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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50만 원 일자리 170만 개 만든 독일 ‘아젠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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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50만 원 일자리 170만 개 만든 독일 ‘아젠다 2010’
노무현 대통령이 벤치마킹 하려는 독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1)
윤태곤 기자 peyo@jinbo.net
노무현 대통령이 과감한 승부수로 상찬한 ‘아젠다 2010’, ‘우정산업민영화’

최근 거듭해 대연정론을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과 독일의 예를 대연정론의 주요한 논거로 삼아 제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인즉슨 독일의 경우 슈뢰더 총리가 ‘아젠다 2010’이라는 개혁안에 대해 자신의 자리를 걸고 의회를 해산해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이고, 일본의 경우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산업 민영화’ 라는 개혁안을 내걸고 역시 의회를 해산해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도 그런 ‘개혁안’을 내걸고 승부수를 띄워 국민들로부터 직접 심판을 받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며 ‘대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제는 내각제 개헌론까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과감한 개혁 승부수’로 상찬한 독일의 ‘아젠다 2010’과 일본의 ‘우정산업 민영화’는 ‘낡은 국가운영 시스템의 개조’에서 ‘극단적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얼마 안 남은 양국 총선(일본: 9월 11일, 독일: 9월 18일)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에 참세상은 과연 ‘아젠다 2010’과 ‘우정산업민영화’가 무엇인지 또한 각기 자국에서 신세대 정치인으로 불리는 슈뢰더 총리와 고이즈미 총리가 이를 통해 무엇을 노리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아젠다 2010’과 ‘우정산업민영화’에 대한 분석은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젠다 2010’ 으로 50만원짜리 일자리 170만개 창출한 슈뢰더 정권

1998년 집권당시의 슈뢰더
 독일 총리실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003년 3월 해고규제완화, 실업급여 삭감, 세금 감면, 소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방대한 분량의 노동·복지 개혁안인 ‘아젠다 2010’을 내놓았다.

독일의 우파 야당인 기민·기사 연합은 같은해 가을 ‘아젠다 2010’에 대한 전폭적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이에 따라 ‘하르츠’라는 이름의 ‘노동개혁안’이 순차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에는 실업수당 기간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사회보장금과 실업수당을 통합하는 직업소개소가 제시하는 저임 일자리에 반드시 취업해야 하는 하르츠 IV가 여야 합의로 상원을 통과했다.

2005년 1월부터 시행된 ‘하르츠 IV’ 이전에 독일 실업자들은 24~32개월 동안 직전 급여의 4분의 3 정도를 실업수당으로 받고, 정해진 실업수당 기한까지 취업을 못할 경우 그보다 약간 줄어든 실업지원금을 받아 생활했다. 그러나 '하르츠 IV' 시행 이후 부터는 실업수당은 12~18개월 동안만 지급되고 , 그 기간 이후에는 개인 자산이나 배우자 소득이 없는 실업자에게만 한 달에 331~345유로(한화 약 45만원)의 정액 실업수당이 지급된다.

슈뢰더 정부는 ‘노동복지 축소’라는 채찍만 사용한 것이 아니다. 슈뢰더 정부는 2003년 4월부터 ‘1인 기업 창업시 3년간 지원금 제공(1년차: 600유로, 2년차 330유로, 3년차 200유로), 월급여 400유로 이하 작은 일자리 창출시 소득세 감면’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슈뢰더 정부는 이를 통해 2004년까지 11만개의 1인 기업과 170만개의 작은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1유로의 환율이 대략 1300원 정도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급 50만원짜리 일자리 170만개를 정부 지원 하에 만든 셈이다.

'혁신과 성장‘구호 아래 성매매 알선하기도 한 독일 정부

아젠다 2010- 혁신과 성장
 독일 연방정부 홈페이지

독일연방정부 공식 홈페이지(www.bundesregierung.de)는 ‘아젠다 2010’의 구호로 ‘혁신과 성장’(INNOVATION UND WACHSTUM)를 제시하고 있다. 실업급여를 줄이는 대신 저임 일자리를 많이 제공함으로써 정부와 기업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혁신과 성장’의 주 내용인 셈이다. 김대중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생산적 복지’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월급 50만원짜리 일자리 170만개 창출’이라는 성과에 대해 기민·기사련 같은 우파 야당 뿐 아니라 독일 재계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이들과 독일정부는 화살을 노조로 돌려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전 방위적 압력하에서 독일 금속노조(IG 메탈)와 지멘스는 생산시설을 국외로 옮기지 않는 대신 임금 동결과 주당 노동시간 연장에 합의했고 다임러-크라이슬러, 오펠, 폴크스바겐 같은 대표적 기업들은 일자리 보장과 노동시간 연장이 포함된 임금동결을 맞바꾸는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노동복지 축소의 물결 와중에 해외토픽을 장식한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5년 1월 독일 연방정부의 직업소개소는 정보기술자 출신의 한 실직여성에게 ‘성매매 일자리’를 소개했고 이 여성이 거절하자 실업급여를 중단하려 한 것이다. 성매매가 합법화된 독일에서 정부가 제시한 일자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실업급여를 중단하는 ‘하르츠 IV' 규정에 의해 정부 기관이 ’성매매 알선‘에 까지 나선 이 사건은 ’아젠다 2010‘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속내와 무관하게 ‘아젠다 2010’은 ‘생산적 복지’의 전범으로 각국 정부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고 초국적 금융평가기관들은 독일의 ‘개혁안’을 칭찬하기 바빴다. 2003년 여름까지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던 사민당 정부의 지지율은 2004년 가을에는 30% 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 모 신문은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슈뢰더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해가 국민 사이에 확산된 것”이라 평가하며 “슈뢰더가 2006년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대성공 거뒀다는 ‘아젠다 2010’의 이면은

슈뢰더 총리와 기민련 당수 앙겔라 메르켈의 티비 토론
 AP통신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성과’를 거둔 슈뢰더 정부가 의회를 해산하며 조기 총선 실시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일까? ‘아젠다 2010’이 발표된 2003년 당시 독일의 실업률은 9.8%를 기록했다. 그런데 연이은 하르츠와 ‘일자리 창출’에도 불구하고 2005년 3월 독일의 실업률은 무려 12.5%로 급등했다.

이어 5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 주정부를 구성하는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루르 탄광을 배후로 하는 전통적 광공업 중심지로 지난 40여년간 사민당이 한 번도 패한적이 없는 사민당의 핵심 지지 지역이다. 독일 남동부의 바이에른주가 기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치권의 중심지라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슈뢰더 정부는 바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선거에서 참패해 독일 전역 16개 주 가운데 5개주의 정권밖에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9월 18일로 예정된 총선과 관련된 여론조사에서 동독 출신 여성정치인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기사연합은 현재 사민당을 넉넉히 따돌리고 있다. 전통적인 ' 기민VS사민' 대결구도에 새로 등장한 ‘좌파당’(Linke Partei)이 어느 정도 약진하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기민련등 우파는 슈뢰더의 ‘아젠다 2010’을 그대로 이어 받고 긴축재정등을 통해 강력한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총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대로 ‘아젠다 2010’이라는 ‘개혁안’이 받아들여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의 정치구도를 오른쪽으로 당겨버린 슈뢰더, 그리고 좌파의 대응

좌파당(Linke Partei)을 이끄는 오스카 라퐁텐
 독일정치전문 사이트 Politikerscreen
결국 슈뢰더의 ‘아젠다 2010’은 실효도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독일 내 ‘좌파VS우파’의 전통적 대립구도를 훨씬 우측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전통적 사민당 지지 계층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어차피 슈뢰더 사민당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사용하는데 그럴 것 같으면 전통적 우파 세력이 신자유주의라도 잘 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지지 정당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거듭 주장하는 ‘대연정’의 향배가 짐작되는 지점이다.

한편 2004년 7월 사민당내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일부가 사회당을 탈당해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 그룹을 결성했고 사민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거물 정치인 오스카 라퐁텐이 2005년 5월 이에 합류했다. 이들은 현재 구 동독지역에 주요 근거지를 둔 민주사회당과 ‘좌파당’이라는 선거연합당을 결성해 총선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의 우경화를 비판하면서 “사민당은 7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의 ‘아젠다 2010’이 노동자의 복지를 축소시켰다”고 비판하면서 최저 임금과 연금액을 각각 월 1,400유로와 800유로로 올리고 실업보험금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저소득자에 대해 의료비를 면제하고 세금혜택을 주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벤치마킹 하려는 독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게재 순서
(1)월급 50만원짜리 일자리 170만개 만든 독일의 ‘아젠다 2010’

(2)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갈현숙(독일 베를린 자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3)우정사업민영화, 340조엔의 우편저축액은 어디로?

(4)민영화 법안은 폐기되었다
요코 아끼모토 ‘ATTAC 일본’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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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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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노무현 대통령이 벤치마킹 하려는 독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2)
갈현숙(독일 베를린 자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총선을 앞둔 독일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그 두 번째 순서로 갈현숙의 글을 싣는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연구자인 갈현숙은 슈뢰더가 의회를 해산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 독일 사회가 50여년간 유지해왔던 '사회시장경제체제'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 원인 그리고 이에 대한 슈뢰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대응을 구체적이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민당 정부가 내놓은 신자유주의적 대안(아젠다 2010)의 허구성과 한계를 지적한 필자는 새로운 좌파 정당(독일 내)의 등장과 유의미성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진행할 수 있는 사회정치집단의 복원과 성장에 열정을 쏟아야 할 때"라 지적한다. 아래는 갈현숙의 기고글 전문이다.


연정 파트너 녹색당 무시하고 내각 재신임안 제출한 슈뢰더

9월 18일에 독일 총선이 열린다.
좌:기민당수 앙겔라 메르켈 우: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독일 공영방송 ZDF

지난 8월 24일자 인터넷 한겨레신문의 기사제목 중 <노대통령 '고이즈미, 슈뢰더 부럽다‘>가 눈에 띄어 기사를 읽게 됐다. 기사를 읽으며 슈뢰더의 재신임안 배경에 대해 도대체 남한에 어떻게 소개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기사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노 대통령은 특히 슈뢰더 총리의 재신임 요구에 대해 이 일을 할 수 없으면 앉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정치를 마감하려는 것이고, 또한 정권을 바꿔서라도 이 개혁은 해야 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강력하게 던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추론한다."고 했다.

이 구절을 번역해서 독일국민들에게 보여주면 몇 사람이나 동조할지 의문이다.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전체적 맥락에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뽑아내져 국내사정에 맞게 위장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한 사건을 보는 입장은 다양하지만 입장에 대한 의사표현 이전에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것은 정확한 사건의 경위와 배경에 대한 정보의 공유일 것이다. 물론 의도적인 가감을 감안하고서도 말이다. 적녹(사민당과 녹색당)연정의 재신임안배경에 대해 일어났던 당시 상황을 따져보자. 지난 5월22일 노르트라인-붸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 주정부 선거에서 사민당이 참패하면서 16개 주선거에서 다섯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주정부를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에게 넘겨주게 됐다.

더욱이 노르트라인-붸스트팔렌지역은 39년간 사민당이 패배해 본 적 없었던 사민당의 표밭이었다. 한국에 빗댄다면 대구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과 비슷한 충격일 것이다. 선거결과가 확정되자 수상인 슈뢰더는 연정의 파트너인 녹색당에 묻지도 않은 채 현 내각에 대한 재신임안 요구를 발표했다. 발표 이후 재신임안 의결이 의회에 제출됐고 8월 연방의회의 동의를 거쳐 지난 25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연방의회선거를 9월18일에 시행하게 된다. 여당집권기간이 1년이 남아 있던 시점에 집권여당의 대표가 이런 결정을 한 데는 연방의회내의 과반수이상을 여당 의원이 차지하고 있더라도 지방의회선거결과 구성된 주 의회의 2/3가 야당 의원으로 구성되므로 주 의회가 연방의회의 강력한 비토(Veto)세력으로 자리해 사실상 정권과 연방의회가 그 수행능력을 상실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노르트라-붸스트팔렌 주정부선거 전에 사민당의 패배할 경우에 대한 우려의 시나리오가 이미 퍼져있었다. 노대통령은 슈뢰더 수상이 든든한 당의 비호를 받으며 강령한 개혁의지를 국민들에게 강하게 천명하려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었을지 모르나 사실은 내각과 연방의회를 통해 행사할 수 있었던 영향력이 차츰 주정부선거에서 사민당의 패배가 거듭되며 상실해 오다 결국 손발이 잘린 형국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현 적녹연정을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태로 몰아넣은 것일까? 그것은 적녹연정의 최대 프로젝트였던 독일의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시장을 대폭 개혁하기위해 고안된 "아젠다 2010(Agenda 2010: 독일어로는 아겐다 2010 이라 부른다)" 때문일 것이다.

기여금 원칙으로 유지해온 독일의 '사회시장경제 체제‘ 위기 봉착

독일 금속노동자들
 독일 공영방송 ZDF
독일은 2차 대전 후 사회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체제로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시장경제시스템에 ‘사회’란 개념을 적용해서 경제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복지’ 역시도 국가의 중요한 책임으로 설정해 발전시켜온 것이다. 50년대부터 포디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경제 부흥과 완전고용이 가능케 됐고 이러한 완전 고용을 기반으로 사회보장제도의 기본 골격을 한 노동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의료보험, 연금, 실업보험 등의 각각 사회보장재원을 자본가와 노동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형태의 기여금원칙을 근간으로 삼았다. 이에 정부는 이를 법적으로 관장 및 관리하고 일부의 기여금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왔다.

바로 이점이 북유럽 복지국가와 다른 점인데 북유럽의 경우 세금을 통한 재원의 재분배 형태라면 독일의 경우 기여금 원칙을 기반으로 한 사회보험의 형태이므로 상하 간 재원 재분배 정도는 북유럽에 비해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통일 후 막대하게 투입된 통일비용에도 불구하고 비용만큼의 효율성을 창출하지 못한 구동독 재건프로젝트의 한계와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이 이 시기 더욱 강하게 작동되면서 독일의 복지국가 시스템에 이전보다 강력하게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복지국가의 위기는 이미 70년대 초반부터 경제위기의 국면마다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 대는 독일의 생산력과 생산 입지의 비경쟁성과 관련 됐다기 보다는 현재의 기여금원칙에 입각한 사회보험시스템은 완전고용을 전제로 했을 때 그리고 중심부,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 간의 축적구조와 생산관계가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이 전지구적으로 작동하기 이전의 조건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던 조건과의 비교에서 원인이 발견될 수 있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기여금 원칙은 고실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예전의 모습으로 유지하기 어려울뿐더러 현재 실업의 문제는 노동의 유연화정책으로 출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16년 만에 정권교체가 되면서 사민당과 녹색당이 정부여당이 됐고 2002년 재집권에 성공해서 집권 2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독일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실업문제다. 독일의 실업률은 연평균 정권 교체기였던 98년 9.4%에서 다소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집권 2기째였던 2003년 9.8%상승하더니 2005년 3월12.5%까지 상승했다가 7월 11.5%로 다소 떨어진 상황이다. 열 명 중 한 사람이 실업자란 이야기고 구동독지역의 실업률은 구서독지역의 1.5배에서 2배를 상회한다. 실업자가 발생하면 일단 기여금을 통한 사회보장재정의 수입이 줄어드는 반면 실업보험과 생활보호지원금이 지출 돼야 하는 이중적 재정고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이 통일 후 가속화 되었고 좀처럼 실업률은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실업의 원인을 복지국가시스템과 강력한 노조 때문이라고 선전하는 보수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와 크게 다르지 않는 노선을 적녹연정이 걷기 시작한 점이다. 집권 2기째인 2003년 3월 14일 연방의회에서 슈뢰더 총리의 "Agenda 2010"에 대한 기조연설을 시발로 같은 해 9월 기민/기사연합의 대폭적 지지로 통과되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초기 Deutschland bewegt sich ‘독일이 움직인다’ 란 구호에서 ‘혁신과 성장’으로 변했다 (http://www.bundesregierung.de/Themen-A-Z/-,9757/Agenda-2010.htm). 독일이 움직여 혁신과 성장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내용의 혁신과 성장인지에 대한 사민당의 당성에 맞는 고민의 흔적도 내용도 찾기 힘들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의 유권자들은 기민당과 사민당의 차이를 어디서 찾아야하는지 상당히 혼란스러울 뿐이다. 차라리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만 한다면 보수당인 기민당이 하는게 낫지 않겠냐는 푸념도 있었다.

