣는 의학, 의약 정보보다 더 유용할 경우가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의 손에 넘겨지면서 저런 정보공유는 비과학적인 혹은 위험한 것으로 취급되어졌던 것 같다. 연달아 드는 생각은 약국은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란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약국은 '사적 영업소'가 된지 오래된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약국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다리가 아파서 잠시 앉았다가거나 아는 사람과 잠시 수다를 떨고 가는 사람, 좀 만만해보이는(?) 약사를 상대로 넉두리를 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역시 내 경험으로는) 대부분 나이가 좀 있는 여성들이다. 아주머니, 할머니. 그녀들이 돈을 내지않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돈을 내더라도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약과 약국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왔고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얽히는 하루.....

 

해가 질 무렵

젊은 여성이 왔다. 필요한 약을 사고는 물어볼 게 있단다.

그 전에 '결혼하셨지요?'라고 묻는 게 쫌 그랬다.

그녀는 '태몽은 임신후에 꾸기도 하나요?'라고 물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결혼을 했어도 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동네어르신들에게 물어보는게 더 나을텐데 왜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 듣는 질문이기도 하고 약간 황당함마저 들어서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기분이 들었다.

태몽이란게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우쨌든 태몽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련의 과정에서

존재를 알리는 첫 징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아프고 죽는 과정상의 정신적, 신체적 변화에 관해 문의하기위한 1차적으로 혹은 가장 문턱이 낮은  곳을 약국으로 생각한건가?

약국에 와서 약을 안사가지고 나가면 미안해지고 무안해지는 그런 곳이 아니라....사람이 많이 아파야 약국이나 병원이 잘 되는 지금의 현실과 다른 상상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IPleft 엠티

일시: 2월 2일~3일(토,일)

장소: 강촌, 검봉산

등산코스:

○ 효심민박집-(5분)-강선사 입구-(44분) -강선사- 강선봉(485m)-(32분)-제6지점-(13분)-검봉 정상-(45분)-구곡폭포, 문배마을 갈림길-(17분)-구곡폭포-(15분)-구곡폭포관광단지 매표소 ( 약 8km, 4시간 )
http://www.koreasan.com/san-search/san_view_form.php?num=127&p=1&mode=1&keytext=검봉&flag_head=

 

산이 부른다는 홍지, 겨울엔 온천이 좋다는 다섯병과 지성의 의견사이에서 둘 중 산이 더 좋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IT노조 엠티와 겹친 동준이 있어 장소는 고민할 필요없이 강촌으로 정해졌다. 즉 강촌에 있는 산으로 가자가 된 것이다. 그 산은 '검봉산'

토욜 청량리역에서 10시 30분 무궁화호를 타고 12시 14분에 도착.

12시 30분에 따로 차를 굴려 온 오병과 만나 강촌역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출발했다. 아무리 촌스럽다고 하지만 비스듬히 어깨를 부딪히고 15도 각도로 자세를 잡는데는 오랜 시간동안 검증된 무엇이 있을 것이다. 숙소에 차와 짐을 놔두고 김밥을 사서 등산을 시작한 시각은 1시 6분.

 

원래 선택한 등산코스는 위의 것이 아니었으나

갈림길을 본 적도 없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올랐는데도 설명에 나와있던 2번의 쇠줄타기가 나오질 않더니 첫번째 봉우리에 올랐는데 그것이 강선봉, 코스변경이 문제가 아니라 순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기때문에 가다보면 길이 있겠지라고 여유있게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등산안내코스에 강선봉을 지나는 위의 코스가 나와있어 시간과 거리를 예상하면서 등산을 할 수 있었다.

