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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 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 시에서 다섯 시사이

 

그동안 같이 일하던 친구와 작별을 했다.

한 친구는 공부를 위해 다른 한 친구는 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한 달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매 순간순간들이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그 친구에게 작별 인사로 시집을 선물했다.

도종환 선생님에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그 친구와 나는 지금 열두에서 한시쯤에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시간만 그렇다. 

도종환 선생님이 말하는 '열두시에서 한시쯤에' 삶을 살고 있는지는... 부끄럽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고 얼마나 이 더럽고 야만적인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 꼭 그렇게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과연 너와 나는 하루 하루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온통 자본의 논리와 이데올로기로 가득한 채 계속되는 경쟁에 쳇바퀴 속에, 무엇에 쫓기듯, 저들에게 영혼까지 팔아가면서 살고 있지 않는가?

 

이 시를 통해 나도 그 친구도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고민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그 시작이 이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에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언젠가 '세시에서 다섯시사이' 인생이 되어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며 이 시를 같이 읽게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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