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독일, 붉은 로자 서거 80돌 수십만명 참배

 
    뉴스 > 전체기사
독일, 붉은 로자 서거 80돌 수십만명 참배
뉴스센터 nuovo@hanimail.com
15일은 "독일 공산당의 어머니"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와 그의 동지 카를 리프크네히트(1879~1919)가 한밤중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 후 강물 속으로 내던져진지 80년이 되는 날.
DPA통신은 12일 옛 동베를린 외곽지역에 있는 룩셈부르크 기념탑이 전세계에서 온 참배객 수십만명이 바친 짙은 붉은색 카네이션 꽃다발더미에 파묻혀 있다고 전했다.지난 주말 80주년 기념행사에는 89년 통독이후 최대규모인 10만여명이 참석,사회주의 혁명가의 업적을 되새겼다.
공산체제 하에서 룩셈부르크 사망일은 국가적인 기념일로 대접받았으며 매년 국가지도자들이 기념탑을 찾아 헌화하는 것이 관례였다.그러나 통일후 공산주의에 대한 환멸로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따라서 올해 기념일에 수십만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실은 옛동구권의 경제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반영한다는 것이 DPA의 분석이다.
옛동독체제 아래서 30여년간 해외정보부 책임자로 활동했던 마르쿠스 울프는 "추모객들이 이처럼 몰려드는 것은 사회주의 이념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와 자유가 하나라는 자신의 이념을 지키다가 희생됐으나 동독과 스탈린체제는 그 교훈을 잊어버림으로써 몰락을 자초했다"고 반성했다.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지식인혁명가" "붉은 로자"등으로 불리는 룩셈부르크는 러사아령 폴란드의 자모시치에서 출생,폴란드 사회민주당과 독일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설립했다. <오애리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유고공습] 독일 전투참여 국내반응

 
    뉴스 > 전체기사
[유고공습] 독일 전투참여 국내반응
임필수 
독일군이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만에 처음으로 나토와 함께 군 사작전을 벌인 데 대해 대부분의 독일 국민과 정치인들은 환영하 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 정치인들은 독일 군의 공습 참여가 독일 기본법에 규정된 평화주의 원칙에 위배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연방최고재판소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4일 나토의 공습 후 전국에 생방송된 연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군에 전투참여 명 령을 내렸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슈뢰더 총리는 독일군의 이번 참 전은 독일이 이제 세계평화를 지키는 책임있는 일원이 됐음을 대 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볼프강 쇼이블레 기민련(CDU)당수 등 야당의원들은 이 번 공습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슈뢰더 정권의 입장에 동조했다. 그러나 집권여당인 사민당(SPD)과 녹색당내 일 부 좌파의원들과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은 나토의 군 사행동에 독일군이 동원된 것은 국제기구의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 한 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일 뿐 아니라 주권국가에 대한 불 법적인 무력공격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특히 사민당내 일부 좌 파의원들은 이번 군사행동을 전쟁포기와 평화수호를 내용으로 하 는 독일 기본법과 통일조약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연방최 고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 언론과 지식인들은 55년 서독의 나토 가입과 90년 독일군이 서유럽동맹의 일원으로 국제 분쟁지역에 파병된 이후 처 음으로 국제평화유지를 목적으로 군사활동을 벌였다는 점에 상당 한 의미를 부여한다. 뮌헨대 정치학과 고트프리트 칼 킨더만 교수 는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조처는 적록연정의 국방정책을 대외적으 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며, 독일이 인간의 가치와 자 유를 말살하려는 독재세력에 맞서 자유수호세력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지식인들은 앞으로 독일이 계속해 국제분쟁에 참여 할 경우 주변국들로부터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적인 팽창을 시도 한다는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 독일 국 내 세르비아인들의 시위가 발생하고 있는 점을 들어 남의 전쟁을 국내화하는 무모한 행위라는 비판도 있다. 뮌헨/백경학 통신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2 호/연대] 독일계 의류회사의 부당해고

 
    뉴스 > 전체기사
[52 호/연대] 독일계 의류회사의 부당해고
picis picis@jinbo.net
독일계 의류회사의 부당해고
친애하는 동지들,
나는 당신들에게 태국내 독일계 피복 공장 노동자들의 해고에 맞서는 긴급 행동을 제안합니다. 그들에게 연대서한을 보내주십시오.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APWSL) 집행위원 루비나 자밀 4/7

독일계 의류 제조업체에서 해고된 태국 피복 노동자들
노조의 임금 요구안에 대한 협상을 거부한 후, 회사는 공장을 폐쇄하고 150명의 노동자들을 보상없이 해고하였다.
회사는 태국내 활동에서 노조를 배제하려고 한다.
태국 피복 노동조합(태국 섬유 피혁 노동조합 연맹의 산하 단체)의 요구

1999년 1월 6일, 태국 피복 노동조합은 스플렌디드 타이랜드사(Splendid Thailand Ltd)에 임금인상안을 제출했다. 당시 회사 노동자들의 일당은 162바트(4.30달러)였다. 그러나 이 금액은 생계비를 충당하기조차 어려웠다. 회사는 임금협상 요구를 거부했으며 1월 9일 노조는 회사측이 협상에 임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노동부에 중재를 신청했다. 1월 13일 노동부는 중재협상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회사측은 협상을 1월 19일까지 연기할 것을 요청했으며 노조는 이에 동의했다.
1월 19일 회사측은 노조측에게 협상을 노사간에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노조는 동의했고 협상은 진행되었지만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노조는 재협상 일정을 제출했으나 사측은 참가를 거부했다. 적어도 5회에 걸친 협상이 시도되었으나 매번 사측은 출석을 거부했다.
2월 18일 사측은 생산공정에 손실이 발생했으므로 2월 22일부터 28일까지 70%수준의 임금을 지급받는 대신 노동자들이 출근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이 제안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으며 2월 19일 회사는 임금 분쟁을 이유로 공장을 폐쇄하고 150명의 모든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쫓아냈다.
2월 20일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왔으며 공장 건물 앞에 모여 직장폐쇄 철회와 조업복귀를 요구했다. 회사측은 이 행동을 불법 파업으로 간주했으나 노동자들은 24시간 내내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3월 4일 회사측은 130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으며 법원에 9명의 노조지도자에 대한 70만 바트(19,000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회사는 노동자들과 노조의 행위로 인해 공장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회사측은 "불법 파업"으로 인해 임금과 해고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을 공장 밖에서 투쟁을 계속했으며 3월 29일 방콕 전승 기념관에서 노동부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노조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동부 관리들은 4월 1일 노사 협상을 주선할 것을 약속했다. 4월 1일에 진행된 협상에서 회사측은 노조가 항상 "요구와 문제"만을 야기함으로 노조가 배제된 상태에서 공장가동을 지속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노조측은 만일 회사측이 공장을 폐쇄한다면 노동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만일 회사측이 가동을 재개하고자 한다면 모든 노동자들을 복직시킬 때에만 노조는 임금 요구를 철회하는데 동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플렌디드사(태국)의 경영자인 힐마르 소이어는 자신에게는 결정권이 없으며 방콕이 아닌 뒤셀도르프에서 결정될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4월 8일까지 답변을 약속했다.

