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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새벽, 청계천 한때 불바다 -바리케이트 앞에선 청계천 노점상의 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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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새벽, 청계천 한때 불바다 -바리케이트 앞에선 청계천 노점상의 생존권
연출: 참세상방송국
청계천 노점상들의 생존권 투쟁은 극렬했다.
노점상들은 공무원 1천 여명과 경찰/용역반원 1만 8천여명에 맞서 짓밟
힌 생존권을 위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최후까지 저항했다.

청계천 노점상들은 서울시가 벼룩시장을 활성화 시켜 문화공간으로 만들것
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합리적 대화의 절차가
아니라, 약 2만여명의 공권력과 용역반원을 동원한 무자비한 강제철거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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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끈질기게 노점 투쟁 강행할 것"

 
    뉴스 > 전체기사
"청계천에서 끈질기게 노점 투쟁 강행할 것"
청계 7,8가 깨진 인도위에서 좌판 펼치고 노점 시작
김용욱 batblue@jinbo.net
[참세상]
지난 30일 새벽 서울시가 청계천 행정대집행을 진행 한지 이틀만에 전국 노점상연합과 민중연대 소속 단체 대표들이 서울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청계천 노점상들은 청계천에서 끈질기게 노점 투쟁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민중연대 정광훈 의장은 "근대화를 상징하는 거리에 각종 물건들이 그 동네에서 전시될 수 있는 거리로 육성 보존해야한다"면서 "이명박 시장은 강제철거를 공개 사과하고 노점상에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청계천이 복원되어 서울이 좋은 환경으로 되는 만큼의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노점상의 생계 대책 마련도 매우 중요하다"며 "대책 없는 복원 명분만으로 생존권을 압살하는 것은 대표적인 관료행정"이라고 서울시를 규탄했다.

전노련 김흥현 의장은 "빈민들에게 엄청난 용역비를 모두 다 준다해도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이 겨울에 그들을 철거하기 위해 노숙자를 동원했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된다"면서 "우리는 이제 까지 평화적으로 해 왔지만 모든 것을 짓밟았다. 이제부터 대화하려는 모습과는 다른 투쟁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청계천 노점상들은 지난 30일 행정 대집행 이후에도 서울시가 포크레인으로 인도를 깨낸 자리에 청계천 7,8가를 중심으로 비닐과 좌판을 설치하고 장사를 시작하고 있다. 전노련은 지속적으로 '현자리 사수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또한 청계천 주변, 동대문운동장 주변에서 매일 선전전을 통해 서울시의 강제철거의 문제점도 알려 나갈 계획이며 매일 오전 11시-12시 청계천 현장 사수 투쟁 결의대회 및 노숙투쟁을 전개한다. 오는 12월 9일에는 종묘공원에서 "살인적인 청계천 노점상 강제철거 규탄 및 생존권 쟁취를 위한 총력투쟁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민중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명박 시장과의 면담을 갖으려 했으나 서울시가 이에 대한 답변도 없이 시청정문을 굳게 닫아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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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내 자리에 다시 돗자리를 깔았다!

 
    참세상TV > 열린 채널
빼앗긴 내 자리에 다시 돗자리를 깔았다!
제작: 숲속홍길동
<청계천 노점상인들의 생존권 사수 투쟁 [제2부] - 빼앗긴 내 자리에 다시 돗자리를 깔았다!>

인도폭을 좁히며 노점 원천봉쇄하기 위해
인도를 2미터 이상 깨부순 청계천에서 다시 보자기나 돗자리를 깔고
자신이 십수년간 장사해오던 자리에서 다시 장사를 하는 모습들과
노점상인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으로 청계천 노점상인들의 적치물을 싹쓸이한 이후의 모습들입니다.

놀라운 일은
동대문운동장은 이전부지가 아닌 천오백 노점 적치물 임시 보관소였다는 것입니다.


<영상 속 수록내용>

ㅇ싹쓸이 이틀 뒤인 12월 2일 청계천 7-9가 모습
ㅇ여성 노점 상인 인터뷰
ㅇ중구노련 사무처장 인터뷰

현장 상황 : 2003. 12. 2
영상 만든 날 : 2003. 12. 4
숲속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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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점상들 모여 청계천 강제철거규탄

