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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증거5

막내 동생이 애를 낳아서

저희 부모님이 서울에 다녀왔다 가셨습니다.

 

오시기 며칠 전부터

주선생님과 저는

작전을 짰습니다.

 

"현숙아 김치도 없다고 하고

밑반찬도 다 떨어졌다고 해..

하여튼 최대한 불쌍하게..알았지?"

 

제가 전화해서 반찬 얘기하면

어머니가 싫어하실게 틀림없어서

대신 주선생님이 몇 차례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상구야~우리 도착했다..내려와라~!!"

 

차 트렁크가 열리자

그 안에는 아예 커다른 아이스박스가 들어 있었습니다.

 

김치 한 박스, 마늘 짱아치 한 통, 깻잎 한 통, 고구마 순 한 다발

멸치 조림 2종류, 외할머니가 밭에서 키우셨다는 다량의 상추

조기, 소고기

 

그리고 제주도에서 김제까지 공수과정을

나중에 상세하게 설명하시면서 꺼내놓으신

은갈치까지...

 

특히 은갈치는 어머니가 밤새 토막토막 잘라서

손질을 다 해서 가져오셨습니다.  자식이 웬수입니다.

 

가져오신 짐의 규모로는

아예 이사를 오신 분위기셨습니다.

 

원래 뭘 해도 제대로 하시는 저희 어머니는

이번에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신 겁니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집에만 내려가면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주시는지

귀찮아 죽는 줄 알았었는데

 

이제는 무슨 반찬만 주신다면

좋아 죽습니다.

 

이렇게 한방에 많은 반찬들이 오면

당분간 밥 차릴 때는 꺼내놓기만 하면 되니까

세상 그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런 기질은

제가 육아를 하면서 좀 심해지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후 조금씩 나타나긴 했었습니다.

 

10년 쯤 전에 같은 과에 있던

공익근무요원 전체가 같이 삼겹살 파티를 하고

고기가 좀 많이 남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야~나 그거 가져갈께~"하고

고기를 신문지에 대충 싸서 버스를 탔었는데

고기에서 나온 물 때문에 신문지가

다 찢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생고기를 손으로 들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은 정말 가련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들고 있는 고기가 탐나는지

저를 자꾸 힐끗힐끗 쳐다봤습니다.

그냥 좀 달라고 할 것이지.

 

근데 요즘은 이런 기질이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해졌습니다.

 

냉장고 안에 반찬이 그득하면

참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고단한 육아 중에

이런 일은 생활의 활력입니다.

 

그나저나 계속 똑같은 반찬을 내놓을 순 없으니까

반찬에 약간의 변형을 주는 연구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주선생님한테 그냥 참고

계속 같은 반찬 먹으라고 할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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