행동제안:
태국, 홍콩 혹은 뒤셀도르프 스플렌디드사로 다음 사항을 요구하는 편지나 전화 팩스 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1) 스플랜디드사가 태국 공장을 재가동하고 모든 해고노동자를 복직시킬 것.
2) 9명의 노조지도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철회할 것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3 호/동향] 독일 - '붉은 오스카'를 내리친 자본가들

 
    뉴스 > 전체기사
[53 호/동향] 독일 - '붉은 오스카'를 내리친 자본가들
picis picis@jinbo.net
독일 - '붉은 오스카'를 내리친 자본가들
오늘날의 사회주의 99/4, 자슈아 슈타니치치

독일 재무장관 오스카 라퐁텐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적녹 연정이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도 적녹 연정이 2002년 의회 회기까지 지속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에 내기를 걸지 못한다.

전후 독일 역사상 어떤 정부도 이렇게 빨리 위기에 봉착하지는 않았다. 헬무트 콜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노동자와 실업자의 대중적 분노에 편승하여 당선된 적녹 연립정권은 거대기업의 강한 압력 아래에서 어떤 대안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불황이 독일을 강타한다면 혼란은 얼마나 크게 번질 것인가?
자본가들은 라퐁텐을 사임시켰다. 때때로 그 스스로 묘사하듯 그의 사임은 자신이 사회주의자이거나 좌파라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방어한 것이 아니라-그는 임금삭감에 기초한 노동시간 단축을 처음으로 주장했었다- 경제정책에 있어서의 수정만을 요구했다. 그는 더 많은 국가개입, 온건한 케인즈주의적 개혁, 내수확대를 위한 임금인상, 이자율 인하, 고정환율제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 금융체제를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제안이라기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처럼 독일보다 더 깊은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국가들의 지배계급은 공공투자 계획을 비롯한 국가개입정책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유럽과 미국의 자본가들은 여전히 탈규제, 사회지출 삭감,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지속을 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붉은 오스카'를 사임시켰다.
올해 임금협상에서 라퐁텐은 임금인상에 대한 노조측의 요구안을 제한된 범위안에서 지지했다. 자본가들은 그의 행동에서 적녹연정이 그들이 원하는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자본가들은 민사당과 녹색당 장관들이 계획하는 어떠한 개혁안에도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라퐁텐을 제거 0순위로 간주했다. 어느 부르주아 경제지에는 한 회사 사장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됐다 '지금까지 자본에 의한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혁명의 시작이다' 라퐁텐이 사임을 발표한 다음 날, 그들은 다음과 같이 환호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했다. 오스카 라퐁텐 사건은 막을 내렸다'
이미 정부는 많은 주요 정책들을 철회했다. 정부는 핵 에너지 사용을 중단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관련 회사측의 반발에 굴복했으며 환경세 개혁은 거대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에너지세를 감면해주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라퐁텐의 사임으로 민사당과 녹색당의 권력 이동이 촉진될 것이다. 소위 민사당내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나머지 분파들조차 경제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기업활동에 대한 세금감면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부가가치세의 증가와 같은 형태로 경제부장관 뮬러는 고용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녹색당내 우파 정치인들은 기업에 대한 세금감면, 임금삭감, 보다 폭넓은 시장원리의 적용을 요구했다. 이러한 입장은 또한 당내 좌파에 의해서도 지지받았다. 좌파 대변인이자 환경부장관인 유르겐 트리틴은 민사당과 보수 기독민주연합과의 정치적 입장차이가 좁혀지고 있으므로 앞으로 기독민주연합과의 연정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난 해 4/4분기의 경제성장속도의 완화와 불황으로의 진입 가능성으로부터 적녹 연립정권에 의한 공공 서비스와 노동 계급의 권리에 대한 대대적 공격이 있을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라퐁텐의 사임은 노동계급에게 거대기업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재무부장관조차 거대기업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는데 어떻게 변화가 가능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철강노동자들의 투쟁은 무엇이 자본가들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 그것은 바로 노동계급의 단결된 힘이었다. 올해 임금협상에서 철강노동자들은 단지 한 차례 경고파업에만 참가했으나 자본가들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4.5%의 임금인상안이 관철되었다.
몇 년안에 노동자, 실업자와 청년들은 자본주의 위기가 초래한 결과들에 저항하는 투쟁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민사당이나 녹색당이 급격히 우경화되고 복지국가정책을 공격할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환상을 더 이상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노조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노조내 우경화 추세에 저항할 것임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은 저항을 조직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위원회에 조직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노동자 정당이 부재하다는 사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 시장독재를 방어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사회주의적 정책을 대변할 새로운 노동자 대중정당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낼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4 호/동향] 독일 - 전쟁중인 독일 녹색당

 
    뉴스 > 전체기사
[54 호/동향] 독일 - 전쟁중인 독일 녹색당
picis picis@jinbo.net
독일 - 전쟁중인 독일 녹색당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동자세계(WSWS) 4/30