강선봉까지는 거의 오르막인데, 다섯병은 어지럽다했고, 희진은 계속 배가 고프다고 했다. 홍지는 젊어서 그런지 산이 그녀를 불러서 그런건지 쑥쑥 올라갔고, 지성은 생기신대로 가벼이 심지어 뛰어올라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옷을 몽땅 지고 올라가는 등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등산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는데....혼자 혹은 둘이서 등산을 하면 좀 심심하다. 그래서 더 오름과 내림, 오솔길, 나무, 새, 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장점이 있지만. 여럿이서 등산을 하면 앞,뒤사람 코훌쩍이는 소리도 들리고 끝없이 수다가 튀어나오고, 서로 가져온것을 필요에 따라 공유하기도 하고-음식뿐아니라 옷, 물품 등-등산의 요령을 배울 수도 있다-다섯병이 왈, 내려갈때는 다리를 약간 벌리고  ㅅ자모양으로 걸으면 균형잡기가 좋단다. 맞더라고. 딱따구리가 나무파는 것도 봤다. 까마귀 소리도 좋았다. 능선따라 난 오솔길..나는 그런 길이 참 좋다)

 

설명에 나와있는 예상시간은 4시간인데 우리는 3시간 45분 걸렸다.

내려오는 길에 동동주집....좁쌀동동주와 감자전, 칡전, 도토리묵...

등산한데다 추운데 있다 따뜻한 곳에서 색깔마저도 찐한 동동주를 마시면 혈관을 타고 솨악 퍼질 거라 기대했는데 느낌이 안왔다. 그래서 더 먹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고만 먹자 했다. 저녁으로 삼겹살에 쇠주를 먹어야하니까. 나는 저녁에 서울로 돌아와야하는데 ㅠㅠ

자전거길을 따라 숙소까지 걸어왔다.

조용한데 집들에서는 다들 불이 켜져있다. 그러면 안무섭다(밤길은 어딜가나 여성에겐 무섭다. 게중 변두리길이나 시골길이 밤에 무서운 이유는 내가 중학생일 무렵 한창 봉고차와 인신매매로 떠들썩했다. 도시에서의 밤길과 달리 한적한 밤길은 어릴적 기억과 함께 무섭다) 

하늘에 별이 떴다. 바람이 차가우면서 시원했다. 그렇게 걷는게 좋았다. 서울로 돌아가야하는데 마음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얕은 내리막길이 나오자 랄랄라스머프를 하자고 했다. 랄랄라 스머프는 내가 기분좋을때 종종 하는 놀이인데 옆에 있는 사람과 손을 잡고 '랄랄라 랄랄라' 스머프 노래를 부르면서 팔짝팔짝거리며 내려오는거다. 사람들이 해보더니 부끄럽다했다. 나랑 같이 사는 사람도 처음에는 부끄럽다했는데 지금은 좋아한다. 랄랄라 스머프를 하고 나면 기분이 억수 좋아지고 오버모드가 자연스러워진다.

 

숙소-강촌에 살고싶다-에 도착해서 다섯병과 지성이 장을 봐왔다. 햇반을 중탕하고, 삼겹살, 목살 3근과 풍부하게 많은 술들을 펼쳐놓고 먹다보니 술은 안취하는데 가기가 넘 싫어지는 거다. 마지막 기차는 10시. 민호와 동준이 함께 한 시간은 저녁. 정우는 도착하면 내가 떠난 시간....아아하 마음이 약해지는거...

사람들도 은근히 가지말라고 잡네...희진이 새벽기차타고 같이 가자고 한다...그러다 정우가 새벽에 차로 약국까지 태워준단다...그래서 내일 버텨보지머 너무 쉽게 결정을 하고....이미 오버상태에서 기분이 더 좋아져서 술을 막 들어갔다. 그래도 취하지않는 것을 '때가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엄청 마셨던 것 같다.

.

.

.

.

새벽5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2시반쯤 잤다. 모두들 나를 위해 핸폰알람을 다 맞춰주었다.

5시에 나오는데 바람은 우찌나 찬지...6시 45분쯤 집에 도착할때까지 정우의 분한 사정에 대해 들었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썩을놈의 돈과 돈에 얽힌 사람들....