 
    뉴스 > 전체기사
전국노점상들 모여 청계천 강제철거규탄
김용욱 batblue@jinbo.net
청계천 노점상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지난 11월 30일 행정대집행으로 청계천에서 쫓겨나 매일 자리를 사수하며 단속반원에 쫓기던 청계천 노점상들이 모처럼 청계천 도로에 당당하게 나와 인도를 축소한 안전표지만을 철거하고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혔던 용역반원들이 사용하는 컨테이너 창문을 부수기도 했다. 12월11일 종묘공원에서 전국 빈민대회를 마친 노점상 3천 여명은 이날 청계 9가까지 행진을 하며 청계천 강제철거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날 대회에서 전노련 김흥현의장은 "과거 군사정권 때도 날씨가 추워지면 진행하던 단속과 강제 철거를 멈추었다"며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천문학적인 용역비용을 책정하고 있으며 청계천을 절대로 단속하지 않겠다던 서울시는 11월30일 무자비하게 짓밟고 들어왔다"고 규탄했다. 김흥현 의장은 또 청계천 문제에 대해 "서울시가 1년 후에 재개발 할 동대문운동장으로 노점상들을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일단 노점상들을 속이고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흥현 의장은 또 "용역과 철거반을 투입하고 도시빈민을 살인죄로 몰아가는 보수정치에 맞서 노점상부터 대통합으로 나아가기로 했다"며 전노총련과의 통합을 시사했다. 전노련과 전노총련은 오는 16일날 통합을 위한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내년 1월경에 2004년 빈민투쟁을 선포하는 통합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은 "노점상의 자리는 노점상들의 자리"라며 "절대로 비켜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내 땅이라고 말하고 꼼짝 말고 장사를 진행하자"고 격려사를 전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3천여 노점상들은 청계 9가까지 행진을 마치고 정리집회를 가진 뒤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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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시장 노점상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참세상TV > 참세상 리포트
풍물시장 노점상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제작: 미디어참세상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졸지에 생계가 막막해진 청계천변 노점상들을 올초부터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주시켰다. "동대문운동장이 세계적인 풍물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면서, 전기, 상하수도 시설 공사, 차양막 설치, 풍물시장 홍보 등을 약속했지만,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서울시는 대부분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동대문운동장 한 켠으로는 견인주차장이 있어 900여 노점상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장사를 해야했고, 불편한 그 곳을 일부러 찾는 시민들이 많을 리 없었다.

가뜩이나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노점상들을 결정적으로 분노케 한 건, 6월중에 노점상들에게 넘겨주기로 했던 견인주차장 공간을 환승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서울시 측에서 용역반은 새벽에 기습적으로 펜스를 설치하고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만약 서울시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동대문운동장의 넓은 트랙으로는 매일매일 수도 없이 버스가 돌아나가고, 노점상들은 그 매연과 소음의 한가운데로 몰리게 된다.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이전보다 더욱 협소해진 공간에, 매연까지. 과연 누가 동대문 풍물시장을 찾아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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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개발사업은 쪽박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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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닌 '시장과 자본' 중심의 개발
노동자의 힘/최인기 
자본주의 초기단계에 생산수단의 독점적 소유에 기초하여 생산현장에서 노동을 통제하던 자본은 오늘날 경제부문을 넘어서 지역과 공간 등 모든 사회 영역들에 확장되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도시개발분야에 신자유주의 이념이 적용되면서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중심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분아래 곳곳에 외국인 투자를 원활하게 하고 있으며, 인천의 영종도와 서울 상암동의 경제특구, 그리고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금융허브 벨트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과거 대표적인 건설 자본가였던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을 비롯한 강북지역 뉴타운 건설을 주도하며 민간자본을 끌어 들여와 경쟁을 통한 방식과 관료적이고 개발 중심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세입자를 비롯한 철거민과 원 거주민, 영세상인과 노점상 같은 이해당사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있으며 사회적 합의 없이 인간을 배제한 시장중심과 자본 중심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우물 안에 갇힌 노점상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연말 대대적인 행정대집행과 단속으로 청계천 변의 노점상을 쫒아내고 그중 일부에게 동대문운동장 안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서울시에서는 마치 큰 시혜를 베푼 듯이 주장을 하고 있지만, 지난 6월초 노점상들이 귀가한 시간을 틈타 동대문운동장을 가로질러 '바리케이트'를 몰래 설치하였다. 애초에 서울시에서 구두로 합의한 '동대문 운동장내 풍물시장 활성화' 라는 약속을 파기하고 7월 1일부터 서울시의 버스 노선이 새롭게 바뀌기 때문에 "주차장 설치는 바뀔 수 없는 시의 방침이다"라며 약속을 번복하고 나섰다.

앞의 약속 불이행은 빙산의 일각이다. 동대문운동장안에 좌판을 펼친 노점상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왜냐하면 향후 2-3년 후에 또 다시 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점상과 서울시의 합의수준은 서울시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다. 서울시 산하의 '건설기획국' 차원의 구두 합의로 진행이 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구두 합의라는 것은 이번 사례에서도 확인되었듯이 향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계천 변의 노점상 투쟁은 당사자들의 생존권을 넘어 청계천복원과 개발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책과 독선적인 행정운영을 폭로해내는 주요한 타격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막다른 골목길에 내몰린 철거민

청계천 변은 물론 서울 강북지역의 뉴타운 개발 계획으로 인하여 10만 명 이상의 세입자와 도시빈민들이 사실상 강제 이주될 상황에 처해있다. 민간개발방식이라는 이유로 대책 없는 강제철거가 상도2동에서 벌어지기도 했으며 '피맛골'이 형성되어 있는 종로지역의 청진동 일대는 연면적 약 3만평의 지상 20층, 지하 7층짜리 주상복합 빌딩이 올라갈 채비를 하고 있다.

4대문 안의 건설과 개발은 서울시 주도로 추진되고 있고 아직은 여론에 밀려 관철되지 못하고 있지만 향후 건설자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도심에 짓는 주상복합 건물의 높이·용적률 기준을 현재의 800%에서 950%로 높이거나 90m에서 135m로 각각 기준이 완화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2001년 '도심재개발 기본계획'이 정한 건축물 높이제한 기준(90m·20층)이 무너지고, 을지로 롯데호텔(139m·35층) 높이의 '거대' 주상복합이 도심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게 되는 셈이다.