지난 몇 주간 독일 녹색당의 호전성이 일으킨 반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도대체 언제, 그리고 어디에 자신들이 천명했던 원칙을 이렇게 간단히 파기해버린 정당이 존재하였던가? 적녹연정의 한 축으로서 녹색당이 보여준 이러한 무책임함에 견줄만한 비교대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녹색당의 기본적인 정치원칙은 완전히 내던져졌고, 코소보 지상군 파견을 절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내 녹색당 지도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지상군 파견에 즉각적으로 동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녹색당은 또다른 차원에서 "원칙의 부재"를 확인시켜 주었으며 이는 끝까지 우리 인상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1914년 8월 황제의 전쟁공채 발행에 동의하여 지구적 학살극의 서막을 열었던 20세기초사민당의 배신행위를 기억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자 사민당은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분리되었으며 자신들이 그때까지 지키고 주장하던 모든 원칙들을 저버렸다. 그러나 과거를 회고해 본다면 사민당의 변절이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많은 시간에 걸쳐 발전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녹색당의 경우는 어떠한가! 여기서 우리는 녹색당이 타락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서술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회주의가 녹색당의 현재를 만들어 왔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녹색당이 확신을 가지고 보여줄 수 있는 원칙은 하나밖엔 없다: 그들의 결단력 부재. 미미한 압력에 대해서조차 녹색당은 별다른 저항없이 대세를 쫒아간다. 원자력 사용 축소, 주요 에너지 사용자들과 환경 파괴자들에 대한 과세, 생태학적 재건설, 평화주의 등 그들이 과거에 주장하던 정치적 원칙들 가운데 시궁창으로 빠져버리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녹색당은 보수적인 헬무트 콜 정권의 법안통과를 저지하려던 그들이 의지했던 조치들의 대부분을 권력획득을 위해서 다시금 이용하고 있다.
적녹연정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사안들이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5월 13일 특별전당대회를 당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녹색당의 정치적 붕괴는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모든 당원들의 정치적 입장은 분리되어 있으나 당은 통일되어 있다"는 반복되는 주술은 매우 가소로울 따름이다.
무엇이 녹색당을 급속히 와해시켰는가? 녹색당의 붕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여기에는 많은 원인들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당 지도부에게 있다. 당 지도자 요쉬카 피셔는 전형적인 필리스타인계(팔레스타인에서 유태인을 학대하던 민족:역주) 독일인으로서 오로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정치적으로 발휘하는 자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그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어제 자신이 생각하고 말했던 것과 정반대로 오늘날 행동하고 있다-그는 확신없는 수다장이일 따름이며 결코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자신에게 가장 큰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근거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자기 만족에 빠져있다. 종종 그러하듯이 명예와 어리석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를 녹색당 쇠퇴의 유일하고 주요한 원인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피셔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일 따름이다. 우리는 개인사를 거론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결과를 다루고 있다. 코소보 공습은 정치적 촉매제로서 기능하면서 정치적 과정을 촉진시키고 시야에 가려져 있던 사회적인 문제들을 표면으로 등장시킨다.
독일 적녹연정의 건설은 지난 60년대말 저항운동에서 첫 정치적 경험을 했던 세대가 권력을 획득했음을 의미했다. 그 당시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베트남전과 독일 정계에 증가하고 있는 과거 나치주의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이 있었다(1968년 신나치주의정당NPD는 바덴 부르텐베르크시 선거에서 9.8%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후 운동지도부의 입장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의 중요한 구호였던 "전쟁반대! 파시즘반대!"에서 점차 세르비아계 전체에 대한 테러의 형태를 띠어가고 있는 코소보 폭격에 대한 주장으로 전환되는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다다랐다. 차기 유럽선거에서 프랑스 녹색당의 후보로 나설 다니엘 꽁바디와 같은 과거 학생운동 지도자는 코소보에 대한 조속한 지상군 투입을 반복해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절에 대한 한가지 설명은 68세대의 급진주의가 정치와는 관련이 없으며 차라리 세대의 문제에 더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발생했던 것은 아버지들에 대항한 아들들의 전통적인 반항이었다. 그러나 결국 아들들은 아버지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이와같은 언명은 60년대 학생운동세력들이 현재 2/3에 해당하는 사회적 부를 계승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동일한 배경으로 그들은 과거에는 열렬하게 저항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소유를 공고히 지켜주는 국가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만으로는 녹색당의 변절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 녹색당이 첫 시험대(코소보 공습:역주)에서 불평없이 제국주의적 논리에 흡수되어 버렸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녹색당의 정치적 내용이 발전했던 과정을 설명하는 것 또한 요구된다.
후에 녹색당을 창당하게 될 많은 운동가들은 학생운동시기에 사회를 흔들던 노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폭발적 힘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모택동이나 체 게바라 그리고 그 시대의 다른 영웅들을 흠모하며 그들 자신을 사회주의자들이나 혁명운동가로 동일시하던 다양한 정치적 분파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노동계급이 많은 패배를 겪고 부르조아가 지구적 반격을 시작하자 이러한 움직임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투쟁이 가졌던 초기의 열광은 깊은 좌절에 빠져버렸고 정치적 지향 역시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들이 가졌던 정치적 입장이나 확신은 심각한 고려 없이 폐기되어 버렸고 또다른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60년대말의 이러한 조건은 녹색당을 정치의 정면에 등장시켰다. 그들은 정치적 수단으로서 계급투쟁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내용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마저도 포기했다. 환경과 평화, 민주주의는 그들의 원칙이었으며 이러한 목적들은 고착화된 지배관계에 도전하지 않고도 실현될 수 있었다. 몇 년후 고르바초프는 "인권"이 계급문제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하지만 그는 녹색당이 몇 년간 설파했던 주장을 다시 언급했을 뿐이었다.
녹색당에 따르면 정치는 더 높은 이상-도덕적 가치!를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도덕적 가치는 정당이 드러내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이해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이 상이한 사회적 이해관계와 동떨어져 존재한다면 이는 방향을 상실한 정책을 포장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이러한 가치들은 지배세력에 의해서 형성되고 결정되어 버린다.
레온 트로츠키는 그의 유명한 저서 "그들의 도덕과 우리의 도덕"에서 정치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도덕적 가치와 기본적인 상식에 입각한 정치행위들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였다: "안정적인 사회환경에서 건전한 상식은 사업을 하고 환자를 치료하며 작품을 쓰고 노조를 지도하고 의회에서 투표하고 결혼하고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동일한 상식을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 완전한 일반화의 영역으로 확장하려고 할 때는 그러한 건전한 상식이라는 것이 단지 어떤 시대에 특정 계급의 편견이 축적된 것에 불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80년대 초 녹색당이 정치와 사회를 인간화하려는 의도로 개혁과 전진을 위한 희망이라는 꽃을 달고 의회로 진입했을 때 드러나기 시작했다. 콜정부에 대한 오랜 기간의 저항과 사회적 정체가 심화되는 상황속에서 녹색당은 그들의 영향력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정치적 현실은 거의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인 사회적 관계를 뒤흔드는 폭풍우가 정치적 쇠퇴를 대신하자 녹색당은 그들 자신이 완전히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이들의 능력을 초과하는 과중한 짐이 녹색당에 지워져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오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며 내일 자신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점차 유고공습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전쟁은 "인류애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작고 덜 발전된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강하고 경제적으로 힘있는 국가들이 무력으로 위협함으로서 경제적 착취라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확립하려는 발가벗겨진 제국주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들은 이번 전쟁의 첫 사상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사회적 권력관계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거부하고 있는 녹색당은 현재의 사회적인 격변으로 그들이 변화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걸프전 기간동안 "석유를 위한 피의 전쟁 중단"을 외치던 요쉬카 피셔는 5주간의 공격이 끝난 지금 부당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터무니 없는 왜곡을 자행하고 있으며 1년전 극우파 활동을 이유로 녹색당에 의해 의회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던 독일군은 현재 "평화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녹색당 내의 깊어져 가는 분쟁은 녹색당을 출현시켰던 사회적 기반이 심각하게 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수의 중간계급이 약진한 반면, 다수는 실업과 자영업(self-employment)이라는 싼 노동형태에 의해 증가하는 가난으로 침몰했다.
녹색당 쇠퇴라는 우울한 장면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이는 전쟁을 일으킨 사회와 전쟁 자체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독특한 결론을 공개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위축당하지 않을 새로운 정당을 위한 길을 명확하게 해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일 녹색당 전당대회, &quot;이것이 정치&quot;

 
    뉴스 > 전체기사
독일 녹색당 전당대회, "이것이 정치"
뉴스센터 nuovo@hanimail.com
나토의 유고공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3일 열린 독일 녹색당의 전당대회는 당내 좌파 평화주의자들의 요구한 `나토 공습의 무조건 즉각 중단' 대신 당 지도부가 제시한 `나토 공습의 일시 중단'을 찬성 444대 반대 331로 채택했다. 이로써 독일의 적록연정은 가까스로 붕괴의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는 `녹색당식의 전당대회는 역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줬다. 우선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10여명이 나와 8시간이 넘게 논쟁을 벌였다. 말 그대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한 이념정당으로서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녹색당 내에서도 나토의 유고공습을 반대하는 좌파 평화주의자들은 회의시작 직후 나토공습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과 당 지도부에 거칠게 항의했다. 코소보 전쟁에 반대하는 한 청년이 회의시작 직후 피셔 장관에게 붉은 색 페인트 봉지를 던져 귀에 물감이 들어간 피셔 장관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치료를 받고 행사장으로 되돌아온 피셔 장관은 “구호나 페인트로 코소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피셔 장관의 연설 도중 흥분한 대의원들은 `위선자' `학살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호루라기를 불며 항의의 뜻을 나타냈다.

기상천외한 항의시위도 있었다. 한 청년이 공습에 대한 항의표시로 갑자기 단상쪽으로 뛰어나가 나체시위를 벌이다 행사 진행요원에 붙잡혀 자리에 앉혀졌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뒤에도 특별한 제지를 받지 않고 여전히 행사 도중 단상 주위를 맴돌아 대의원들로부터 폭소가 쏟아졌다.

