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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길

다시 생각해봐도

이번 설 귀경길은

기억에 참 많이 남습니다.

 

"상구...설날표 결제했어?"

 

빛나는 인터넷 표구하기 전쟁에서

서울-김제간 표를 두장씩 예약한 저는

결제 마감일 다음날 주선생님이 이렇게 물어봐서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니. 큰일났다."

 

저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현숙아~인터넷 다시 들어갔더니.. 남아있는 표 있다 있어!!"

 

설이 끝나고 올라오는 길,

새벽 5시 4분 기차를 타게 됐습니다.

 

무궁화호는

그 새벽에 다들 자는데

실내불을 환하게 켜놓고 달립니다.

 

미루가 잠이 깰까봐

우리는 미루 눈을 최대한 가렸습니다.

 

"이번 역은 익산, 익산역입니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귀를 안 막았습니다.

 

기차 방송이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위아 어라이빙 앳 익산, 익산 스테이션"

영어로도 합니다.

 

"고노 예끼니.."

일본말로도 방송합니다.

 

"뭐라고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중국말까지 합니다.

 

미치겠습니다.

그래도 미루는 잡니다.

 

"서울까지 열번은 더 방송하겠구만.."

 

그래도 이 정도 길이면

잘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20분쯤 더 달렸는데

승무원분이 띡하고 마이크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열차는 광주를 새벽 4시쯤에 출발하여..."

 

무슨 안내할 게 있는가 봅니다.

무조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습니다.

승무원분이 직접 하시니까

4개국어로 하진 않을 겁니다.

 

"저희 승무원은 여러분의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이.."

 

방송이 짧으면

매우 쾌적한 여행이 될 게 확실합니다.

 

"내리실 역을 지나치셨을 경우에는 무리하게 뛰어내리지 마시고...쓰레기는 객차 사이의 휴지통을 이용.."

 

무척 많은 안내를 합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승무원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열차 이용에 관한 몇 가지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열차 이용에 관한

안내말씀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열차내의 기계 장비는 함부로 만지지 마시고..."

 

계속 이어집니다.

 

"저희는 3번 객차에서 근무.."

 

3번 객차로 쫓아가고 싶었습니다.

벌써 5분도 넘게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동반하신 승객께서는 어린 아이가 객차 안에서 뛰거나 떠들지 않도록.."

 

결국 미루가 고개를 벌떡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를 동반하신 승객이

아이가 떠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음을 졸였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습니다.

 

이대로 미루를 안고

왔다갔다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낑낑.."

 

11시 방향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쑥 빼고 보니까

엄마가 아이를 업고 서 있습니다.

 

"응애~~"

 

또 반가운 소리가

7시 방향에서 들립니다.

고개를 획 돌렸습니다.

 

역시 엄마가 아이를 업고 서 있습니다.

 

"으앙...", "에에...에에.."

 

객차 이곳 저곳에서

잠자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납니다.

 

아까 그 방송 때문입니다.

 

어떤 엄마는 애를 안고 서서

의자에 머리를 박고 잡니다.

 

새벽 5시 30분

무궁화호 안에는

애들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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