파헤쳐진 청계천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이명박 시장이 최근 한 기독교 행사의 봉헌식에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골자의 봉헌서를 직접 낭독한 것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듯이 그는 서울을 한 개인의 소유물로 사고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그의 개발과 복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청계천 복원, 역사의 복원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의 핵심은 개발이었습니까?... 청계천 복원에 다소나마 관여한 만큼 나는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청계천 사업을 주관하는 이명박 서울시장은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 누구를 위한 청계천복원인지 시장은 맹세코 정치적 목적을 떠나 이 대 역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가로등 밑에 웅크리던 노점상들이 그 빈한한 생계수단마저 내놓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 희생에 등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초기 청계천복원에 박수를 보냈던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의 한숨 섞인 고백이다.

개발을 통한 지역의 통제를 넘어서기 위하여…

이상과 같이 이명박 서울시장의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는 강북지역의 뉴타운 개발과 청계천 복원은 건설경기의 활성화를 꾀하고 이를 통해 서울시 전역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기 위함이다. 경제적인 이익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 정치적인 성과로 이어보려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꼼수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생산을 넘어 자본의 힘은 생활 및 환경과 공간의 영역까지 이윤 확보를 위해 질주를 하고 있다. 철거민, 노점상들을 밀어내거나 통제하고 개발을 추진해 나가는 데 맞서 노동자 계급에 투쟁의 영역이 넓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최인기씨는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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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과 맞물린 재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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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수하동 철거민 용역반원과 격렬 공방
청계천 복원과 맞물린 재개발, 인권도 싹쓸이
추운 겨울 하루아침에 노숙인 된 상인들
용오 기자 

삼각,수하동 철거 용역의 횡포에 여성 철거민이 맞서고 있다

살점이 에이도록 추웠던 지난 1월10일, 두 달여 동안 비닐 천막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던 을지로 입구 삼각, 수하동 철거민들과 용역업체 직원들 사이에 격렬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날 공방은 삼각,수하동 철거민들이 종로구청 앞에서 열린 청진6동 철거민 대책위 결의대회에 참가한 사이, 삼각,수하동 농성 천막에 용역반원들이 기습적으로 쳐들어와 비닐 천막을 부수고 난방용 나무를 가져가면서 시작되었다.

소식을 들은 전국 철거민연합 소속 철거민들과 삼각,수하동 철거민 60여 명은 청진6동 결의대회를 마치고 삼각,수하동 농성장 앞으로 모였다. 이곳에 모인 철거민들은 농성 천막이 산산히 부서진 것을 보고 분노 했으며 주변에 있는 용역반원을 향해 똥탄을 던지며 철거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철거민 대부분이 나이 많은 여성과 50대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내 젊은 남성 중심의 용역반원에 밀리기 시작했고 용역반원들은 돌과 소화기 등을 던지며 앞으로 전진해와 전철연 방송 차량의 뒷 유리를 완전히 부수기도 했다.

경찰은 공방이 진행되고 15분여 만에 기동대를 투입해 양측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경찰 투입은 용역반원이 농성천막을 부수고 나무를 탈취해 갔을 때는 전혀 이뤄지지 않아 철거민의 원성을 샀다.

전철연 방송차량 뒤 유리창을 향해 의자를 던지고 있는 용역
전철연 방송차에 소화기를 던지고 있는 용역

11월7일 강제 기습 철거, 사용할 수 있는 물건까지 전부 탈취

삼각,수하동 재개발 지구는 을지로2가 5지구 재개발구역내 5,150평 되는 구역이다. 지난 2003년 9월, 76명의 지주들 중 60여 명이 (주)미래로RED에 3,000여 평의 토지를 매각하면서 본격적인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세입자 대책위에 따르면 (주)미래로RED는 건물 세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포를 비우라는 통보를 하고 이에 응하지 않는 세입자들에게는 2004년 2월부터 한 사람씩 명도 소송을 걸어 승소 판결을 확보해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여 년 동안 삼각,수하동에서 장사를 해온 상인들은 특별한 대책도 없이 이주비용 100-300여만 원만 받고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IMF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하루하루 벌어 가계를 꾸려 나가던 상인들은 당장 장사를 중단하면 먹고 살 일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많은 상인들이 점포에서 숙식도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이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입자들은 세입자대책위를 만들어 시행사에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보려 했지만 시행사는 단 한 차례도 대화나 협의를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지난 2004년 11월7일(일요일) 새벽 4시 시행사 측은 주민들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 강제집행을 기습적으로 진행했다. 통상적으로 일요일 강제집행은 하지 않았으나 삼각,수하동은 일요일 새벽4시에 이뤄졌다.

또한 강제집행 과정에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상가 내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소화기를 뿌리고 저항하는 사람을 머리채 까지 잡고 질질 끌어내기도 해 세입자들의 인권 침해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는 것이다.

15분 간의 격렬한 공방이 있은 후 뒤늦게 출동한 기동대가 양측 사이를 막아섰다. 철거민들은 "용역깡패들이 우리 물건을 강탈해 갈때는 가만히 있더니 지금 출동하는 이뉴가 뭐냐"며 분개했다.