이처럼 요란한 찬반 대결이 벌어졌지만 공습에 반대했던 좌파 평화주의자들도 대회가 끝난 뒤 일일이 피셔 장관을 찾아가 위로의 인사를 건네는 따뜻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뮌헨/백경학 통신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6호/동향] 발칸전쟁을 지지하는 독일 녹색

 
    뉴스 > 전체기사
[56호/동향] 발칸전쟁을 지지하는 독일 녹색당
picis picis@jinbo.net
발칸전쟁을 지지하는 독일 녹색당
우테 라이스터,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 5/15

5월 13일 빌레펠트에서 열린 회의의 유일한 쟁점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었다. 대의원동맹90/녹색당(Bundnis 90/Die Gr nnen)의 임시대회에 참가한 대의원들이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의 정책을 지지했다. 그 결과,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정부의 전쟁 정책이 녹색당의 공식적 정책이 되었다.
들은 대규모 경찰병력과 경호서비스 요원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피셔와의 협의하에 당 집행위에서 작성, 상정한 결의안에 동의했다.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대의원은
444명이었다. 크리스티안 슈트로벨레와 아넬리 분텐바흐(두 사람은 녹색당 의원이다)가 제기한 대안은 318표를 얻었다.
두 결의안 간의 주요한 차이점은 집행위의 제안이 나토 폭격의 제한적 중단을 요구한 반면, 대안은 공습의 무기한 중단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는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전쟁의 유일한 책임자로 규정지었다. 이들은 또한 피셔의 외교적 활동을 지지하고 사민당과의 연정을 유지하는데 동의했다.
과장된 분위기-정부 각료들 사이의 격앙된 "불화", 피셔에 대한 페인트 풍선 공격, 야유와 휘파람-는 논쟁의 내용과 범위, 틀에서의 차이의 정도를 얼마간 드러내었다. 차이의 정도는 완전히 과장되었고 언론에서 뻥튀기한 것이었다. 십여개의 카메라가 의사진행이 방해되고 강당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1989년에는 이와 비슷하게,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이 베를린장벽의 붕괴에 앞서 동독 대중집회에서 (서부)독일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을, 그 규모가 아무리 작건 특집방송으로 다루곤 했다. 이러한 언론 조작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가는 전쟁 반대에 대한 안전판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이번의 경우, 녹색당이 여전히 이러한 전쟁 반대를 포용할 수 있는 당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다.
언론의 발표에 따르면, 당의 다수파는 상당한 내부 투쟁 이후 인종학살 독재자에 대한 불가피한 전쟁을 지지한다는 결정에 도달한 반면, 내부 반대파들은 평화주의적 관점에 단단히 고착되어 왔다. 이것이 폭력적인 논쟁의 원인이었다. 따라서 양측 모두는 어려운 상황을 겪었지만, 상호존중이라는 최상의 사례 속에서 민주적 논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들은 독일 국민들이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전쟁중인 독일 정부를 지지함으로써 동일한 목적-평화-을 함께 나눴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당대회는 이와는 정반대의 것을 드러내었다. 당대회는 녹색당이 사회운동에서 억압적 권력의 사악한 도구로 변화되는 과정의 정점이었다. 이는 또한 외무장관 피셔나 국무장관 루드거 폴머 같이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녹색당원들이 민주적 권
리를 무자비하게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과거에 반핵시위에서만 보여졌던 것처럼 경찰의 저지선이 대회장 주위로 내던져진 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당대회에서 진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대의원들이 나토의 제한적 혹은 무기한 휴전 중 어느 것을 지지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거의 실제적 의미가 없었다. 다시 말해, "반대"는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나토가 따르는 구체적인 전쟁 전략-에 관해 입으로만 고양되고 있었다. 만약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진정으로 진지한 관심을 가졌다면 실제로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무언가-사민당에 대한 지지의 철회,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정부 내 녹색당 인사들을 제명하는 것, 폭격에 저항하는 대중시위의 조직화-를 하는 대신, 그들은 이러저러한 전쟁과 평화 일반에 대해 허세를 늘어놓았다.
논의와 주장의 모든 예봉은 이러한 간단한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평화와 인권을 조화시키자"라는 표어가 연단에 장식되어 있었다. 집행위원회 대표들은 이것이 "목적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라고 설명하였다. 우리는 나토 폭격으로
인해 쫓겨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인권을 지지할 수도 있고 이들을 희생시키면서 밀로셰비치와 평화를 이룰 수도 있다. 이들의 비판은 제재 부과 등을 통해 유고슬라비아에 압력을 가하는 또다른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집행위 대표들은 이러한 경로
가 아직 완전히 고갈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상황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모든 다양한 대립적 이해들이 무시될 수 있었고, 모든 쟁점이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선전포고가 사라예보에서의 페르디난드 대공의 암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일차대전 전단계처럼 보였다. 모든 대의원들은 현 전쟁의 구실-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운명-을 양화(良貨)로 다루었다.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문제는 한번도 제기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대회의 모든 논쟁은 전쟁 선전을 은폐하는 장식물이 되었다. 대회의 논의는 독일 정부가 기초한 대로의 전쟁 정책의 축을 둘러싸고 배타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따라서 폭격의 종식을 진정으로 원했던 개별 녹색당원들은 절망감으로 가득찼다.
양측은 밀로셰비치의 악행을 비난하는데 있어 상대방을 능가하려고 노력하였다. 대다수 대의원들이 폭격이 코소보인들의 상황을 악화시켰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했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이로부터 전쟁 자체가 애초부터 인도주의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발발되었을 수도 있다는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았다. 누구의 이해를 위해 무슨 이유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대회에서 가장 언급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왜 이러한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는가? "만약 전쟁이 공식적으로 주어진 목적 이외의 다른 이유로 수행되고 있다면, 녹색당이 차지하고자 하는 도덕적 우위(moral high horse)는 악의와 술수로 가득찬 구닥다리(old nag)에 불과하다는 점이 폭로된다"(당대회장에서 뿌려진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 독일어판 리플렛 중).
폭격에 대한 비판자들은 평화주의의 절대적 무능을 보여주었으며, 이로 인해 교전국들의 근본적 이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평화주의는 "무기를 내려놓아라"라는 요구로 스스로를 국한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판자들에 대해 녹색당 지도자들이 성난 전쟁
미치광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강당 뒤편에서 외쳐진 야유에 대한 답으로 피셔는 소리높여 외쳤다. "아하, 이제야 나왔군요. 난 당신을 기다렸소. '전쟁광, 여기 전쟁광이 말하고 있네', 그러면 밀로셰비치씨가 당신을 차기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할거요". 루드거 폴머는 세르비아의 정권은 평화적 수단으로 저지할 수 없는 파시스트 체제라고 말했다. 한편, 다니엘 콘-벤디트는 슈트로벨레-분텐바흐의 제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선동적으로 공격하면서 폭력의 면전에서 움츠러드는 겁장이라고 그들을 비난하였다. 콘-벤디트에 의하면 그들의 제안은 밀로셰비치를 기쁘게 할 것이었다.
민주주의자는 자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대한 모든 비판을 적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식으로 비난해선 안된다고 슈트로벨레가 직접 정당하게 지적했다. 이는 전쟁 당시 권위주의 정권의 주장이었다.
미국과 나토의 전쟁 정책에 대한 모든 반대자와 비판자들은 이 당, 특히 당의 정부각료들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비열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3호/동향] 변화된 독일 녹색당의 사회정책