사민당 신중간 노선이 내놓은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안, ‘아젠다 2010’

아젠다2010 과 하르츠를 반대하는 집회
 독일인디미디어 de.indymedia.org
노대통령이 부러워했던 그 개혁의지란 것은 바로 슈뢰더와 소위 사민당 내부의‘Neue Mitte(신중간)’노선의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에 맞는 구조개혁의 전면 수용에 대한 개혁의지 였던 것일까? 이러한 개혁을 사민당이 정부여당이 되어 지난 7년간 진행시켜온 것이다. 그럼에도 사민당 평당원들은 그래도 보수당이 앞장서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하는 것보다 낫지 않았겠느냐는 의구심에 가득 찬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한다. 1869년 8월 8일 노동자 해방을 위해 건설된 사민당이 자본주의 의회정치 구조 안에서 이렇게 ‘진화하고 발전’한 것이다.

‘아젠다 2010’은 경제성장과 높은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가의 임금비용 및 사회적 비용의 감소와 이를 위해 노동시장개혁과 복지시스템의 대폭 혁신을 목표로 한다. 경제, 교육, 세금, 노동시장, 의료보험, 연금 등의 분야가 주요 개혁 프로그램의 대상이고 각각의 하위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그중 가장 문제로 꼽히는 것이 의료보험개혁과 노동시장 개혁 그리고 해고조건 완화이다. 독일의 의료보험은 개인기여금도 한국에 비해 높지만(서른이 넘은 학생신분의 여자의 경우 최하로 측정돼 한화로 약 15만원을 매달 의무로 기여해야한다) 병원 방문시 현금을 지불하는 일이 없었고 어떠한 병에 걸려도 추가로 개인이 지출하는 비용이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차츰 현금지불과 추가지불의 요소가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2004년부터는 일 년을 사분기로 나누어 매 분기별로 10유로를 지불해야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에 분노를 느낀 독일인들은 이 비용에 대해 의사를 만나기 위한 ’입장료’라는 쓴 소리를 하기도 한다. 즉 ‘건강’만큼은 사적 영역에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예방,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라는 안목에서 공공의 영역 내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공공성이 ‘아젠다 2010’을 통해 심각하게 공격 받고 있는 것이다. 건강은 한 사회가 모두를 위해 공적영역에서 서로 책임지고 보호해야하는 기본 철학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로 이전엔 실업자와 생활보호대상자에게 각각 따로 지불된 급여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덜고 노동동기를 유발한다는 미명하에 실업급여와 생활보호금을 장기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는 개혁이다. 이것이 현재 독일 서민들에게 일명 공공의 적으로 불려지는 ‘하르츠 IV’이다. 이 개혁프로그램이 시작되기 1년 전 실업률 감소를 위해 Minijob(하르츠II)을 정부차원에서 실시했다. 보통 일반 독일노동자가 고용이 되면 노동계약서를 써야하고 이는 해당 노동자의 사회보장보험에 강제적으로 가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Minijob으로 고용된 노동자는 사회보장보험에 가입할 의무도 없으며 해고규정도 유연할뿐더러 임금역시도 최저임금수준이다. 하르츠IV 개혁으로 실업기금을 1년까지 받은 후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생활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노동의 의욕을 보여줘야만 한다. 슘페터식의 ‘노동을 위한 복지’를 부활시킨 것이다. 장기실업상태에 놓은 사람들은 생활보조금을 얻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창출’해 놓은 Minijob에 등록해서 최저 노동조건과 최저 임금을 감내하며 노동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의아스러운 점은 하르츠IV와 Minijob을 통해서도 실업률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과 실업기금과 생활보조금 지급액수가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하르츠IV의 초기 단계에선 이전 시스템에서보다 더 많은 지출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에게는 혜택을, 민중들에게는 내핍을 강요

'Geiz ist geil'현수막이 붙은 백화점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함부르크 시민들
 독일인디미디어 de.indymedia.org
슈뢰더 정부는 독일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 한편으론 해외로 도피하는 기업들에게 매력적 생산입지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기업의 사회보장분당금을 줄이고 이들의 법인세(25%에서 19%로 하향조정-현재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를 책정하고 있다)를 연차적으로 줄이는 한편 노동자의 해고규정을 약화시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다른 한편 복지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공공성의 축소와 복지와 노동을 연계시키는 발상의 전환을 제시해서 약 2년 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위기에 대한 응급처치는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의 위기에 대한 진단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일어날 뿐이다.

실제로 해외로 도피하는 자본이나 생산입지의 장점을 요구하는 기업가들의 요구를 들어줬음에도 그들은 생산 자본에 투자하지 않았고 금융 자본 쪽으로 많은 자본을 빼돌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매번 더 많은 유연화와 더 유리한 조건을 앞세운다. 실제로 2002년 통계에 의하면 독일에서 있는 기업들이 기업의 총비용중 직,간접 임금으로 사용되는 부분은 21%에 불과했다. 문제는 기업가가 생산 자본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보다 금융자본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현재의 국면에선 더 많은 편안함과 장점이 유지되고 확장되는데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생산입지를 빌미로 정부와 협상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자본의 요구를 어쩔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세인양 이제까지 비춰졌고 반복되어 왔다.

21세기 초반부터 독일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유령과 공포는 실제로 독일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보다 더 많은 위기가 조장되어 “우리는 더 이상 잘나가지 않고 우리의 연금은 바닥이 났고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므로 있을 때 절약해야만 한다“는 이데올로기다. 이 절약이데올로기는 한 전자상가의 광고문구로 요약된다. ”Geiz ist geil : 인색함이 끝내주는 거야!“ 케인즈주의 경제학자인 보핑어 교수는 이런 절약과 경제위기조장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국민경제에 악으로 작동해서 내수경기의 침체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요는 사민당이 정부 여당으로 경제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고민의 지점들은 바로 이런 지점들에 있었어야 했다.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빈곤에 처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악화해서 상층부가 유지되는 아래로부터의 분배가 아닌 사회적 형평성과 기회의 평등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민당의 노선이었단 말이다.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과 연합 ’좌파당‘의 출현

좌파당의 쌍두마차 게오르그 기지와 오스카 라퐁텐 포스터 앞을 지나가는 베를린 시민들
 독일 공영방송 ZDF
이런 정부여당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반기를 들며 사회정치세력으로 형성되어 출현한 것이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 Wahlalternative Arbeit & Sozial Gerechtigkeit)"당이다. 선거대안(WASG)당은 2004년 7월 사민당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불만을 품은 공공노조, 산업금속노조 간부 등이 사민당을 탈당해 그 기반을 만들었다. 이들은 올해 1월 정당으로서 공식출발해서 지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선거에서 2.2%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들을 이루는 구성원들은 신자유주의 공세 이후 현실정당정치 내에서 점점 기반이 축소된 좌파세력의 새로운 공조와 시민사회단체 내에서 정당정치의 좌파세력 복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다.

이에 1995년 사민당대표를 거쳐 1999년 재무부장관직을 사퇴한 오스카라퐁텐이 5월24일 사민당을 공식적으로 탈퇴하고 노르트라인-붸스트팔렌 주정부선거 이후‘선거대안당’으로 입당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난 2002년 연방의회선거에서 의회진출에 실패했던 민주사회당(PDS)과 함께 선거연합정당으로 ‘좌파당(Linke Partei)’이란 선거연합당명 아래 두 당이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다.

좌파당은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당들 중 유일하게‘Agenda 2010’을 반대하고 있고 경제, 재정 그리고 사회정책에서의 기본적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선거 주요전략을 소개한다면 직접민주주의의 강화, 사회적 정의 재고와 구축, 평화, 시민권보호, 국민생활 기초보장(Grundsicherung: 최저임금을 1400유로 선에 맞추고 빈곤문제에 적극 관여 가능한), 교육에 대한 동일한 기회, 형평성 있는 조세제도(꾸준히 증가한 노동자들의 조세율을 하향하는 반면 법인세 및 상위 소득자들에 대한 형평성에 맞는 세율적용), 구동독지역에 대해 서독지역만큼의 개발지원, 극우주의 퇴치 그리고 시장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과 사회의 안전을 위한 유럽연합이 될 수 있도록 합당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http://sozialisten.de/wahlen2005/positionen/index.htm)

이들이 연합정당으로 언론에 소개된 것이 세달 남짓 되지 않는다. 게다가 헌법재판소는 최근까지 이들의 연합선거로 인한 연합후보자들에 대한 합법성을 심사하기도 했다. 초기 이들의 연합을 지켜보며 조사된 설문에선 평균 18%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 지지율은 조금씩 주춤하며 하향하고 있는 것으로 매스컴은 보도하고 있다.

7월 중순부터 독일국영방송(ARD)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의회 그리고 정당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사민당 내부에선 좌파당을 향해 좌파의 분열은 독일을 위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닐 뿐 아니라 연정의 파트너로도 좌파당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한국처럼 선거가 지나면 헤쳐서 다시모여 하는 식의 당 운동과 달리 독일의 정당운동은 백년의 세월동안 보수당, 사민당, 자유당의 큰 성향아래 각각의 정당들이 발전해왔다. 그런 이유로 이번 좌파당의 행보는 이전 독일 정당역사상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자 그만큼 쉽지 않은 시작이었다. 게다가 동서를 어우르는 최초의 연합정당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선거에서 자본주의 의회정치에서 좌파의 소리를 내고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의회 안 정당들이 노동자와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은 대세이니 어쩔 수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조장해 왔고 거기에 사민당역시도 투쟁의 의지보다는 이러한 조류를 함께 형성하고 공고히 해왔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선거 국면에서 ‘더 많은 일자리, 더 적은 세금’이란 선거용 구호로 도시를 도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생략된 말들,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 노동조건은 더욱 유연화 되어야 하고 해고규정은 약화되어야 하며 기업의 사회보장분담금은 줄여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지는 확신은 못한다. 왜? 우리는 정치인들이니까“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을 독일에 묶어 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세율을 낮춰져야 한다. 이것은 모두 국민을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이렇게 생략된 말들 밝혀내야 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치개혁이 위기를 약화시키지도 해결시키지도 못했던 명백한 결과들에 대해 밝히고 그 책임에 대해 추궁해야 한다. 이미 검증이 나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정책들이 이름만 둔갑하거나 포장만 새로 해서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형태로 재등장하고 있다. ‘개혁’은 새롭게 고친다란 뜻이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자도 사민주의자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개혁의 내용이 노동자, 시민들의 요구로 채워지기 위해선 다양한 정당이외의 사회정치 집단이 그들에게 압력을 행사해야한다. 그리고 그 압력은 민중과 시민들로 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다. 아젠다 2010때문에 슈뢰더는 정치적 타격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의회정치라도 시민 사회내에서 수용할 수 없는 선이라는 것이 있다. 더불어 의회주의에 너무 익숙한 독일의 시민들은 의회주의 염증에서 벗어나 그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할 때다. 이러한 시점에서 좌파당은 하나의 가교가 될 수 있으리라본다.

9월 18일 독일은 연방의회선거를 치룬다. 국민 한 사람이 두 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한표는 지역구의 후보자에게 다른 한 표는 정당을 보고 투표한다. 독일 국민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라도 실망할 필요도 기대를 품을 필요도 크게 없다고 본다. 다만 의회정치를 감시하고 견제하며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진행할 수 있는 사회정치집단의 복원과 성장에 열정을 쏟아야 할 적절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이 벤치마킹 하려는 독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게재 순서
(1)월급 50만원짜리 일자리 170만개 만든 독일의 ‘아젠다 2010’

(2)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갈현숙(독일 베를린 자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3)우정사업민영화, 340조엔의 우편저축액은 어디로?

(4)민영화 법안은 폐기되었다
요코 아끼모토 ‘ATTAC 일본’ 사무처장
월급 50만 원 일자리 170만 개 만든 독일 ‘아젠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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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 도토리 키재기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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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 도토리 키재기로 귀결
독일 총선, 내각 구성 오리무중인 가운데 좌파당 약진 돋보여
윤태곤 기자 peyo@jinbo.net
기민·기사 원내 1당 차지했으나 사민당에 불과 3석 앞서

국제적 관심을 집중시킨 가운데 지난 18일 실시된 독일 총선의 윤곽이 드러났다. 예상대로 기민·기사 연합(CDU/CSU)이 35.2%의 득표율로 225석을 차지해 1당 자리에 올랐으나 사민당(SPD)과의 의석수는 3석에 불과해 선거전 초기의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또한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 Wahlalternative Arbeit & Sozial Gerechtigkeit)"당과 민사당(PDS)의 연합으로 이번 총선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좌파당(Linke Partei)는 8.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54석을 차지해 녹색당(GRUNE)을 누르며 기염을 토했다.

10월 2일 추가선거가 실시되는 드레스덴 선거구를 제외한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다.
 독일연방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전이 시작될 즈음에는 엥겔라 메르켈의 돌풍과 더불어 기민·기사 연합이 사민당을 20% 이상 앞서가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아젠다 2010 조차 부족하다는 기민·기사연합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고위 당직자들의 인종주의적 발언들이 결국 사민당과의 격차를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복잡한 연정 구도, 자민당과 녹색당이 캐스팅 보트 뒬 듯

한편 30%대 양당과 10% 미만의 세 당등 5개 정당이 사이좋게 의석을 나눠가짐에 따라 내각 구성을 두고 복잡한 머리싸움이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재 독일 언론들이 내놓고 있는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기민·기사연합 + 사민당 대연정(447석) △기민·기사연합 + 자민당 + 녹색당 (337석) △사민당 +자민당+녹색당 (334석)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327석).

위의 네 가지 조합 가운데 일단 두 번째와 세 번째 조합의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민당의 경우 대체로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의 가운데에서 약간 우측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평가받는 중도우파 정당으로 기민·기사연합, 사민당과 각각 연정을 꾸린 경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양당 어디와도 다 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녹색당의 주요 인사로 슈뢰더 내각에 외무장관으로 참여한 요슈카 피셔는 “우리(녹색당)은 정부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란다”며 “어떤 형태의 연정에 참여할 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총선 직후 내놓았다.

앙겔라 메르켈이나 슈뢰더 양자가 똑같이 상대와의 연정을 없고 자신들이 내각을 주도할 것이라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자민, 녹색당을 끌어들이려는 양자의 경쟁은 치열할 전망이다. 게다가 대연정의 경우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가 내고 슈뢰더의 사민당이 하위파트너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범좌파라는 점에서 사민+좌파+녹색당이 결국 내각을 꾸릴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좌파당이 내각에 들어가려면 아젠다 2010이 근본적으로 수정되거나 아니면 좌파당이 자신들의 입장을 바꿔야만 하기 때문이다.

좌파당의 총리후보로 나섰던 오스카 라퐁텐이나 기지 전 사민당수, 프란츠 뮌터페링 사민당수등 주요 인사들은 ‘슈뢰더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분명히 한 바 있고 슈뢰더 역시 어떠한 경우에도 좌파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실리적 측면에서라도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노선을 비판하며 54석을 차지해 독일 정치의 한 축으로 선 좌파당이 연정에 참가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독일 총선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베를린에서 선전을 자축하고 있는 좌파당 당원들
 Linke Partei홈페이지

한편 예상대로 독일 총선은 유럽전역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급격한 우경화 행보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범진보세력인 사민당 그리고 굳건한 양당구조를 깨고 세를 확산하고 있는 좌파당, 녹색당의 득표율을 합하면 과반이 넘고 기민·기사당 연합과 자민당을 합친 것보다 약 6% 정도 앞섰다.