12시간 일했다. 아침에는 후덜거리더니 점심을 먹고나서 서서히 회복했다. 근데 전날 대부분의 술을 내가 마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좌절했다. 더 우울하게 만든것은 민호, 정우, 희진, 홍지, 동준과 나눈 얘기가 별로 없다는 거. 나는 그 많은 술을 마시면서 뭘한거지? 에효..

사람들은 산뜻하게 축령산휴양림에서 산소를 마시고 있다나...부러워부러워....

 

참 좋았는데 참 재밌었는데

참 잘 놀았는데.....

올해는 좀좀좀 눈빛을 보고 귀를 기울이며 살자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의 살아있는 느낌

그가 어제저녁 7시경에 전화를 했다.

그는 명동성당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집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가 '웅 알았어'하고 전화를 끊을텐데 그때의 스산함이 한동안 가슴에 남을테지라고 생각하는 찰나...그는 전화를 끊지않았다. 지금이라도 회의에 나오라는 말도 하지않았다.

그는 '오늘 회의때 무슨 안건들을 얘기해야하지?'라고 물었다.

앗....순간 '**이 안건지를 준비해온다고 하던데'라고 말할까 기냥 내가 말할까 망설이다가

차별금지법대응이랑, 유엔사회권규약관련 보고서랑, 푸제온이랑, 후원회랑...어쩌구저쩌구 논의해야돼.

그는 나중에 전화할께라고 덧붙이며 끊었다.

 

그가 오늘 3시쯤 전화가 왔다.

그가 전화한 것은 어제 회의결과나 과정을 알려주려고 전화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살아있는 느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주말부터 명동성당, 차별금지법 대응 기자회견 등에 참여하면서 나름! 강행군을 했다.

그는 몸이 피곤한게 아니라 상쾌하다며 '살아있는 느낌'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게 '살아있는' , '살기위한' 느낌은 몸무림으로 때론 간절함으로 드러난다.

 

그와 그의 '살아있음' 혹은 '살고 싶음'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된건 1년여밖에 되지않는다.

그는 2006년 8월 국제에이즈회의를 참가하기위해 캐나다를 다녀온 직후 다리 힘을 쓸수없다했고.

종로에 의료기상에 가서 지팡이를 사기도 했는데 결국엔 입원을 했고, 의사한테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우는 걸 처음 봤다. 의사가 다른 약을 한번 써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 약은 보험이 안되어 약값이 어마어마했다. 그는 우리가 젤 먼저 돈 걱정을 할거란 생각을 했고, 자기 통장에 있는 돈을 쓰자고 했지. 맞다. 그 와중에 그가 어떤 마음일지를 아는 것보다 약값을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너의 통장에 있는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그 담에 드는 약값은 어떻게 할건데? 다른 방법을 찾아야해'라고 몰아치듯이 말했다. 그 일이 계속 맘에 남았었다. 미안해.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

그렇게 하루하루,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서 그에게 그가 싫어할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의 리퀘스트 얘기를 꺼내기도 했고(그가 스스로 거부하기를 바란 마음은 또 뭘까? 못된 년), 신약을 구해보자는 얘기도 했다. 며칠후 그가 담배를 피면서 그랬다. 더 우울해졌다고. 이젠 그만 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고. 그의 몸과 마음이 이렇게 헤질동안 우리는 뭘 했고, 이것이 그냥 그의 몫이라고 놔둬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다. 생을 잘 정리한다는 것? 활동의 연장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것? 등등

 

그 겨울 그는 내내 병실에 있었다.

그에게 어느날(강곤기자가 인터뷰를 한 며칠후였던것 같다) 찾아갔을때

그가 그의 삶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용기를 낸답시고 그에게 '우리 이제 솔직하게 지내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솔직했었는데....

 

그는 그 후 후원회를 통해서 약값을 댔고, 희망이란 것을 새로이 찾아갔다.