 
    뉴스 > 전체기사
[63호/동향] 변화된 독일 녹색당의 사회정책
국제정보 picis@jinbo.net
변화된 독일 녹색당의 사회정책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7/3

녹색당이 2차대전 이래 독일 최초의 군사공격을 지지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일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녹색당의 주요 인물인 외무장관 요시카 피셔(Yoschka Fischer)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나토의 끔찍한 폭격을 환영하는 데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빌레펠트(Bielefeld)에서 열린 임시 당대회가 피셔의 전쟁 정책을 승인하고 심지어 이를 공식적인 당 정책으로 삼았을 때, 많은 이들은 냉정을 찾았다.
과거의 평화주의와 반군국주의으로부터 전쟁당이 된 녹색당의 전환은 당이 겪어온 변화의 일부분이다. 이는 최근 녹색당의 사회 정책들에서 가장 지독하게 표현되고 있다. 재무장관 한스 아이헬(Hans Eichel)이 3백억 마르크를 삭감하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사회적 합의 정책의 급격한 종식을 신호하자마자 녹색당의 예산전문가들은 이를 경축하기 시작했다. 녹색당의 예산 대변인인 오스발트 메츠거(Oswald Metzger)는 이제 필요한 것은 사민당이 예상되는 저항의 파고에 태도를 굽히지 않게끔 보장하는 것뿐이라고 언급하였다.
"나는 한편으론 놀랍고 그(아이헬)가 자신의 야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의심쩍게 여겨온 일들을 해야만 한다"고 메츠거는 말했다. 예산 통과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을 것이다. 연금생활자나 실업자, 아이를 가진 가족 등 예산감축에 영향받는 사람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지난 16년 동안 녹색당은 콜 정부의 사회적 삭감에 맞서 항의를 전개해왔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민당이 통치하는 주나 도시들에서 이와 유사한 사회정책을 비판하였다. 사회 정책, 조세 및 경제 정책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있어 녹색당은 이제 연정의 오른쪽에 위치한 신자유주의 세력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1999년 3월 23일 녹색당 의원단이 합의한 "투자, 노동, 환경을 위한 제안(Initiatives for Investment, Work and the Environment)"이라는 문서에 제시되어 있다. 이 문서의 도입부는 여전히 "유권자들은 적록 연정에게 분명한 과제를 설정해 주었다. 적록 연정은 실업에 성공적으로 맞서 싸우고, 개혁의 속박을 풀고, 환경 과제에 결연히 대처하고, 마지막으로, 기민당과 자유당 통치의 냉담한 시기를 지나 사회적 정의를 재확립하도록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지나가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보면 이 문서는 독일 고용주 연맹들 중 하나로부터 나온 희망목록에 가까워 보인다.
연정은 "공급, 수요 정책을 합리적인 관계에 두도록" 하는 (전(前)재무장관 오스카 라퐁텐(Oskar Lafontaine)의 급작스런 사임과 관련된) "두번째 기회"를 부여받았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필수적인 구조적 변화에서 개혁을 위한 엔진이라고 생각한다. 생태주의, 연금 개혁, 국가 부채 등에 관련된 미래 세대의 전망은 오늘날의 개혁의 관점 속에 삽입되어야 한다. 이는 피하기 힘든 난처한 문제이다."
구조적 변화와 개혁에 관련하여 녹색당이 이해하는 바는 "기본적 투자 조건의 향상"이라는 제목의 절에서 설명되고 있다. 이 절은 기업세의 급속한 개혁 필요성을 약술하고 있다. 최고 조세율의 감축만이 "'기업주' 대표들이 독일에서의 경제활동에 긍정적 가치를 두도록" 하기 위한 "긍정적인 경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중소기업과 신규 사업을 고무시키기 위해서는 "민간 벤처 자본"이 자리잡혀야 한다.
문서 전반의 신조는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개혁의 최대 승리자가 기업주가 되기를 원한다"는 요구로 요약된다.
공공부문 전반은 여기에 소요되는 부담스러운 관리와 더불어 민간 경제에 개방되어야 한다. 공공 행정은 "현대적인 서비스 지향" 방식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낡은 정부는 "어떠한 수요 지향 정책도 수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받는다.
"노동시장을 위한 새로운 추진력"이라 이름붙여진 절은 연금 및 의료 "개혁"과 "생태세(ecological tax)"의 도입을 통해 사회보장비가 감축되어야 한다는 요구로 시작하고 있다. 너무나도 옳다! 그러나 이는 부수적인 임금비용이 상당히 감축될 기업주들에게만 해당된다. 다른 한편으로 퇴직생활자에게는 연금이 삭감되고 환자는 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생태세는 대부분의 기업에게는 감면될 것이 뻔한 새로운 형태의 대규모 과세에 불과하다.
"보다 지적인 노동"이라는 표제 하에는 고용안정을 파괴하는 다양한 형태의 유연노동이 장려되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경제 영역에서 시간제 노동의 공세를 필요로 한다." 정부, 기업주, 노동조합 사이의 "노동을 위한 동맹"은 보다 많은 "연간 시간 계약, 직무 순환, 직무 나누기" 등을 추진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주로 서비스 부문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한 달에 630 마르크(시간제 노동 제한선)와 1250 마르크(보다 낮은 소득세 수준) 범위일 것이다."
녹색당은 수백만의 장기 실업자들에게 국가보조금으로 시행되는 노동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저임금 부문은 이것이 시험될 수 있는 곳에 자리잡아야 한다. 녹색당은 간명하고 냉소적인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첫 번째 연간에 이전의 장기 실업자들이 번 모든 임금가치의 절반만이 (실업-옮긴이)수당 수령 자격을 계산하는데 고려되어야 한다면, 이것이 우리가 위의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이는 비용을 절감하고 사람들을 도우며 야반도주의 압력을 줄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수지가 맞는 고용과 안맞는 고용 사이의 경계를 보다 유연하게 만들고자 한다. 실업자들을 위한 이러한 새로운 제안은 또한 우리의 안을 수용하도록 하는 책임성을 가져올 것이다".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 6월 29일자의 "녹색당도 '게으름뱅이들'을 발견해내다 - 저임금과 실업을 둘러싼 실험을 숙고하고 있는 의원단파"라는 제호 아래 롤프 디트리히 슈바르츠(Rolf Dietrich Schwartz)는, 의원단 의장인 레초 슐라우흐(Rezzo Schlauch)의 지도 아래 "네 번의 실험에서 낮은 수준을 보인 사람들에게 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제안"이 논의를 통해 정교화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슈바르츠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이전에는 거대 기업과 자유당(FDP)의 영역이었던 문제('일하기를 꺼려하는' 실업자)에 녹색당이 처음으로 착수하고 있다". 녹색당을 인용하면서 그는 말하기를, "'일군의 실업자들은 그냥 수당 수령자로 남거나 필요한 경우 소규모 부수적인 일자리를 찾는 게 보다 나은 것처럼 생각한다는 징후'가 보인다...".
이 기사는 녹색당이 추구하는 다양한 모델의 저임금과 시간제 노동을 보여주고 있다. "'일자리 제공을 현대화'하기 위한 세번째 모델은 민간기관을 활용함으로써 실업 및 복지 수당을 수령하고 있는 이들을 노동으로 배치시킬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위해이 기관은 자신이 채우는 결원 한 자리에 대해 4천 마르크를 수령하게 될 것이다. 서비스 부문의 개발되지 않은 고용 잠재력은 소득을 생존 최저선 아래로 풀어주는 것을 통해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의 귀결은 예상하기 쉽다. 현재의 사회구조를 해체시키기 위해 대량실업이 활용되는 한편, 이와 동시에 민간 고용 기관은 상당한 수익을 얻기 위해 실업자들의 곤경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녹색당은 연금 및 의료 개혁(이는 내각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동의되었으며 사회안전망의 심대한 삭감을 표상한다)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그 작성 과정에도 녹색당 전문가와 장관이 참여하였다. 많은 제안들, 가령 노동장관 발터 리스터(Walter Riester)가 도입하고자 원했지만 당분간 제안을 미뤘던 민간에 의한 노령자 보호 등이 녹색당 문서에서 선전되고 있다. 녹색당은 기존의 노동 및 임금 계약에의 개입도 반대하지 않는다. "노동을 위한 동맹"의 과제는 "임금 및 연봉과 관련한 중기적 기준"에 관한 협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녹색당 사회 정책의 우선회는 너무나도 급속하고 철저하게 완성되고 있어서 당의 지지자들조차 이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한 예로, 뮌스터(M nster) 지부는 의원단에게 다음과 같은 항의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우리는 전문가적, 인도주의적 근거로 이러한 계획을 거부합니다. 실업자에게 저임금의 부적당한 일자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강제노동의 도입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당의 목적(여기서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항상 존중되어 왔습니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독일의 헌법은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사회 최빈곤층은 이류시민이 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녹색당의 뮌스터 지부 집행부는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도달했다. "연정의 현실주의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규모로 우리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도록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언가 새롭습니다. 의원단은 녹색당의 목적에 완전히 대립되는 정책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의원단이 당 내에서 아무런 논의도 없이 급격히 180도 선회한 것은 특히 분노할 만한 일입니다. 이 문서는 코소보 전쟁이라는 그림자 밑에서 단 2주 만에 합의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노하며 우리의 의원단에게 기만당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노와 경고의 목소리는 녹색당 내에서 점차 희귀해지고 있으며 공격을 받고 있다. 오히려, 스스로를 "젊은" "제2세대의 대표"라고 지칭하는 한 그룹이 주도권을 잡고 "당 강령으로부터 근본적으로 탈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녹색당의 방향전환이 당 강령으로 성문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독자적인 의견서 첫 쪽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화해(Burgfrieden)와 타협을 위한 시간은 끝났다. 당이 미래에 나아갈 올바른 방향에 관해 분명한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분명하고 권력지향적인, 실용적인 입장을 지지하며, 또한 당원의 부분적인 교체도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에 관한 녹색당의 놀랄만한 변화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20년 전에 이 당을 만들어낸 사회층은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이들 중산층의 삶과 노동의 조건이, 절대다수 노동대중과 마찬가지로, 점차 어려워지고는 있지만, 다른이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
다지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부는 주식시장의 성장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오스발트 메츠거는 녹색당의 많은 출세지향가들(이들의 허영심을 능가하는 것은 자신들의 자족감뿐이다)의 편협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 45세의 인물은 1970년대의 몇 년 간 사민당원이었던 슈바벤산지(Swabian Mountains)에서 자신의 정치역정을 시작하였다. 80년대 중반 녹색당이 보다 나은 기회를 제공할 것처럼 보이자 그는 당적을 바꿨다. 법률 공부를 중단한 직후 그는 타이핑 사무실의 소유주가 되었다.
바트 슈센리트(Bad Schussenried)의 지방의회 의원으로서 그는 부시장에까지 올랐고 이 또한 그에게 지역 저축은행(Savings Bank)의 경영위원회라는 수익 좋은 자리를 제공해주었다. 메츠거는 녹색당의 의원이 되어 가장 중요한 기구인 예산위원회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녹색당 내에서 오랫 동안 "신자유주의자"라고 비난받기는 했지만 오늘날 녹색당의 기질을 규정하는 것은 그의 거대기업 지향적 노선이다.
메츠거는 자신이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지를 비밀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가서고 있고 당과 더불어 18년의 나이를 먹은 층은 대부분 부유한 사회 중간층에 자리잡고 있습니다."([슈피겔(Der Spiegel)], 1998년 11월 2일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3호/동향] 복지국가의 종말