“재개발, 청계천 복원과 맞물려 인권도 싹쓸이”

세입자대책위 박수용 위원장(54세)은 “시행사 측이 고용한 용역깡패가 매각하지 않은 점포의 영업장 입구 골목을 봉쇄하고 시행사가 영업방해 횡포를 부리고 있다”면서 “이외에도 명도 소송이 진행 중인 세입자의 점포에도 들어와 전부 쇠망치로 파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세입자 박모 씨(57세)는 “시행사의 개발로 서울시도 손안대고 코를 푼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명도소송이 끝나지 않은 점포까지 강제로 집행하고 인권이 짓밟혀도 경찰이 무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삼각,수하동 재개발 지역이 청계천인근이다 보니 청계천 복원에 민간 자본으로 번듯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어 시행사는 시행사 대로 시장은 시장 대로 자기 업적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곳 재개발에는 세입자와 건축 폐기물만 쓸려나가는 개발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박씨는 “주민들은 매월 월세와 세금을 내고 힘겹게 살아 왔는데 지주들은 한마디도 없이 시행사에 땅을 팔아 버렸다”면서 “이곳 사람들은 빚도 있고 아직 외상값도 있으며 수입과 지출을 아슬아슬하게 맞춰가면서 살아 온 것은 그나마 이곳에 터전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무작정 나갈 수 없는 사연을 하소연 했다.

박씨는 또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어렵고 선량하게 살아 왔는데 재개발에 대한 대책을 세울 시간도 주지 않고 무조건 나가라면서 강제집행을 해 버렸다”면서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나서 법적인 하자가 없으면 다인가? 강제 집행으로 막대한 손실과 가게를 부숴서 오도 가도 못하고 길거리 노숙자 신세가 되어버렸다”고 분개했다.

박수용 세대위위원장은 △입주단지 조성 보장 △상가임대 입주권 우선보장 △가수용 시설 보장 △강제집행으로 인한 영업피해 손실보장 △거주자 임대아파트 보장 등이 세대위의 요구사항이라고 밝혔다.

삼각,수하동 세입자대책위 http://ssd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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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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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이기식 전시행정으로 대권 꿈꾸나?
정명훈,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올덴버그 그리고 전태일
윤태곤 기자 peyo@jinbo.net
흐뭇한 표정으로 정명훈에게 지휘봉 선사한 이명박 시장

흐뭇한 표정으로 지휘봉을 선사하는 이명박 시장
사진출처 : 하이서울 홈페이지

최근 서울시향 오디션 파문 뒤에는 이명박 시장의 밀어붙이기식 행정, 그리고 대권에 대한 야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청 3층 태평관에서 새로운 서울시향을 맡게될 지회자 정명훈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에서 기존 서울시향 관계자나 서울시 문화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관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기자회견의 사회는 이례적으로 서울시 문화과장이 맡았다.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지휘자 정명훈과 이명박 시장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 하고 앉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존 서울시향과 무관하게 새로운 시향의 단원 117명을 모두 오디션을 통해 뽑겠다고 일성을 고하는 정명훈 음악감독을 이명박 시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날 기자회견의 압권은 ‘지휘봉 전달식’이었다. 음악적 포부과 계획에 대한 정명훈 신임 음악감독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명박 시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이끌어 달라며 정명훈 감독에게 지휘봉을 선물했다. 마치 신임 육군참모총장에게 삼정도를 하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2,000억 예상되는 노들섬 프로젝트

이보다 앞선 지난 1월 이명박 시장은 “국제 공모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 2007년까지 완공하겠다”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을 서울에 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2007년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이기도 하다.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이명박 시장의 포부는 착착 실행되기 시작했다. 노들섬(옛이름은 중지도)가 서울시 오페라하우스 예정지로 지목됐고 서울시는 예산을 긴급 편성 지난 8일 노들섬 땅의 소유주인 (주)건영 에 274억을 주고 노들섬을 사들였고 국제 건축현상공모까지 일사천리로 추진중이다.

한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축계획이 화려하게 언론을 장식하는 동안 “제 아무리 불도저 시장이라 해도 2007년까지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완공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기초타당성조사, 국제공모, 공연장 공간배치에만 2년 정도 걸리고 순수 공사기간 역시 최소 2년은 걸린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한강 위에 놓인 노들섬의 특성상 물막이 공사까지 더해져야 하는 상황인데 설계에서 완공까지 3년안에 해치울 경우 부실공사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결국 서울시는 노들섬을 사들인 직후 “2009년까지 1만3천여평의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청소년들을 위한 야외무대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을 조성, 뉴욕 카네기홀이나 시드니 오페라하 우스처럼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건축물로 만든다는 구상”이라며 2007년 완공계획을 슬그머니 접었다.

그렇다면 과연 ‘노들섬 프로젝트’에 과연 돈은 얼마나 들까? 서울시에서 구체적 계획은 제출하고 있지 않아 짐작이 힘들지만 오는12월 개관하는 고양시 일산아람누리(문화센터)센터와 비교해보면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일산아람누리센터의 총공사비는 대략 1250억으로 추산된다.

아람누리센터에는 2000석의오페라 극장, 1500석의 콘서트홀, 300석의 실험극장, 야외공연장, 도서관, 전시시설들이 들어선다. 아람누리센터의 연면적은 1만6천300여평으로 노들섬 부지와 거의 비슷한 규모다.

아람누리센터의 예산을 살펴볼때 노들섬 부지비용 270억을 포함해 총공사비용은 최소 1,500억에서 2,000억 정도가 투입될 것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단원처우 개선과 계약직 채용은 무슨 관계?

