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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주선생님

두 달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상구, 상구~"

 

주선생님은 꼭 아쉬울 때면

저를 두 번씩 부릅니다.

 

"왜?"

 

주선생님은 대답 대신

 

손으로 잡아 늘려도

그 만큼은 안 늘어날 정도로

입을 양쪽으로 쭉 찢은 웃음을 하고

눈은 가늘게 뜬 채로 저 한테 접근합니다.

 

"또 무슨 사악한 부탁을 할려고~~?"

 

"헤헤~있잖아..나 할 말 있어..."

 

"뭔데?"

 

"블로그 있잖아..."

 

"나, 육아일기 쓰는 거?"

 

"응, 그거...거기에 왜 나는 맨날 엽기적으로 나와?

그리고 나는 왜 항상 잠만 잔다고 써?

그런 거 말고 나의 로맨틱한 면들을 좀 강조해주면 안될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가증스러운 웃음 뒤엔 항상 뭔가가 있습니다.

 

"지금 로비하는 거야?"

 

"아니...로비라기 보다는..."

 

"나한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있고,

내가 원하는 걸 쓸 양심의 자유가 있으니까..로비하지 마셔..."

 

"알았어...피..."

 

주선생님 의외로 쉽게 물러납니다.

 

그날 밤.

 

미루랑 놀고 있는데

주선생님이 저를 부릅니다.

 

"상구~저기 달 봐봐~~"

 

"달? 응...봤어...왜?"

 

"뭐, 보이는 거 없어?"

 

밤에 하늘에 달 말고 달리 보이는 게 있을리 없었지만

그래도 시선을 이리 저리 움직여가며 뭐가 또 있나 살펴봤습니다.

 

"보여?"

 

"우헤헤헤~~사람이네~~"

 

주선생님이 베란다 창문에다가

입김을 분 다음 손가락으로 사람을 그려놓았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사람은 꼭 달 위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 로맨틱하지?"

 

내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쉽게 포기해서 이상하다 했었습니다.

 

"그래~너 로맨틱하다~~"

 

"히히~~"

 

주선생님,

좋다고 다시 베란다로 갑니다.

 

어느새 달 주위엔

별도 뜨고 UFO도 한 대 날아갑니다.

 

"알았어, 알았어~~ 블로그에다 너 로맨틱하다고 써 줄께..

근데, 달에 토끼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방아 찧는 걸로.."

 

"그래? 알았어~~"

 

주선생님은 신나 하면서

토끼를 그리기 위해 벌떡 일어납니다.

 

근데 가만히 보니까

주선생님 오른손에 매직이 들려 있습니다.

 

"현숙아...너 아까 그 그림들 입김 불어서 그린 거 아냐?"

 

"아니? 이걸로 그린 건데.."

 

"창문에다가?"

 

"응.."

 

주선생님은

이번에는 방아찧고 있는 토끼를

아주 정교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입김과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그려 넣을 수 없는

세밀화입니다.

 

로맨틱해지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주선생님이 그린

그 그림들은

아직도 베란다 창문 위에 그대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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