 
    뉴스 > 전체기사
[63호/동향] 복지국가의 종말
국제정보 picis@jinbo.net
복지국가의 종말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7/2

적녹연립정부와 재무장관 한스 아이헬은 복지정책의 축소를 제안하였다. 아이헬은 2000년 예산 가운데 총 300억 마르크를 삭감한다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은 단일 최대 정부부처인 고용사회부에서 삭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처에서의 예산삭감은 128억 마르크에 이를 것이며 이러한 예산삭감은 결국 실업수당과 사회보조금을 포함하는 모든 사회복지비의 절대적 축소를 의미한다.
지난주 정부는 또한 의료보험과 연금제도에 대한 충격적인 "개혁안"을 발표했다. 독일은 수십 년간 유럽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복지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아 왔으며 실업자와 노약자에게 광범위한 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왔다.
새로운 예산안은 자본가들에게는 세금을 감면시켜 주고 노동자들에게는 세율부담을 증가시킴으로써, 독일 복지국가의 토대를 근본에서부터 파괴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이 공들여 모아왔던 많은 연금과 의료보험은 이제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주식시장에서 국제투기자본에게 흘러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독일 복지국가모델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새로운 예산안의 정치적 의미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유용할 것이다.
독일 노동자에 대한 복지정책의 시작은 19세기말 비스마르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의 수상'이라고 불렸던 교활한 비스마르크는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는 민중들에 대한 일정한 양보가 불가피한 조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빠르고 강력하게 성장하던 산업프롤레타리아트와 맞서야 했던 비스마르크는 1878년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여 노동자의 정치적 성장을 차단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반민중적인 법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노동자계급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1883년 의료보험의 기본적인 형태가 도입되었다. 1년 후,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을 제공받을 수 있었으며 1889년에는 산재로 인해 더 이상 작업할 수 없는 노동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재정적 지원을 보장하는 보험제도가 입법화되었다. 보험제도의 입법화는 노동자들에게 퇴직 이후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연기금의 창설을 위한 것이었다.
20세기 독일의 복지제도는 계급 간의 분할이 최고조에 달할 때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급진화를 방
지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정부에 의해서 개선되고 확장되었다(특히 바이마르 공화국과 2차대전 이후의 시기에 복지제도의 확장은 두드러진다). 복지국가 제도는 '연대'의 원칙에 기초해 있었으며 국가는 연금과 의료보험에 대해 노동자와 자본가 양 진영에 동일한 부담을 요구하였다.
복지국가의 발전을 매개로 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밀월관계는 독일이 20세기 후반에 경험했던 정치적 안정과 경제기적을 가능케 했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에 취해진 재정정책의 새로운 변화는 복지국가모델 안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야 했던 많은 경제적 부담을 감면시켜 주었으며 의료보험과 연기금 제도를 정부의 관할에서 시장의 변덕스러움으로 내맡겨 버렸다.
그러나 사민당과 녹색당은 재정 상의 거대한 손실과 연기금 및 의료보험제도에서 초래되는 "비용폭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용폭발"이라는 정부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겔젠키르헨 대학의 하인즈 본트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20년간, 독일 국민총생산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차지했던 비중은 단지 5.87%에서 5.95%로 증가했을 뿐이다. 이러한 수치에 근거해 본다면, 의료보험제도와 관련한 과도한 재정 지출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국가관리 의료보험제도의 재정적 문제는 독일통일 이후에야 발생하기 시작했다. 많은 부분에서 재정적 어려움은 비용폭발의 문제라기 보다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수준에 기인하는 납부금의 감소에서 비롯되었다.
적녹연정은 대량실업(독일의 공식적 실업은 현재 4백만에 육박하고 있으며 또다른 수백 만명이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다)을 피할 수 없는 사태라고 간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실업사태를 이용하여 값싼 노동력을 자본에 제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의료보호

