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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가는 걸 자꾸 잊어 먹는다

출근할 때는

언제나 정신없이 집을 나서지만

 

오늘이 몇일인지,

뭘 해야 하는 날인지 등등을

잊어먹진 않았는데

 

집에만 있다보니까

날짜 가는 것도 잊고

다른 것도 많이 잊습니다.

 

처음 육아휴직 하고 나서

한 달 정도는 세수를 거의 안 하고 살았었습니다.

 

이것으로 제 깨끗한 이미지는 끝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나갈 일이 없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에

계속 전쟁 상태이니

세수를 할 겨를도

특별히 얼굴이 깨끗해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가끔 세수를 하고, 면도도 하면

 

황사 먼지 앉은 자동차 창문을

걸레로 쓰윽 닦았을 때 나타나는

깨끗한 유리창 같은 느낌이 

 

얼굴에서 느껴졌습니다.

제가 보기엔 분명히 그랬습니다.

 

계속 밖에 안 나가니까

얼굴이 점점 하얘져서 더 그랬습니다.

 

하루 내내 약간 어두컴컴한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하다

오후 2~3시쯤 되면

항상 두통이 왔었는데, 전 그게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걸로만 알았습니다.

 

근데, 그 두통이

나중에 환기 좀 시키고

잠깐 햇볕 좀 쬐니까 금새 없어졌습니다.

 

맨날 나돌아 다니다가

집에 갇혀 지내다보니까 별 증상이 다 생겼던 겁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정말 멍하게 지냈습니다.

 

오전 2시간을

미루를 재우기 위해 실랑이하다가

바톤을 주선생님에게 넘겨줬습니다.

 

링 위에 올라선 주선생님은

아주 꽉 껴안기와 엉덩이 퍽퍽 때리기로 미루를 제압했는데

전 그 사이 잠이 들었습니다.

 

실랑이 했던 그 두시간이 워낙 힘들어서

자는 내내 악몽을 꿨습니다.

 

"흐흐흑...상구~큰 애가 나 한테 매달려 있어..."

 

주선생님은 며칠 전에

거의 공포 영화 수준의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했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이른 오후 잠' 재우기에 돌입했습니다.

 

그 실랑이는 오후 3시 30분까지 계속됐고

미루는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5시쯤 셋이서 같이 외출을 했습니다.

 

유난히 맑은 날씨가

몸을 감쌉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저 집에 태극기가 걸려있지?"

 

눈이 있는대로 풀려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제가 물었고

주선생님이 대답합니다.

 

"오늘? 오늘 개천절이잖아.."

"그래? 몰랐네...하여튼, 날짜 가는 걸 몰라..."

"오늘 10월 3일, 개.천.절..월요일.."

"그렇구나, 나도 오늘이 월요일인 건 알았는데.."

 

주선생님 그 정도 얘기했으면 됐지

뭘 그걸 또 확실히 입증할려고

핸드폰을 꺼내서 달력을 보여줍니다.

 

"자~봐~~...어?"

 

오늘은 10월 2일 월요일이었습니다.

 

"에이~개천절 아니구만.."

"저 집은 왜 태극기를 달고 그래...? 궁시렁 궁시렁"

 

주선생님은 비겁한 핑계를 댔지만

전 매우 인정 많게도 날짜가 헷갈릴 수도 있다고 해줬습니다.

 

오늘은 10월 2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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