희망이란 안겨주는 게 아니라 찾는것이다. 그를 보면 그렇다. http://blog.jinbo.net/Aspeople/

그는 작년 후원의 밤을 하면서 '내몸이 내몸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는 겸손하고 미안해했지만 함께 한다는것이 뭔지를 알고, 자신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알았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났다.

그 시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너에게는 연속이었다는 걸 알아. 그 연속선에서 너는 명동성당에서 여러 인권활동가들과 얼굴을 맛대고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 함께 있다는 것이 기뻤던 거지?

이제 슬슬 새로운 적응을 해야한다며, 마음이 가다듬어지는 시간을 보내고 와서 몸이 한결 가볍다는 너의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나. 그 이유는 너를 존중하기때문이고, 또 하나는 너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얼마전 너를 만나서 '네가 하고 싶다고 했던거 상황, 눈치보지말고 했음좋겠다'고 말했던거.

진심이긴 한데, 예의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http://blog.jinbo.net/rmdal/?pid=14

나는 또 동굴에 들어앉아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해보니 결국 그거더라고.

2000년에도, 2004년에도 그랬는데...

어느순간 방어모드로 들어가서는 더 안가는거.

그래도 이번만큼은 회피하고 싶지않아.

 

 너의 목소리가 평온한척 하는 내마음을 들쑤시는구나.

너의 살아있는 목소리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

어제 다이어리를 샀다.

문구점 몇군데를 봤는데 장식이 많고 가격이 쓸데없이 비싸고 넘 두꺼운 다이어리들..

계속 다이어리를 쓰고 있지만 충분히 다 써본적이 없을정도로 빈장들이 남았었다.

2007년에는 혜주가 선물해준 메이드인브라질 다이어리를 썼는데 딱 좋았다.

그런걸로 찾아보았는데 없어서 이번에는 완전 얄싹하고 한손에 잡히는 천원짜리 다이어리를 샀다.

2007년 다이어리를 조만간 가방에서 빼낼것을 염두에 두고

겸사겸사 마음이 복잡했던 한해를 기억해두어야 겠다.

 

*가브리엘

백내장수술(1/6): 한쪽 눈으로 볼 수 있는것에 감사. 다초점렌즈가 비싸다고 투덜. 적응

CMV: 1년 (12/28 끝)

새로운 약 시작(10/1)

한미FTA저지집회와 그의 소망(3/10): 너무 추웠던 날, 이사한다고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캠코더로 본 그의 진심과 절박함...

후원의 밤(3/16): 무엇이 중요하고 언제 용기를 내야하는지..그의 솔직한 삶과의 대면...너무 감사했던 날. 그의 얼굴이 그려진 수첩을 가지게 되었다

 

*공공의약센터 회의(1/21)

혜주, 경호, 소영이와 옛날 자료집을 꺼내놓고 다시금 문제의식을 떠올렸지만

그 후 우리가 다시 만날 이유를 못잡고 있어...

욜이 나의 얄팍함을 지적했을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었는데 지금 그 얄팍함마저

너무 멀게 느껴져

 

*나누리MT(3/31)

과욕을 부리다 제풀에 지친 한해가 되고 말았어.

날이 밝도록 끝을 못내고 하얏트호텔로 갔었지. 가브리엘이 놈현 개새끼라고 소리질렀다. 누가 그의 분함과 눈물을 알까...소리지르지않으면

몰랐는데 그날 황사가 엄청 심했다고...

 

*나의 사랑, 나의 친구, 나의 동지

길을 가다, 술을 마시다 계속 불렀다.

건세네 총회때 가브리엘이 환자권리상을 받았고, 그를 영상에서 만났다.

누군가가 그를 영화속에 담고자했는데 화가 났었다. 바보같은...유시민의 화환보다 더 화나는 나

박신을 만나 다시 만나지 말자고 했다(4/3). 인천 어딘가에서 거의 매일 혼자 밤새 몸을 가누지못할때까지 술을 마셔댔다는 그의 얘기를 전해들었다.