보건부 장관 안드레아 피셔(녹색당)는 개혁프로그램의 일부로 독일 보건정책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기적으로 보험비를 납부해 오던 일반 노동자들과 전문직 종사자들은 병이 발생했을 경우 전문의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여러 의료보험 관련기관의 환자에 대한 상담과 치료의 실시를 규제했으며 의약품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조치의 시행으로 인해 이러한 규제는 이완될 것이며 관련기관들은 시장원리에 기반하여 민중들의 보건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의료서비스의 비용절감에만 치중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조치로 인해 대부분의 질병치료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가정의(家庭醫)에 의해 치료될 것이며 많은 의료비용이 요구되는 전문의에 의한 치료 기회는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입원 기간은 최소화될 것이다. 의약품에 대한 보조금 액수는 상당히 감소할 것이며 병원에 지급되던 국가보조금은 폐지될 것이다. 따라서 병원에 대한 자본투자는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병원의 폐쇄와 서비스 축소를 야기할 것이다. 민간 보험사들은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는 병원들에 대해서만 보조금 지급의 의무를 질 것이며 환자들은 조립라인의 공산품처럼 획일적으로 처리될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영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많은 국가들의 경우에서 이미 관찰할 수 있다. 몇 년전 이들 국가에 도입되었던 유사한 조치들은 의료서비스의 심각한 악화를 초래했으며 만성질환자들을 포함한 모든 환자들은 병원치료를 받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연금

전 노조위원장이자 노동부 장관인 발터 리스터(사민당)는 연금제도의 개혁을 제안했다. 초기에 리스터는 국가에 기반한 연금체계를 개혁하여 대안적인 민간 연금체계에 노동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발표에 대한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이 야기되자 리스터는 강제조항을 삭제할 것을 발표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에 기반한 연금체계를 개혁하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해서 마련해 갔으며 지금까지 연기금에 지불해오던 자본가의 분담금을 삭제하였다. 연기금에 부담되던 자본가들의 분담금은 일반 노동자들의 납부금 증가를 통해서 충당될 것이며 노동자들은 석유값과 가스, 전기세 인상 및 추가된 간접세로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연금과 의료비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통제를 축소하고, 지출비용의 삭감으로 절약된 수십억 마르크를 주식시장에 추가로 지원하여 주식시장의 활황을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민간 보건분야에서의 연간 매출액은 이미 2500억 마르크에 이른다. 민간 보건 의약분야는 독일에서 가장 전망있는 분야로 평가받고 있으며 복지정책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은 직후, 수십억 마르크 이상이 민간 보건 의약분야로 유입되고 있다.
아이헬의 정책은 광범위한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의약 회사들은 복지비의 삭감이 자신들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연구작업에 요구되는 지출을 제한할 것이라고 불평했다. 의사와 간호사 등은 복지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으며 연기금 수혜자들 역시 아이헬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대다수 이해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국한하여 정부의 불공정한 처분만을 불평했을 뿐, 보건과 복지 분야에 대한 시장논리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자는 자유시장과 주식시장 이윤의 제단 위에서 장기적인 보호수단을 희생당한 대다수 노동대중이다. 정책 변화는 독일 내 빈부격차를 극대화시킬 것이며 이미 나토의 유고 공습으로 촉발된 독일의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71호/동향] 반민중적 긴축정책으로 위기맞은 독일 사민당

 
    뉴스 > 전체기사
[71호/동향] 반민중적 긴축정책으로 위기맞은 독일 사민당
picis picis@jinbo.net
반민중적 긴축정책으로 위기맞은 사민당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율리히 리페르트, 9/21

