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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컸다

미루가 많이 컸다는 게

여기 저기서 느껴집니다.

 

1.

 

오늘 낮에 미루를 재우려고

침대에 눕혀 놓고

 

다양한 잠재우기 의식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주선생님, 저를 응원하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미루의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더니

미루 옆에 와서 살짝 누웠습니다.

 

그러더니, 집에 굴러다니는 네모난 쿠션을

미루 옆에 세운 다음

살짝 건들어서 미루쪽으로 넘어지게 했습니다.

 

그 쿠션은 미루 얼굴을 덮쳤고

주선생님은 쌤통이라는 얼굴로

씨익 웃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루가 쿠션을 밀쳐내서

쿠션이 주선생님 얼굴을 덮친 것입니다.

 

힘이 대단하기도 하고

이렇게 반응하는 게 재밌기도 합니다.

 

"어~?"

 

주선생님 다시 쿠션을 툭 밀어서

미루한테 보냅니다.

 

미루도 지지 않습니다.

다시 주선생님의 얼굴을 쿠션이 덮습니다.

 

쿠션은 마치 고개가 왼쪽으로 까딱, 오른쪽으로 까딱하듯이

한번은 왼쪽으로 한번은 오른쪽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덮칩니다.

 

주선생님은 원래 이런 걸 재밌어 하는 사람이고

미루도 신나서 팔딱팔딱 거렸습니다.

 

 

2.

 

여전히 뒤집을 생각이 전혀 없는 미루를

번쩍 들어서 엎어놨습니다.

 

고개를 들고 여기저기를 보는데

좀 힘들어 하는 것 같애서

앞에서 애벌레 인형을 흔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미루가 갑자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더니

몸을 휙 틀어서

다시 누운 자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뒤집기 하는 애들이

그 다음 과제로 삼는다는

'재뒤집기'를

미루가 해버린 것입니다.

 

더하기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빼기부터 해내는 놀라운 장면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미루는 정말

대단한 아이라는 식으로 자랑할 일은 아니고

그냥 좀 신기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뒤집기부터 좀 빨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엎어 재울려고 했는데

뒤집기는 안 하고 하도 누워만 있어서

머리통 하트 모양 영영 굳어지게 생겼습니다.

 

 

 

3.

 

미루는 손도 많이 커졌습니다.

 

"상구~~이거 봐, 이거~~"

 

주선생님이 절 애타게 찾는 걸 보니

또 별 일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봤습니다.

 

"이거 봐봐~~나, 미루랑 깍지 꼈다!!"

 

주선생님이

정말로 미루랑 깍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주선생님의 손가락 사이 사이로

미루의 손가락 끝부분이 아주 조금씩

뽀글뽀글 나와 있었습니다.

 

어쨌든 깍지 낀 건 맞습니다.

 

미루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 표정으로

딴 짓이었지만

 

주선생님과 저는 둘 다 또 한차례의 호들갑으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4.

 

저녁에 쓰레기 봉투에

어떻게든 쓰레기를 많이 넣어보려고

 

손으로 봉투 옆면을 따라

쓰레기를 우겨 넣다가

 

"퍼억~" 하고

봉투가 터졌습니다.

 

"현숙아.."

 

터진 봉투 사이로

종이 기저귀를 움켜쥔 제 손이

삐져 나와 있고

 

달려온 주선생님은

얼굴 표면 곳곳에서 웃음이 분출되는 걸

참으면서 저를 위로해주는 무슨 말인가를 했습니다.

 

"그게 정녕 나를 위로하는 표정인가?"

 

주선생님은

제가 생활 곳곳에 구멍이 참 많다고 합니다.

 

뭘 해도 매끄럽고 때깔나게

못하는 제 생활실력은

미루의 발달에 비하면 좀 느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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