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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어느 쪽인지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미 어느 쪽인지 알고 있어요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능력있지만 차가운 남자, 능력없지만 자상한 남자, 누굴 택해야 하나요?
 
 
한겨레  
 
Q 저는 요즘 고민 때문에 잠 못 들고 있는 27살 여자입니다. 저의 고민은 예기치 않은 양다리(?) 상황 때문입니다. 먼저 A군은 1년 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입니다. 저보다 5살 많고 현재 ‘사’자가 들어가는 소위 잘나가는 능력남입니다. 그리고 반년 전 알게 된 B군. 그는 평범한 말단 공무원입니다. 두달 전, B군이 저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했습니다. 저 역시 솔로이고 그가 좋아 사귀기로 하고 지금도 사귀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A군입니다. A군이 며칠 전에 저에게 고백을 했다는 거죠. 사실 저는 A군, B군 모두 좋습니다. 하지만 외형적인 면과 능력적인 면을 보자면 A가 끌리는 건 사실입니다. 제가 속물처럼 느껴지시겠지만 너무 고민되네요. A군은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매우 뜸하고 저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느낍니다. B군은 저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 게 느껴지고요. 외모, 능력, 하지만 차가운 남자 A군, 외모와 능력은 보통이지만 저를 정말 사랑해주는 B군. 전 정말 누구선택해야 하는 건가요. 둘 중 한명이 더 좋다면, 다른 한쪽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요. 현재 상태가 너무 괴롭네요.

 

A 둘 다 똑같이 좋아하니까 고민하고 있는 거라고요? 아닌 것 같은데요. 지금 어느 남자를 ‘선택’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 A와 B, 각자의 자질을 저울질하는 데만 급급해서 자신의 감정을 잘 못 보는 것 같네요. 하지만 스펙과 자상함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자질인지, 냉정함과 평범함 중 어느 것이 회피해야 할 자질인지 등을 주욱 리스트업해봤자 객관적 비교가 안 되니 더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핵심은 ‘내가 누굴 더 좋아하느냐’지, ‘어떤 자질이 행복을 보장해주는지’가 아니잖아요? 되레 지금은 헷갈리지 않게 별 의미 없는 기준들을 삭제해보는 게 중요할 듯.

먼저,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는 것’ - 이거 대체 뭔가요? 여자들은 곧잘 남자가 나를 너무 사랑해주는 것,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훨씬 더 좋아하는 상태에 가산점을 주기도 하는데요, 가만 보면 ‘여자는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아야 행복해진다’는 자기암시는 과거에 힘든 연애를 겪으면서 생긴 일종의 ‘지혜’(?) 같더라고요. 괴롭고 버거운 나쁜 남자와의 연애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며 나를 사랑해주는 안심되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려 애쓰는 거지요. 분명히 편한 부분이 없진 않겠지만 나를 더 사랑했다고 해서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 없지요. 평범하고 안전해 보이던 것들이 ‘발끈’하면 얼마나 더 무서운데요. 결국 누가 나를 많이 좋아해준다는 사실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날 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우니까 나도 이 사람에게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는 그냥 인간적인 예의일 뿐이죠. 사랑받는 연애보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연애를 하시길.

 

그다음, ‘양다리’(?)에 대한 죄책감. 이미 마음은 흔들리고 있잖아요. B와의 관계가 단단했다면, B가 주는 넘치는 사랑만으로도 충족이 되었다면, 당신은 이렇게 한눈 안 팔 것이고 새 남자는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조차 없지요. 자꾸 의식적으로 ‘지금 나에겐 너무나 잘해주는 남자친구가 이미 있는데 참아야지’ 싶어도 유혹을 참지 못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지요.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고 사람은 변하는 것. 저항해도 흔들리는 걸 어떡합니까. 이것은 차라리 어떤 남자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기보다 차라리 사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멈출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하나의 예시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 현명한 선택을 이성적으로 밝혀내기보다 마음의 촉을 따라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밖엔 없답니다. 이미 답은 마음속에 나와 있을 텐데요.

 

꼭 입으로 말해야 하나요. 이미 사귀는 남자를 B, 뒤늦게 마음속으로 들어온 남자를 굳이 알파벳 첫머리 ‘A’라고 부른 것만 봐도 모르시나요. 이미 학점 매겼구먼 뭘. 자, 마지막으로 걷어내야 할 치우친 생각. 잘생긴 외모와 ‘사’자 직업이 도리어 불필요한 속물 콤플렉스를 낳아(잘생긴 게 죄인가요, 공부 열심히 한 게 죄인가요) 지금 막 A에게 고백받아 좋아 죽는 입 째지는 상태조차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그 이유 중 일부가 ‘속물적’이라면 좋아하는 감정의 본질이 불순하다고 자책해도 되는 걸까요? 사람은 안 끌리지만 조건만은 놓치기 아깝다면 문제가 되지만 조건 포함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 역시도 내게 고백했다면 어후, 생큐베리머치 아닌가요? 왜요, 착한 한겨레 지면이니까 B의 서민적 겸손함을 지지할 줄 알았나요?

 

물론 B를 매몰차게 버리고 A에게 갔다가 A를 겪어보니 완전 나쁜 남자라 호되게 고생하다 차이면 본전도 못 건져서 이를 어째, 그러면 B가 너무 아깝지 않으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그러나 당시 그 어떤 확신에 찬 탁월한 선택을 내렸다 해도 반드시 언젠가 한번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선택을 안 한 쪽의 결말을 궁금해하는 게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지요. 그리고요,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 ‘자상한 남자’ B의 ‘자상함’이라는 특장점은 A가 ‘냉정한 남자’처럼 지금 애태우고 있기에 비로소 상대적으로 부각이 되고 있는 거라고요! A가 사라진다고 상상해봐요. 그 이후의 B의 존재감은 심심하기 짝이 없을 테니.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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