이런 결과에 대해 프랑스 사회당등 이른바 ‘제3의 길’을 걷는 정당들은 “신자유주의와 미국독주에 반대하는 독일인의 선택”이라며 아전인수격 해석을 성급하게 내놓고 있지만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등 유럽내 전통적인 주요 좌파정당들은 이미 ‘좌파’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잃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1980년 녹색당의 충격적 등장 이후 25년 만에 다시 거대 정당 구도를 깨뜨리고 의회 내의 비중 있는 급진세력으로 등장한 좌파당의 행보를 눈여겨 볼 만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월급 50만 원 일자리 170만 개 만든 독일 ‘아젠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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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독일 선거: 실망성 투표와 계급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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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독일 선거: 실망성 투표와 계급 균열
대연정인가? 신호등 연정인가? 아니면 재선거인가?
정병기 
대연정인가? 신호등 연정인가? 아니면 재선거인가? 지난 18일 치루어진 독일 조기총선 결과를 두고 모두들 연정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대정당인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이 1% 미만의 차이를 두고 득표했고 어떠한 연정 가능성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표 1> 참조). 또한 10월 2일에 다시 치루어질 드레스덴 선거에서 사민당이 의석을 추가한다면 기민/기사연과 정확히 동수의 의석을 갖게 되는 기막힌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표 1> 2005년 독일 총선 결과
 http://stat.tagesschau.de/wahlarchiv(검색일: 2005년 9월 19일)

가능한 연정 시나리오는 대연정(기민/기사연, 사민당), 신호등 연정(적황록: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 흑황록 연정(기민/기사연, 자민당, 녹색당), 적적록 연정(사민당, 좌파/민사당, 녹색당)이다. 사실상 연정 교섭에서는 기민/기사연의 메르켈 후보보다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가 더 큰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비록 제1당은 아니지만 가능한 연정 조합이 많기 때문이다. 슈뢰더는 제2당의 후보이지만 총리를 연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연정의 가능성은 양대 정당 모두가 거부하고 있고, 녹색당과 자민당은 환경정책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한 배를 타기 어려우며, 좌파/민사당은 어떠한 형태의 연정 참여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의회가 3회까지 총리를 선출하지 못하게 되면 재선거가 실시될 수도 있다. 현재 독일 정국은 어떠한 것도 분명하지 않다.

양대정당의 실표와 실망성 투표

좌우파 정당연립간의 비김수를 결과한 이 선거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7년 집권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해온 적녹연정은 적지 않은 유권자들을 떠나게 만들었으며, 기민/기사연 또한 정책적 차별성을 보이지 못해 실표를 한 것이다. 유권자들 절반이 투표가 임박해서야 지지 정당을 결정했으며, 약 1/3이 적극적 지지보다 실망에 따른 소극적 투표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지표의 이동에서도 명확히 나타났다. 사민당은 4.2%(약 236만표)의 실표를 했는데 사민당을 떠난 표들 중 약 97만표는 좌파/민사당으로, 약 62만표는 기민/기사연으로 갔으며, 약 37만 명의 지지자들은 기권했다. 3.3%(약 146만표) 실표한 기민/기사연은 사민당과 녹색당으로부터는 지지자들을 견인했으나, 64만 명의 기권자를 낳았으며 자민당에게 110만표를 빼앗겼다. 이번 총선은 기권자가 양산되고(투표참여율은 지난 선거보다 약 2% 낮은 77.7%), 표의 이탈이 두드러진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득표를 제고한 두 정당인 자민당과 좌파/민사당도 실망성 투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더욱 노골적인 자유시장 정책을 주장한 자민당은 2.4%를 더 얻었으며, 전통 좌파의 기치를 든 좌파/민사당은 4.7%의 득표를 제고했다. 그러나 표의 이동으로 볼 때, 자민당의 득표도 전통적 지지층의 확대라기보다는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으로부터 옮겨온 지지자들이 많고, 좌파/민사당의 경우도 실망성 투표의 효과가 51%인 것으로 나타났다.

좌파/민사당의 약진과 계급 균열의 재등장

이번 선거의 승자는 자민당과 좌파/민사당이다. 물론 이 정당들도 실망성 투표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아 득표율 제고가 전적으로 진정한 세력 강화의 결과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지표들의 종사상 지위별 성격을 보면 독일에서도 계급균열의 양상이 다시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2> 참조).

기민/기사연이 자영업자와 연금생활자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으며, 자민당은 자영업자들에게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반면 사민당은 노동자층과 학생 및 연금 생활자로부터 높은 지지율을 획득했으며, 녹색당은 학생과 사무직 및 자영업자 등 인텔리층을 핵심지지층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도 사회계층별 지지가 10% 안팎의 차이를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기성 네 정당에 대한 지지율 분포가 과거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확대된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좌파/민사당의 지지율 분포이다. 좌파/민사당의 지지율은 압도적으로 실업자와 육체노동자들에 치중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한 좌파/민사당을 선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표 2> 종사상 지위별 투표경향(2005년 총선, %)
 http://stat.tagesschau.de/wahlarchiv(검색일: 2005년 9월 19일)

정책에 따른 투표 경향도 계급균열적 성격을 보여준다(<표 3> 참조). 유권자들이 선택한 투표의 정책적 동기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세정책과 외교안보정책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당별로 보면 매우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사민당의 경우 사회정책이 가장 높고 경제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이 유사한 비율을 보였다. 기민/기사연과 자민당을 선택한 유권자들은 경제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을 중요한 이슈로 꼽았는데, 그중 경제정책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녹색당 지지자들은 환경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은 사회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을 중시했다. 특히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의 사회정책에 대한 관심은 다른 어떠한 정당 지지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60%를 보였다. 녹색당을 제외하면 우익의 자민당과 중도의 기민/기사연 및 사민당 그리고 좌익의 좌파/민주당이라는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표 3> 정당 지지자들의 정책별 지지 동기(%) (* 복수 답변 가능)
 http://stat.tagesschau.de/wahlarchiv/wid246/umfragethemen0.shtml(검색일: 2005년 9월 19일). http://www.tagesschau.de/aktuell/meldungen/0,1185,OID4766402,00.html(검색일: 2005년 9월 19일)

노자 계급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모순이자 근본적인 모순이다. 독일 사회에서 그 모순은 사회복지국가를 통해 완화되었지만,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인해 다시금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도 독일 총선은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만큼 그 희생자도 늘어날 것이며 제도적이든 비제도적이든 새로운 정치세력화가 그들을 결집할 것임을 드러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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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절차는 과연 민주주의를 보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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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절차는 과연 민주주의를 보장하는가
독일 2005년 총선결과와 남은 과제
갈현숙(베를린자유대) 
지난 18일 벌어졌던 독일총선에 대한 갈현숙의 글을 싣는다. 갈현숙은 이미 “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이라는 글을 참세상에 실어 독일과 한국에서 과감한 사회개혁안으로 포장, 선전되고 있는 아젠다 2010의 속내를 분석한 바 있다. 갈현숙은 이번에도 독일 총선 결과의 의의와 전망에 대한 깊이 있고 생생한 분석을 담은 글을 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론, 선거제도 개편론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한국에서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정치제도상 최선의 개선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독일 총선을 바라본 갈현숙은 “독일식의 정당제도는 양당제도에 비해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오는 결점들을 채울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다”고 그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다양성과 가능성을 제도로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바로 모두 한 표로 처리된 유권자들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지적한다. 이어 “만약 사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경우 이번 선거의 결과를 아젠다 2010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오역하고 선전할 것이다”며 “뻔한 거짓말이 너무나 복잡한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러한 완성된 절차에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음은 갈현숙의 기고글 전문이다.


총선 결과로 더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독일

지난 9월 18일 독일에선 2005년 독일 총선이 치뤄졌다. 선거결과는 이미 국내에도 보도됐지만 연립정부구성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현재 독일의 정계 및 이를 주시하고 있는 국민들의 시선엔 긴장감이 가득하다. 그 이유는 한 정당이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로 선거가 마무리 되면 정당간의 연립을 형성해서 정부여당을 구성하고 수상을 추대하기 때문이다.

2005년 총선이 그 이전의 총선과 구별되는 점은 이전의 경우, 보통 거대 정당 하나와 소수정당 하나와의 조합으로도 정부여당을 구성할 수 있는 의회의석의 과반수 이상이 가능했다. 문제는 이번 선거의 경우, 거대정당(1)+소수정당(1)의 조합으로 50%이상의 지지율을 넘지 못하는데 있다.

<2005년 독일 총선 결과.2005년 9월 19일 현재>


SPD:사민당, CDU/CSU:기민/기사연합, Gr?ne:녹색당, FDP:자민당, Linke.PDS:좌파연합당(WAGS, PDS)
첫번째 그래픽은 2005년 이번 선거에서의 득표율을 표시하고 있고, 두번째 그래픽은 지난 2002년 선거와 비교했을 때 득과 실을 비교한 것이다. 세번째 그래픽은 국회내의 의석수 중 각 정당이 차지하게 되는 의석수를 의미한다.
<출처>http://www.fr-aktuell.de/uebersicht/alle_dossiers/politik_inland/
bundestagswahl_2005/die_wahl/?client=fr&cnt=728803&src=180760

위의 그래픽을 보면 기존의 정부여당이었던 사민당 34,3% 녹색당 8,1%를 합하면 42,4%의 지지율이 보수당인 기민/기사연합 35,1 자민당 9,8으로 합산지지율은 44,9%이다. 즉 적녹연정의 경우도 보수자유진영의 경우도 기존의 연합정당으로만으로는 정부 여당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조합 가능한 연정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

독일 총선 결과가 제기한 몇 가지 의미들

연정가능 시나리오들을 살피기 전에 이번 독일총선의 의미를 몇 가지 살펴보자. 우선 위에서도 말했듯이 더 이상 거대 정당-사민, 기민-중심의 정치에서 10%이하 지지율을 받는 정당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정당으로는 좌파연합정당, 녹색당 그리고 자민당이다. 거대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감소하는 반면 이당들에 대한 지지율 상승이 의미하는 바는 거대 정당의 정치력에 대한 실망감이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당정치의 다각적 발전의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둘째, 슈뢰더의 내각 신임안제출, 의회해산등의 진통을 겪으면서도 사민당은 기대 이상의 득표율을 얻은 점과 그 어느 때보다도 유리한 조건에 있었던 기민/기사연합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한 점이다. 선거 이틀 전 까지만 해도 보통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은 41%를 넘었다. 반면 사민당은 평균 33%를 유지해왔다. 선거 초반기 만해도 사민당은 27%로 출발해서 선거전이 계속 되며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기민/기사연합의 경우 시작도 40%이상에서 출발해서 크게 변화 없이 지지율을 유지해왔으나 이런 선거결과는 충적적인 것이다.

일반 대중의 목소리는 당연히 적녹연정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고 당연히 이번 선거를 통해 그런 불만의 목소리가 현실을 바꿀 계기가 될 듯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볼 때 과연 선거전 고양되고 조성됐던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고 있다. 또한 선거운동기간 동안 나타난 지지율관련 여론조사에 대한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에 보인 유권자들의 판단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았다.

‘적녹연정(사민/녹색)도 문제지만 기민/기사연합도 더 문제다‘

기민/기사연합의 양대 지도자
우:기사당의 슈토이버 좌:기민당의 메르켈
 www.tagesanzeiger.ch
아젠다 2010 개혁프로그램으로 인해 적녹연정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민심이 떠나있었다. 6-7월의 시기는 기민/기사연합에겐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선거 전략을 구사해왔다. 문제는 이들이 구사해 온 선거전략의 기본을 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노선과 역분배적 사회복지 시스템이 그간 정권을 유지해온 적녹연정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들을 야기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국민들에게 전해 줬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기민/기사연합이 향후 재무부장관으로 지목하며 등용한 경제학 교수 키르히호프(Kirchhof)가 제안한 세율개혁안이다. 사민당은 소득세의 경우 최고소득자의 경우 42%인 반면 소득에 따라 15%까지 적용한다는 안을 제시한 반면 키르히호프의 경우 소득의 차이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25%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안과 부가가치세의 인상을 묶어 제시했다. 이는 소득의 형평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직접세율이라는 점과 부가가치세 인상을 통한 간접세율의 상승이라는 점에서 소득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세금정책인 것이다.

이러한 키르히호프의 제안이 현실화 될 경우 적녹연정보다 더욱 불합리한 상황이 촉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서 조성되기 시작했고 적어도 이들 연합이 정권을 잡게 하면 안 된다는 공감이 슈뢰더의 사민당에 회의적이었던 기존의 (사민당)지지자들을 묶어냈다고 볼 수 있다. 사민당 지지자들이 가진 딜레마는 지난 7년간의, 특히 정권 2기 동안의 슈뢰더 정권의 내용대로라면 사민당에 표를 던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기민/기사연합당이 정권을 잡게 둘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선거 전날 유권자들의 인터뷰중 이런 사민당 지지자들의 맘을 가장 잘 반영한 대화가 있었다. “슈뢰더가 계속 총리자리에 있길 원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이제까지 처럼은 안 된다.“

미디어나 정치인, 경제인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조건은 유연화와 해고조건 완화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분담금의 최대한 축소를 선전해왔다. 마치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오는 경제, 사회적 문제가 기존의 이런 시스템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는 비논리적 덮어씌우기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테두리에서 살아온 독일인들의 입장에선 그들의 연금, 의료, 실업금여 등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 공공성을 보장해 오던 제도들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어쩔 수 없는 대세로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선거의 표로서만 그 분노를 표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사민당은 기민/기사연정의 위험한 곡예로 인해 어부지리로 얻은 표도 상당한 것이다.

독일전역에서 고른 지지율 확보한 좌파연합당의 선전

셋째, 좌파연합당과 자민당의 선전이다. 우선 항상 6-7%를 유지해온던 자민당이 9%를 넘겼다는 점에서 현지에서는 자민당을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로 꼽기도 한다. 독일 정당정치상 자유민주당의 당성으로 흡수할 수 있는 지자들의 마지노선이 7%라는 주된 평가에서 나온 이번 선거결과는 실로 놀랍다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추가된 2%이상의 지지율은 어디서 온 것인가 하면 다름 아닌 기민/기사연합당으로부터 이전된 표가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자민당은 우선은 자축의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결국 연정을 형성해갈 파트너 당에서 표를 가져온 꼴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절반의 승리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좌파연합당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좌파연합당은 선거기간 내내 모든 미디어로부터 거의 봉쇄되다시피 해 보도도 잘 되지 않았고 더욱이 여론조사 지지율의 조작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민사당(PDS)의 표밭이었던 구 동독지역 뿐 아니라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당 (WAGS)’이 구서독지역에서의 선전함으로써 독일전역에서 고른 지지율을 획득하게 됐다.

이는 통일 후 처음으로 현재 독일의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해 동서독 모두를 아우르는 정당으로 그 입지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민사당은 그저 동독당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좌파연합당의 선거운동을 통해 새롭게 자리매김을 해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좌파연합당이 그들이 선거를 위해 연합하며 가장 주요하게 내세웠던 대의인 ‘의회정치 안에서 의회 밖의 소리를 진정으로 담아내는 좌파당’으로 그 역할을 채워가는 것 일게다.