이러한 서울시의 노들섬 프로젝트는 정명훈 영입과 맞닿는다. 서울시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뿐 아니라 전용 콘서트 홀을 건립하고 홍보, 마케팅, 공연기획, 단원처우 개선 등 파격적 뒷받침을 통해 ‘정명훈 표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의 교향악단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정명훈 영입과정에 기존 시향 관계자나 세종문화회관 측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20억이 들었다 30억이 들었다’는 카더라 통신만 무성한 채, 영입의 전과정은 이명박 시장과 서울시 문화과를 중심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단원처우 개선’의 핵심은 새로운 교향악단 단원들을 모두 1~3년의 계약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명훈씨는 올 해는 서울시향의 음악고문(수퍼바이저)로 설립에 주력하게 되고 내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상임지휘자직을 맡게 된다.

‘노들섬 프로젝트’ 혹은 ‘정명훈 프로젝트’ 때에 따라서는 ‘문화 시장’프로젝트를 넘어 대권프로젝트의 일환으로도 평가되는 일련의 사업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이 또 하나 있다. 노르웨이 출신의 아릴 레머라이트와 함께 부지휘자로 영입된 태국 출신의 번디트 웅그랑시는 각종 행사에 심심찮게 얼굴을 내밀고 최근에는 증권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을뿐더러 심지어 최초의 외국인 경제부총리로 거명되기까지한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대표의 사위로 알려졌다.

한건주의, 전시위주, 밀어붙이기식 문화행정은 사실 청계천 복원사업에서부터 싹을 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청계천 복원사업은 전형적인 ‘이명박식 밀어붙이기’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잡음이 커지지 않은 면이 있다고도 평가된다.

청계천의 랜드마크가 될 ‘산업자본주의 찬가’

도쿄무역전시장 앞에 서있는 클라에서 올덴버그의 거대한 작품
그러나 10월 1일 청계천 복원공사 완공일에 맞춰 청계천이 시작하는 입구 광장에 팝아티스트 클라에스 올덴버그의 조형물을 설치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방적 전시행정’은 정점에 달했다. 쌍안경, 담배꽁초, 빨래집게등을 수천 배 확대하는 조형물을 도쿄 무역전시장, 필라델피아 시청 앞 등에 설치한 올덴버그는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찬가’를 부르는 팝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연대를 비롯한 예술관련 사회단체들은 “(올덴버그의 작품은)청계천 복원의 역사적, 생태적, 문화적 의미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 지적하며 “하지만 정작 문제는 특정 작가가 선정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선정과정이 공개되지 않은 채 폐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데 있다”고 한목소리로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명박 시장과 서울시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청계천 조형물 작가 선정과정이 ‘작가의 명성’과 ‘관광수입’과 같은, 청계천의 역사성과 상징성과는 무관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을 뿐”이라 일침을 놓으며 “올덴버그와 같이 유명한 작가의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투입되는 예산 또한 상당할 텐데, 서울시는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내용이나 예산, 선정절차와 기준 등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다만 그 결과만 발표하였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시장 특유의 밀실행정,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다시 한 번 시민들만 소외시킨 것”이라는 성명서의 문구가 ‘문화시장 이명박’의 일련의 사업에 대한 간명하고 정확한 평가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양윤재 서울시 행정부시장은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6월까지 올덴버그가 작품 초안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정보 공개와 투명한 사업 진행을 위해 필요하다면 시민들에게 그 작가의 작품이 좋은 지 등에 대해 여론조사를 벌일 의향도 있다”고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전태일 기념관', '전태일로'는 거부하고 표지석 하나 덜렁

서울시는 지난 2003년 평화시장의 전태일기념동판을 철거한 바 있다
이와 정반대로 서울시는 청계6가 방산동 일대 1만3천평 규모의 미군 공병대 부대 이전 부지에 전태일 기념관을 짓는 계획을 세운 전태일기념사업회의 협조요청, 청계천에 놓일 21개의 다리 중 청계 6가에 놓일 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청계천로를 ‘전태일로’로 명명하자는 제안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지난 22일 서울시는 청계5가에서 8가 구간을 ‘전태일 거리’로 명명하고 청계 5가와 6가 사이 평화시장 앞길의 전태일 분신 장소에 표지석과 동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전태일로’와 ‘전태일거리’에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을지로, 퇴계로 등의 이름과 ‘연신내 사거리’의 무게감이 주는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서울시는 지난 1999년 전태일기념사업회가 평화시장 횡단보도 앞에 만들어 놓은 기념 동판을 지난 2003년 12월 철거한 바가 있기도 하다. 결국 자신들이 철거했던 동판을 원위치 시키고 표지석 하나를 더 세워주는 셈이다. 또한 서울시는 ‘전태일 다리’라는 이름이 제안됐던 다리에는 ‘버들다리’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정명훈,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팝아티스트 올덴버그, 전태일...문화시장 이명박을 해석할 수있는 몇 가지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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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과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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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과 사라지는 것들
청계천에 말걸기
류제홍 
지난 6월초 청계천의 출발지인 청계광장에서는 원활한 용수 공급을 점검하는 통수식이 열렸다. 현재 90%가 넘는 공정을 보이고 있는 청계천 복원 사업은 7월초 종합적인 통수시험 이후 교량공사, 반차도와 각종 경관조명시설 등의 설치를 거쳐 10월에 완공될 계획이다. 한편 복원사업 진행 중 문화재 파괴의 문재와 함께 청계천 일대가 문화유적으로 지정되면서 청계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이들의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청계천은 안녕하게 '복원'되고 있는가. '복원' 혹은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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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보면 내 몸에서 녹 냄새가 나는지 잘 몰라. 그런데 하루는 집에 가서 포옹 신고를 하는데 아내가 녹 냄새를 맡더군. 고마웠어. 내 존재를 알아주니 말이야…장기 계획? 확실한 건 없어. 청계천에 들어온 지 26년째인데 솔직히 다른 데로 옮긴다는 게 쉽나? 우리같은 금형이나 기계 산업은 옮기면 망하기 십상이야. 기계나 금형 같은 산업은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거든. 주문 받아서 재료 구해서 만들고 납품하는 게 이 동네 안에서 완벽하게 돌아가거든. 서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옮기라고 하면 인맥이나 일하는 네트워크가 와해될 수밖에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적응을 하겠지만 어디 그 공백을 서울시나 정부에서 메워주나?…요샌 그냥 장기나 두는 게 편해. 뭐 사람들도 복원 공사나 이전 문제에 대해서 별 말도 없고…앞으로 2년 동안 내가 어떻게 소멸해 가는지 봐 두게. 그게 청계천의 역사일 거야.

