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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시어머니

주선생님과 저희 어머니는

그 유명한 고부관계이십니다.

 

이 관계에서

어머니는 '악역'을 맡으셨습니다.

 

처음 주선생님이 저랑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이거였습니다.

 

"얘..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기로 했어..."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신 어머니께서는

주선생님이 임신 8주째 되는 어느날

 

시간이 그때 밖에 안 되신다면서

당신 주도로 가족들을 15명쯤 초대해서
저희집 집들이를 하셨습니다.

 

주선생님은

임신 12주까지는 유산의 위험이 있으니까

절대 무리해서는 안되고

 

무거운 것은 결코 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 알았지만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10시간 동안 부엌일을 했습니다.

 

"현숙아..이거 김치냉장고에 넣어라..

이건 저쪽으로 좀 가져다 놓고...이 통에 있는 건 저기다 옮겨 담고.."

 

어머니는 그 10시간 동안 주선생님께

괴력을 가진 제가 들어도 힘든

김치통 등 이것저것을 나르도록 시키셨습니다.

 

막내동생의 부인도 그 10시간 내내

부엌일을 했지만

 

주선생님은 큰며느리인 죄로

얼굴 한번 못 찡그리고 그 일을 다 했습니다.

 

처음부터 부엌 옆에 바짝 붙어서

'같이 일하고 같이 쉰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저는

 

"넌, 이 근처 있으면 방해만 되니까 그냥 좀 앉아 있어~~"

라고 하시는 어머니 덕에

바늘방석 위에서 편히 휴식을 취했습니다.

 

8시간 쯤 식사 준비를 하고

사람들이 막 밥을 먹으려 할 때

저는 고생한 주선생님과 제수씨, 그리고 제일 고생하신 어머니가

당연히 같이 상에 앉을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됐으니까, 많이들 드세요..."

 

주선생님은 얼굴이 까매졌고

제수씨는 밖에 나가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잘 차린 상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해 하셨고

저는 콧구멍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여의도에서 불꽃축제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집이 여의도 근처라서 사람들은 모두 축제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는 임신 8주의 주선생님 혼자만 남았습니다.

거실에 놓인 2개의 큰 상 위에는 집에 있는 모든 그릇이 다 올라와 있었고

그 그릇 위에는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의 잔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불꽃축제는 신났습니다.

축제를 마음껏 즐긴 우리는

집에 돌아와서 깨끗하게 치워진 거실에서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지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7시쯤

저는 별 생각없이 부엌에 가서 쌀을 씻었습니다.

어머니께 아침 식사를 잘 대접해드려야겠다는

훌륭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너, 이리 좀 와봐..."

 

어머니는 1시간 40분 동안 저에게

지난 30여년 간 어머니가 얼마나 고되게 시집살이를 하셨는지

아들 셋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 중 제일 큰 아들이 집에서 쌀이나 씻는 걸 보니

속이 뒤집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선생님은 귀한 딸이지만

그 보다 만배는 더 귀한 아들을 위해

밤낮없이 밥해서 바치고, 청소하고 빨래해야 할 운명이란 걸

그날 아침에 제가 잠결이라 깜박 잊었던 게 잘못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처럼 여긴다는 며느리를

그렇게 대하셨습니다.

 

하기야, 이런 일이

주선생님한테만 일어나는 건 아닐 겁니다.

 

주선생님이 아는 어떤 사람도

시어머니한테서 딸처럼 여기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어느날

몸이 안 좋다고 얘기하니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이고, 그럼 우리 아들 힘들어서 어쩌냐...."

 

며느리가 아프니까

아들이 고생할 게 더 걱정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저희 어머니는 아주 좋은 분이십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할머니 아들보다도

백배는 더 챙겨주시는 게 우리 어머니이십니다.

 

성실성, 생활력 등에서

저는 우리 어머니를 능가하는 사람을

별로 못 봤습니다.

 

조금 늦게 태어나셨더라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시어머니가 되는 순간

그 모든 좋은 점은 사라지고

가부장제 지킴이가 돼버리십니다.

 

한국에서 며느리는

딸 보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결코 딸처럼 대우 받을 순 없습니다.

 

그건 며느리로서의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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