대연정, 신호등연정, 자메이카 연정 모두 쉽지 않은 조합

이제 독일의 각 정당들에게 남은 과제는 어떻게 연합정부를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선거 다음날인 19일 월요일부터 다양한 조합가능성이 고려되고 있다. 우선 거대 연정으로 사민당과 기사/기민 연합이 제시되고 있다. 이 경우 세 당의 당성의 차이를 떠나서도 수상 자리를 슈뢰더가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복잡한 조합이다. 현재 다수의 국민들은 독일이 여러 면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느끼고 이러한 위기를 거대 정당간의 연정으로 극복해주길 바란다는 식의 여론이 보도 되고 있다.

두 번 째 가능성은 사민-녹색-자민(적-녹-황:신호등연정)이 제시되는데 이 연정에 대해서 이미 자민당은 절대 적녹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세번째 가능성은 기사/기민연합-자민-녹색(흑-황-녹:자마이카 연정-자마이카 국기와 색이 같다고 이렇게 부른다)인데 이 경우도 녹색당이 신호등 연정에서 자민당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무엇보다 녹색당의 경우 원전문제에 민감한 당인데 이 사안에 있어 흑황연합과는 적대적이다. 이 세가지 가능성외에 좌파당과 사민, 녹색당의 적적녹 연정도 이론상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그 어떤 당도 좌파당과는 연정의 뜻이 없다고 밝혔고 좌파당 역시도 야당으로 남겠다고 한 상황이다.

제도와 절차는 과연 민주주의를 보증하는가?

10월 2일 드레스덴 선거에 출마하는 좌파연합의 카챠 키핑
 http://www.katja-kipping.de/

선거 직전 드레스덴에서 갑자기 지역구의원이 죽은 관계로 드레스덴만 10월 2일 선거를 치루게 됐다 (선거용지에 인쇄된 후보자 이름을 바꾸기 위해서 연기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절차와 형식을 갖추는 일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드레스덴에서 채워질 의석수가 세석인데 만약 모두를 사민당이 차지한다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예상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하여튼 선거 후 14일 내에는 연정에 대한 결론이 도출되야 한다. 꾸준한 물밑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조화 가능한 가능성이 아직 발견되지 못한 듯 싶다.

지난 18일 독일국민들은 그들을 대신해 향후 4년을 책임질 정치가와 정당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유권자들의 최선의 선택이었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모두 같은 한 표로 처리됐다.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독일식의 정당제도는 양당제도에 비해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오는 결점들을 채울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다. 위에 언급한 것 처럼 거대 한 당의 뜻대로 정권이 좌우 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의 장점을 말한다.

그러한 다양성과 가능성을 제도로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바로 모두 한 표로 처리된 유권자들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사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경우 이번 선거의 결과를 아젠다 2010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오역하고 선전할 것이다. 뻔한 거짓말이 너무나 복잡한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러한 완성된 절차에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갈현숙 님은 베를린자유대 사회학 박사과정을 지내고 있다.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 도토리 키재기로 귀결
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월급 50만 원 일자리 170만 개 만든 독일 ‘아젠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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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녹색당 제치고 제4당으로, 좌파연합의 승리&quot;

 
    칼럼 > 칼럼
"녹색당 제치고 제4당으로, 좌파연합의 승리"
[정대성의 독일통신](1) - 연정 구성을 둘러싼 독일 정가의 소용돌이와 9.18 독일 총선의 의미
정대성(빌레펠트대학) 
"슈뢰더는 영원한 총리가 되려는가?"
"나는, 게르하르트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난 23일 독일 <빌트>지의 일면을 장식한 머릿기사 제목이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복장을 한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그래픽 사진도 곁들여졌다. 총선후 독일 정국이 연정 구성과 총리직을 둘러싼 소용돌이 속에서 연일 갑론을박을 거듭하는 가운데, 매일 수백만 부를 찍어내는 유럽 최대의 '황색' 일간지 <빌트>가 슈뢰더의 총리직 '욕구'를 이렇게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야욕'에 빗대어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23일자 '빌트'의 1면 머릿기사
스캔들 기사를 선호하고 뚜렷한 보수 성향을 '자랑하는' 이 신문은 차기 정부의 출범 선언문이 다음처럼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황당하게 비꼰다. "나, 게르하르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첫째, 기민/기사연합은 두 정당으로 분리되었다. 둘째, 따라서 나의 사민당이 원내 제1당이다. 셋째, 내가 총리를 계속한다!"

패러디를 넘어 공개적인 야유와 비아냥 수준에 이른 <빌트>의 이러한 '공격'은 총선에서 0.9% 차이로 기민/기사연합에 패배한 사민당 지도부가, 연방의회에서 '연합체'로 구성된 기민/기사연합을 두 개의 정당으로 쪼개고 제1당이 되기 위해 '연방의회 규정'을 바꾸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데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듯하다.

현 연방의회 규정은 기민당과 기사당이 연방의회에서 단일 의원단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민/기사'연합'이라는 명칭 그대로다. 물론 기민당과 기사당은 엄연히 다른 두 개의 정당이지만 기사당은 바이에른주에만 존재하고, 대신 바이에른주에는 기민당이 없다. 그래서 성향이 비슷한 형제당인 두 정당은 기민/기사연합으로 연방의회 선거에 임하고 하나의 의원단을 구성해온 것이다.

하지만 선거 직후부터 사민당은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은 두 개 정당을 합친 것이니 만큼 사민당이 최대의 지지를 받은 1당이라는 '논리'를 펴왔고, 급기야 녹색당과 좌파당의 지지를 얻어 연방의회 규정을 바꿔 원내 1당이 되려한다는 말이 흘러나오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사민당 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자 당수 뮌터페링은 재빨리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보수 색깔을 분명히 하며 기민/기사연합과 그 당의 총리 후보 앙겔라 메르켈을 지지하는 <빌트>는 '분'을 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온갖 추측과 예상이 난무하며 독일 정가를 달구고 있는 연정구상과 총리직을 둘러싼 힘겨루기와 줄다리기는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본적인 원인이 돌려진다. 하지만 독일은 전통적으로 한 정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해 연정형태의 정부가 구성되어온 것이 관례였다.

기실 이번 선거의 딜레마는 집권 사민당-녹색당은 물론 야당의 연정 파트너인 기민/기사연합-자민당도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민당-기민/기사연합의 대연정을 제외하면 3개의 정당이 함께 정부를 구성해야 할 처지에다, 총리직 싸움이 긴장을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기민/기사연합의 주장은 간단하다. 최다 득표를 한 기민/기사연합이 연정을 주도해야 하고 총리 자리 역시 그들의 후보인 앙겔라 메르켈의 몫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총리직과 연정 주도권을 포기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어 보이는 슈뢰더와 사민당 당수 뮌터페링은 정색을 한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사민당에 20% 이상 앞섰던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이 수직으로 떨어져 결국 사민당보다 고작 0.9%밖에 많지 않고, 그마저도 두 정당을 합한 것이니 만큼 슈뢰더를 총리로 하는 사민당이 정부구성을 주도해야 옳다는 것이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기민당 지지자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민/기사연합의 구상은 우선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에 녹색당을 끌어들이는 흑-황-녹의 '자메이카 연정'(자메이카 국기가 흑.황.녹색으로 이루어짐)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슈뢰더 정부에서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녹색당과의 정책 차이도 만만치 않고, 녹색당 쪽에서도 당 노선의 수정을 감수하며 보수연정의 '하위' 파트너로 들어가는데 적잖은 위험부담을 가지는 만큼 '자메이카 연정'이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예상대로 23일 녹색당과의 연정협상은 별다른 성과 없이 큰 차이점만 확인하고 결렬되었다.

기민/기사연합의 다음 카드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이다. 물론 현재 이 구상의 최대 걸림돌은 사민당이 총리직을 포함한 연정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편, 사민당의 구상은 일단 사민당-녹색당에 자민당을 데려오는 적-녹-황의 '신호등 연정'이었다. 하지만 선거 직후부터 자민당은 사민당-녹색당 정권의 수명을 '장관 자리 몇 개'로 연장할 뜻이 전혀 없다고 못박아 왔다.

그러면 사민당의 다음 대안도 기민/기사연합과의 대연정이다. 물론 슈뢰더를 총리로 앉히는 사민당 주도하의 연정임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기민/기사당 역시 메르켈을 총리로 하는 연정 주도권 주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의 수뇌부가 모인 지난 22일의 연정협상 논의는 예상대로 별반 소득 없이 끝났다.

독일 언론은 정국의 이러한 상황을 가늠하며, '누구도 권력을 얻지 못한 카오스 선거'(<슈피겔>)에 뒤이은 '연정 주도권과 총리 자리를 둘러싼 싸움'으로 요약하고 있다.

'누구도 권력을 얻지 못한' 선거라는 평가는 수치상의 선거결과로 뒷받침된다. 집권 사민당은 34.3%로 지난 2002년 선거보다 4% 이상을, 기민/기사연합은 35.2%로 3% 이상을 잃었다. 사민당-녹색당 연정의 지난 7년간의 정책은 도합 42.4%의 지지율에 그쳐 결국 국민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선거 초반 과반수를 웃도는 지지율을 얻어 집권이 거의 확실시되던 기민/기사연합-자민당은 45%를 얻는데 머물러 지지표가 대거 이탈했음이 입증되었다. 특히 기민/기사연합은 선거 직전까지 각종 설문조사에서 40%를 웃돌던 지지율이 35% 남짓으로 곤두박질하는 충격을 받아 '패배한 승자'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또한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서독 시절부터 정권을 주고받으며 독일 정치를 이끌어온 거대 양당인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이 연방의회 선거에서 얻은 지지율의 합이 70%를 밑도는, 1949년 서독 최초의 선거를 빼면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2차대전 후 독일 정치를 주도해온 거대 양당의 힘이 균열되기 시작하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제 거대 정당은 더 이상 그리 거대하지 않고, 군소 정당은 더 이상 그리 작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선거 당일부터 '이 날의 승자'로 공공연히 지목된 것은 군소 정당인 자민당이었다. 자민당은 지난 선거보다 2.4%가 많은 9.8%를 얻어 일약 제3당으로 올라섰고,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며 온통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사민당의 슈뢰더는 그 날 저녁부터 자민당에 노골적인 '러브 콜'을 보냈다.

선거 승리에 환호하는 자민당 지지자들
그렇다면 자민당이 진정한 승자인가? 신나치 정당을 빼면 독일의 현 정당 구조에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자민당은 분명 지난 선거보다 125만명의 유권자를 더 얻었다. 하지만 자민당은 유권자들의 정당별 이동상황 분석 결과 다른 정당들과 얼마 안 되는 유권자를 주고받았음에 비해, 같은 보수 진영인 기민/기사연합에서 125만 표를 뺏어왔다. 결국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 이동이 자민당을 제3당으로 만든 것이다.

자민당을 제외하면 지난 선거보다 득표가 늘어난 정당은 '좌파당'(좌파연합)밖에 없다. 민사당과 선거대안당이 연합해 당초의 예상을 깨고 거센 돌풍을 일으킨 좌파당은 결국 8.7%의 지지율을 획득해 녹색당을 제치고 제4당으로 당당히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민사당이 2002년 선거에서 겨우 4%에 그쳐, 지역구 직접선거로 당선된 2명을 빼곤 비례대표제 하한선인 5% 규정에 묶여 연방의회 입성이 좌초된 것에 비하면 무려 4.7%가 늘어난 수치이다. 그렇다면 '이 날의 승자'는 자민당이 아니라, 자민당보다 두 배나 득표를 늘린 '좌파당'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좌파당의 지도자 기지와 라퐁텐(우)
좌파당은 지난 선거와 비교해 200만 표 이상을 더 끌어모으며 모든 정당에서 유권자들을 뺏어왔다. 무엇보다 사민당이 96만표로 좌파당에 가장 많은 유권자를 빼앗겼다. 또 지난 2002년 선거에서 기민/기사연합,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 가운데 각각 74만명, 51만명, 12만명, 8만명이 기권으로 돌아선 반면, 유일하게 좌파당만 지난 선거의 기권자 가운데 39만명의 표심을 얻었다.

하지만 좌파당의 이러한 도약은 크게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선거 직후 어느 정당도 좌파당을 연정 파트너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좌파당만 빼고' 어느 정당과도 연정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태도가 시종일관 지배적이다. 현재로선 사민당-좌파당-녹색당으로 구성되는 적-적-녹 연정의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좌파당 역시 선거 후 강력한 야당으로 남아, 복지국가의 토대를 허무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본격적인 비판의 날을 세울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잡지 '포커스'의 선거 특집호 표지. 기민당, 자민당, 사민당, 녹색당을 대표하는 얼굴이 각각 실렸지만, 좌파당의 대표는 빠져있다.
물론 외면적 이념 성향으로 보면, 흔히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사민당과 녹색당에 좌파당을 더해 범 좌파 진영으로 분류할 수 있고, 중도 우파의 기민/기사연합과 자민당이 범 우파 진영을 이룬다. 산술적으로 좌파 진영의 득표는 과반수를 넘긴 53.1%이고, 우파 진영은 45%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 좌파진영의 연정이 '불가능의 영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사민당과 좌파당 지도부의 '개인적인 앙금'이다. 특히 좌파당의 돌풍을 진두지휘한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의 옛 당수였다가 사민당을 탈당해 좌파연합을 성사시킨 인물로 슈뢰더와 '견원지간'이 된지 오래다.

사민당과 좌파당의 정책노선 차이도 이에 못지 않게 골이 깊다. 좌파당은 슈뢰더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아젠다 2010'이나 '하르츠 IV' 같은 개혁을 누구보다 거세게 비판해 왔다. 또 좌파연합이 '좌파당'이라는 명칭을 택한 데에도 사민당을 더 이상 좌파 정당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따라서 적-적-녹으로 꾸려지는 '범 좌파 연정'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24일자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에 따르면, 언젠가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이 신문은 독일 국민이 좌파를 다수파로 만들었고, 이는 기민/기사연합-자민당의 보수 진영이 공공연히 찬동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하튼 좌파당이 일으킨 돌풍은 독일 여론이나 정치권에서 그에 걸맞는 관심이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좌파당은 과거 민사당이 구 동독 지역에서는 꽤나 표를 얻었지만 서독 지역에서 1%에 불과한 '무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것에 비해, 이제 서독 지역에서도 5%에 육박하는 득표를 올리며 54개의 연방의회 의석을 가진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으로 거듭났다.

좌파당 돌풍의 진원지는 물론 구 동독지역이다. 구 서독 주민이 좌파당에 4.9%의 지지를 보낸 반면 구 동독 주민들은 25.4%의 표를 던져, 동쪽지역에서 좌파당을 사민당에 이은 제2당으로 만들었다. 구 동독 주민들의 이러한 좌파당 지지는 동서 지역의 현격한 격차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그 '좌절한' 동쪽 주민들의 '분노한' 표심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나아가 구 서독 지역에서까지 좌파당이 약진을 보인 것은 사민당 정부가 경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온 '복지국가 허물기'에 경종을 울리는 징후로도 읽을 수 있다. 선거전 막판에 사민당이 상당한 세력을 회복한 것도, 기민/기사연합과 자민당이 경제 회복을 내세워 사회보장과 복지정책의 후퇴를 '더' 강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반감의 결과로 보인다. 기실 사민당은 선거 막판 기민/기사연합에 맞서 '사회정의와 평등' 및 '약자를 보호하는 정당'이라는 고색 창연한 '옛'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전면에 내걸어 효과를 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선거 결과는 빈곤층의 확대 속에 독일 사회를 가로지르는 '사회 양극화' 과정의 반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민/기사연합의 표가 대거 더 오른쪽의 자민당으로 갔고, 적잖은 사람들이 맨 왼쪽의 좌파당에 기대를 걸었다. 좌파당의 정책은 '실현 불가능한 대중선동'이라는 다수 여론의 지속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10% 가까운 독일 국민들이 '복지국가의 틀'을 지키고 실업수당을 올리겠다는 좌파당의 공약에 표를 던졌다.