―이용진 (을지로 3가 대진정밀)

2002년 6월 서울시장 선거 공약으로 청계천 복원이 대중적인 이슈로 대두된 이후 현재 서울시장이 당선되자 청계천추진본부가 구성되어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리고 상인과 시민단체들은 각기 복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던 상황이었다. 청계천 환경 복원에는 찬성하되 그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속도조절론, 용수를 끌어 대는 인공공원 대신 상류 지천부터 살려야 한다는 자연생태론, 매몰되거나 사라져 가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켜야 한다는 원형복원론, 천변 상인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민주절차론, 고층·고밀화와 난개발을 막고 상인대책과 교통대책 등을 실제로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대책론 등이 다 같이 서울시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했다. 하지만 이들이 교차하는 전체 지형은 불안하게 봉합되어 있으며 각각의 입장은 서로 충돌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 나는 우선 청계천을 복원을 바라보는 내 나름의 접근방법을 찾기 위해 청계천의 특수함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서는 ‘삶의 기술’과 ‘공간의 동력’을 살피는 것으로 좁혀졌고, 이는 다시 ‘근대적 공간을 비근대적으로 살아 낸 삶의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다시 말해서 천변은 기본적으로 근대적 공간으로, 그 속의 삶은 비근대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여기서 낙후되고 지저분한 근대적 공간에 깃들어 있는 ‘삶의 기술’ 부분은 천변 사람들의 오래된 집단적 꿈과 연결되는 것으로 가시성을 초월하는 측면이 강하다.

과거의 개발이 고가도로와 대형 복합상가라는 근대화된 도시공간의 환영을 통해 천변의 역사, 문화, 환경을 보이지 않도록 했다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은 천변의 역사, 문화, 특히 환경을 가시화한다면서도 실상 역사-문화-환경과 천변의 삶-공간이 맺는 관계나 맥락들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고 있으며, 대신 국제금융업, IT-부품산업, 의류-패션업 등을 위한 지구들을 조성하여 고층·고밀의 도시상업공간들을 가시화하려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청계천 복원’계획은 청계천을 ‘복원’하되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며, 문화적 맥락 없는 생태복원과 역사문화복원은 그 자체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원형보존신화에 불과하다.

이 ‘이상한’ 현상은 복원과 개발에 대한 고민 이전에 청계천이라는 공간의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부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새로운 공간을 대규모로 조성하는 것,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하는 것은 긍정적 의미에서나 부정적 의미에서나 공간파괴라고 할 수 있다. 청계천의 경우는 부정적 공간파괴다. 왜냐하면 이번 청계천 복원과 천변 개발은 청계천 공간의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청계천이라는 공간의 삶과 그곳을 살아낸 삶의 방식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자연성과 역사성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간적인 것으로 개천으로서의 청계천을 입체적이고 가상적인 홍보 이미지들을 통해 환히 비춤으로서 청계천 주변, 즉 천변의 (재)개발 공간을 시계(視界)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역사문화 복원’이라는 명목을 통해 역사를 근대 이전으로 퇴행시킴으로서 근대역사를 역사의 시계(時計)에서 폐기해야 할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자연은 자연 그 자체 그대로가 아니며 거의 항상 인간의 시공간과 상호침투하면서 자기 흔적을 갖는다. 따라서 자연은 역사화, 정치화, 경제화, 사회화, 문화화를 거친다. 이러한 자연의 역사성, 정치성, 경제성, 사회성, 문화성 때문에 나는 ‘Nature’를 ‘자연’이 아니라 ‘자연성’이라 부른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청계천을 하천 자체의 ‘자연’으로 규정하고 청계천의 ‘자연성’을 보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인다. 영조 이후부터 청계천은 준설을 통해 만들어진 도심부 하수천이며 ‘개발시대’에는 복개된 대형 하수로라는 자연성을 갖는다. 건천에서 하수천으로, 다시 하수천에서 하수로로 자연성이 변하여 온 ‘자연사’(Natural History)를 갖지만, 하수를 담는 통로라는 점에 청계천의 한결같은 정체성이 있다.

이는 동시에 주변 공간의 ‘자연사’를 형성한다. ‘청계천’이 하천이면서 주변 지역 또한 지칭하는 이름이듯이 하수에서 살아가는 등이 휜 물고기처럼 천변의 열악하고 치열한 삶은 청계천의 또 다른 생태환경이 아닌가. 따라서 청계천을 복원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항과 같은 인공 공원의 조성이 아닌 하수천을 정화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천변의 지난한 삶의 허리를 펴주는 방식으로 청계천의 자연성을 변화시켜야 한다.