1년이 되었을때 경호와 가브리엘과 그에게 다녀왔다(5/22)

한참후에 그의 누나를 만났다.  (6/26 부평)

 

*한미FTA타결

말만하고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고...그래도 억울해서...그리고는 입에도 담기싫어져서..

 

*상해(4/13~18)

급하게 즉흥적으로 다녀왔다. 동생덕에 날마다 맛사지 받았다.

골목, 동대문시장같은데, 길가에서 파는 그들의 끼니,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서 한족여성에게 들은 중국부동산열풍....

 

*섬진강(4/22)

출발을 약속한 시간에 그녀의 전화를 받고 깼을때 흐미~

나있지않은 길을 그냥 헤집고 걷다 강을 건넜다.

 

*애보트 규탄(4/26)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이유에서. 욕심이 많은 만큼 부지런하지도 인내하지도 겸손하지도 못했다

 

 *샘, G-보이스(6/9)

샘의 이야기..샘 사랑해

그들의 진지함과 존재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서...마시고 간 맥주캔덕에 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물이...

 

*사랑방, 사회공공성(8/6)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IPleft MT(8/11 포천)

밤하늘, 데굴데굴, 전망

 

*카노스 워크샵(8/25 유명산근처)

그녀의 노래, 쭈뼛쭈뼛 물놀이, 캠프파이어, 술먹고 주절거렸던 말들

낯설지않은 그 자리

 

*공여사(11/21)

 

*에이즈민간단체 평가 프로젝트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HIV감염인인권문화제(11/29)

밴드, 사진전, 역할극

원망하거나 탓하지말고 그 자리에 있는것...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을 만나기로 했다.

구실은 감사주인데, 실은 그녀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

영업하듯이 말해버렸다. 너무 멋없게...

"그동안 편애해주고 신경써줘서 넘 고맙고 해서 밥이라도..."

그녀가 넘 바빠서 못 만나다가 오늘 문자를 날렸더니 딱 되네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별로 말이 없고

말이 별로 필요없었다

그냥 지금처럼 지내도 그녀를 보면 반갑고 뭔가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냥 그녀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일상과 재미는 무엇?

그녀가 생각하는 영상이란?

영상과 변화, 세상의 관계?

 

지난번 **의 결혼식에서 만난 **로는

처음에는 카메라가 권력을 준것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카메라를 들고는 무대도 올라갈 수 있고,  내성적인 자기가 하지못하는 것을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 그 자체가 매력이라고 했다. 잘 이해가 안되지만..

그는 세계민중운동사를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말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살다 죽을 기쁨에 젖는 듯 했다. 전세를 빼서라도 가고 싶다는 그의 열정이 다른이들의 열정과 만나

꼭 이뤄지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oon.jinbo.net

 

 

만화로 정보인권을 우찌 표현했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봤다.

비밀프로젝트라...언제 또 이런걸 만들었는지...생각해보니 만화그리는 분과 다섯병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하던 모습을 본적이 있구나

 

정보인권이란, 표현의자유, 프라이버시권, 저작권, 특허, 정치적권리, 노동권, 평등권으로 구성.

구성이 특이하네, 저작권과 특허는 문제가 있다고 얘기할테고 나머지는 옹호되어야하나 침해당하고 있다고 얘기하겠지 근데 병렬적으로 구성한 이유는 뭘까? 저작권은 저작'권'이라고 하고 특허는 특허'권'이라고 하지않은데는 이유가 있겠지...이러면서 만화를 하나씩 클릭.

 

타이레농으로 시작한 걸 보니 음 특허VS생명에 대한 얘기구나...사람들이 이해하기쉽게 그려놨나...이러면서 만화를 따라 내려갔다.

말풍선의 실체는 덕이

영이 철이 그리고 덕이?

그 이름 참 푸근하네 이러다가

갑자기

갑자기

아! 하는 순간 눈물이...