결국, 중도를 대변하는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 세력은 약화된 반면, 오른쪽의 자민당과 왼쪽의 좌파당이 힘을 키우며 사회 양극화 현상이 선거 결과에 투영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슈피겔>이 선거 특집호에서 '왕이 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꼬집은 슈뢰더와 사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왜 독일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지난 7년간 이어진 적-녹 연정의 지속을 부정했고, 당의 지지율이 지난 15년 이후 최저에 그쳤는지 곰곰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7년 적-녹 연정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 문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본적인 울타리인 사회복지의 급격한 후퇴만 낳고 별달리 개선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려는 꿈을 부여잡고 있는 메르켈과 기민/기사연합 역시 이번 결과가 당의 역사상 3번째에 해당하는 최악의 득표임을 기억함과 아울러, 특히 선거전 와중에 불거진 구 동독 주민 모욕 발언에다, '가진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비판의 도마에 오른 세제개혁 논란이 더해지며, 선거 초반의 압도적인 지지가 어떻게 급전직하했는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쥐트도이췌 차이퉁'의 23일자 만평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총리직과 연정 구성을 둘러싼 두 정당의 '명분 없는' 주도권 싸움은 독일 국민들의 냉소만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아닌게 아니라 23일자 <쥐트도이췌 차이퉁>은 슈뢰더와 메르켈을 암시하는 듯한 남녀가 협상 테이블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는 그림을 만평으로 실어, 총리직과 연정 주도권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독일 국민들의 바램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주도권 싸움은 두 정당 '모두' 선거에서 국민의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끗이 망각한 채, 어떻게든 정권을 잡아 보겠다며 '도토리 키 재기'에 골몰하는 촌극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여하튼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은 오는 28일 다시 대연정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자메이카 연정'이나 '신호등 연정'이 난항을 보이며 실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지고 있어 '대연정'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는 것이 현실적 배경이다. 또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들은 높은 실업률을 비롯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연정을 선호한다고 드러나고 있어, 두 정당은 적잖은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대다수 독일 국민은 연정 협상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갈 경우 불가피한 길인 '재선거'에 반대하고 있음을 여론조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돌아오는 대연정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몰라도 <쥐트도이췌 차이퉁>의 '이전투구 만평'이 그대로 재현되기를 바라는 독일 국민은 없을 것이다.

68혁명 당시 '비상권한법' 반대 시위 장면
하지만 전후 서독사에서 1966-69년에 단 한번 존재한 대연정은 당면한 경제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일각의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명실상부한 야당의 부재로 인해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침해된다는 거센 비판 속에, 비상사태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비상 권한법'에 반대하는 저항을 조직한 '의회 외부 반대파'(APO)가 결성되는 등 독일 '68혁명'의 분출에 한 기폭제가 되기도 했던 역사를 안고 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할 때, 두 거대정당이 한 울타리에 동거하는 대연정이라는 옷이 과연 독일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안성맞춤'일지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대성 님은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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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노래’와 ‘증오의 노래’

 

    칼럼
‘해방의 노래’와 ‘증오의 노래’
[정대성의 독일통신](2) - 불안의 시대를 파고드는 독일의 신나치 록 음악
정대성 
“꿈이 노래를 잃으면 제 마음을 묶는 사슬이 되는 법이다.
혁명이 사랑을 잃으면 추하고 가공할 폭력이 되는 법이다.
사랑을 잃은 폭력이 노래를 좋아하면 그 노래 역시도 사슬이 되는 법이다.”
- 이청준 <흰 옷> -

‘노래하는 혁명가’와 ‘전자기타를 든 테러리스트’ - 역사와 감옥 속으로 들어가다

칠레, 1973년 9월.
2001년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노래하던 미국의 심장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던 때로부터 꼭 28년 전의 그 날인 9월 11일, 남미 대륙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의 대통령궁도 전투기의 폭격으로 화염에 휩싸인다. 칠레 민중의 염원을 등에 업고 3년 전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민중연합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미국을 등에 진 군부 쿠데타에 맞서 ‘기관총을 들고’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
아옌데 대통령 최후의 사진. 가운데가 아옌데 대통령
4일 뒤, 노래와 기타로 아옌데와 함께 하며 선거를 통한 민중연합 정권의 창출에 기여한 칠레 민중의 벗이자 ‘노래하는 혁명가’ 빅토르 하라도 수많은 동료와 함께 무참히 학살당한다. 시체 더미 속에서 발견된 하라의 몸은 총탄 자국 투성이고, ‘해방 세상’의 염원을 기타에 담아내던 두 손은 처참하게 부러져 있었다.
‘노래하는 혁명가’ 빅토르 하라는 ‘해방의 무기’인 노래와 함께 그렇게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독일, 2005년 3월.
록 밴드 <란처>가 연방 법정에 선다. 죄목은 ‘범죄단체 결성’이다. 밴드 멤버들이 모여 총질이라도 도모한 것일까. 아니, 그들의 ‘무기’도 노래이다. 하지만 ‘검둥이의 선거권은 목 메달고 배에 총알을 박아 버려’ 같은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극단적으로 인종 차별적인 노래 가사이다. 나아가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 진드기, 그 더러운 것은 어서 모조리 사라져야 해’ 같은 외국인 증오를 드러내 놓고 부추기는 섬뜩한 가사도 스스럼없이 무기로 사용했다. 30여년 전 빅토르 하라가 부러진 손으로 내려놓은 ‘무기로서의 노래’를 이들이 다시 집어든 것이다. 그것도 정 반대 방향에서.
밴드 이름부터가 ‘병사’란 뜻으로 나치 냄새 깨나 풍기는 이 그룹의 노래 가사에 대해 연방 판사는 ‘죄다 범죄감’이라고 밝힌다. 담당 검사는 그룹 <란처>가 미국을 비롯해 스웨덴,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의 극우파 네트워크를 통해 음반을 만들어 배포했으며, 예술가라는 포장은 순전히 가면이고 ‘전자 기타를 든 테러리스트’가 자명하다고 단언한다. 법정은 이 밴드의 목표가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증오심을 퍼트리고 극우파적으로 선동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룹의 보컬이자 작사자는 결국 3년 4개월의 중형을 선고받는다.
‘전자 기타를 든 테러리스트’ <란처>는 ‘증오의 무기’인 노래와 함께 그렇게 감옥 속으로 들어간다.

‘범죄 선동은 범죄가 된다’

극우 민족민주당의 시위에 가담한 '란처'의 보컬

독일에서 음악 그룹이 ‘범죄단체’ 결성 죄를 선고받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는 필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일 듯하다.
물론 밴드 <란처>의 음반은 독일 음반가계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약 10만장에 달하는 이들의 음반이 이미 독일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본다. 그 대부분이 불법 복제 음반으로 주로 학교 파티나 청소년 모임에서 틀어진다고 한다.
또한 <란처>는 여러 극우파 록 그룹 가운데 단연 간판 격인 밴드로 이들의 선동은 실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몇 년 전 신나치 성향의 청년들이 베트남인 둘을 폭행으로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법정에서 피고들은 범행 당시 <란처>의 노래를 불렀다고 진술했던 것이다. 그밖에 신나치의 다른 외국인 폭행사건 현장에서도 이 밴드 노래가 불려졌음이 밝혀졌다. <란처>를 범죄단체로 판결한 판사는 이 밴드가 그러한 폭행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질책했다.
그렇다면 ‘예술적’ 표현도 범죄가 되는가?
‘음악은 범죄가 아니다!’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신나치 시위대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 자체로 보면 참 흠잡을 데 없는 말이다. 하지만 독일 법정은 예술이 다른 사람들의 인권 침해나 공공연한 차별을 넘어 범죄 행위까지 선동한다면 ‘범죄가 된다’고 지극히 ‘상식적으로’ 판결했던 것이다.

독일 극우 록 밴드 - 1990년대에 폭발적으로 팽창

독일에서 1989년에 10여 개에 불과하던 극우파 성향의 록 밴드는 불과 10여 년만인 2001에 200개를 넘어서며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옛 동서독 지역을 불문하고 독일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는 상황이다.
이들 극우파 밴드는 그 이름부터가 극단적이고 과격하다. <아리안 혈통> 같이 나치를 곧장 연상시키는 이름을 비롯해 <진군>이나 <피와 명예>, <살기> <폭탄> <독재자> <강자의 권리> <증오 공동체> <돌격대> <테러 99> 같은 명칭들은 한눈에 이들의 성향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이에 비하면 앞서 말한 ‘병사’라는 이름은 다소 평범한 느낌까지 든다.
또한 이들은 음반 표지에 나치 문양이나 나치 병사를 등장시키기 일쑤고 전투 장면이나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을 흔히 이용한다. 그들은 짧은 군인 머리나 빡빡 머리를 좋아하며 문신 새기기를 즐기며 전투화를 선호한다.

외국인과 좌파 - 극우 밴드의 공적 1,2호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무기인 ‘증오의 노래’로 무엇을 주장하는가? 극우파 록 그룹이 발휘하는 영향력의 원천은 앞서 독일 법정이 지적하듯 무엇보다 노래가사에 있다. 특히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가사는 이들 극우파 그룹을 이해하는 척도이자 판단의 핵심 열쇠임에 틀림없다.
그룹 <란처>의 노래 ‘병사’는 “우리의 혈관에는 바이킹의 피가 끓는다. 우리는 아리안족 청년들의 목소리다”라고 외치며 나치의 망령을 스스럼없이 불러낸다. 극우파 록 그룹의 노래가사에서 또한 빠질 수 없는 것이 폭력 찬미이다. <강타>라는 그룹은 ‘독일 청년’이라는 곡에서 “우리의 얼굴은 증오로 가득 차 있고 폭력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고 노래하며,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니 딴 생각말고 때려 죽여라”고 소리친다.
나아가 신나치 그룹들에서 ‘독일’은 단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 그 자체이다. ‘독일을 위한 투쟁’이 그들의 전부이며, “신성한 것은 사람들이 언젠가 불태워버린 책도 인간도 아니고, 오로지 조국 그 하나이다”(<0815>의 노래 ‘우리의 조국은 신성하다’).
이제 이들은 조국의 영광을 가로막는 적들을 만들어 낸다. 좌파는 “공산주의 돼지 새끼”(<란처>)이거나 “아나키스트 돼지 새끼”(<0815>)이고 이주자는 “외국인 돼지 새끼”(<돌격대>)이거나 “터키인 돼지 새끼”(<민족의 분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공적 1호는 ‘외국인’이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범죄자이고, 마약상이며, 포주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지되고 “우리나라에서 나가”(<돌격대>)야 한다.
공적의 2번째 자리는 ‘좌파’의 몫이다. “우리는 너희를 증오한다, 너희는 쓰레기일 뿐이거든. 우리는 너희를 증오한다, 너희는 좌파 기생충일 뿐이거든”(<겨자 머리>).
이처럼 독일 극우파 록 밴드의 ‘무기’인 노래가사는 외국인이나 좌파 및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폭력 선동을 비롯해 나치 시대를 연상시키는 독일 민족의 영광에 대한 찬미로 가득하다.

‘무기로서의 노래’ - 세계로 퍼져나가는 극우 밴드

신나치 록그룹의 자켓 이미지

비록 독일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지만 극우파 록 밴드는 사실 오늘날 유럽 전체를 망라하는 현상이다.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핀란드를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를 넘어 동유럽 나라들까지, 극우파 록 밴드가 음반을 내고 정치적 극우파들의 ‘음지의 나팔수’로 활동하지 않는 나라는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정도이다. 물론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극우파 밴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세계적으로 극우파 밴드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특히 90년대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외국인이나 유대인, 정치적 좌파에 대한 증오와 폭력적인 수사로 가득한 수많은 불법 음반들을 쏟아내며 증오와 폭력을 선동하고 있다. 독일의 신나치 밴드 <돌격대>가 “노래는 탱크보다 위험한 우리의 무기”라고 외치듯, 극우파 록 밴드의 노래는 목적의식적인 강력한 선동이자 정치의식의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의 시대’가 극우 밴드와 극우 정당을 살찌운다

극우파 밴드 노래의 대표적인 소비자는 30세 이하의 남성들이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극우파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들의 노래는 듣는다. 노래를 통해 감정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무장하고 정치적인 일체감을 가지기 위해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극우파 록은 “인종 전쟁을 위한 음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들 음악이 주로 극우파나 인종차별주의자 세계에서 유통된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독일에서 이들 밴드를 듣거나 음반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극우 록 음악은 금지되어 있고, 또한 바로 그것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더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 연방 법정의 유례없는 이번 판결은 현재 가뜩이나 극우 세력의 발호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극우 신나치 밴드의 이런 선동적인 노래가 특히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데 제동을 걸려는 의도로 보인다.
더불어 이번 판결은 음지에서 ‘예술의 가면’을 쓰고 청소년들을 선동하는 극우 록 밴드뿐 아니라, 5백만 실업자라는 ‘불안의 시대’를 사는 독일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애꿎은 외국인이나 유대인에게 돌리며 세력을 키우려는 극우 정당을 겨냥한 매서운 경고가 되어야 할 듯하다.

빅토르 하라의 ‘해방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빅토르 하라

‘노래하는 혁명가’ 빅토르 하라의 ‘해방의 꿈’은 비록 칠레 인민연합 정권의 ‘천일의 꿈’과 함께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며 역사로만 남았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은 오늘도 여전히 ‘못 다한 해방’을 노래하고 있다. 하라의 노래 <민중이 일으키는 바람>이 아직도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는 ‘민중의 바람’이 아직도 그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의 바람이 나를 부르네
민중의 바람이 나를 부르네
영혼이 나를 울리는 사이
시인은 그렇게 ‘민중의 길’을
노래할 것이네
언제까지나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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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독일 유권자들의 정책적 투표동기와 사회인구학적 성격 및 지지 경향 변화

 
    참세상 Plus > 진보매체뉴스광장 > 현장에서 미래를
[112호]독일 유권자들의 정책적 투표동기와 사회인구학적 성격 및 지지 경향 변화
국제/ 정세와 초점 - 2005년 독일 총선 분석
한노정연 
2005년 독일 총선: 독일 유권자들의 정책적 투표동기와 지지경향 변화

정병기 / 한노정연 부소장


[원문보기]

서 론

지난 9월 18일 총선 이후 독일 정국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양대 정당인 사민당(SPD)과 기민/기사연(CDU/CSU)이 1% 미만의 차이를 두고 득표했고 어떠한 연정 가능성도 예단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1년 후의 세력 약화를 염려해 스스로 불신임을 통과시켜 조기 총선을 시도한 슈뢰더 총리(Gerhard Schröder)의 계획은 아직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정권교체의 희망을 가지고 조기 총선을 수용했던 기민/기사연의 메르켈(Angela Merkel) 후보도 야심의 한 켠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독일민족당의 후보가 선거 기간 중에 사망함으로써 10월 2일에 다시 치러질 작센(Sachsen) 주 드레스덴(Dresden) 시의 선거도 현재의 난국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민당이 의석을 추가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이 정확히 동수의 의석을 갖게 되는 더욱 기막힌 경우가 생길 수 있다(각주 : 드레스덴의 현재 선거 결과는 기민/기사연 30.2%, 좌파/민사당 24.3%, 사민당 22.7%, 자민당 10%로 나타났다. 이 지역의 의원은 총 3명으로 배정되었으며, 직접 출마자는 기민/기사연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와 같이 독일 정국은 선거에서 총리와 집권 연정이 결정되지 못하고 선거 이후 정당 간 교섭에 의해 정부가 구성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의 언론은 과거 이탈리아의 정치와 유사하다고 하여 “이탈리아화된 독일(germania italianizzata)(각주 :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 뉴스, http://www.rainews24.it/Notizia.asp?NewsID=5 6770(검색일: 2005년 9월 19일).)” 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의 표면적인 의미는 좌우익의 소수당들이 선전하고 집권 연립 정당들과 중도의 양대 정당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표 1> 참조). 특히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과 사민당에서 분리ㆍ창당한 선거대안당(WASG)이 연립하여 좌파적 대안으로 부상했다. 2002년도 총선과 비교해 양대 정당은 모두 3∼4%의 실표를 보였으며,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동맹90/녹색당도 0.5%의 지지율 하락을 보였다. 반면 자민당과 좌파/민사당은 2.4%와 4.7%의 득표율을 제고하여, 각각 제3당과 4당의 위치를 차지했다.