서울시의 역사관을 청계천 복원사업을 통해 거칠게 보면, 개천에 대해서는 전(前)근대 역사로서 복원의 가치가 절대적이라고 하며, 주변에 대해서는 현대 또는 탈근대적 도시공간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복원할 수 있지만 ‘역사성’은 역사를 복원하는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역사성에 대한 협의적 이해는 역사를 전근대적 범주로 국한하여 박제화하는 결과를 낳고 문화를 현대적인 것, 즉 현대문화로 국한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현재의 천변공간과 문화를 역사화한다는 명분하에 현재까지 삶의 맥락이 이어지고 있는 천변문화를 박제화하거나 과거의 문화로 기념하는 것에 찬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청계천의 근대는 현대의 삶과 문화와 경제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계천 주변의 근대적 삶의 문화와 공간의 동력에 대한 문화가치평가가 필요하다. 전근대의 역사와 현대적인 문화가 근대적인 것을 매개로 이어질 때 역사는 문화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천변은 기본적으로 근대적 공간이며, 잘못 조성된 근대적 구조물이라 하더라도 그 그늘에서 30-40년을 살아 낸 천변 사람들의 삶의 문화가 축적된 역사적 공간이다. 지금까지 우리네 삶에 자양분을 공급해 온 천변문화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 상이 없는 청계천 복원사업은 처음부터 허상에 불과한 또 하나의 개발신화에 불과하다.

청계천을 재생천으로

앞서 서술하였던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들, 즉 ‘자연성’과 ‘역사성’의 문제들을 염두해 두면 하나의 해결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 청계천과 천변을 기본적으로 근대적 공간으로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청계천을 그 자연사적 존재에 따라 근대적 도심 하수가 흐르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천변의 온갖 재생산업의 개념에 맞게 하수가 정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드는 것이다. 생성과 됨의 과정을 담는 물길 말이다. 필요하다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하수를 정화조와 같은 형태로 1차 처리하고 갖가지 정화 기술을 동원하여 하류로 갈수록 상급수로 변화시킬 수 있다. 더불어 상류 지천을 살리고 우기때 물 모아 건기때 방수한다든지, 다양한 자연정화기술을 동원할 수도 있겠다.

서울시의 계획처럼 하수를 따로 처리하고 어항과 같은 인공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청계천과는 상관도 없을뿐더러 다른 도시공간에도 좋은 리가 없다. 과도하게 시각중심적인 청계천 기본 설계안을 보면 너무 조경적인 경관만 중시하는 한편 사실상의 계획의 중심이 삶의 질보다는 경제중심적인 개발논리에 치우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또한 생태적 환경만 고집하는 것도 하수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면 진정한 고집도 아니려니와 청계천과도 상관없는 ‘자연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자연’ 자체를 중심으로 고려한다면 오히려 삼청동천을 복원한다면 청계천의 상류도 살리면서 경복궁과 사간동, 열린시민공원을 경유하여 문화관광부와 미대사관 뒤를 지나 청계천 복원의 시점부까지 멋진 자연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천변 개발의 문제다. 천변 속에서도 내성을 키우며 치열하게 살아낸 공간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피상적으로 보면 청계천의 자연성은 비유컨대 청계천의 하수에서 살아가는 등이 휜 물고기처럼 천변의 열악하고 지난한 삶이 되겠다. 하지만 천변 사람들은 근대의 괴물같은 공간의 그림자와 공해 물건을 재생시키듯이 말이다. 개발이 필요하다면 청계천 공간의 동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시켜야 한다. 생산의 네트워크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해체와 재생 및 모방기술을 체계적으로 재생산 할 수 있도록 공간구조를 정비하여야 한다. 고층으로 공간가치를 높이려면 기존의 저층 구조의 공간 네트워크를 최대한 살리면서 상층구조는 새로운 공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방안이 있겠다. 공간의 역능이 필요한 부분들은 단순히 파괴하고 새 공간으로 대치할 것이 아니라, 덧붙이고 변형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하여 생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아야 한다.


류제홍, 시각문화비평가
누가 전문가인가 http://weekly.culturalaction.org/maynews/read2.php?table=organ&item=3&no=2078
청계천 박람회… 그리고 만물공원 http://weekly.culturalaction.org/maynews/read2.php?table=organ&item=3&no=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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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너희가 전태일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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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전태일거리,다리’에 박힐 황동에 전현직 대통령 친필...
조수빈 기자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해 청계천 6~7가를 전태일거리로 조성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역사와 일상, 그리고 미래 전망’이란 제목의 ‘전태일거리조성안’을 18일 제출했으며 서울시의 최종 심의만 남아 있다. 심의 결과는 제출일로부터 2주후인 8월 1일 발표된다.

노무현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


지난 15일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청계천전태일기념관 건립기본계획안 발표회와 전태일거리,다리조성사업’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은 것.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각계각층에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 양대노총 위원장까지 각계 인사들이 자리를 빛(?)냈다.

청계천 6~7가에 설치될 전태일다리와 거리의 주테마는 ‘전태일 이어달리기’와 ‘전태일모뉴멘트’다. ‘전태일모뉴멘트’는 전태일 기념 조형물로 청년 전태일이 남긴 ‘나는 돌아가야 한다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라는 ‘말의 꽃’을 든 소녀상이다.