 

지난번 그가 꿈속에 다녀갔다.

꿈에서는 그에게 하루가 남아있었다. 그는 담담한 모습으로 이별인사를 했다. 꿈에서라도 그를 보니 마음이 좋았다.

그는 갑자기 가버렸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예고했었고 안타까움과 슬픔을 머금은 큰 눈으로

여러차례 소망을 얘기했었지만 나만 못알아듣고 갑자기 보낸것이 너무 미안해서..너무 보고싶어서...

미래를 기약하며 현재를 살지못했던 반성, 허무함, 외로움은 뒤늦게서야 요동치는 격정이 되어

이제 이기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이 짓거리도 고만해야지...뒤늦게서야 울고 불고 한들.

  

덕이...

기억속에서 그리워하는 것보다 이렇게 당신을 만나는 것이 다행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보고싶다

나는 어느새 술꾼이 되어있었고, 술꾼으로 통하고 있다.

요즘은 혼자서는 안마신다.

그래도 이틀에 한번꼴로 마신다.

 

낮이고 밤이고 밥처럼 물처럼 맥주를 마셔서

주위에서 뭐라고 하면 슬그머니 주정뱅이, 알콜중독자가 될까봐 걱정이 들면서도

'독일에서는 맥주를 물처럼 마셔'라고 항변을 하곤 했는데

요새는 술이 고플일이 없다.

부딪혀야 고민이 번지고 실천과 반성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내 작은 그릇에 담기에는 늘 넘쳐서

쏟아내버리고 빈그릇으로 있는 지금

같이 울고 웃고 부딪혔던 사람들이 보고싶다.

 

그랬었나보다

늘 함께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나눌 고민을 하는 동안 혼자 있을때도

언제든지 전화해서 물어보고 의견을 듣고, 언제든지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 마셨던 술은 혼자 마신게 아니었던 거다.

 

술을 마시다보면 얼굴이 약간 팽창하는 느낌이 들때

그 때가 딱 좋다.

혼자 술을 마시면 이 느낌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함께 마시면 이 느낌은 이야기가 끝나갈때까지 간다.

(나는 웬만해선 필름이 끊기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술마시는것이 더 좋다.

혼자 술마실때는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안좋거나 기분이 넘 좋거나이다.

혼자 술을 마셨던 것은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기까지 내가 밟았던 과정이었던 것이지

술 자체가 너무 좋아서 그랬던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그들이 벌써 보고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매력남녀

초가을에 보고 몇달만이다

출근하는 길에 요한에게 전화해서

오늘 시간있어?

왜?

집에 밥먹으러 와. 수다떨고 놀자고

그와 약속을 잡은후 홍지에게 시간되면 오라고 문자를 날렸다

 

몇시간후 그가 전화를 했길래 사정이 있어서 못온다는 건가 예상을 했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

없어. 그냥 와

그렇다. 집이라는 것이 너와 나의 공간을 구분하게 만든다는 점.

 

요한이 때맞춰왔다. 역시나 손에는 케잌을 들고.

이런거 사오지말라고 타박을 하려다가

녹차케잌. 역시 달짝지근한 케잌은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고 그와 달짝지근하게 마주앉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요한은 얼마전부터 케잌이 먹고싶었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아 참고 있었다고 했다.

 

10대에 그가 가장 소망했던것은

곱게 늙는 것과 그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것이라고 했다.

호오~

박탈감, 슬픔, 외로움 등을 만드는 상황, 관계의 문제에 대처하고 적응하기위한 자기훈련의 과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것이란 얘기도 했다. 때로는 그런 훈련이 모든 사물과 상황에 무덤덤 내지는 느낌을 억제하는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올봄에 처음으로 과일주를 만들었다. 사과주

사과주는 IPleft회원들과 마셨는데 꽤 괜찮았다. 꿀을 넣고 담궈서 그런지 머리도 안아푸고.