<표 1> 2005년도 총선 결과(첨부파일 참조)


왜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독일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선거 분석을 통해 알아본다. 우선 선거 결과와 가능한 연정 조합 및 그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선호도를 개관하고, 정당 선택의 정책별 동기를 살펴본 후, 성ㆍ연령ㆍ종교ㆍ지역 및 종사상 지위라는 사회인구학적 지표를 통해 지지 경향을 분석한다. 그리고 2002년도 선거에서 나타난 각 정당의 지지자들과 기권자들이 금년 총선에서는 어떠한 지지경향을 보였는지 지지표의 이동을 통해 알아본다. 선거 분석의 주요 자료는 독일 제1공영방송인 ARD가 Infratest dimap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자료이다. 조사는 9만 명을 대상으로 선거 당일 출구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1. 연정 조합에 대한 선호도와 정당 선택의 정책별 동기

1) 연정 조합에 대한 선호도
가능한 연정 시나리오는 대연정(기민/기사연, 사민당), 신호등 연정(적황록: 사민당, 자민당, 동맹90/녹색당), 자마이카 연정(흑황록: 기민/기사연, 자민당, 동맹90/녹색당)(각주 : 흑ㆍ황ㆍ녹색으로 이루어진 자마이카 공화국 국기의 색깔을 본 따서 만들어진 용어.), 좌파 연정(적적녹: 사민당, 좌파/민사당, 동맹90/녹색당)의 네 가지이다. 그러나 대연정의 가능성은 양대 정당 모두가 거부하고 있고, 동맹90/녹색당과 자민당은 환경정책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한 배를 타기 어려우며, 좌파/민사당은 어떠한 형태의 연정 참여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의회가 3회까지 총리를 선출하지 못하게 되면 재선거가 실시될 수도 있다.
사실상 연정 교섭에서는 기민/기사연의 메르켈 후보보다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가 더 큰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비록 제1당은 아니지만 가능한 연정 조합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뢰더는 제2당의 후보지만 총리를 연임할 가능성이 크다.
연정 형태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선호도는 선택지의 제시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모든 형태의 연정 참여를 거부한 좌파/민사당을 제외한 조합인 대연정과 자마이카 연정 및 신호등 연정에 대한 조사에서는 각각 42%, 20%, 18%로 나타났다. 대연정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점이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을 압박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가능한 연정 조합에 대한 여론 조사(각주 : Deutsche Welle 방송사의 여론 조사. 총 1,073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를 보면, 대연정에 대한 선호도가 26.6%로 역시 가장 높지만, 그 다음은 21.4%를 얻은 신호등 연정이 잇고 있으며, 세 번째는 좌파 연정이다(<표 2> 참조). 이 조합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사민당이 주도하는 연정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대연정을 주도하는 총리를 누구로 하느냐를 물었을 때 결과는 더욱 상이하게 나타났다. 슈뢰더가 이끄는 대연정이 메르켈이 이끄는 대연정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선호도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대연정에 대한 압박이 작용할지라도 슈뢰더 총리의 선택 폭과 행위 공간이 더 넓다고 할 수 있다.

<표 2> 연정 조합 지지도(첨부파일 참조)


2) 정당 선택의 정책별 동기
이번 선거는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였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전체 유권자들의 38%가 경제정책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으며, 그 다음이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정책으로 각각 34%와 32%를 차지했다(<그림 1> 참조). 조세정책(19%)과 외교안보정책(13%)은 모두 20% 이하의 유권자들만이 관심을 보여 상대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림1> 정당 선택의 정책별 동기(첨부파일 참조)

그러나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정책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경제정책보다는 사회ㆍ노동정책이 66%의 관심도를 보여 그 중요도는 오히려 두 배 가까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2005년도 독일 총선은 경제정책이 좌우했다기보다 사회ㆍ노동정책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실 경제정책에 있어 양대 정당의 차이점은 그다지 크지 않다. 물론 기민/기사연이 공급정책을 중시하고 사민당이 수요와 공급 정책을 병행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양 당 모두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되 성장 위주의 정책을 실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각주 : 각 정당의 정책에 대해서는 Stern, No. 29, 2005.7.14, pp.46-51; 김수행ㆍ안삼환ㆍ정병기ㆍ홍태영, 2003,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 영국,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정병기, 2003, “독일 적녹연정의 ‘아겐다 2010’과 신자유주의 정치”, 『현장에서 미래를』제93호(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2월호), pp.57-68 참조.). 적녹 연정의 정책은 ‘아겐다 2010(Agenda 2010)’을 통해 성장 위주의 재정ㆍ경제정책으로 증명된 바 있으며, 실제 이 정책을 실표의 주요한 이유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곧 중도우파와 우파 정당들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적녹연정이 수용함으로써, 중도좌파와 좌파 유권자들은 사회ㆍ노동정책으로 관심을 돌렸고, 경제정책은 주로 중도 우파와 우파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 정당 선택의 경제정책적 동기는 사민당과 동맹90/녹색당 및 좌파/민사당 지지자들 중에서는 각각 27%, 20%, 23%에 불과했던 반면, 기민/기사연과 자민당 지지자들 중에서는 그 두 배를 넘는 53%와 56%로 나타났다.
노동시장정책은 집권 연립정당들을 제외한 기민/기사연과 자민당 및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이 모두 42%로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이것은 중도우파와 우파 지지자들이 경제정책과 연계된 노동시장정책을 선호한 반면, 좌파 지지자들은 사회정책과 연계된 노동시장정책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양극화된 현상을 의미한다. 반면 적녹연정의 노동시장정책은 우파의 정책을 수용함으로써 좌파 및 중도좌파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정당 선택의 동기를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동맹90/녹색당의 경우는 환경정책적 특수성으로 인해 이 부문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51%).
사회정책에 있어서는 이데올로기적 차이에 따라 더욱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사민당과 동맹90/녹색당의 경우도 41∼45%의 지지자들이 관심을 보였으며,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의 관심도는 60%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기민/기사연과 자민당 지지자들은 16∼17%만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경제정책과 노동시장정책에서 적녹연정에 불만을 가진 중도좌파 지지자들도 사회정책에서는 일정한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좌파 지지자들은 사회정책에 대단한 불만이나 희망을 가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민/기사연이 수요중심의 경제정책을 우선시하고 자민당이 친기업적인 자유시장 중심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좌파/민사당은 케인즈주의적인 전통 사민주의 노선을 주장한다는 정책적 차이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고 적녹연정은 이른바 ‘하르츠 법안(Hartz) IV’에 따른 실업급여의 감축과 정년 연장 등 노동조합의 반발을 산 정책을 통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불만을 샀던 것이다(각주 : 생활보조금과 실업급여를 통합한다는 명분으로 실업급여 II를 도입하여 실업급여를 서독 지역 월 345유로, 동독 지역 월 331유로로 감축했으며, 부족분은 이른바 1유로 직업(시간급 1유로짜리 비정규직)을 통해 보정하도록 했다. 또한 연금수령연령도 현재 61세에서 65세로 연장을 기도하고 있다. http://www.bundesregierung.de/Politikthemen/ Arbeitslosengeld-II-Hartz-IV-,11874/Alg-I-Bezugsdauer.htm(검 색일: 2005년 9월 19일); http://www.bundesregierung.de/Politikthemen/ Arbeitslosengeld-II-Hartz-IV-,11881/Arbeitslosengeld-II.htm< /a>(검색일: 2005년 9월 19일). 이에 대해 독일노련 DGB는 강력히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http://www.dgb.de/themen/btw2005/gewerksch_a nforderungen.htm(검색일: 2005년 9월 19일).).
조세정책과 외교안보정책은 중요한 선거 이슈가 되지 못했다. 조세정책에서 자민당 지지자들이 31%를 보여 다소 높게 나타났을 뿐, 다른 정당들의 경우는 지지자들의 20% 안팎에서 고른 관심을 보였다. 세금에 민감한 자영업자들의 지지도가 높은 자민당의 지지층 구성이 반영된 것이다. 외교안보정책도 선택지로 삼은 정당의 경우 조세정책과 마찬가지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핵에너지 및 전쟁과 관련해 관심도가 높은 동맹90/녹색당에서 다소 높게 나타났는데, 여기에는 연정에서 외교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 사회인구학적 정당 지지 분포

1) 성과 연령에 따른 정당지지 분포
성과 연령에 따른 정당지지 분포는 제2차 대전 이후 독일 정치에서 선거를 좌우할 정도의 커다란 특징을 보이지 않았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이 집단들의 지지율 분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전체 정당 득표율 분포와 유사하게 나타났다(<표 3> 참조).

<표 3> 성과 연령에 따른 정당 지지 분포(%)(첨부파일 참조)


여성들의 경우는 양대 정당에 동일하게 35%의 지지율을 보였으며, 나머지 정당들에게는 7% 혹은 9%의 지지율을 보였다. 남성들은 기민/기사연에 대한 지지율이 조금 높아 36%이고 사민당이 33%로 3% 더 낮았다. 그밖의 정당들은 7∼11% 사이에서 지지율을 보였지만, 그중에서는 자민당이 가장 높았다. 주목할 만한 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보수적인 경향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당별로도 역시 큰 차이는 아니지만, 사민당과 동맹90/녹색당이 여성 지지자의 비율이 높고, 나머지 정당들은 남성 지지자의 비율이 다소 높다. 이른바 탈물질적인 사고를 염두에 둘 때 여성 문제를 신속히 흡수해간 사민당이 동맹90/녹색당과 함께 여성들로부터 지지를 상대적으로 많이 획득한 반면, 전통적 좌우 이데올로기를 가진 정당들은 남성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연령별로는 양대 정당의 경우 다소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인다. 30세 미만 유권자들에서 사민당이 35%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획득했고, 기민/기사연이 4% 더 낮은 31%를 나타냈으며, 다른 정당들은 대동소이하게 7∼11%의 지지율을 보였다. 30∼59세의 연령층에서는 양대 정당이 동일한 지지율을 얻었으며, 다른 정당들은 역시 9∼11%에 머물렀다. 특기할 만한 것은 60세 이상에서 기민/기사연이 45%를 얻어 사민당보다 무려 10%나 더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다른 소수 정당들 중에서도 자민당이 9%를 보여 비록 작은 수치지만 다른 두 정당들의 5∼6%보다는 월등히 높았다.
정당별로 보면, 사민당이 모든 연령대에서 33∼35%의 고른 지지율을 보인 반면, 동맹90/녹색당이 상대적으로 젊은층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고, 기민/기사연은 반대로 노년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정도의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탈물질주의적ㆍ탈권위주의적 사고를 동기로 하는 동맹90/녹색당과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주의 정당인 기민/기사연의 차이가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2) 종교와 지역에 따른 정당 지지 분포
종교 문제도 독일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기민/기사연은 여전히 종교적 원칙이 자신의 근본적인 존재이유임을 부정하지 않는 만큼 종교적 지지층의 차이는 존재한다. 기민/기사연은 가톨릭 신자들의 46.0%가 지지했고 신교도와 기타 집단의 지지율은 32∼36% 선을 유지하고 있다(<표 4> 참조). 반면 사민당은 신교도들로부터 40.7%의 지지율을 획득했고, 가톨릭으로부터는 훨씬 더 낮은 28.4%를 얻었다. 반면, 다른 정당들의 경우는 가톨릭과 신교도 및 기타가 유사한 비중을 이루고 있다.

<표 4> 종교와 지역에 따른 정당 지지 분포(%)(첨부파일 참조)

반면 지역은 통일 이후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구서독 지역에서는 기민/기사연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어 37.5%에 이르며 사민당이 제2당으로서 35.1%의 지지율을 보였다. 전체 유권자들의 지지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동맹90/녹색당과 자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독일 유권자들의 지지율보다 조금 높은 비율을 보이며 타 정당과의 차이 면에서도 유사하다. 다만 좌파/민사당이 전체 8.7%의 지지율과 달리 구서독지역에서는 4.9%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구동독 지역의 주민들은 이와 매우 상이한 경향을 나타낸다. 사민당이 기민/기사연보다 약 5% 가까이 높은 지지율을 보여 30.5%에 달했고, 좌파/민사당이 25.4%를 득표해 제2당의 위치를 장악했다. 기민/기사연은 좌파/민사당보다 불과 1% 더 낮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제3당에 머물러야 했다. 다른 두 소수정당에 대한 지지율도 구서독 지역에서보다 조금씩 낮다. 구서독 지역에서 좌파/민사당이 사민당으로부터 지지자들을 견인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반면, 구동독 지역에서는 민사당에 대한 전통적인 지지를 유지한 것이다.

3) 종사상 지위에 따른 정당 지지 분포
종사상 지위에 따른 분포도 지역만큼이나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양대 정당 간에도 종사상 지위에 따른 각 집단의 지지율은 약 5∼7% 정도의 차이를 보였으며, 학생과 자영업자의 경우는 거의 곱절의 차이를 나타냈다(<표 5> 참조).

<표 5> 종사상 지위에 따른 정당지지 분포(첨부파일 참조)


육체노동자를 중심으로 분류된 노동자층은 37%가 사민당을 지지했으며, 그보다 6% 적은 31%가 기민/기사연을 선택했다. 동맹90/녹색당과 자민당의 노동자 기반은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좌파/민사당은 12%를 획득해 일정한 노동자적 기반을 과시했다. 일반노동자층만 보면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공무원과 고위 사무직을 포함하기는 했지만 사무직 노동자들을 함께 계산하면 양대 정당의 노동자 지지율 차이는 약 9%로 가볍게 볼 수치가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들과 정반대의 투표경향을 보였다. 기민/기사연이 압도적으로 많아 전체 자영업자들 중 42%로부터 지지를 받은 반면, 사민당과 좌파/민사당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 21%와 6%에 머물렀다. 자민당도 불과 2%의 차이로 사민당에 버금가는 지지를 자영업자들로부터 받았으며, 동맹90/녹색당도 좌파/민사당의 두 배인 12%를 얻었다.
연금생활자들의 경우도 기민/기사연 지지율이 높아 자영업자의 경우와 동일한 수치인 42%를 나타냈다. 그러나 소수정당들에 대한 지지율이 낮았으며, 사민당에 대한 지지율은 그리 낮지 않아 36%를 기록했다. 연금생활자들의 지지율이 가장 낮은 정당은 동맹90/녹색당으로 4%에 불과했다. 기민/기사연의 60세 이상 지지율이 높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학생들의 지지도는 자영업자와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사민당이 가장 높아 40%에 도달했고 기민/기사연은 25%였으며, 동맹90/녹색당, 자민당, 좌파/민사당 순으로 낮아졌다. 역시 젊은층의 지지율 분포처럼 탈물질주의적ㆍ탈권위주의적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실업자의 경우는 일반노동자의 경우에 준하지만, 특기할 것은 좌파/민사당에 대한 지지율이 23%로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비율은 기민/기사연 지지율(24%)보다 겨우 1% 적은 것이며, 사민당 지지율(31%)보다도 8%만 적은 것이다. 이것은 양대 정당에 대한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한 실업자들의 불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구동독 주민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구동독 지역 실업률은 구서독 지역 실업률의 두 배이며, 하르츠 법안 등 정부의 사회정책이 아직도 동서독 지역 주민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실정이다. 실업자들과 구동독 주민 전체의 정당 지지경향이 유사하게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정당별로 보면, 사민당은 자영업자와 실업자를 제외한, 노동자, 사무직, 연금생활자, 학생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중도좌파 성격을 강하게 띠며, 기민/기사연은 자영업자와 연금생활자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는 보수적 중도우파의 성격을 띤다. 좌파/민사당은 노동자와 실업자에 지지율이 집중된 전통 좌파 정당인 반면, 자민당은 자영업자 중심으로 사무직과 학생들의 지지를 일정하게 받는 전통적인 우파 정당이다. 한편 동맹90/녹색당은 학생, 자영업자, 사무직 등 인텔리겐차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 전형적인 탈물질주의적 신좌파 정당으로 남아 있다. 2005년 독일 총선은 탈물질주의적 신좌파가 세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계급 균열이 확대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3. 정당 선택의 변화 경향

1) 적녹연정(사민당-동맹90/녹색당) 지지자들의 변화 경향
적녹연정의 연립파트너들은 대부분 실표했다. 사민당은 7년간의 정치에 대한 부담을 가장 크게 받아 실표의 폭이 컸으며, 동맹90/녹색당도 사민당 지지자들로부터 일부 유입되기는 했으나 역시 전반적으로 많은 지지자들이 당을 떠났다(<그림 2> 참조).
특히 사민당 지지자들의 경우는 분당으로 인해 전체 실표(4.2%, 약 236만 명) 중 41%에 해당하는 약 97만 명이 좌파/민사당을 따라갔으며, 기권자도 약 37만 명이 양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민/기사연을 선택한 기존의 지지자들도 적지 않아 약 62만 명에 달했다. 자민당과 동맹90/녹색당 및 기타 정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꾼 사민당 지지자들도 적지 않아 각각 약 14만 명에서 16만 명을 헤아렸다.