‘전태일 이어달리기’는 벽돌모양의 판돌에 시민들의 친필을 새겨 전태일거리 바닥을 조성하는 것으로, 손학규 경기지사,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가수 안치환 등 각계의 인사들과 시민 6천여 명이 참여한다. 즉, ‘전태일다리(‘버들다리’)’ 바닥에 전태일에게 혹은 자신의 염원과 희망을 직접 써서 담은 글을 모아 황동을 제작하여 설치하는 것.


‘전태일이어달리기’ 프로젝트 참여 인단 중 주목할 만한 이들이 있었으니 소위 ‘좋아보인다 싶으면 꼭 끼는 사람들’, 바로 노무현, 김영삼, 김대중 전현직 대통령 그들이다.

이들이 황동에 남긴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
김대중 전 대통령 “행동하는 양심 전태일! 영원한 우리들의 영웅 전태일!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民主主義(민주주의)와 自由(자유), 人權(인권)을 향한 高貴(고귀)한 犧牲(희생) 2005년 7월 金泳三(김영삼)”

‘만나달라고 만나달라고’ 죽도록 면담요청해도 코빼기도 안보이던 그들 아니던가! 아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도 안 들어주던 그들이 어쩐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전태일’이 누구이기에. ‘전태일’은 누구인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500여 명의 노동자들과 경찰, 평화시장 경비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평화시장, 전태일이 자신의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나타난 그날이. 그는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쥔 채로 몸에 불을 당겼다. 이른바 ‘근로기준법’ 화형식,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가운데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짦고 긴 세 마디 외침을 남겼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둘이었다.

1965년 열일곱의 나이로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을 시작하여 70년까지 성장지상주의와 산업현장의 비인간화 현실에 맞선 그는 오늘의 대다수 지식인들에게 또 노동자들에게 한국노동의 역사로 동시에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놓인 ‘자신’으로 투영되고 있다.

전태일은...

‘전태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실 기자가 태어난 지 10여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달리 했을 그를 기억할 리 만무하나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는 ‘참여정부 1년’ 되던 2003년,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며 목숨을 끊은 ‘김주익 열사 같은 이’다. 2003년 10월17일 사측에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129일 동안 투쟁광장 앞에 있는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김주익 열사.

‘국민의 정부 5년’ 되던 2002년 노점 단속에 항의하다 중구청장실에서 분신한 ‘박봉규 열사 같은 이’는 또 아니었을까! 2002년 8월23일 청계천 시장에서 공구좌판을 하던 노점상 고 박봉규 씨는 구청의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중구청장실에서 분신자살을 기도, 같은 해 9월6일 숨을 거둔다. 서울시의 대대적인 단속계획과 도시빈민의 삶이 배제된 청계천복원 사업으로 삶을 터전을 잃은 박봉규 열사의 죽음이 전태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문민정부 3년’ 되던 1995년 현대중공업 본관 정문 앞에서 어용 노조 집행부의 노동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한 ‘양봉수 열사’ 또한 그렇다. 1995년 5월 12일 사측과 어용 집행부의 노동탄압 및 민주노조 말살 책동은 한 젊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노동탄압 분쇄하고 민주노조 사수할 것”을 요구하던 양봉수열사의 죽음 또한 전태일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리하여 기자가 곰곰이 되짚어 본 결과 아마도 ‘전태일’은 김주익, 박봉규, 양봉수 같은 이였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순간 주책스럽게 2003년 4월 국회등원을 앞두고 캐주얼 복장을 한 유시민 의원이 국회의사당 단상 앞에서 의원 선서가 좌절된 해프닝이 생각난다. 그가 현재 어디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 잠시 동안, 그래 아주 잠시 동안 많은 이들이 ‘그의 넥타이를 매지 않은 평상복 차림에’ 속았지 않았나! 결국 유시민 의원의 국회등원이 그 다음날로 미루어지긴 했지만 이날의 해프닝으로 유시민 의원은 ‘권위주의에 맞선 진보적 더 나아가 개혁적 인물’로 평가되는 울지 못해 웃어야 하는 낯 뜨거운 시츄에이션이 발생한 것.

이때부터였던가 요즘 “보혁, 보혁” 하는데 당최 누가 ‘보수’고 ‘개혁’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4대 개혁입법’하며 ‘개혁’, ‘개혁’하는 요즘 우리는 도통 무감각하다. 어떤 이는 이런 것을 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오히려 울고 싶다. IMF 관리체제를 불러온 누가, 또한 IMF를 내세운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순응한 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을 재물 삼은 누가, 노동자들의 머리에 신자유주의 칼바람을 꽂고 있는 또 누군가, ‘전태일’이라는 네임밸류를 이미지 쇄신용으로 톡톡히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한마디 하겠다는데 갸륵하게 생각지 못하는 기자의 못된 심사도 원망스럽지만 ‘전태일’은 전태일 한 개인이 아닌 까닭에 그들의 제스츄어는 가당찮기 짝이 없다.

청계천 복원으로 많은 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그 자리를 대신해 초국적자본으로 채워지고 있는 가운데 도대체 노무현(직업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 사는 세상”은 무엇이며 김대중(전 대통령)이 언급한 “양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영삼(전 대통령), 그가 인권을 알긴 아는가!

도대체 너희가 ‘전태일’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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