정권을 잡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사민당(SPD)과 그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은 독일 국민의 분노의 표적이 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가장 단기간에 모든 신임을 잃은 독일 총리가 되었다. 국민들 대다수가 사회정책에 대한 정부의 새로운 비용절감 조치와 감축 계획에 격렬히 반응하고 있다. 그들은 기만과 배신감을 철저히 느끼고 있다. 최근 브라덴부르크주와 자를란트주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사실(계속될 선거에서 이 같은 현상은 반복될 것이다)은 깊은 좌절과 분노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슈뢰더 지도부 하에서 사민당은 자신들의 선거 공약 모두를 어겼다. 사민당은 과거에 자신이 반대하고 부분적으로 차단시켰던 조치들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지배정당으로서 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민주연합(CDU, 이하 기민연)의 전임 노동장관 블룸이 연금 산정에 있어 인구통계적 요소들을 포함(여러 해를 걸친 연금과 순수 임금 증가 사이의 연계를 끊어 결과적으로 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시키는 데 목적을 둠)시켰을 때 사민당은 그의 정책을 맹렬히 공격했었다. 지난해 사민당의 선거 강령은 기민연을 다음과 같은 말로 비난했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쳐 열심히 일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런 방식으로 대우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올해 봄 슈뢰더는 선언했다. "연금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민당 노동장관 발터 리히스터는 연금 인상을 내년 0.7%, 후년 1.6%로 각각 제한한다는 안을 제출했고 이는 블룸이 제안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연금 지급액을 감소시킬 것이다.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은 이미 연금과 순수 총액 임금 간의 연동제 부활이 그릇된 조치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으며 리스터는 내년 봄부터 실시될 더 심화된 감축 방안을 제출했다.
전쟁 이후 독일을 재건설하는 데 수많은 희생을 치뤘던 세대들이 상속을 통해 부를 획득했던 많은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양식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고혈을 감내해야 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연금문제는 선거 이후 사민당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우경적 정책의 단지 일부일 뿐이이다. 한스 아이헬 재무장관(사민당)이 3백만 마르크를 절감하기 위해 일거에 내놓은 전면적인 재정지출계획은 내용 하나 하나가 실업자는 물론 대다수 노동자들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다.
실업 보조를 위한 기본 예산도 삭감될 것이다. 장기 실업자를 위한 사회보장금도 축소될 것이며 이로서 실업자는 훨씬 낮아진 연금 생활자로 전락해 이중의 고통이라는 나락에 빠지는 것이다.
재무장관이 발표한 내용 중 최악의 것은 "자녀를 가진 실업자 보조금 축소"라는 내용이다. 자녀를 가진 실업자의 경우 실업보조금을 7% 더 받는다. 아이헬은 이것이 독신 실업자의 수준, 즉 가장 최근 총수입의 60%로 삭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고용주들은 세금감면을 얻게될 것이다. 2001년부터 최상층의 소득세와 기업세가 더 내려가게 된다. 이는 8십만 마르크에 달하는 것으로 부유층을 위한 선물이며, "당신이 부유하다면 더 부유해질 것이다"라는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전쟁 이후 어떤 정부도 가난한 이들에게서 부유한 이들로의 부의 재분배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리고 도발적으로 감행한 사례가 없었다.
최근 몇십 년 간 대중적 정당으로 자리매김 해온 사민당은 사회적 평등이라는 일정한 개념에 따라 독일을 통치해 왔고 당의 간부들은 사회 곳곳의 위원회와 잡행부서들에 자리잡고 있다. 당의 우경화는 반드시 내부적 갈등과 공개적인 분쟁을 야기시킬 것이다.
아이헬의 긴축계획과 지난 여름 슈뢰더와 블레어의 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사민당 의원단장 페테르 슈트룩은 당의 정책을 개괄하면서 부유한 사람들의 이해에 근거한 대규모 조세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일부 사민당 당직자들은 이에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고 있다. 정부 정책의 비판자들은 사회적 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민당의 강령을 내팽겨친 것에 대해 경고했다.
이를 처음 천명한 사람 중 한명은 전 자를란트 주지사이자 전 당수 오스카 라퐁텐의 친구인 라인하르트 클림트였다. 그는 슈뢰더 정권 하에서 "사회적 정의라는 기본적인 사민주의적 가치가 땅에 떨어질"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다음 주 선거에 대해 예측하면서 정부와 거리를 두고 연금 삭감을 포함한 비용절감 정책을 거부할 것이라고
상원에서 선언했다.
8월 말 건설·농업·환경 노조 위원장이자 사민당 국회의원인 클라우스 비제후겔은 감축계획에 반대하는 항의 결의안을 발표했다. "사회정의는 여전히 우리의 임무이다"로 시작되는 이 결의안은 사민당이 지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 사회, 환경적 문제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던 이전 보수, 자유주의 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기민연 정책의 결과로 사회적 불평등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속해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사민당은 그와 같은 정책을 추구해서는 안되며 그것으로는 사회정의를 강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결의안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제출된 삭감정책에 대한 다른 대안이 있다", 그리고 탈세에 대한 대응 조치, 고용주에 대한 세금 인상이나 새로운 과세 신설을 포함한 많은 주장들을 열거했다.
순식간에 40명의 사민당 의원들이 그 결의안에 서명을 했고 이로써 단지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원에서 정부 정책을 저지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에 깜짝 놀란 이 반대파들은 정부에 자신들의 충성을 선언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자르란트주 선거에서 패배한 후 4일 만에 슈뢰더 총리의 내가 테이블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부에 구속시키고 내각의 규율을 받아들인 클림트 자신이 이 판토마임에 어울리는 클라이막스를 제공하였다.
스스로 명명한 이 "사회정의를 위한 전사"는 건설교통부 장관이 될 것이고 공공주택 건설 사업에 대한 재정 감축 방안을 이행하는 책임자가 될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그 자리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자신에 대한 신망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민당 지도부는 이미 신망을 잃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라폰텐 또한 그의 의도를 드러냈다. 스위스의 한 호화 호텔에서 열린 소위 쾌락 심포지엄에서 그는 유럽의 상업적, 문화적 두뇌들을 앞에 두고 "정치와 쾌락"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왜 사민당의 우경화에 대한 당 내부의 진지한 반대가 없는 것일까?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는 모든 정치 전망에 있어 기본적인 것이다. 사회를 발전시키는 방향은 무엇일까? 경영진이 노동자 한 명의 평균 임금보다 400배를 벌어들이는 미국처럼 나갈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사회정의와 평등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 문제는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으로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더 많은 불평등 상태에 빠지게 한다.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는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함의를 가진 엄청난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사민당 당직자들은 이 문제를 뜨거운 감자처럼 손을 놓고 있다. 서로 다른 견해와 관계없이 그들은 한 가지 지점에서는 모두 단결하고 있는데 그들이 절대로 바라지 않는 것은 대중들이 정치에 개입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긴급성과 사회적 역학은 이미 사민당 정부가 공식적인 업무에 돌입한 첫 달에 분명해 졌다. 전 당수이자 재무 장관 라폰텐이 최근 사민당의 정책들을 70년대 정책과 연결시키려 했던 소심한 시도들은 거대 기업의 경영진과 은행의 타협 불가능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했다.
올라프 헨켈(독일산업기구 회장)은 자신들의 경제정책에 관해 정부에게 들려주지 않은 날이 없었다. 누구든 간접적인 방법으로라도 탈세에 대한 강력한 대응조치에 대해 즉각적으로 맹렬히 공격했다.
환경세, 원자력 에너지 감축, 혹은 저임금 일자리 감소방안과 같은 모든 정치적 제안들은 모두 무력화됐다. 대기업의 대표들은 자신들이 정부정책을 설명하는 양 떠들어댔다. 폭스바겐 자동차 회장인 페르디난트 피에흐의 전화 한통화에 처음으로 정부 참여를 이끌어내며 중고차 폐차에 관한 유럽의 규제를 날려버렸다는 사실은 그들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총선 이전에 일부 대기업 대변인들은 정부가 바뀌길 원하는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콜정부가 기민연 내 서로 다른 이해 당사자들의 분쟁에 둘러 싸여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바뀐 이후 그때의 그 대기업 대변인들이 사민당을 끌어당겼다. 그들은 슈뢰더와 그의 절친한 고문인 홈바흐,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슈뢰더가 "나는 기업의 이해에 어긋나는 어떠한 정책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경계는 분명해졌다. 라폰텐은 당수와 재무 장관 자리에서 사임했다.
정부정책의 중대한 변화는 코소보 전쟁 시기에 일어났다. 전쟁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산 이후 세계 상황의 변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냉전 시기, 서방 동맹 내 미국의 지배에 대해서 아무도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소보 전쟁으로 세계 열강들 간의 갈등의 심화되었다.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필요하다면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도 현실화되어야 하는) 국가적 이해에 관한 논쟁은 틀에 박힌 일이 되어버렸다. 세계 무대로의 독일의 복귀는 광범위한 결과를 낳고있다. 그러나 이는 독일이 자국의 문제부터 제대로 해결해야 함을 요구한다.
환경이나 원자력 의존에 관한 문제에 대해 갑작스럽게 우왕좌왕하던 상황은 끝이 났다. 정부는 실업과의 투쟁을 최우선의 관제로 천명했었지만 전쟁으로 상황이 변화되었다.
과거의 모든 비슷한 계획을 무색케 할 정도인 아이헬의 사회복지 부문 삭감계획은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되었다. 기존의 법률이나 규제도 또는 이전 세기의 8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회 국가"라는 전통도 그 앞을 가로막을 수 없다. 야간이나 주말 쇼핑 같은 부차적 문제와 관련해서조차 고용주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법률을 굴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줄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적 이익의 이름 하에 사민주의자들은 국가의 보전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할 태세를 갖추고 있고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사민당과 단단한 연계를 가진 「디 차이트(Die Zeit)」는 최근 판 헤드라인을 "당신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로 달았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풀어나가고 있다. "총리가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에서 홀가분해졌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화이다." 이 신문은 이 새로운 변화를 환호했다.
사민당의 우경화는 점증하고 있는 국민들의 분노에 명백한 정치적 지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의 건설을 긴급히 요구하고 있다. 국가적 이익이라는 이름 하에 정당화되고 있는 긴축 공세는 노동자와 실업자의 국제적 단결, 그리고 정치적 동원을 통해 거부되어야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