<그림2> 사민당 지지자들의 지지 경향 변화(첨부파일 참조)

분당이라는 효과를 제외하면 사민당을 떠난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정당은 기민/기사연이다. 기민/기사연을 선택한 62만 명은 전체 이탈표 중 26.3%에 해당하는 높은 비율이다.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의 정책적 차별성이 약화된 결과이다.

<그림3> 동맹90/녹색당 지지자들의 지지 경향 변화(첨부파일 참조)

동맹90/녹색당은 사민당으로부터 14만표를 획득하기도 했으나, 좌파/민사당에게 24만 표, 기민/기사연에게 13만 표 등 다른 정당들에게는 모두 빼앗겨 약 37만표(-0.5%)의 지지자 감소를 초래했다. 기권한 지지자들도 적지 않아 약 7만 표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체 이탈 표의 약 13.7%에 달하지만 다른 정당들에 비해서는 가장 낮은 수치이다(사민당 15.7%, 기민/기사연 29.0%, 자민당 48.0%). 이것은 이미 대부분의 정당들이 탈물질주의적 정책을 수용함으로써 동맹90/녹색당 지지자들이 이동하여 선택할 여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당을 떠난 동맹90/녹색당 지지자들의 약 47%가 좌파/민사당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여성과 환경 및 반전 문제에서 좌파/민사당이 적극적으로 탈물질주의적 정책을 수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과 젊은층의 좌파/민사당 지지율이 높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그보다는 동맹90/녹색당 지지자들 중 계급모순을 인식하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지지자들이 적녹연정 참여를 주도했던 현실주의 노선에 반대한 현상으로 해석된다.

2) 기민/기사연-자민당 연립 지지자들의 변화 경향
기민/기사연도 이번 선거에서 실표를 거듭했다. 적녹연정으로부터 유입된 표들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다른 정당들에게 표를 빼앗겼다(<그림 4> 참조). 반면 자민당은 기권자를 많이 내긴 했으나, 기민/기사연과 적녹연정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지지표를 획득하여 득표율을 제고했다(<그림 5> 참조).
기민/기사연은 전체 실표 210만 표 중 28.1%에 해당하는 62만 표를 사민당으로부터 획득하고, 5.9%인 13만 표를 동맹90/녹색당으로부터 견인하여, 최종적으로 약 146만 표(-3.3%)의 실표를 보였다. 기민/기사연 지지자들 중에서도 약 29만 표는 좌파/민사당으로 이동하는 이데올로기적 월경을 했다. 그러나 기민/기사연 지지자들은 무엇보다 연립파트너인 자민당으로 이동해간 비율이 전체 이탈 표 중 50.2%나 되었으며, 기권율도 29.0%를 보여, 대부분은 동일한 이데올로기 진영에 머물거나 투표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그림4> 기민/기사연 지지자들의 지지 경향 변화(첨부파일 참조)
<그림5> 자민당 지지자들의 지지 경향 변화(첨부파일 참조)

2005년 선거에서 자민당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2002년도 총선에 비해 2.4%에 해당하는 103만 표의 지지를 추가로 획득하여 다시 제3당의 위치를 회복한 것이다. 자민당은 적녹연정으로부터 지지자들을 견인했으나, 대부분의 새로운 지지자들은 기민/기사연으로부터 옮겨온 부동층이었다. 자민당은 전체적으로 득표율을 제고했기 때문에 이탈 표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전체 이탈 표 중에서 기권자의 비율은 대단히 높았다(48.0%). 더욱 놀라운 것은 이탈 표들 중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10만 표가 좌파/민사당을 선택하는 이데올로기적 월경을 했다는 것이다. 기민/기사연이 노동자층에 일정하게 뿌리를 둔 중도우파 정당이라면 자민당은 자영업자와 기업을 중점적으로 대변하는 전통적인 우파 정당이므로, 이 월경은 매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해석된다.

3)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의 변화 경향
좌파/민사당은 전체 4.3%에 해당하는 212만 표를 추가했다(<그림 6> 참조). 좌파/민사당의 지지표들은 대부분 구동독 지역의 민사당 지지자들과 사민당 지지자들로부터 왔다. 사민당 좌파를 이끌던 라퐁텐(Oskar Lafontaine)을 중심으로 창당된 선거대안당(WASG)과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이 연합한 결과이다.

<그림6>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의 지지 경향 변화(첨부파일 참조)

그러나 구서독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민사당이 공산당의 후신이라는 점에서 부담을 느껴 좌파/민사당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 지지자들로부터 97만 표를 가져오기는 했으나, 구서독 지역의 전체 득표율은 4.9%에 불과했다.
사민당으로부터 옮겨 온 지지자들 외에 새로운 지지자들 중의 많은 부분은 2002년도 선거에서 기권한 유권자들이었다. 전체 신규 지지자들 중 20.3%에 해당하는 43만 표가 기권표로부터 유입된 것이었다. 그밖에 기민/기사연과 자민당으로부터 이데올로기적 월경을 해온 유권자들도 18.4%인 39만 명에 달했다. 새롭게 좌파/민사당을 선택한 유권자들 중 사민당 외 다른 정당 지지자들과 기권자들에서 유입된 수가 기존 사민당에서 유입된 유권자들보다 8.4%나 많은 54.2%를 보여 좌파/민주당의 성장가능성을 제시하는 해석도 가능하다.
2002년도 기권자들은 대부분 기성 정당에 대한 혐오나 실망성 투표의 성격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좌파/민주당과 기타 소수정당을 지지한 기권자들의 비율이 전체 기권자의 28.6%였던 반면, 기성 정당 지지자들은 대거 기권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림 7> 참조).

<그림7> 기권자들의 지지 경향 변화

그에 따라 2005년도 총선의 투표참여율은 지난 선거 때보다 1.4%가 하락해 77.7%에 머물렀다. 기존의 기권자들이 신당과 기타 소수정당에 대한 기대를 걸고 투표에 참여했으나, 새롭게 유입되는 기권자들이 더 많아진 까닭이다.
좌파/민사당과 자민당이 좌우에서 약진을 했지만, 2005년도 총선의 결과는 실망성 투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유권자들 절반이 투표가 임박해서야 지지 정당을 결정했으며, 약 1/3이 적극적 지지보다 실망에 따른 소극적 투표를 한 것이 사실이다(각주 : http://www.tagesschau.de/aktuell/meldungen/0 ,1185,OID4766402,00.html(검색일: 2005년 9월 19일).). 자민당의 득표율 제고와 좌파/민사당의 부상으로 계급 균열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좌파/민사당의 경우도 실망성 투표의 효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실제 새롭게 좌파/민사당을 지지하게 된 유권자들의 51%가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에 따른 반사적 투표인 것으로 나타났다.


4. 결론

정당별 득표율만을 볼 때, 2005년 독일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연정 참여 정당 및 양대 정당의 약화와 소수 정당들의 약진이다. 연정 조합에 대한 지지도는 대연정이 가장 높지만, 그중에서는 현 총리 슈뢰더가 이끄는 대연정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신호등 연정과 좌파 연정에 대한 지지도도 그에 버금가도록 높은 비율을 보였다. 개별 수치상으로는 사민당이 가장 실표를 많이 한 것으로 집계되지만, 좌파/민사당으로 분리해 나간 표를 감안하면 좌파와 중도좌파 진영의 세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불과 0.3% 하락하여 우파와 중도우파 진영의 두 정당의 하락률 0.9%보다 작게 나타났다. 결국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진영 간의 승패를 따질 근거는 없으며, 오직 중도의 양대 정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과 선명한 좌우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정당 선택의 정책별 동기에서는 기민/기사연과 자민당이 유사한 경향을 보여 경제정책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사민당과 좌파/민사당은 사회정책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그러나 사회정책에 대한 관심도는 좌파/민사당에서 가장 두드러졌으며, 동맹90/녹색당 지지자들은 여전히 환경정책에 우위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인구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여성과 젊은층은 상대적으로 탈물질주의적 진보성을 띠어 사민당과 동맹90/녹색당에서 지지율이 높았던 반면, 남성과 노년층의 지지율은 보수중도당인 기민/기사연과 전통적인 좌파정당인 좌파/민주당에서 높게 나타났다. 종교와 지역의 정치 균열 면에서는 기민/기사연이 여전히 가톨릭 세력에 상대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남부 가톨릭 지역과 북부 산업지역 간의 새로운 지역균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균열은 이미 기존에도 존재했던 것이며 이번 선거에서도 정치적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동서 간의 지역균열을 남북 간의 지역균열로 상쇄하려는 언론 플레이로 여겨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지역적으로는 동서 간의 균열이 두드러졌다. 종사상 지위를 기준으로 보면, 자영업자들이 기민/기사연과 자민당을 압도적으로 많이 지지한 반면, 노동자와 실업자들의 지지율은 좌파/민사당과 사민당에서 높았다. 특히 좌파/민주당은 노동자ㆍ실업자의 지지율이 대단히 높아 자영업자의 비율이 압도적인 자민당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결국 좌우 정당연립 간의 비김수를 결과하여 정국을 표류시킨 2005년도 독일 총선 결과는 양대 정당과 적녹연정에 대한 실망성 투표와 동서독 간의 지역균열 및 종사상 지위에 따른 계급 균열의 확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서로 승리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아무도 승자로 확인되지 못했다. 아마도 기성 정치무대를 뒤흔드는 격변을 준비하는 역사의 흐름만이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수행ㆍ안삼환ㆍ정병기ㆍ홍태영, 2003,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 영국,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 뉴스, http://www.rainews24.it/Notizia.asp?NewsID =56770(검색일: 2005년 9월 19일).
정병기, 2003, “독일 적녹연정의 ‘아겐다 2010’과 신자유주의 정치,” 『현장에서 미래를』제93호(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2월호), pp. 57-68.
Deutsche Welle 여론 조사:
http://www.dw-world.de/dwelle/cda/popups/dwe lle.cda.popups.umfrage/1,,1_U_1714973_0,00.html(검색일: 2005년 9월 21일).
http://stat.tagesschau.de/wahlarchiv/wid246/ analysewanderung0.shtml
(검색일: 200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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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gb.de/themen/btw2005/gewerksch_a nforderung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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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rn, No. 29, 2005.7.14, pp.46-51.



한노정연 홈페이지 http://kilsp.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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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줄기 빛'인 젊은이들과 '히틀러의 아이들'

 
    칼럼 > 칼럼
역사의 '한 줄기 빛'인 젊은이들과 '히틀러의 아이들'
[정대성의 독일통신](3) - '작은 히틀러'와 '백장미단'
정대성 
히틀러
'히틀러'. 세상이 다 아는 이름이자, 지구촌 사람들이 '독일' 하면 떠오를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히틀러란 이름은 오늘날까지 그 '악명'으로 독일의 '어두운 과거'를 대변하고 있다.

독일 사람들은 어떨까. 히틀러는 그냥 지우고 싶은 끔찍한 과거일 따름일까. 그렇지 않다. 현재를 살아가는 독일인에게 히틀러와 나치는 단지 먼 옛날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직도 독일은 나치 희생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고, 그들에게 바쳐진 기념물이 독일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올해만 해도 베를린에서 거대한 기념물이 새로 완공되었다. TV에서는 히틀러의 시대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물리지도 않는 단골 메뉴이며, 서점에서 히틀러와 나치를 기록한 책을 찾기도 식은 죽 먹기다.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인수한 1933년에서 2차대전의 끝인 1945년까지 겨우 12년을 지배한 독일 '제3제국'의 역사는 이처럼 오늘의 독일인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어두운 과거이자 '지나간 현재'인 것이다.

'하일 히틀러!' 세상이 다 아는 나치식 경례로 '히틀러 만세'라는 뜻이다. 물론 히틀러 만세를 외치며 세계를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나치의 역사는 다행히 60년 전에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올해 독일에서는 나치 독일이 무조건 항복에 서명한 5월 8일 전후로 갖가지 행사들이 열리며 '나치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한 터였다.

하지만 나치의 '망령'은 여전히 독일을 배회하고 있다. 나치를 추종하는 신나치인 '히틀러의 아이들'이 오늘도 독일 땅을 버젓이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국인 증오를 앞세운 폭력을 마다하지 않으며, 낡은 흑백 영화처럼 다시금 '하일 히틀러'를 외친다. 물론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탓에 대놓고 외치기는 어렵다.

그런데 최근 '용감한' 히틀러의 아이 하나가 법정에 섰다. 신나치 시위에서 과감히 오른 팔을 치켜들며 '나치식 경례'를 한 대가다. 그는 법정에서 당당했다. "당신이 작은 히틀러라고 생각하나요?" 판사가 묻는다. "예."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문제의 '작은 히틀러'
'작은 히틀러'를 자처하는 29세의 이 독일 청년은 철두철미한 나치 추종자다. 그는 십여 년 전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방화사건의 범인 가운데 하나였다. 범행동기는 '외국인 혐오'였다. 그는 최고형인 10년을 선고받고 감옥 생활을 했다. 그리고 출소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법정에 선 것이다.

판사의 말대로 10년 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구제불능의 이 신나치는 결국 넉 달 동안 다시 '창살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이름으로' 법정에 선 것은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역사를 거슬러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나치와 히틀러가 도발한 2차대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3년 2월 일단의 독일 청년들도 법정에 선다. 이유는 정반대였다. 히틀러 만세를 부르는 대신 '백장미단'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과 선동을 일삼은 '죄' 때문이었다.

백장미단은 숄 남매를 비롯한 뮌헨 대학생들이 주도한 비밀 지하 조직이었다. 그들은 1942년 6월부터 1943년 2월까지 주로 뮌헨과 남독일 지역에서 히틀러와 나치에 반대하는 팜플렛을 배포하거나, '히틀러 살인자' '자유' 같은 구호를 벽에 휘갈기며 무소불위의 파시즘에 용감히 맞선다.