담근 술을 나눠먹는 맛이 괜찮아서 초가을에 모과주와 포도주를 만들었다.

요한이 술을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하나씩 꺼내서 맛보기를 했다. 

오후 4시부터 백포도주를 홀짝거리다 다 마시고 뻘똥주, 모과주, 포도주를 하나씩 꺼냈다.

뻘똥주와 포도주는 별로. 모과주는 별로 기대안했었는데 음~ 넘넘 마음에 들었다. 향도 그렇고 소주의 쓴맛은 전혀 없었다. 색깔도 약간 노릇하니 좋았다. 다른 술들은 갈색계열로 변했는데. 앗 포도주는 갈색은 아니고 분홍빛. 인공색소로 만든 쭈쭈바같은 색이어서 별로. 맛도 별로 깊지않았다. 1년이 지나길 기다리고 있는 매실주를 기대해봐야지.

 

5시반쯤 홍지가 출발한다는 연락이 와서 족발을 시켰다.

홍지는 주위를 발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셋은 깔깔거리면서 상위에 놓인 음식들을 먹기시작했다. 동시에 나의 술마시는 속도도 빨라졌다. 족발을 시켰더니 따라온 소주1병도 거의 내가 마셔버렸다. 그것이 화근.  

잠시 바닥에 누웠는데 홍지와 요한이 상을 치우는 것을 느꼈는데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해물떡볶이를 먹어야되는데~

남은 녹차케잌을 나눠줘야지~

이러면서 스르르

눈을 떠보니 12시 반. 5시간을 자버린 것이다. 하루수면양에 가까운 시간을 한방에 자버리고 아 미안함

이럴 어쩌나

설겆이까지 다 하고 갔네

 

홍지, 요한 담에도 같이 놀아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기억할 것

지난주에 연락을 받았다.

후원, 헌혈 감사의 밤을 한다고 꼭 오라고...

벌써 만 6년이란다

이제는 그 때가 2001년인지 2002년인지도 가물가물한데

 

간다는 말대신 다이어리에 적어두겠다고 말했다

가도되는 자리인지 분명하지가 않았다

당시에 상덕은 그렇게 끝내면 안된다며 울었다. gist환우들의 눈물앞에 부끄럽다고 했었다.

1년반동안 벌어진 일들을 그는 그렇게 정리했다.

우리의 투쟁은 gist환우들이 글리벡을 먹을 권리를 놓아버린채 끝이 났지만 그 후 정부는 gist환우들에게도 보험적용을 해주었다.

(보험적용이 아니라 약값인하를 통해 해결할 일, 누구의 생명도 배제되어서는 안되는 것, 어떻게 어디까지..)

함께 싸웠던 사람들은 함께 평가를 하지 못했고, 백서를 만들려던 일도 흐지부지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란 말도 제대로 못했다.

 

시간이 꽤 지나는 동안 나는 평가대신 그의 눈물만은 기억하기로 했다.

평가를 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리벡투쟁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63빌딩에 앉아 감사를 받을 실천과 고민들을 하고 있었는지...부끄럽고 미안하고

63빌딩이라는 장소, 여러기업체와 복지부의 후원 등도 마음에 걸렸다.

마침 전날 회의끝나고 소주를 꽤 마시고 오랜만에 노래방까지 가서 막춤과 고래고래 소리지르기를 했더니

딱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못가게 되었다고 메세지를 날리자 마자 전화가 왔다.

택시를 타고 오라시며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감사의 밤을 하는 마음을 알게 될거라고 했다.

축하공연, 감사패 증정...뻔한 순서로 진행이 되었다.

예정에 없던 순서로 환우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깜짝 선물 전달

한번도 상근비를 준적이 없다며 멋적게 봉투를 전하고 받는 이들의 마음

이것이었나보다

환우회의 활동내용, 방식 등 박수를 힘껏 쳐주기에는 마뜩하지않지만

그들의 마음은 기억하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