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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곳만 좋아한다

미루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책상 밑과 식탁 밑입니다.

 

틈만 나면

꼭 그 좁은 데로

기어 들어갑니다.

 

책상에 앉아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미루가 오른쪽 밑으로 지나갑니다.

 

"미루야~또 책상 밑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기어 나옵니다.

의자 뒤로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책상 밑은 온갖 색깔의 전선이 엉켜있는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입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무튼 인터넷을 연결하는 어떤 장치에는

노랑색, 주황색 불빛이 계속 깜박입니다.

 

책상 밑이 환상의 세계인 반면

탁자 밑은 고통의 세계입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의자 옆을 지나 책상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 밑에서 주선생님이 깔아 놓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좋겠는데

미루는 꼭 우리 다리를 잡고 일어납니다.

 

"퍽"

 

탁자 아래 쪽에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미루 괜찮어?"

 

괜찮습니다.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이

그냥 앉습니다.

 

"아프겠다"

"그러게..."

"퍽"

 

그새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정말 아픈 얼굴입니다.

 

"으아앙~"

 

그럼 그렇지

두 번이나 받았는데

안 울면 너무 독해서 싫습니다.

 

미루를 번쩍 안아서 달래주고

밥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조용해집니다.

 

좀 있다 보니까

미루 머리에 혹이 났습니다.

 

"현숙아, 미루 여기 만져 봐..혹 났어..."

 

주선생님은

슬픈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미루 머리 모양이 원래 이래..."

 

그 후로도

미루는 틈 날 때 마다

탁자 밑에 들어가서

여전히 머리를 부딪히고,

가끔 엄마 엄지 발가락을 물기도 합니다.

 

이유식 먹는 미루를 재밌게 해주기도 할 겸

미루 기분도 느껴볼 겸

오늘 아침엔 제가 탁자 밑에 들어가서 미루를 올려다봤습니다.

 

주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 거기서 뭐해~빨리 나와" 하며 구박했고,

 

미루는 이유식을 물고

저를 내려다 보다가 아주 크게

기침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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