하지만 1943년 2월 18일 뮌헨 대학에서 팜플렛을 나눠주던 숄 남매가 체포된다. 나흘 뒤 나치 법정에서 숄 남매를 포함한 3명의 백장미단 청년은 사형을 선고받고 바로 그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두 달 뒤에도 2명의 청년과 뮌헨대학 교수 하나가 '백장미단의 이름으로' 같은 길을 밟는다.

2월 초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결정적인 패배로 패전의 먹구름이 드리워지자 초조해진 나치 정권은 어떤 저항의 싹도 용납지 않으며, 꽃다운 청년들의 목숨마저 그렇게 순식간에 앗아간 것이다.

1943년 2월 22일에 처형된 3명의 '백장미단' 청년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숨져간 젊은 넋들의 원혼을 달래기라도 하듯 나치 군대는 돌이킬 수 없는 '패전의 벼랑'으로 치달았고, 히틀러는 자기 손으로 불지른 침략전쟁의 파국이 코앞에 닥치자 지하 벙커에서 자살의 길을 택했다. 결국 히틀러는 살아 생전 이루 헤아리기 힘든 '만세' 세례를 받고도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올해 독일에서는 나치 치하에서 백장미단의 이름으로 히틀러에 맞선 그 청년들을 그린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이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수많은 히틀러의 아이들이 앵무새처럼 히틀러 만세를 노래할 때 그들은 용감하게 저항하며 꽃다운 목숨을 바쳤고, 오욕의 나치 역사에서 이렇게 '한 줄기 빛'으로 남은 것이다.

60년 뒤 법정에 선 '작은 히틀러'는 자신이 그 '오욕의 역사' 맨 뒷줄에 서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아가 나치에 망령든 '오늘의' 히틀러의 아이들은 나치 역사가 세계뿐 아니라 그들 독일인에게까지 골 깊은 상처로 남았음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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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독일 거대연립정부 형성과 사민당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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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독일 거대연립정부 형성과 사민당의 미래
정세와 초점/
한노정연 
정세와 초점/


독일거대연립정부 형성과 사민당의 미래

갈현숙 / 한노정연 연구원, 베를린자유대 사회학 박사과정


지난 9월 18일 독일에선 연방총선이 치러진 후 수상을 결정하고 내각을 형성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 소요됐다. 독일의 정치 제도상 한 당이 투표율 중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이념의 색깔이 비슷한 정당간의 연합으로 과반수 이상의 지지가 될 경우 연립정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없을 뿐더러 연립가능한 정당간의 연합으로도 과반수를 넘기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연립가능한 정당간의 연합을 조합한다면 보수당적 성향을 띤 기민/기사 연합당(이하 연합)과 자민당 그리고 보수당과 대별되게 표현되는 진보적 성향을 띤 사민, 녹색당간의 연합을 생각해 왔다. 아래 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선거에선 언급된 방식의 조합으론 지지율의 과반수를 넘을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좌파연합당의 성향이 분명히 진보적 성향을 띤 정당임에도 사민당과 녹색당은 좌파연합당과 연정의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봉쇄했다는 점이다. 적적녹(사민-좌파연합-녹색)의 지지율을 합산하면 51%로 보수성향당의 지지율인 45%보다 6%앞선다.

<표 1> 2005년 독일 연방총선결과(투표율: 77.7%)
정당명
의석수(총 614석)
지지율(%)
사민당(SPD)
222
34.2
기민기사연합(CDU/CSU)
226
35.2
좌파연합당(Linke.PDS)
54
8.7
자민당(FDP)
61
9.8
녹색당(Grüne)
51
8.1
기타
-
4.0


선거결과를 두고 볼 때 국민들은 보수적 성향을 띤 정당보다는 진보적 성향을 띤 정당에 보다 많은 지지율을 보냈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세적으로 수용하는 정치가 아닌 보다 적극적인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사민당과 녹색당의 좌파당에 대한 거부, 그리고 좌파당 역시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치는 어떠한 당과도 연정을 할 수 없다는 당론으로 인해 진보적 성향의 정당간의 연정과 내각구성은 선거전부터 불투명하게 비춰졌다.
드레스덴지역의 최종선거(드레스덴지역은 선거직전 후보자가 갑자기 사망한 관계로 2주 후에 선거가 치러졌고 선거결과 연합당에 1자리 의석수를 늘려줬다.) 이후 독일에서 가장 큰 국민정당인 사민당과 연합간의 거대 연립정부에 대한 구체적 합의의 진행속도가 가속화됐다. 거대 연립정부(이하 연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음에도 미디어를 비롯해 정당들까지도 가장 구체적이면서 가장 최선의 대안이 거대 연정이라는데 합의하는 분위기였다. 부정적인 측면의 견해로는 우선 수상 자리에 대한 문제로, 슈뢰더 전 총리와 메르켈간의 인물 중심적 평가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보다 많은 지지를 받은 연합의 대표인 메르켈이 아니라 슈뢰더란 점과, 조기총선의 모험을 걸었던 슈뢰더의 측면에서도 수상 자리를 쉽게 내줄 수 없다는 점에서 양 당간의 합의가 도출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사실 슈뢰더는 드레스덴의 선거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수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정치적 발언들을 해왔다. 예를 들면 연합은 두 당, 즉 기민당과 기사당의 지지율을 합해 얻은 결과이므로 일당으로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당은 사민당이고 그러므로 수상 자리는 사민당이 지켜야 한다는 식의 논리였다. 두 번째 부정적 측면은 두 당간의 선거 시 제시했던 공약의 내용을 중심으로 봤을 때 연정으로 향하기 위해 노동, 사회정책에서 서로 합의 가능할 수 있는 타협점과 향후 내각이 구성된 후 서로간의 갈등이 될 만한 요소들의 조화가능성에 대한 회의에서 나온다. (1965년에 연합과 자민당간의 연정이 깨지면서 1966년부터 1969년 까지 사민당과 연합당간의 연정경험이 이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예상에도 불구하고 거대연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편으론 재선거를 치르더라도 연합과 사민당 모두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보다는 정치적 위험이 더 크게 계산된 부분이 분명 있다는 점과 다른 한편 양 당 간에 이견이 조율되지 않던 상황에서 미디어는 줄곧 현재 독일은 위기에 빠져있고 정치인과 정당들은 이러한 현실을 책임 지기 위해서 중대한 결정, 즉 거대 연정으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선거가 치러지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 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인지 국민도 정치인도 모두가 재선거를 기피한 부분이 있고, 그렇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연합당과 사민당이 거대연정을 실현시켜야 하는 점, 그것이 현실의 조건이라 할 땐 양 당은 보다 많은 권력쟁취를 위해서 서로 기 싸움을 벌여야만 했었다. 바로 이 권력투쟁 때문에 슈뢰더가 끝까지 수상 직을 쉽게 내놓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드레스덴 선거 이후 연합당과 사민당은 거대연정을 형성을 위한 협상에 박차를 가했다. 그 협상의 결과로 우선 수상직과 장관직 6개 그리고 각료 2개를 연합에 배정했고 사민당은 부총리직과 장관직 8개를 갖기로 협의했다. 모두 수상직과 부수상직을 포함해 각각 9개의 내각 직을 나누어 갖게 됐다. 이 협상의 결과로 독일 정치역사상 최초로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메르켈은 1954년 7월 신학생 호르스트 카스너(Horst Kasner)와 선생이었던 헤르린트 카스너(Herlind Kasner)간의 첫째 딸로 함부르에서 태어났다. 이후 카스너 가족은 구동독 지역이었던 Templins(템플린스)로 이사했고 메르켈은 대학시기 전까지 이 곳에서 보냈다. 이후 (Leipzig)라이프지히 대학에서 화학전공을 시작해서 이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 1989년 Demokratischer Aufbruch(민주주의 출발)당에 가입함으로써 처음 정계에 입문해 이듬해 현재의 동독지역 CDU에 입당하게 된다. 1991년 헬무트콜이 최초 통일된 독일의 수상으로 선출된후 여성과 청소년을 위한 부의 장관으로 최초로 장관직을 역임했고 정치적 경력을 쌓으며 2000년 CDU의 최고 당수로 선출됐고 2005년 10월 독일연방공화국의 최초 여성수상으로 등극했다.
이 여성으로서 수상 자리에 올랐다.
수상 직에 메르켈이 결정됐던 당일 독일 언론에선 여러 관점의 보도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치적 분석에 앞서 무엇보다도 가장 역점을 두고 보도됐던 뉴스는 바로 그녀가 최초의 독일 여성 수상이란 점이었다.
그런 보도를 보면서 메르켈을 여성으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의구심이 생겼다. 이러한 의구심은 분명, 박근혜가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때 그가 여성이란 이유로 정치적 지지자를 확산시켜가는 현상을 볼 때 박근혜를 여성을 볼 수 없는 관점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두 여성을 보며 공히 비판이 가는 지점은 여성으로서 최고 정지적 지도자가 될 경우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 여성으로서 그런 자리에 올랐다는 결과만으로 다른 평가의 지점들이 탈각되는 것이다.
아무튼 수상 직 결정이후 사민당내부에선 여러 논의가 진행됐다. 우선 슈뢰더는 차기내각에 관여하지 않고 정계를 떠나겠다는 발표를 했고 기존에 사민당 당수였던 뮌터 페링이 부수상직을 맡게 됐다. 일반적으로 부수상직과 외무부장관의 자리는 겸직이었다. 그러나 이번 거대 연정에선 부수상직과 외무부 장관직을 분리하고 기존의 경제&노동부를 분리해서 노동부장관직을 뮌터 페링(사진) 사진 출처: http://www.spiegel.de/dossiers/politik/0,1518,285193,00.html.
이 겸직하기로 결정했다.

사민당은 수상 직을 연합에 주는 대신 아젠다 2010을 완수할 수 있는 중요한 장관직인 노동사회부와 건강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내각인 재무부를 가져옴으로써 비싼 거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표 2> 2005년 독일 총선 이후 거대연정 내각(2005년 10월 17일 오후 현재)
연방수상
Merkel 메르켈
연합-CDU (여)
수상사무처장(각료)
de Maizière 데 마이지레
연합-CDU
연방의회의장(각료)
Lammert 람메어트
연합 원내교섭위원
내무부
Schäuble 쇼이블레
연합-CDU
경제&기술부
Schtoiber 슈토이버
연합-CSU
국방부
Jung 융
연합-CDU
가족부
Leyen 레이엔
연합-CDU(여)
교육부
Schavan 샤판
연합-CDU(여)
소비자보호&농림
Seehofer 제호퍼
연합-CSU
부수상
Muenterferig 뮌터페링
사민당
노동&사회부
외무부
Steinmeier 슈타인마이어
사민당
법무부
Zipries 집프리스
사민당(여)
재무부
Steinbrueck 슈타인브뤽
사민당
건강부
Schmidt 슈미트
사민당(여)
환경부
Gabriel 가브리엘
사민당
개발(도상국)지원부
Wieczorekzeul 비조렉죌
사민당(여)
교통&건설부
Tiefensee 티펜제
사민당


사민당은 연합과 비교해 비교적 일찍 장관직을 내정했다. 그러나 연합의 경우는 내부 기민당과 기사당간의 장관직을 두고 쉽게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다. 가장 큰 장애물은 경제부장관직을 맡게 된 슈토이버가 메르켈을 견제할 만안 그의 사람들을 심기위해 보다 많은 장관직을 무리하게 기사당에 배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보호 및 농림부 장관직만을 결국 얻어내게 됐다. 이렇게 해서 연합 내부에선 기사당이 두개의 장관직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기민당 의원으로 배정이 확정됐다.
10월 17일 오후 기민/기사 연합당출신 신임 장관들이 결정 난 후 이들 신임장관과 메르켈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슈피겔지는 이 사진 아래에 “메르켈의 대단히 친절한 가족(Merkels schrecklich nette Familie)”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출처:http://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0,1518,grossbild530311380206,00.html/

신임내각의 주역들이 완료됐다. 그러나 연합과 사민당간의 아직 조율되지 못한 중요한 쟁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연금개혁, 외교정책에 있어선 두 당이 공통분모가 많은 반면 노동시장정책, 세금정책, 사회정책, 에너지 정책 그리고 터키의 유럽연합가입문제 등에선 공통분모를 찾기가 힘들다.

<표 3> 사민당과 연합 사이의 갈등이 되는 주요 정책들

사민당
연합(기민/기사)
실업급여
최대 18개월로 한정, 실업급여II가 서독지역수준과 맞춰질수 있도록 동독지역 상향 지원
실업급여 최대 축소 기여금에 비례한 지급
해고규정
해고보호규정 유지 (변화 없음)
해고보호규정 최대 완화
세금정책
소득세 비례 세율규정
소득세 기준세율 축소, 실업기금 형성을 위해 부가가치세 인상(간접세 인상)
사회보험
시민보험(Bürgerversicherung) 확산-소득기준 보험료책정
소득과 무관한 무차별 동일보험액 책정(Kopfpauschal)
환경 및 에너지 정책
원자력폐기 고수 석탄생산 바람직
원자력에너지 복원 및 석탄생산 반대
외교정책
터키 유럽연합가입 찬성
터키 유럽연합가입 반대

선거전이 한창일 때 두 당은 상대 당에 대해 정책내용뿐만 아니라 인신공격까지도 서슴지 않고 했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듯 보였던 두 당이 거대연정이란 지붕아래 공생하게 됐다. 양당의 대표들은 어제의 일은 덮고 독일의 앞날과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이해와 협력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며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끼는 점은 사민당의 정치적 판단이다. 좌파당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으나 연합과는 함께 할 수 있었던 현재 독일 사민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연합은 사회적 정의와 형평성 보다는 경제발전을 위한 노동, 사회정책의 유연성을 우선의 가치로 내세운다. 현재 독일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일자리 창출을 양 당이 모두 차기내각이 풀어야할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해법의 내용은 너무나 다르다. 그 모든 차이를 인지하면서 사민당은 연합과 손을 잡았다.
혹자는 이번 사민당의 연정결정을 두고 제2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이고 이젠 정말 건너지 말아야 했을 강을 사민당이 건너고 말았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들에 대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사민당내부의 당권파들은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슈뢰더정권 1기 때의 신중도파(neue Mitte)들의 정치적 지향이 2005년 거대연정으로 결과된 점 - 조기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이 정책을 펼친 점, 선거에서 좌파성향의 당들과 연합하지 못한 점, 거대연정으로 밖에 향할 수 없었던 점 - 에 대해서 그들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한다. 150년 사민당의 역사는 신중도주의자들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신중도주의자들은 그들의 노선만을 점철시켜 지난 7년간 사민당을 끊임없이 우측으로 개량화 시켜왔다. 의회정치 내에서 사민당 진화의 방향이 현재 독일 사민당의 모습으로 대표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일자리가 있고 조직된 노동자 이외의 노동자(대표적으로 실업자와 노조에 가입되 있지 않는 비정규직)와 그 외 시민들의 권리와 요구에 대해서 사민당은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민당이 주요 타겟으로 삼은 중간계층을 포함하기에도 그들의 이념은 이미 많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다.
남한의 정치제도만 봐오던 내가 독일에서 거대 연정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소위 민주주의적인 의회정치의 다른 차원을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복잡하고 더딘 과정 어디에도 아래로부터의 개입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발견되지 못했다. 훨씬 세련되고 섬세한 유럽식 민주주의적 의회정치 제도, 그걸 통해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된 것은 의회 밖의 사회, 노동운동의 귀중함이다. 사민당의 혁신 역시도 이러한 의회 밖의 운동세력의 압력으로 당내의 당권투쟁이 다시 촉발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이념이 재논의 될 수 있을 때만이 그들의 불투명한 미래가 보다 투명해 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형성되어 출발할 독일 거대연정의 수명이 과연 얼마만큼 유지될지 그 역시도 지켜볼 일이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http://kilsp.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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